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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04-01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이 책의 제목을 스치듯 처음 본 건 지지난 주인가, 조선일보 주간 서평에서였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책 제목을 담은 그 기사가 한 눈에 나의 시선을 붙든 것은, 아마도 시간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까닭에 몸에 밴 조건반사와 같은 것이었으리라. 게다가 올해 내 삶의 기본 테마로 잡은 "양지 지향"의 구체적인 목표가 바로 "디지털 시간관리 전문강사"로서의 입지를 개척하고자 했던 터라, 그 제목이 더 눈에 띄었던 것같다.

인간이 과연 시간을 정복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지극히 천재적이거나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위인이나 성인들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당연히 평범한 사람에게서 시간을 정복한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나 역시도 이 책을 대하고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 반 의심 반 심정으로 그 기사를 대했지만, 책을 소개하는 글이 웬지 쉽게 흘려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제목 자체가 무슨 무슨 시간관리법 따위의 처새학 원론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존했던 특정한 사람의 실명을 붙여놓고, 거기에 '시간을 정복한 남자'라고 붙여 두었으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만약에, 그 남자가 예수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혹은 간디 같이 아주 위대하고 유명한 위인이어서 평소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면 난 굳이 그 책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데, 류비셰프라는 이름은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나의 호기심을 두 배로 자극했다.

그 서평을 본 다음 월요일 오후 퇴근 무렵에 [YES 24]에 신규회원으로 등록하고서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했다. 이틀 후 오후 느지막이 들린 사무실에 그 책이 택배로 배달되어 놓여 있었다. 그 다음 날인 5일 새벽, 화장실 가는 길에 5시부터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그 책은 붙잡기가 무섭게 근 2시간 동안 절반을 훌쩍 읽어 내려가게 했다.

오줌 마려우니 그만 뭉개고 빨리 나오라는 집사람의 성화에 못이겨 하는 수 없이 책을 중간에 덮고 화장실을 나오니 아침 7시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이틀이 지난 일요일 밤 두 시간 가량을 투자해 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읽기를 끝마쳤다.

200여 쪽밖에 안되는 두껍지 않은 분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휴도 아닌 일상 시기에 불과 사나흘만에 책 한 권을 후딱 읽어 치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이 책의 내용이 나를 몰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 류비셰프는 20대 초반부터 82세로 죽는 날까지 근 60년 동안 자신이 하루 하루 소비한 시간의 내역을 각 항목별로 분 단위까지 헤아려 시간통계 장부를 적어두었던 인물이다. 굳이 줄여서 말하자면 "시계부"를 작성해 두었던 것인데, 우리가 하루 하루 현금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가계부"를 적듯이 이 사람은 마치 시간을 현금의 지출인 양, 꼼꼼히 분류해서 그 사용처를 적어두었던 것이다.

책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72쪽)

- 소스노코르스크 시 방문 -0.5
- 기본과학 연구: 도서색인 - 15분, 도브잔스키 저서 읽기-1시간 15분
- 곤충분류학: 견학- 2시간 30분, 두 개의 그물 설치-20분, 곤충 분석- 1시간 55분
- 휴식(처음으로 우흐타 마을에서 수영을 함)
- 이즈베스티야 지 - 20분
- 의학신문 - 15분
- 호프만의 소설 <황금단지> - 1시간 30분
- 안드론에게 편지 -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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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계 - 6시간 15분

이처럼, 자신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늘어놓는 정도를 떠나서, 구체적으로 각각의 업무에 얼마 어치의 시간을 소비했는지를 분 단위로 적고, 이를 총 시간으로 통계까지 합산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이론적인 분석과 권위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와 논쟁을 강조했던 그는 자신의 전공이었던 곤충 분류학과 해부학은 물론 유기체의 형태 및 체계, 진화론, 수리 생물학, 유전학 심지어 분산분석 등에 걸쳐 방대한 저서를 남겼고, 이 외에도 문학과 예술, 철학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지적 호기심으로, 생전에 70권 이상의 저서와 12,500장 이상의 논문과 자료를 남겼다고 한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로 힘든 분량의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작 이렇게 많은 분량의 작업을 하면서도 그가 하루 동안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운동이나 산책 시간을 줄이거나, 독서나 공연을 관람할 시간을 줄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나 감탄스러운 것은, 앞서 예를 든 시간사용 통계 기록을 하루 이틀이나, 한두 주 정도 연습 삼아 시범적으로 남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을 때까지 60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남겼고, 심지어는 통계를 내는 데 사용한 시간마저도 계산에 넣어서 기록에 남겼다는 점이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믿기 힘든 사실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과연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스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류비셰프의 삶을 추적한 저자가 스스로 감사하는 글의 어투나 전개 내용에서 이게 결코 거짓 과장으로 꾸며낸 픽션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류비셰프의 이러한 철저하고도 끈질긴 인내심과 시간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에 기초한 시간통계 방법이야말로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해답이자 최고의 시간관리 방법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류비셰프는 단지 사용한 시간의 내역만을 단순이 기록으로 남긴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분야에 얼마 만큼의 시간을 배분할 지를 미리 계획하고, 그 계획에 대비하여 실제로 소비한 시간을 측정해서 목표에 대한 실행도를 평가했다는 점인데, 그 오차가 기껏해야 1%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인간이 아닌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인데, 정작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면, 진리를 도출하는 도구로서 논쟁하기를 피하지 않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오는 편지에는 몇 십 장에 이르는 답신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전혀 시간통계 처리자답지 않게 시간을 허비(?)하는, 지극히 모순적이지만 참으로 따뜻하고 인간적인 성품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런 의문이 꼬리를 이어 머리 속을 오갔다.

- 과연 인간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시간을 미리 계획하고 또 통제하고 결산할 수 있을까?
- 만약 그렇다면 누구라도 그 만큼 많은 저작과 훌륭한 성과물을 남길 수 있는 것일까?
- 과연 나 역시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일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최종적인 느낌은 불가능하지 않겠다, 오히려, 정말로 그렇게만 할 수만 있다면 시간에 대한 태도와 관리방식을 가히 혁명적으로 바꿀 수 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40평생 이름도 모르고 살아왔던 류비셰프라는 사람을 올 해 초에 알게 된 것은 어쩌면 내게는 필연이 아니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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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책을 읽는 것에 특히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매일 매일 하루를 설계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구정을 필두로 하나 하나 누적해가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서 시간에 대한 관리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남는 것이란 생각을 자꾸 더 크게 하게된다.

신년 초 [인간 붇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에 이어서, 재가 불자들의 기본 경전이랄 수 있다는 [유마경]을 연이어 읽고서, 구정 때 권유받은 [질문의 힘]에 이어 올 해 네 번째로 읽어낸 책이 바로 [류비셰프]였다.

이 책은 지금 읽고 있는 [한 가지로 승부하라]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과 더불어 지금 나의 시간관리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 선택이고, 12,000원이라는 볼륨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이 결코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별난 작품이다.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by 때때로 | 2004/02/09 02:17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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