한때 국회의장을 지내셨던 분의 블로그 글을 제 블로그에 전문 인용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고 싶습니다... 왜냐면 글의 내용이 200% 공감이 가고, 제가 맘속에 두고 끙끙거리며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거의 완벽하게 대신해주신 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속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해주는 글을 만날 때의 느낌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맞아! 바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어!" 하는 일치감에서 오는 기쁨과 공감대를 갖는 새로운 동지(?)를 만난 듯한 즐거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아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는데, 왜 내가 먼저 이야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하게 했을까 하는 약간의 경쟁 아닌 질투심이나 시기심 비슷한 감정입니다. 

그런데 아래 인용하는 글은 뒷쪽의 시기어린 감정보다는 마음이 맞는 동지를 만난 듯한 즐거움과 기쁨이 열 배는 더 크게 느껴지는 글입니다.. 광화문 현판에 금이 가서 교체 여부를 놓고 말들이 오가는 이 시점에서, 이왕 다시 만들 거라면,,, 한자 대신 한글로 복원(!) 하는 방안에 대해 정말로 중지를 모으고 국민적인 의견을 구해보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방송사나 언론사 쪽에서 이 문제를 두고 공식적인 토론회나 공청회, 혹은 국민 여론조사를 조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전통적인 건축에는 한자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갖기 때문에, 왜 한글을 쓸 수도 있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의견을 알리고 새로운 광화문 현판을 어떻게 만들지 더 많은 국민들의 참여를 조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무척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비록 한글날이 지나서,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일회적인 기사 거리조차 못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회적 가십기사로 사람들의 값싼 눈길이나 끌려고 하지 말고, 보다 진중하고 근본적으로 전통문화 복원의 시대적 의미와 미래적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의 개인 블로그 글입니다...

꼭 한번 필독해 보십시오...

광화문 현판 글씨, 다시 생각하자

 복원한 지 석 달도 안 돼 금이 간 광화문 현판의 균열 원인 및 대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판을 당장 교체하자는 주장과 보수하자는 의견이 맞서는가 하면, 경복궁 복원의 도편수(우두머리 목수)였던 신응수 대목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정부 결정과 관계없이 자기 돈을 들여 새 현판을 만들겠노라고 밝혔다.

균열이 생긴 광화문 현판의 모습


 나는 여기서 그런 논란에 동참하거나 내 의견을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이를 계기로 광화문 현판 ‘글씨’ 문제도 차제에 재고되고 재론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2005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과 서신을 통해 상반된 의견을 주고받았었다. 대학 동기면서 벗이었던 유 청장과 내가 현판 글씨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며 벌인 논쟁은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며 언론과 인터넷을 달구었다. 그때는 광화문 복원 전에 기존 현판(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부터 뜯어내고 새 현판(정조의 글씨 집자(集字) 안을 포함한 한문)으로 바꾸어 달겠다는 발상과 움직임이 의아스럽고 절박해 반기를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복원된 광화문에 걸린 현판 또한 나로서는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우선 새 현판 글씨는 기존의 ‘광화문’이 아닌 ‘光化門’이다. 왜 한글이 아닌 한자 현판을 단 걸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

 나는 본질적으로 한자 현판 자체에 이의나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한자 현판으로 복원해야 할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더욱이 직전 광화문 현판이 박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휘호였다는 이유로 굳이 새 현판에 한자를 썼다면 그거야말로 역사의식이 모자란 탓이다. 그 시대에 한글 현판이라니, 얼마나 신선한 파격인가. 그것만으로도 나는 직전 현판의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 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었던 옛 중앙청을 허무는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경복궁 복원을 위한 거라면 옮기는 방법이라도 있었으련만,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이었기 때문에 부수어 버린다는 거였다. 나는 철거에 정면으로 반대하다가 정치적인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 소신은 변함이 없다. 건물은 사라져도 역사는 남는 법. 과거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대서 일제 침략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역사를 권력으로 재단하려는 어떤 시도나 세력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때로는 숨기고 싶은 치부나 깊게 파인 상처까지도 보듬고 가는 것이 참된 역사이며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역사란 영욕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또한 미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는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교 사원으로, 다시 박물관으로 변신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화해와 공존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워할 역사는 있을지 몰라도 대체할 역사란 없다. 직전 현판은 그 자체가 역사이다. 4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서울의 문패 역할을 해오는 동안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이 나라 지성인들이 시대적 소명과 역사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판을 교체해야 할 당위성이 없었던 까닭이다.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의 모습


 그리고 또 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현판을 내리더라도 한자보다는 한글 현판을 달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의 현판은 몇 백 년 세월이 깃든 유물도, 당대의 명필이나 역사적 인물이 쓴 것도 아니다. 1867년 광화문 중건 당시 공사 감독관이자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쓴 한자 글씨를 디지털 복원한 거라고 한다. 중건 이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임태영이란 인물과 그의 서체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중건 당시 일반 관리에 불과했던 사람이 쓴 현판을 원본도 아닌 디지털 작업을 통해서까지 복원해야 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싶다. 그 시대의 명필·명사 반열에도 끼지 않은 사람 아니던가.

 그럴 바에는 우리 시대의 명필이나 의미 있는 인물이 쓴 한글 현판이 백 번 나을 것 같다. 훈민정음 집자가 불가능하다면 그 서체를 빌려 쓰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광화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우로 두 개의 문이 보인다. 왼쪽은 용성문(用成門), 오른쪽은 협생문(協生門)이다. 이 또한 전해지는 사료가 없어 ‘북궐도형’(경복궁과 그 후원을 배치도 형식으로 표현한 도면)과 발굴 조사를 통해 규모를 추정 복원했다. 이 두 문의 현판 역시 한자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누가 어떻게 썼는지조차 모른다. 협생문의 현판은 중건 당시의 현판을 건탁(乾拓 : 밀랍 성분이 들어 있는 매끄러운 먹으로 문질러 모양을 떠내는 탁본 방법)해 복원했다. 용성문은 그나마 아무런 사료도 남아 있지 않아 서예가 김양동씨에게 의뢰해 임의로 쓴 한문 글씨다. 그래서 두 문의 필체가 서로 달라 어색하고 조화롭지 않아 보인다. 이거야말로 당연히 한글로 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용성문의 현판

협생문의 현판

 서울 세종로의 시작 지점에 위치한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차원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상징 조형물이다. 문패 격인 현판을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는 자존심과 정체성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과 한글 이야기관이 자리해 있다. 세종대왕이 왜 그 자리에 들어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서울의 관문에 ‘光化門’이 아닌 ‘광화문’ 현판이 걸려 있다면 세종께서도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다. 다시 생각하고 지혜를 모으자.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바꾸어 달지 않을 아름답고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광화문’ 현판을 만들고 내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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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