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블로그 방문자 분들 중에 녹색당 당원 있으신지요??
꾸준히 당비 내온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치러지고 있는 당대표 선거 후보에 대한 짧은 지지의 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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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합니다 _210711. 혹시 '녹색당'에 당비 내시는 벗님들...

작년 총선 때, 녹색당에 당비 내는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당 지도부의 행보에 크게 실망했던 1인입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야권 위성정당 놀음에 휩쓸려 의석 건지기도 불가능할 게 뻔히 보이는 판에 연대랍시고 민주당의 선거 전략에 고스란히 농락당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지요... ㅠㅠ

비록 개인적으로 당 활동은 거의 참여하지 못했지만 당비만큼은 수년 이상 꼬박꼬박 내온 심정적-물질적 당원으로서, 당의 지도부가 저 정도 정무적 판단력도 없는 순진 무지렁이들인가 싶어서 가슴이 많이 아팠더랬습니다.
이미 지구촌 전체를 봐도 그렇듯이 앞으로 전지구 차원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해법을 갖지 못한 대통령 후보나 지도자들은 그 단견이 수많은 시민들의 삶을 책임지긴 커녕 어려움에 빠뜨리게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모름지기 당 조직을 이끌고자 한다면 세계 여러 나라의 선진적 정책들에 대한 넓은 혜안은 기본이고, 소수 정당으로서 여러 정당, 시민 사회단체 등 여러 정치 세력들 간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처와 연대 활동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마침, 이번에 치러지는 제6기 녹색당 공동대표 선거에 대학 동기였던 벗 하나가 직접 후보로 나섰기에 추천과 지지의 의사를 밝힙니다.  국민의힘 당에서 30대 당대표가 나온 것을 보고, 우리부터 저래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서, 당 대표로 출마한다는 친구에게 축하에 앞서 "이미 꼰대로 취급받고 586 퇴진론이 나오는 마당에 굳이 우리가 나서야 하냐?" 며 자괴감어린 질문을 먼저 던졌더랬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단지 대학 친구요 동기였다는 이유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그동안에 쌓은 조직 활동 연륜이나 정책적 혜안이나, 대중적 인지도나 설득력 여러 면에서 당의 위상을 새롭게 일으키고 알려야 할 중요한 시점에서 이 친구가 녹색당 대표라면 나름 조직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적극 지지 후원하겠노라 약속을 했습니다.
혹시 이 얼굴이 익숙한 녹색당 유권자 당원이 계시다면 크게 망설이지 말고 지지 투표해주시면 표값을 충분히 할 친구라 믿습니다.

한 때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영어1빠 강사 '차니샘'으로 이름을 날렸던 친구인데... 지금은 그 시절 접고 대안경제연구소 팟캐스트 '이러타' 의 고정 멤버로 활동하면서 세계 경제 흐름을 깊이 연구해온 지 오래입니다. 작금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펼쳐내기 위해 기본소득 전파를 비롯해 선진국들의 제반 사회 정책과 복지 정책에 대해 넓은 식견과 비전, 그리고 포용적 리더십을 겸비한 좋은 후보입니다.

13일 오후 6시까지, 녹색당 공동대표 선거 투표가 중앙선관위 투표 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당원 분이 계시면 제 소박한 지지 의견도 잠시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 후보자 본인의 출마의 변이 담긴 홈페이지 링크를 첨부해 놓습니다!! ^^

https://charnie.oopy.io/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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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blog.daum.net/unsunozo/7585141    
운수노동자 2010.08.30 01:06


이 분의 블로그에서 그대로 퍼온 글입니다... 중간에 반복되는 문구만 한줄 삭제했습니다. (렛츠고 2010.08.31 03:32)


 

언론노조 최상재위원장이 자신의 트위터 http://twtkr.com/ppppower 에 <배우 문성근>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PD이기도 했던 그가 긴 글을 28개의 트윗으로 나누어 올린 것입니다.
 늦은 밤이라 따로 연락하지는 못했지만 허락하리라 믿고 그 28개의 글을 모아서 하나의 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밤늦게 귀경해 <오마이>에서 배우 문성근이 비에 흠뻑 젖은 사진을 봤습니다.
가슴에 빗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어둠에 눌린 광화문 네거리 보며, 그와 제 얼굴에 주름이 그리 많지 않던 때로 돌아갑니다.

PD수첩처럼 권력을 상대로 싸우진 못했습니다만, 그즈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래 묵은 고름 줄줄 흐르는 사회문제에 꽤 천착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한 편 한 편 방송 마칠 때마다 수명이 팍팍 줄어들 정도로... 얽히고설키어 복잡해 질대로 복잡해진... 도대체 원인이 뭔지, 누구의 책임인지도 모르게 돼버린 문제를 고발하고 그럴듯한 대안을 내놓는 일이, 그리고 그것을 50분짜리 영상에 담아내는 일이 어찌 쉬웠겠습니까? 조사 하나만 삐끗해도, 내레이션 톤만 살짝 바뀌어도, 벽돌 한 장 빼내면 와르르 무너지는 건물처럼 흔들거리곤 했습니다. 당연히 진행자 멘트 초고는 중문, 복문에 혼합문, 혼합복문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제 기억 속의 문성근은 우리말과 글을 완벽하게 쓰는 사람입니다. 그 복잡다단한 글들을 그는 아주 쉽게 풀었습니다. 단 한 줄 문장에 제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녹여버렸습니다. 그것도 간결하고 완벽한 구어체로!! 자타공인의 내공을 자부하던 작가, PD들이 애면글면 찾아낸 사실과 진실이 차고 넘쳐 마침내 지퍼가 잠기지 않는 가방처럼 돼버린 프로그램... 그의 손길이 닿으면 딱 들기 좋은 여행 가방이 되었습니다. 넘쳐서 빼내버린 속옷과 잡동사니까지 차곡차곡 들어 있는 여행가방! 더 이상의 표현은 제 능력 밖입니다. 차가운 녹차 한잔 놓고 원고를 응시하다 바람처럼 휙휙 고쳐 써 내려가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무렵 <그것이>가 여러분 귀에 쏙쏙 들어왔다면, 그의 정확한 발음과 날카로운 목소리, 자연스런 손짓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잡다한 사실과 논리를 쉽고 편한, 사람의 말로 풀어낸 그의 쓰기와 말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는 가끔 메일로 글을 보냈습니다. 한반도에서 출발해 만주, 일본을 넘어 유라시아로,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로, 정치와 경제에서 시작해 문화, 예술로... 종횡무진, 광대한 스케일로 현실의 배를 갈라 버리는 글이었습니다.

도대체 그의 글이 맞는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간을 의심했습니다. 그만큼 공부할 시간, 그만큼 감동적인 문장을 쓸 시간이 도대체 그에게 있었는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영화, 드라마, 광고, 시사프로그램... 술 마시고 길 떠나고 토론하고... 고 문익환 목사님이 한국의 3대 천재라는 누군가의 주장이 유일한 답이었습니다. 나름 잘난 체하던 저는 그 앞에선 양순한 학동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뉴스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봄이었습니다. 환호하는 군중들 속에서, 팔을 번쩍 치켜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뒤에서 잠깐씩 얼굴이 걸렸습니다. 기적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했습니다.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얘기하면 금방 알만한 언론인, 연예인들이 특정후보 지지를 공개선언 하던 때였습니다. 자신들이 진행하는 보도, 프로그램에서 교묘하게, 노골적으로 지지후보를 편들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행태에는 짐짓 눈감으며 ‘이제 우리도 그 정도는 용인...’ 운운하던 자들이 문성근의 퇴출을 요구했습니다. 단언컨대, 그는 단 한 번도 방송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위해 활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진행자들이 잠깐잠깐 끼어들긴 했지만 <그것이>는 누가 뭐래도 그로 인해 빛나던, 그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것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는 떠났습니다. 그에게 시시각각 다가가는 압력을 아무도 막아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별의 말 역시 간결, 명료했습니다. “이런 일로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한 곳에 집중하고 싶다.”

외압에 쩔쩔매던 저희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덧붙였습니다. ‘끝내고 다시 돌아오겠다.’ 우린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누가 물어도 정치 안한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마십시오.’ 에너지 집중으로 세상의 절반을 뒤집은 얼마 후, 대선TV연설에 그가 나타났습니다. ‘아! 나머지 절반도 뒤집겠구나.’는 전율! 그런데... 연설말미에 느닷없이 ‘저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ㅠㅠ... 나중에 물었습니다. 왜 그러셨냐고... 그가 답했습니다. “20분 연설인데 녹화를 끝내니 2,3분이 모자라대. 추가녹화 때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씩 웃고 한 마디 보탰습니다. “난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

그에게 다가올 고난이 보였습니다. 속물스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아는 속물의 눈에는... 짐작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배우 문성근은 아무 것도 얻고 누린 게 없는’ 그런 세월이 흘렀습니다. 얻기는커녕, 제 눈에는 무지하게 손해를 본 세월입니다. 참여와 개혁을 말했던 사람들 중에 그보다 더 큰 손해를 본 사람이 또 있을까? 경제적 손실을 포함해서... 산 사람 중에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다시 거리에 나섰습니다. 10년 만에 또 한 번 에너지를 집중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말과 글은 간단, 명료합니다. ‘가능한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의 간단, 명료한 말과 글에는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머리 아프게 그 뜻을 따로 해석하거나 숨은 그림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읽고 들으면 됩니다. 그의 글과 말은 그의 마음과 한 치의 오차도 없으니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옳은지 아닌지는 각자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에 따라 판단하면 될 것입니다. 그의 말과 글의 단점은, 한번 듣고 본 후에는 그냥 잊어버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언제언제까지 수 십 통의 편지를 날려야 화를 면한다’는 <행운의 편지>처럼...

그가 간절히 얘기한 것을 뭉개고 있으면 큰 죄를 진 것 같은 부담감, 그의 말에 동의했는데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나중에 큰 벌을 받을 것 같은 불안감... 그는 ‘유쾌한 민란’이라 표현했는데... 전 속물이 확실합니다.

그는 반란의 수괴를 꿈꾸고 있습니다. ‘총도 칼도 들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흥겨운 민란’. 10년 전에는 조용히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내놓고 시끌벅적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보다 훨씬 더 절박한가보다 짐작해 봅니다.

그의 ‘유쾌한 민란’에 참가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난’을 꿈꿀지는 각인의 판단이겠지요. 그러나 이제 평론은 접고 행동하자는 그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10년 전보다 늘어난 식솔로 몸은 무겁지만, 서둘러야할 것 같습니다. ‘난’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에도 그는 ‘아무 것도 누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라 건데, 이번 거사 후에는 함께 ‘돌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10년 전 그 자리로. 얼글의 주름은 늘었지만...


PS : 저도 트윗한줄을 보탰습니다.

<배우문성근>(외전) 그는 6.15선언을 토씨하나 틀리지않고 줄줄 외웁니다.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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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 국회의원이자, 작금 대한민국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국회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안상수 의원께서 불교개혁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좌파 척결의 대상으로 삼아, 총무원을 동원 봉은사를 조계종의 직영사찰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바야흐로 두어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다시 한번 종교전을 촉발할 것으로 예견됩니다.

감당도 못할 4대강과 세종시 문제로 벌집을 건드려 놓은 이명박 정부가 정치검찰의 한명숙 총리 엉성 기소를 통해 제 발등을 제대로 찍어 서울시장 선거의 주도권을 애초 시작도 하기 전에 야당에게 고스란히 헌납하고, 초중생 전면 무상급식을 좌파 논쟁으로 몰고가는 무식한 작태로 서민 학부모들의 심기를 긁어대더니, 엄기영 MBC사장을 몰아낸 음모를 스스로 폭로하는 멍청한 시츄에이션을 연출하고선, 급기야는 불교계의 자산까지 탐을 내고 저리 자충수를 연발하고 있으니....
한 마디로 이 정부와 집권당의 오만과 무개념이 낳은 자중지란의 극치이자 난맥상의 절정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과연 명진 스님은 누구이고, 봉은사가 어쨌길래, 여당이 저리 엉뚱한 자충수를 두고 있는지 [딴지일보]에서 작년 말에 소개한 명진 스님 프로필 기사를 통해서 한 번 살펴 보시지요...

원문출처: http://www.ddanzi.com/news/6187.html 
            내용에 전혀 손대지 않고, 읽기 편하게 중간 중간에 행만 나누었음을 밝힙니다...


입력:2009.09.04 00:00
[기사] [사회]
이 어른을 소개합니다 -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2009.9.4.금요일



이제 바보도 가고 인동초도 졌다. 시절은 점점 암흑으로 치닫고, 민주주의의 영광은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듯 하다.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장례 후 이명박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등, 이 모든 상황은 그저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또 익숙해지고 있다. 실로 반역의 세월이요, 통곡의 세월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갈 곳을 잃은 우리들에게 지금 필요한 존재는 무엇일까? 많은 다양한 답이 가능할 것이고 그 모두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어른이 필요하다.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주먹이나 돈의 힘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서 나오는 권위를 통해 우리를 꾸짖을 수 있는 어른이 택도 없이 부족하다.

바보와 인동초는 물론이고, 우리는 얼마 전 그런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김수환 추기경도 잃었다. 비록 말년의 언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으나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가 고비마다 미친 영향과 발휘한 리더쉽, 이끌어낸 결과들의 긍정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유신 시절부터 87년의 직선제를 이끌어 낸 반독재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학생에서 시작해서 국민을 통해 완결되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수많은 종교계, 학계, 예술계 어른들의 힘찬 목소리가 그 뒤에 있었다. 필자의 세대라면 익숙할 문익환 목사와 백기완 선생 등은 물론 과거 함석헌 선생 같은 분 등 이름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지금은 망가진 김동길이나 김지하씨도 그때는 그런 입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분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나이가 너무 들어서 돌아가신 경우도 많고 위 괄호 안의 모씨들처럼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며 어른이기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과거에 비해 계산이 빨라지고 몸을 사리는 전반적인 사회 풍조의 만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교만해져서 이미 존재하는 어른을 알아보지 못하고 섬기지 않는 태도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각설하고, 사회의 양심적 구심점들이 다 붕괴되어 가는 이 시대, 그리하여 황색 언론의 대명사인 본지가 과분하게도 그런 입지에 놓이게 된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사회의 진정한 어른들을 길러 뫼시고 찾아 섬기는 일은 현재의 총체적 난국의 해소는 물론 본지가 그 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이 가당찮은 짐을 벗고 다시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최근 거침없는 언행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인물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바로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이다.


봉은사...

이곳이 어떤 곳이더냐?

강남 금싸라기 땅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찰. 면적 2만 1천 90평. 공시지가 1천7백2십억 원. 그러나 인근 지역 땅값 평당 1억 원이니 개발시 추정 땅값 대략 2조원. 신도 수 25만 명에 연 수입 120억...

한때 우리나라 부자 사찰의 대명사이자, 세속적인 불교, 심지어 부패한 불교의 상징같이도 일컬어지곤 했던 이곳. 그래서인지 과거 그 관할권(?)을 둘러싸고 각목부대와 승려들 간의 폭력이 난무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난맥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던 바로 그 곳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봉은사는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아니 정 반대로, 세상이 다 거꾸로 돌아가는 와중에 어쩌면 봉은사만이 부처의 뜻을 전하는 순수하고 정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명진 스님이 있다는 사실이다.

명진 스님은 2006년 11월 21일 봉은사의 23대 주지로 취임했다. 그리고는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5일부터, 불과 며칠 전에 끝낸 장장 천일간의 기도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봉은사 주지 생활의 대부분을, 봉은사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천일기도만으로 보낸 거다.

머 9년 면벽했다는 스님도 있는데 봉은사 같이 큰 절에서 문 밖에 안 나오는 게 대수며, 그런 와중에 천일기도가 머 그리 어려운 거냐. 시간 맞춰서 중얼중얼 예불이나 하고 참선하는 듯 졸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다.

기도 기간 동안 명진 스님은 새벽 4시 30분, 오전 10시, 오후 6시 30분 3회에 나눠 매일 총 1천 배의 절을 올렸다. 다시 말하자면 거의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3일에 3천배 씩을 연속해서 한 거다. 3천배는커녕 3백배라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창 때의 청년도 감당하기 벅차고 한번 하고 나면 자리에 눕기 일수다. 하물며 60 연세에 매일 이런 정진을 한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주지로서의 각종 업무와 결정들은 물론, 무엇보다도 봉은사의 이미지와 성격을 탈바꿈시키는 개혁의 손길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그 동안 신도의 수도 30% 증가했고 매주 일요일 하는 일요법회도 기존의 50여명에서 30배인 1500명으로 급증했다. 주요 회의에 재가 불자들을 참여시키는 파격을 단행하고,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연 80억의 재정 규모가 오히려 120억으로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 보수의 중심지라고 할 강남에서, 한때 순잡음 교회와 함께 종교계의 부자 & 보수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봉은사가 단 3년 동안 신도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어낸 성과다.

그래서 지금의 봉은사는 불전함마저 신도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원래 주지가 자기 주머니처럼 사용하던 것이 불전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명진의 행보가 얼마나 파격적이고도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애초 명진 스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그는 원래 전국의 산하와 거리를 누비던 불교계의 야인이자 실천운동가이기 때문이다.

대입 준비를 하던 18세때 우연히 만난 화두를 붙잡고, 1969년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가 법명을 받았지만 성철이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자 도망갔던 일화, 그리고 5년이 지나서 법주사를 찾아가, 굳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탄성 스님을 골라 상좌가 되겠다고 우겨 출가하고, 불교계 내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인맥이 중요하던 시대에 철원의 초가집에 은거하던 여백우 처사를 찾아 배움을 받던 일 등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구도의 괴짜 스님 그 자체다.

85년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10.27 법난 규탄대회로 감옥에 가기도 했고,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때는 수많은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복을 벗어 불전에 올린 뒤 종단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옷을 벗겠다고 해 많은 스님들을 울리고 종단개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돈과 지위 따위에 초연하고, 거대 사찰인 봉은사 주지가 되어서도 대전 마당을 직접 빗질할 정도의 소박함을 간직한 이가 바로 명진 스님이다.

이만큼만 해도 그 쿨함에 인간적인 매력이 동할 수 밖에 없을 터... 그러나 관세음딴지 섹션을 아직 갖추지 못한 본지의 입장에서 이런 불교계 내에서 행보만으로 그를 이 시대의 어른으로 추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오히려 불교계 바깥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그가 세인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기 시작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상황에서였다. 천일기도 기간 중임에도 결국 산문을 나와 고인의 영결식에 참여, 불교계 의식을 치른 것. 이것은 사실상 기도의 맹약을 깨는 것으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교계 안팎의 비난이 나올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권양숙 여사의 청을 듣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재차 부탁을 받고는 잠을 이루기 힘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어찌 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고 본다.

우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승적 깨달음의 간지 아니냐. 기도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용맹정진도 소중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 중생을 위한 행위일 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언제든 깨 버릴 수도 있다는 뜻. 그 뜻이 오롯이 서 있지 않다면 어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으며 또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영결식장에서의 축원문 조차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뚜렷이 밝히는 명문장으로, 과거 보수 불교 시대의 어정쩡한 회피형 선문답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길지 않은 글이라 그대로 개재한다.


제16대 대통령 광주후인 노무현 영가시여!
노무현 영가시여! 노무현 영가시여!

이제 당신의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흩어져 돌아갑니다.
흙으로, 물로, 불기운으로, 바람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 육신을 움직이던 주인공, 영혼은
어느 곳에, 무엇으로 계십니까?

일락서산 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입니다.
해가 서산에 지니 달은 동녘에 뜹니다.
지는 해와 같이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노무현 영가시여!
당신은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미안해하지 않겠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불가(佛家)의 소신공양(燒身供養)처럼
온몸을 던져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뜻만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고 나아갔던 당당함,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해
몸을 던졌던 대원력 보살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사는 평등세상의 꿈,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던
발걸음...
그 어느 것 하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검은 구름 흩어지면
밝은 달 비추듯이
당신의 참뜻은 천강에 달이 비추듯 우리 가슴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떠나시는 길,
이천만 불자의 정성을 모아서 반야심경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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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외에 어떤 사람이 서슬 퍼런 이 시대에 감히 이런 말을 권력과 국민 앞에 내뱉을 수 있더냐. 꽃 나비 춤추는 극락에서 행복하소서 운운하는 가소로운 웅얼거림을 예상했던 이들에게 명진의 이런 일갈은 한줄기 단비와도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터.

그의 이런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봉은사 앞에는 이후 아래와 같은 현수막이 걸렸다.

그렇다. 위의 축원문과 마찬가지로 그는 단지 고인의 죽음을 수많은 망자 중 하나를 대하는 승려로서 애석해만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중수부 검사들의 봉은사 출입을 거절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정권의 시녀에 대해 일종의 파문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점잖은 사찰에서 내건 이 플래카드의 그 문장 끝에는 (잘 보면)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이는 불순한 세상에 내뱉는 명진 스님의 뜨거운 사자후인 것이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음, 이 스님이 상당히 정치적이군 하고 넘어갔던 분덜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불교 홀대 정책으로 불교계가 열이 많이 받았구나 했던 분들도 꽤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행보는 절대 그게 다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주지라지만 보수 신도들이 많은 봉은사에서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기도 중인 스님이 왜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정부의 불교 차별에 대해 20만명의 불자가 서울광장에 모여 항의 집회를 했다. 자기들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의 약자들이 당한 일에 대해선 정치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또 왜 진보 편만 드느냐는 지적에 대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느냐에 있다.

또 며칠 전 기도가 끝나기 직전, 사실상 감옥살이나 다름 없는 천일기도 중의 심정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광우병 촛불 집회에 대해) 촛불과 재협상을 통해 건강 주권을 찾자는 외침이었다. (중략) 광화문 나가고 싶었다.

기도 중에도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의금을 조금씩 보냈다. 과일 떡도 자주 보내서 위로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어 용산참사 현장에 가야겠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1만여쪽 가운데 3천쪽을 감추는 것은 앞으로 이 정권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올바른 검찰상이 요구된다. 천성관 내정자를 봐라(중략). 1분 뒤에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다(중략).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 혐의를 천성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MB는 피 묻은 손으로 화해의 손을 내밀면 안 된다. 허언필망(虛言必亡 : 거짓된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이다.


씨파...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큰 어른에게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씀이 아닌가.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스님의 이런 마음은 언론을 통한 말로만 표현된 것이 아니다. 천일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는 실제로 지난 30일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았다.

이어 순천향병원의 빈소와 한강로의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그는 대 봉은사 23대 주지로서의 체면도 잊은 채 슬픔의 뚝뚝 눈물을 줄줄 흘렸다. 천일기도의 결과 어떤 희로애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얻었을 법도 한데,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불교가 그런 것이었던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맘만 편하면 그만인 의미에서의 부동심을 얻는 게 부처가 되는 거라면, 차라리 영겁의 세월 후 개과천선의 여지라도 남아 있을 나찰이 되는 게 낫다.

또 이 자리에서 그는 "천일기도 끝에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설파해야 하는데 용산에 와보니 도저히 그게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죄가 많은 것 같다" 고 분개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권,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 이라며 오만한 정권에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천일기도 기간 동안 시주금 등을 모아 스스로 만든 물경 1억 원을 유가족에 위로금으로 전달하고 불자의 몸으로 고 이상림씨의 부인을 한동안 말없이 안아주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의 이런 용기 있고 진정 어린 행보 앞에서 사특한 무리들의 잡소리나 시시한 형식과 체면 따위는 이미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세상에 나온 스님은 9월 3일 강원도의 선방으로 가서 다시 두 달간 참선할 계획이란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으로 빠진 천일기도 중 하루를 보충하는 결제를 하기 위해서다. 단 하루를, 빠질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었던 것을, 그것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산간 오지에서의 60일의 참선으로 갚겠다는 대찰 주지 명진의 이런 모습은 그가 어떤 맘가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60일은커녕 60년, 600년간 치러야 할 엄청난 죄과를 단 하루로 무마하려고 하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그의 이런 모든 깨달음과 용기는 부처 본인이 그러했듯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자살했고 3개월 후 재혼한 아버지도 20대 때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혈육 동생도 군대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진짜 슬퍼봤소? (중략) 밥을 먹다가도 울고, 잠을 자다가도 울컥 울음이 쏟아져 이불을 적시는 것이오."


그 슬픔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피하기 보다는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승려의 길을 택했을 명진. 그러나 그는 이미 30년 전 화계사에서 춘성 선사가 열반했을 때 춘성의 애창곡 나그네 설움을 선창한 후 상가를 노래자랑과 춤판으로 만들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이후 한 보살(여신도)이 그의 호방하고도 깊은 모습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며 매달리자, 죽은 동생 묘지에 데려가 동생을 살려내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조용히 말한다. 이로써 남녀의 사랑보다 훨씬 깊은 삶과 죽음의 화두를 얻은 여신도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간 일은 전설적인 일화로 남아 있다.

그가 진짜인 것은 아래와 같은 그의 말에도 담겨 있다.

"부대사(497-569)는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밤마다 망상으로 잠이 들고, 아침마다 망상과 함께 일어난다오"

소위 깨달은 척, 진리를 아는 척 떠들어대는 일부 승려나 목사 등과 비교했을 때 이 얼마나 솔직하고 털털한 말씀이냐. 이런 양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은 어쩌면 노무현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열라 파격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과거의 행적만큼이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됨은 말할 것도 없다.

짧은 이 지면에 스님의 일대기나 행적을 몽땅 다 쓸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정도 하자. 대신 명진 스님의 주옥 같은 말씀을 아래에 일부 소개했으니 열분들 스스로 그 통쾌무비함은 물론, 때로 본지에 버금가는 엽기적 언변을 즐기시길 바란다.

●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 현수막에 대해) 남의 통화까지 엿듣고, 메일까지 공개해 남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드는 그들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것이 없겠지만, 권력의 주구가 되어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그들도 남에게 당하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고 그랬습니다.

● 힘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고소고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다 피해가게 하는 것. 그게 정상적인 법치인가요? 저는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야 존경받고 무섭고 그런 거지,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입니까. 깡패세계와 같은 것 아니에요?

● 단풍놀이, 물놀이 가자는 말이 있습니다. 기차놀이 한다고 해서 애들이 허리띠에 새끼줄을 매서 칙칙폭폭 다니는 놀이가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에 가서 뻥튀기도 하나 들고 어묵 들고 다니는 것이 서민놀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민놀이.

● 시아버지는 시위하는 망루에 올라가 있다가 불에 타죽고 자기 남편은 과격시위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것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문제는 국가가 해결 안 합니까? 서민정치를 한다면 용산 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을 달래고 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야 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끄럼 모르는 배부른 돼지들이 활개칩니다.

● 그 동안 불교가 권력 앞에 비루했습니다. 잘못된 것은 지적해서 고쳐야 합니다. 봉은사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가사 벗고 산문 떠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 한국불교 문제점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불교는 선종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선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제사종, 기도종, 관광종, 입장료종입니다.

● (천일기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천일기도는 쇼입니다. 쇼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좋은 모습 보이면 따라올 것입니다. 불교미래 밝히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명진 스님과 일면식은 물론 어떠한 간접적인 관계조차 없으며, 심지어 불교도도 아니다. 그저 아직 이 땅에 우리가 뫼시고 사표로 삼아야 할 어른, 행동하는 양심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실감나게 알려 드리고 희망을 드리고 싶다.

비록 바보와 인동초는 떠났어도, 멋진 인물들이 다 죽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그들의 삶을 알고 배워, 부족한 우리도 나중엔 이렇게 멋진 사람이 함 되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래는 덤이다. 천일 기도를 마친 명진 스님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인데, 이 글에서 소개한 스님의 주요 행적이나 정권에 대한 죽비같은 꾸짖음의 말씀 등 핵심은 몽땅 빠뜨린 채 신변잡기성 중얼거림과 봉은사 신도 및 예산 확장 관련 잡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냥 오랜만에, 얘들 이런 애들이라는 거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7/2009082702089.html



● 우리 시대의 어른들, 추천을 받슴다.

세상에는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양심과 지조를 갖고 살아가는 많은 어른들이 있을 것임다. 그런데 그런 분들일수록 우리 자신이 찾아 뫼시지 않으면 나서질 않고 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건 그분들의 잘못이 아닌 우리 후배들의 모자람 때문인데도 막상 우리는 툭하면 진정한 원로가 없다는 둥 불평만 늘어놓고 있지 않슴까.

이제 우리가 이 분들을 찾아내고 모십시다. 머 글타고 뒷집 박 영감님, 우리 교회 권집사님 이런 식으로는 아니겠슴다. 그 분들의 인격과 행적도 물론 소중하고 아름다우나 일단은 세상에 알려진 분들부터, 그러나 그 가치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분들부터 재조명함으로써 사회에 직접적인 사표로 삼고자 함임다.

아래 추천 대상인에 대한 약간의 결격사유가 있으니 참고하시고, 우리가 어른으로 뫼실만한 훌륭한 분들을 적극 추천해 주시기 바람다. 아래의 제 메일로 구체적인 내용 및 이유와 함께 보내 주시면 됨다.

- 결격사유

1. 55세 이하 (예: 너부리, 소희 등)
2. 현직 국회의원이나 각료 (예: 이명박)
3. 이미 돌아가신 분 (예: 예수, 공자 등)
4.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예: 조지 부시)
5. 유사 종교 교주 (예: 정명석)
6. 허경영


딴지 논설위원 파토(patoworld@gmail.com)
              트위터 : patoworld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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