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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6 [서평_070607] 민족 문학의 얼, 최명희의 [혼불]을 예찬하며...
혼불- (1)
지은이 최명희
출판사 한길사
별점

[출처] 혼불- (1)|작성자 렛츠고


민족 문학의 얼, 최명희의 [혼불]을 예찬하며...

 
" 매달 [혼불] 연재 기다리는 재미에 감옥 한 달이 어찌 가는지도 모른답니다.
피로 찍어 쓴 듯한 문장에서 뿜어 나오는 기가 제 몸속 옛 기억을 짚어내는 순간
불덩이처럼 솟는 시의 영감에 한동안 눈을 감고 얼어붙곤 합니다.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절로 경배하고픈 순간입니다.
 
그러니 선생님, 제가 낯뜨거운 부탁 하나 드립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기한 없는 제 감옥살이에 [혼불] 연재 거르지 않게시리
밥 꼭꼭 드시고 잠 편히 드시고 정말 건강하셔야 합니다.
이 땅의 한 많은 인생들 위해 저 푸른 목숨의 불, 혼불이 훨훨"
 
-- 경주 남산자락 독방에서 박노해....
 
위 글은 한길사에서 펴낸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마지막권인 10권의 뒷 표지에 실린 시인 박노해의 추천사로 인용된 구문입니다.
 
"최명희는 문체에 관심하는 희유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정겨운 서정성과 예스러운 정취를 지향하는 문장으로 된 [혼불]은
우리말의 보고로서 주술적인 힘과 기운마저 가지고 있다.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는 풍속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의 가락이 된다.
독특한 울림이 호소력을 발휘하는 노작이다." 

-- 유종호(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독재 시절 저항시인으로부터 평단의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혹은 중학교 학생에서 칠순 노인네까지...
누구라도 한번 읽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작품을 이제서야 접한 저로서는 뒤늦은 독서에 대해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더군요...
 
작년 말, 회사 동료로부터 추천을 받고 빌려서 틈틈이 읽기 시작한 최명희의 [혼불] 10권을 이제서야 겨우 일독을 마치고, 가슴에 남는 느낌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아쉬움과 가슴 저며 오는 안타까움 이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한창 중반을 넘어 갈 정도다 싶은 대목에서 끝이 나버린 허무함에서 오는 아쉬움이 아니라, 작가의 죽음으로ㅡ 더 이상은 최명희의 문체와 표현의 절묘함을 대하고 싶어도 대할 수 없게 된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지요.
 
1981년에 집필을 시작, 1996년 12월에 이르기까지 근 17년간 단 한 질의 장편 대하 소설에 자신의 온 혼과 넋을 다바쳐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엮어 놓은 채ㅡ 1947년 전주생인 작가 최명희는 1998년 51세의 아까운 나이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까닭이지요...
 
구한말, 일제 강점기 남원 이씨 매안을 배경으로 삼아, 종가집의 3대에 걸친 종부들의 시집살이를 얼개로 하여 씨줄 날줄 베필을 짜내듯이, 혹은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이, 한편으로는 실타래를 풀어 헤치는 듯 싶지만, 그 사이에 어느새 가다보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모습으로 유장하게, 역사와 문학과 사상을 하나로 녹여서 만들어진 커다란 예술 대작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미시적 접근과 묘사를 통해서 독자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거시적 틀거리를 완성해내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그의 유려한 문장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참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사이에 벌써 여름 기운이 끼친다.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더위가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누우런 오조 이삭이 어느덧 묵근하게 살이 차고, 청대콩도 익어간다...
비워 놓고 나온 집에서는 어린 것이 집을 보면서 멍석에 보리를 널어 말리고 있을 것이다.
마침 뙤악볕이라 참으로 잘 마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칫 헛눈을 팔고 해찰하기 일쑤라...."
 
"... 눈발 없는 동짓달의 마른 바람이 무겁게 캄캄한 밤 한복판을 베폭 찢는 소리로 날카롭게 가르며 문풍지를 후려친다. 그 서슬에 놀란 등잔불이 허리를 질려 깝북 숨을 죽인 채 까무러들더니 이윽고 길게 솟구쳐 오르며 너훌거린다. 방안으로 끼쳐든 삭풍 기운에 소름을 털어 내듯 흔들리는 불 혓바닥이 검은 그을음을 자욱하게 토한다..."
 
그나마 읽던 중간 중간에,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한두 구절만 옮겨본 것이지만, [혼불] 속에는 이와 같이 작가 최명희 만이 구사할 수 있을 법한 표현들이 부지기수로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뜻을 알듯 모를 듯 싶은 우리네 살가운 토속어와 고유어의 풍부하고도 자유 자재한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네 세시 풍속들이 마치, 색바랜 흑백 필름 속에 비내리는 잡티가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우리네 풍습이며 고향 풍경에 대한 세밀한 표현의 생생함이 마치 형형색색 올 칼라로 연출되는 선명한 장면들을 마치 눈 앞에서 찬찬히 한 장 한 장 기록사진으로 떠 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혼인한 남편과 하룻밤도 치르지 못한 채, 소복 청상으로 종부살이를 해야 했던 청암부인이, 시조카를 양자로 들여 종가집의 핏줄을 잇게 하고, 그로부터 아들 하나를 얻지만 그 손자 강모는 업장과도 같은 종손의 처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촌 강실이를 마음에 둔 채 방황하다 만주로 도망을 가버린 사이, 손자를 기다리던 청암부인은 결국 세상을 뜨고, 큰집 강모에게 첫 정을 주었던 작은집 강실이는 근친 상사에 빠져 넋이 나가, 거멍굴 춘복이에게 몸을 빼앗겨 상놈의 아이를 배고는 죽지도 못한 채 피접길에 오르는데...
 
소설의 스토리 얼개와는 무관하게, 혼불은 이 단순한 이야기 뼈대 속 곳곳에,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의 통일이 가져온 백제사, 민족사의 왜곡과 망실을 비롯해, 일제의 수탈과 만주 이민의 처참했던 상황을 묘사하며, 단군 조선 이래 잃어버린 고구려 강역의 역사를 다시 복원하고자 시도함으로써, 일제에 강점 당해 악랄하게 자기 것을 빼앗기고 정신을 잃어가는 민족의 현실에서, 그래도 빼앗길 수 없는, 아니 몇 십 년, 몇 백 년이 흘러도 기어코 다시 회복해야 하는 민족의 혼, 그 질긴 혼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미신이나 비합리의 극치로 여겨지는 풍습이나 모습들까지도, 그냥 내다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혼과 얼, 지혜가 담긴 가치 체계로서의 풍속이며 문화 요소들임을 증명해 냅니다. 이를테면, 내간 서신, 신문기사, 제도 문서, 전래 시조, 민요, 역사서, 경전, 신화, 야담 등등 각각에 얽힌 선조들의 삶을 파헤치고 다시 정교한 퍼즐처럼 짜맞추고 되살려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일깨워 줍니다.
 
특히나, 제4부 꽃심을 지닌 땅 중 "어느 봄날의 꽃놀이, 화전가" 편(8권 수록)을 읽다 보면, 작가 최명희의 타고난 필력과 표현력을 정말이지 유감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언뜻 상춘곡을 새로 풀어 쓰는 듯한 4언 절구의 운문으로, 우리 고유의 문체 가락을 그대로 되살려 놓아, 마치 물흐르듯 굴러가는 신명어린 판소리 한 자락을 그대로 따라 흥얼거리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제가 오랜만의 때때로 메일에서, 소설 한 편(10권)을 이리도 길게 예찬하며 특별히 권하는 까닭은, 어쩌면 이런 글을 다시 읽고 우리 문화를 올곧게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참된 문명의 선진국, 문화 선진국으로 위상을 새롭게 세우는 첫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얼마 안남아 훌쩍 여름 휴가도 다가올 터인데, 혹 시간 여유 얻으시거들랑,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께는 필히 [혼불] 한 번 읽어 보십사 거듭 강추합니다...

[ 원문 작성일: 2007/06/07 , 제목및 이미지 삽입: 2009/06/12 ]

[출처] 혼불- (1)|작성자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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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