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짬을 내어 포털 뉴스란의 헤드라인들을 살펴 보니, MBC 엄기영 사장께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뉴스가 실려 나오네요...
언뜻 주변으로 흘러나오는 기사들을 보니, 정치권 진출(도지사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서 사표를 내는 것이라고, 민주당에서 영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을 거라 한다는 말도 함께 들려오는군요...

저는 언론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인들 중에 존경할 만하다 싶은 사람들을 사실 별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한때는 괜찮은 언론인이었다 싶은 분들이 결국에는 자신의 팔린 얼굴이나 인기를 무기로 하여 정치권으로 진출을 하게 되고,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언론 방송인 출신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주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는, 박찬종이나 홍사덕, 그리고 맹형규, 박성범, 정범구 같은 분들.... 요즘은 여류 정치인들도 꽤 많아졌지요... 전여옥 같이 지잘난 맛에 독설을 뿜어대는 여인네들이 있는가 하면, 박선영, 신은경 같은 이들도 있고, 김은혜처럼 정치부 기자에 뉴스앵커를 거쳐 청와대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언론/방송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들은 공인으로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또 그 공인성과 신뢰도를 이용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곤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치적인 적군이나 타 정파들에게는 일차적인 공격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송인 출신 정치인들이 가지는 장점이자 맹점이랄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방송인들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와 정체성에 대해 공격당할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한 도전'입니다. 그 만큼 신중하거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일 거구요... 그동안 정치와는 최대한의 거리를 둔 분으로 나름 공정 방송, 혹은 인간적인 방송의 표본으로 지키고 싶은 엄기영 사장 같은 분이 과연 일개 도지사 직을 차지하기 위해 MBC라는 방송사 사장직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저는 무척이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꼭 그러지 말란 법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믿어왔던 엄기영 사장님의 이미지로 보자면, "도지사 출마을 위한 사퇴"라는 해석은 한나라당이나 MB쪽의 정치 참모(나쁘게 얘기하면 모사꾼)들이 그의 사퇴에 대해 끊임없이 나돌았던 청와대나 여당의 압력설을 희석시키기 위해 "물타기" 용으로 자작해내는 루머로 우선 해석됩니다....

설령 누군가의 추천이나 옹립을 통해서 마지 못해, 혹은 뭔가 가슴 속에 품을 뜻을 펼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그런 존경받는 방송인들이 정치권에 들어설 입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넓게 열려 있다고 보니까요...

엄기영 사장님과 유사하게 제게 그런 심정을 갖게 하는 두 사람의 방송인이 더 있는데, 바로 MBC 시사토론을 주도했던 손석희 교수와 KBS 시사토론의 사회를 주도했던 정관용 선배입니다. 방송인 정관용 님에 대해 굳이 "선배"라 호칭하는 것은 실제로 학교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사회 조직에서도 선배로 모시고(?)  짧게나마 같이 일을 해본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MB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이른바 방송계 내의 "좌파"를 척결한다는 미명(?)아닌 미명하에, 디제이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시사 토론이나 사회 고발성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진행(사회자를 포함해서)을 주도했던 세력들에 대한 일종의 숙청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관용, 정연주, 손석희, 엄기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들이 과연 "좌파냐" 하는 논쟁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10여년이 넘게 전 국민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공간 앞에서 너무나 오래동안 자신의 모습을 늘상 노출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이념적 지향점이나 색깔에 대해 굳이 규정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이들의 지향점은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늘 중립의 위치에서 합리와 상식, 중도를 표방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였던 "중도적 조정자"로서의 모습이 좌파에게는 우로 보이고, 우파에게는 좌로 보였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즉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규정이라서, 절대적으로 이들의 색깔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 중의 한 사람인 정관용 선배가 최근에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책을 출간했더군요... 출간 소식를 듣자마자 직접 온라인 주문으로 구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방송 토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꼭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에서부터 솟아나서 이렇게 서평 글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이 책의 소제목이랄까, 케치프레이즈랄까 하는 부제는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소통의 부재" 라는 말입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4대강 예산이 변변한 토의도 없이 원안 통과가 강행되는 마당에, 실상 우리 사회는 소통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탕"을 한다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 책은 바로 "소탕을 끝내고 소통의 단초를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싶었던 저자의 간절한 소망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필이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책의 제목 자체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듯이,
책 문두의 서문 또한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볼테르 | 1694-1778 "

어쩌면 이 책의 논지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건 볼테르의 이 한 마디에 담긴 정신과 철학일 것입니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소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 정관용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시작이요 끝이라 보입니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 방송토론 잊어버리기, 2장 불통공화국, 대한민국, 3장 적대적 공존관계에 빠진 한국정치와 언론, 4장 소통하는 대한민국 만들기 로 전개되고, 뒷 부분에 요약에 해당하는 부록-배우는 토론, 설득의 법칙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뒷 부록에는 방송토론에 어떻게 임하고 준비하면 좋은지에 대해 방송토론 일선에서 사회를 맡았던 저자의 경험적인 팁들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10년이 넘게 방송토론을 주도해 온 사회자 출신의 저자가, 정작 토론 일반에 대해 논하면서 첫번째 요구사항이 바로 방송토론을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의미심장합니다. 저자는, 우리 머리 속에서 그동안 마치 토론의 전형처럼 자리잡고 있는 '방송토론에 대한 통념'과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출발하지 않는 한 토론의 본원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말의 속내는 우리나라의 방송 토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토론 패널 출연자가 일반 시청자 중 중도적 입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층"들을 설득하여 내 편으로 만드는 "포섭"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미 "내 편"인 사람들에게 "우리"의 논리를 강변하여 명쾌하게 확인시켜주고,  더 좋기로는 상대편을 촌철살인 한 방의 말 펀치로 케이오!! 시켜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인기"와 "박수"를 얻어내는 데 목표를 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송토론은 "토크 쇼"의 하나일 뿐, 상대방, 혹은 중간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설득의 도구나 방법으로서 토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토론이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할 때, 또 양쪽 입장이 모두 옳을 수 있는 경우 시작되는 것으로, 어떤 가치나 정책에 대한 논제 가운데 찬반양론이 모두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고, 스스로의 장점을 입증하기 위한 논리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때라야 비로소 적절한 토론의 논제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규정합니다.

당연히 토론은 양측이 각자의 논리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각자 자기 주장의 장점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과정인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논리적 모순이나 비합리성을 찾아내 공박하는 과정이자, 자신의 주장 중에 문제가 있는 대목들을 걷어 내고 상대방의 내용 중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받아들여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거나,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 경우 "공통의 합의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이란 것입니다.

저자는 방송토론은 기본적인 속성상 이처럼 공통의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으로서의 목적과는 많이 상이하기 때문에 애시당초 토론의 모범이나 전형이 될 수가 없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토론 하면 방송토론을 떠올리기 때문에, 방송토론의 해악이 너무 크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방송토론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구요. 쇼로서의 방송토론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토론의 모습은 구분해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특히 우리나라의 방송토론이 갖는 대부분의 해악은 토론이 갖는 특성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론에 임하는 토론자들의 "태도"의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합니다. 즉 일상적인 토론에서는 그러지 않던 사람들도, 방송토론에 어느 한 집단을 대표해서 나오게 되면 그 순간, 중립자나 중도의 부동층을 상대로 설득한다는 토론의 기본 전제를 망각하거나 아예 제쳐두고 자기 편 사람들에게 더 큰 박수를 받음으로써 인기를 관리하려는 "카타르시스 창출의 대변자" 역할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송토론의 해악과 구조적인 한계에 대한 폭로(?)에 이어서, 저자는 2장 불통공화국, 대한민국 편에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토론에 그토록 어려움을 느끼는지, 왜 토론이 아닌 언쟁, 심지어는 인신공격을 일삼게 되는지에 대해 그 역사적인 연원을 살펴봅니다.  급속한 경제성장, 초고속 압축 성장이 초래한 세대간, 지역간 격차와 물질과 정신의 불일치, 이로 인해 파생된 최악의 "문화지체"로부터 그 연원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정치와 언론이 적대적인 공존 관계에 빠짐으로써, 이러한 소통 부재 현상을 해소하기보다는 도리어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소설가 김훈 선생의 표현을 빌어서,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 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는 김훈 선생의 말을 빌려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의식을 작금의 언론을 향해서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 사회의 불통 구조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 마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희망을 찾기 위해 그 해결의 실마리, 소중한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마지막 4장에서 우리가 기존의 "적대적 공존관계" 대신에 "건설적인 대립관계"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해 보고자 시도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소박한 출발점,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로 하여금, 성공신화의 주술로부터 벗어나서 행복신화로 대체토록 하자"는 것입니다.

즉, 이기고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한 경쟁, 뺏고 빼앗기는 약육강식의 전쟁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사회에서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 수밖에 없는 "성공의 미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공존과 나눔에 기반한 최소 행복의 추구를 기본적 가치이자 권리로 새롭게 인식하고 이것을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로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재산이 얼마냐고 묻기 전에 얼마나 행복하냐고 묻는 사회, 함께 행복하자고 서로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그런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회색도 엄연한 하나의 색깔"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검거나 희거나, 흑백 택일이 아니면 안된다는 '편 가르기'의 논리를 넘어서서, 검은색과 흰색의 성질 둘 다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색깔로서 회색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회색인이 당당할 수 있도록" 용인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우에 따라, 사안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의 장점만을 가려내고 섞어서 우리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하며 글은 끝이 납니다...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저자 정관용이 던지는 또하나의 토론 화두, "회색은 색이 아닌가?" 라는 테마가 결코 가볍게만 들리지 않기에, 우리 시대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십사 강권합니다.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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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련히 그러려니 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해외 출장으로 한 주 동안 나라를 떠나 있다 돌아왔습니다. 한국말은 커녕 영어도 안 쓰는 구 소비에트권이다 보니, 국내의 소식을 접할 수단은 기껏해야 인터넷이었는데, 거기 인터넷은 속도도 속도려니와, 종량제 서비스라, 청소년 축구 8강전인가 아프리카의 중계 동영상 채널은 고사하고, 네이버의 문자중계 2시간 보고 나니까 기본요금 떨어졌다고 다시 돈내라고 해서 그 뒤로 아예 국내 소식 접하기를 포기했더랬습니다.

그러다 한국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ㅋㅋㅋ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한 선덕여왕 드라마 파일을 다운받아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말 이틀 동안은 김연아 선수의 피겨 우승 소식에 취하여 다른 뉴스들은 도무지 신경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정신 겨우 차리고, 오랜만에 뉴스들을 리뷰해보니, 선덕여왕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기사 하나가 고스란히 묻혀 있었더군요....

전경만 먹인 미국 쇠고기, 조선-동아 '쉬쉬'??
엊그제 인터넷 어디선가 흘려본 기사 제목인 것 같아 다시 눈이 가서 읽어보았는데... 내용을 보니, 역쉬나... 아니나다를까...
벌이는 짓이나 내뱉는 말마다 둘러대고 퉁치기에 바쁜 엠비 정부의 꼴불견이 한 순간도 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내용인 즉슨, 건강에 아무 지장 없는 소고기 수입을 문제삼는다며 PD수첩이며 '촛불 배후'자들을 고소 고발하고 처벌하면서 난리법석을 피우던 정부가 건강에 지장 없다는 것을 입증하겠노라며 총리까지 나서서 시식을 하는 등 쇼를 해대더니, 정작 정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청사 식당에서는 지난 1년간 단 1g의 미국산 쇠고기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만 끝났으면 그냥 "그래, 지네도 먹고 죽기엔 목숨이 아까왔겠지" 하고 이해할 법도 하련만, 연일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를 막느라고 피땀 흘려가며 개고생을 해야 했던 전경들에게만 그것을 퍼 먹였다고 하니...이게 말이 됩니까??
역시, 엠비 정부의 거짓말과 사기성 연기 연출의 수준은 결코 우리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블랙 코미디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언행 불일치에 대해서, 우리들의 조중동은 한 마디의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주시는 탁월한 뉴스 감각과 센스를 보여주시는군요... 더 나아가, 수입 금지된 칠레-캐나다산 돼지고기가 쇠고기로 잘못 보도되었다는 헤프닝으로 몰아가면서, 전혀 엉뚱한 물타기-왜곡 기사로 상황을 얼버무리는 탁월한 정보조작 + 여론호도 솜씨까지 몸소 보여주시니, 아! 신비하고 놀라워라~~ 조중동과 그 똘만이 아류 신문들의 권력 아부 능력이여!!

이들은 우리가 '엎드리면 코닿는' 인터넷 미디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미디어오늘]이 문제 제기한 이들의 '쪽팔리는' 보도행태, 얼마나 추잡한 수준인지 한 번 직접들 살펴 보시지요....



전경만 먹인 미국 쇠고기, 조선·동아 ‘쉬쉬’
[기자칼럼] MB정부 이중성, 언론비판 실종…문화일보 물타기 보도 논란
2009년 10월 17일 (토) 08:17:40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최근 논란은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과 ‘MB 시대’ 언론의 직무유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은 먹지 않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의경에게 몰아준 것이 확인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폭로한 결과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 과천 대전 광주 제주 등 정부청사 식당에서 사용한 쇠고기를 살펴본 결과, 단 1g의 미국산 쇠고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과천 청사를 지키는 ‘경기 706 전경대’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 올해 3월은 100%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 올해 5월부터 8월까지도 100%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다. 최규식 의원 주장이 아니라 경찰청이 내놓은 해명 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쇠고기 선택권이 없는 전경들은 싫든 좋든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했다.

조중동문 '쉬쉬', KBS SBS '쉬쉬', MBC '단신처리'

   
  ▲ ⓒ민주당 최규식 의원실.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은 지난해 촛불이 한 참 타오를 때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꼬리곰탕과 내장을 먹이겠다고 밝혔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누리꾼들은 폭발했다.

충격적 내용이 알려졌지만 언론은 쉬쉬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는 15일자 지면에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KBS SBS도 14일 저녁 뉴스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뉴스 가치가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을 알기에 조용히 넘어가려 한 것 아니겠는가. 언론은 자기검열로 국민 알 권리를 차단시켰다. MBC는 지난 14일 <뉴스데스크>에서 단신으로 처리했다. MBC가 지난해 촛불정국에서 광우병 문제를 얼마나 심층적으로 다뤘는지를 되돌아본다면 이번 사안을 단신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언론 비판 역할 보여준 세계일보, 경향신문

   
  ▲ 세계일보 10월16일자 5면.  
 
   
  ▲ 경향신문 10월16일자 사설.  
 

국민은 이런 문제를 언론이 보도하는지 않는지 알 권리가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한국일보는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단신 처리했다.

경향신문은 15일자 사설에서 “미 축산업자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미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해온 정부의 이중적 모습이 놀랍다”면서 “언행이 불일치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고 따르라는 건지 말문이 막힌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류순열 기자는 할 말은 하는 언론인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류순열 기자는 세계일보 16일자 5면 '현장메모'에서 "최규식 의원이(민주당)이 밝힌 사실은 충격적이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보기 좋게 얻어맞은 국민의 뒤통수는 얼얼하다. 배신감에 텅빈 가슴은 분노로 차오른다"면서 "대통령, 총리, 주무장관의 대국민 약속이 '정부에서 모르는 일'이 돼 버린 한편의 블랙코미디다. 그래 놓고 염치없게도 촛불시위 국민을 향해선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던가"라고 지적했다.

문화일보 뒤늦은 보도, 물타기?

   
  ▲ 문화일보 10월16일자 2면.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언론도 있다. 문화일보는 미국 쇠고기를 전경에게만 먹였다는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런 문화일보가 16일자 2면에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제목은  <전경에 수입금지 쇠고기를? “돼지를 소로 착각”>이라고 뽑았다.

무슨 얘기인가 들여다보자. 문화일보는 “경찰이 수입이 중단된 외국산 쇠고기를 밀수해 전경들에게만 먹였다는 의혹이 사실은 국정감사 자료를 잘못 만든 데서 비롯된 해프닝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의 수입 불가 고기는 돼지고기였으나 경찰 실무자가 착오로 이를 쇠고기로 기재해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화일보 기사를 찬찬히 뜯어보지 않으면 전경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인 사실 자체가 ‘착각’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문화일보가 뒤늦게 보도한 내용은 15일 경찰청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경찰청은 ‘경기 706 전경대’가 100%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것은 아니라는 해명 자료를 내면서 칠레산과 캐나다산 쇠고기도 먹였다는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문제는 칠레산과 캐나다산 쇠고기는 수입 금지된 상황이기 때문에 밀수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규식 의원실은 경찰청이 밀수된 쇠고기도 전경에게 먹였다는 보도 자료를 냈고, 일부 언론은 이를 보도했다. 그러자 경찰청은 다시 해명자료를 내서 칠레산과 캐나다산 쇠고기는 사실 쇠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였다고 재차 해명했다. 이번에도 담당자의 착오로 잘못 보낸 자료였다는 설명이다. 밀수 쇠고기 논란은 경찰청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중요한 점은 밀수 쇠고기 논란과 미국산 쇠고기를 전경에게 몰아준 사건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전경에게 몰아줬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공무원들이 단 1g의 쇠고기도 먹지 않았다는 것도 바뀌지 않는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 줄도 실리지 않은 '미국 쇠고기 비밀'

문화일보 보도는 조선닷컴이 16일 <전경만 먹었다는 ‘수입 쇠고기’ 사실은 ‘돼지고기’>라는 기사로 받으면서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다. 조선닷컴은 “경찰이 수입이 중단된 외국산 쇠고기를 밀수해 전경들에게만 먹였다는 의혹이 사실은 국정감사 자료를 잘못 만든 데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고 문화일보가 16일 보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닷컴은 문화일보가 16일자에서 새로운 사실을 보도한 것처럼 전했지만 밀수 쇠고기 논란은 15일 경찰청 해명을 통해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다. 문화일보의 ‘착각’, 조선닷컴의 ‘해프닝’ 등 단어에만 주목한 일부 누리꾼들은 전경에만 먹인 미국산 쇠고기 문제 자체가 ‘해프닝’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사진 가운데)와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15일자, 16일자, 17일자 지면에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단 한 줄의 기사도 실리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쇠고기와 관련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동아일보 17일자 B1면 <인도서 온 카레, 주부의 애인이 되다>라는 기사의 내용이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를 전경만 먹었다는 내용은 아니다. 그런 내용은 조선과 동아 지면에서 한 줄도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는 할 말은 하는 언론이라고 홍보하지 마라.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비판하고 세계일보가 ‘현장메모’를 통해 비판하는 모습이 바로 할 말은 하는 언론의 모습이다.

어설픈 물타기로 전경을 두 번 울리는 행동도 중단해야 한다. 누리꾼들은 바보가 아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언론이 ‘MB 시대’에 어떤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최초입력 : 2009-10-17 08:17:40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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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없는 평화는 양들의 침묵일 뿐입니다
.

한국사회는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교만과 탐욕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통치자에게
더 이상 사람의 길
,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되찾읍시다.
 

 

--- 2009. 2. 2 주님봉헌축일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설명절도 지난 기축년의 입춘날, 포근한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일찍 나와 PC를 켜고 뉴스들을 살펴보니, ”강호순, 나는 사이코패스”
“'용산' 새총, 골프공 160여 m 날려” 따위의 헤드라인들 사이로,
슬그머니 “용산 참사에 대해 경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들을 들이밀고 있군요…

제도권 언론들의 문제를 회피하는 비겁함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뭉쳐야 한다는 뻔한 논리로 어느새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려 기는 자들의 비열함을 꾸짖으면서 지난 주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국민들 앞에 내놓은 시국선언문의 끝자락을 옮겨둡니다.

http://blog.naver.com/letsgo99/20061373064



국민과 서민에 대한 애정을 이른바 '가진 자'들에게서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아마도 우리의 희망이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었던 탓일 겁니다.
부시가 떠나가기도 전에 우리는 MB라는 보기만 해도 짜증이 솟아나는 초상화를
매일처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할 겁니다. 나도 사랑한다고…. 애정이 있다고… 누구보다도 잘해보려고 애쓰고 있다고…
청와대 뒷동산 인왕산에 올라 광화문의 촛불집회 모습을 보면서 “아침이슬”을 노래한 대통령이라니,
속으로는 실제로도 그러고 싶어할 겁니다.
문제는 사랑하는 방법이겠지요…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일 거구요…

 그에게는 국방이나 나라의 안보는 어떨지언정,
군사공항을 옮겨서라도 제2롯데월드 같은 서울의 랜드마크를 심어놓는 것이 더 상징적인 업적이고,
경제살리기의 지름길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환경이야 어찌 되었든 아이티 인프라나 바이오 인프라를 깔기에도 모자란 돈을
60-70년대 개발독재 시절처럼 그저 땅 파고 삽질하는 데 올인하는 것이
경제 부흥의 토대라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윤도현의 비유마냥 이 민족을 가난과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구세주마냥 박통을 닮고 싶어하는 모양이지만, 하는 짓은 전두환 군사독재보다 더 심한 독단에 철권통치를 시대착오적으로 강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문제인 것이지요….

며칠 전 대학 서클의 신년모임이 있어 만난 한 친구는,
대구 사람을 남편으로 얻어서 명절때마다 “시아버지랑 정견이 달라서 의견충돌을 빚었는데,
이번 설날에는 그 시아버님조차 “노무현만도 못하니 이 일을 어쩔꺼나” 하고
오랜만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과연 누구 탓일까요? 

누구를 탓하면 지금, 나의 죄, 우리의 죄가 면해질 수 있을까요?

국가권력과 공권력의 힘을 스스로 내려놓는 대신에 전국의 땅값 집값을 올려놓아 버림을 받은
노무현 전 '좌파정권'을 탓해야 할까요? 
투자은행의 방만한 운영과 경쟁력을 상실한 자동차 산업 등의 구제를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달러를 찍어내어 세계경제 위기를 자초한 미국의 오만함과 무식함을 탓해야 할까요?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 모든 사태가 결국은 우리 스스로의 죄이자,
나의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죄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고요. 그것도 아주 아프고 진하게 말입니다.

한 나라 민주주의의 척도는 결국 그 나라 구성원인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준에 달렸다는 말이야말로
진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일하지도 않는 자식들을 위장취업시켜놓고 월급을 받게 하는 도덕 개념이 없는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대통령에 뽑아 앉힌 죄이고,
짓지도 않는 농지에 영농보조금을 타먹는 고위관리들을 용인해 온 우리들의 죄이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론에 빠져서 대책없는 자유무역과 몰가치한 세계화에 대해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따라가면서, 비판은 하면서도 다른 경쟁력의 원천을 찾아 키우지 못하고
하늘만 쳐다봐온 우리들의 죄값을 아낌 없이 치르는 것이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민주주의의 수업료는 비싼 법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수업은 우리에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인 듯 싶습니다.

제가 요즘 유학과 관련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아이들의 장래교육이나 청년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해외로 해외로 나가는 모습들을 실감나게 느끼고 있습니다.

입학금과 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저 역시 이 나라의 교육철학이나 시스템을 어떻게든 바꿔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우리 애는 이런 환경에서 교육시키지 않고
외국으로 내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솔직한 현실이니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과연 어디에서부터 이 빗나가기 시작하는 우리 사회와 역사의 물줄기를 조금이라도 다시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입춘대길’ 이라는 말이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고 허허로움만 더해서 답답한 심사를 메일로 쏟아 봅니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지요. 후퇴가 있으면 전진이 있을 겁니다.
지금의 퇴보와 역행이 당장엔 분노어리고 울분스럽지만, 그 분노의 힘을 모아,
더 크고 확실한 진보를 위한 추진력을 다져야겠습니다.
흐트러지고 나태해진 마음을 다시 다지고 우리 스스로를 고난 속에서 재훈련시키는
소중한 시간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대화의 주제로 가장 금기하고 피하는 것이 바로 정치나 종교 문제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것을 피해갈 수가 없네요.

촛불집회의 현장이 되었든, 온라인 아고라나 블로그의 한 구석이 되었든,
행여 제 이름이나 모습이 어른거리더라도 너무 철없다 여기지는 말아 주십시오…

우리나라나 우리 사회가 위기라고 생각되면 그게 누구이든,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으로 행동하고 참여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철학이요, 살아온 지혜니까요….

모두들 늘 건승하시고, 어려운 난국을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새해를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정권이 조금이라도 제 정신을 빨리 차릴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면 뭐든 해보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희망합니다. 
 

2009년 입춘날 아침에...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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