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지은이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별점

유시민의 헌법에세이,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저자 유시민이 자칭  '지식소매상'으로서 가장 최근에 내놓은 저작 [후불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여  라는 제목을 붙인 이 장은 저자가 20여년 전 자신을 가두었던 독재권력의 폭력죄 실형 선고에 대해 [항소이유서]에서 해명했던 내용들에 대한 20년 이후의 자기성찰이자, 양심고백(?)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현행 법 앞에 불법일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의 양심 앞에 정당했다, 혹은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의 시대사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결론이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84년 84학번, 학내민주화 1세대의 딱지를 붙이고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때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유시민이라는 이름 뒤의 호칭은 전 장관이라거나, 전 머시기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선배'라고 하는 편이 가장 어울리고, 또 부담이 없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80년 광주 학살의 피를 얼추 닦아내고 나서 조금 통치의 여유가 생겼다고 보았는지, 1983년말 경에 대학 캠퍼스로 벤또를 싸들고 출퇴근하던 짭새(사복경찰)들을 교내에서 철수시키면서 이른바 "유화국면"을 조성해주던 시절, 학생들의 눌렸던 민주화의 열망은 다시 열린 학내 집회를 통해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비합법 지하조직처럼 활동했던 언더써클들이 공개써클로 전환하거나, 조직의 일부가 공개써클 활동을 통해 외부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지요.
(70-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 조직의 계보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위클리경향 812호_2009.2.17에 정용인 기자가 쓴 아래 글,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9311&pt=nv  
참고하세요.)

정권이 만들었던 학도호국단을 학생들 스스로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던 당시, 정권과 경찰은 사복경찰을 철수시킨 대신에 캠퍼스 앞 도로를 전투경찰로 틀어막고 가두 진출을 저지하는 한편, 학생운동 조직 및 활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학생을 가장한 학내 정보공작원(이른바 '학원프락치')들을 암암리에 침투시켜 시위 움직임이나 관련 조직을 색출해내 주모자나 주동자를 체포하여 고문하거나 강제로 군대로 끌고가는(이른바 "강집") 나치의 게슈타포식 탄압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은 당연히 학생회나 써클 등의 학생 조직에 신분이 불확실한 자들이 얼쩡거리거나 정보들을 캐고 다니면 일단 '프락치'로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신분이 의심되는 프락치 혐의자(?)들이 학생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이 서너 차례 연속해서 발생하면서, 당시 학생회 및 복학생협의회 같은 조직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던 학생들(선배들)이 폭력 사주범으로 체포되고 연행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 때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유시민 선배가 바로 이같은 혐의의 배후 주동자로 취급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1심에서 참여하지도 않았던 폭행가담 혐의를 근거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1심의 실형이 내려지기까지 말도 안되는 법률 적용에 대해 법관들을 향해, 그리고 정권과 국민들을 향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자 썼던 글이 바로, "80년대 학생운동사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라는 것입니다.
(항소이유서 전문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http://blog.naver.com/hotbloodsoul/140069532860  참고하세요. )

당시 갓 대학문을 밟고서야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게되었던 저에게도 이러한 학내 상황은 시대의 부름 앞에 청년학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주기에 충분했죠... 그런 만큼,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당시 학생운동과 독재정권간 갈등의 현주소를 낱낱히 정의하고 밝혀주는 교본으로 썩 훌륭한 교재 역할을 했고, 실제로 작은 소책자로도 발매가 되었을 만큼 운동권은 물론 일반 지식인 사이에서까지 필독문 중의 하나였죠.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바로 이때부터 씌어지기 시작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왜 다시 읽혀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의 되돌아봄이자, 지난 20여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과연 얼마만큼 민주화되었는지, 그 현 주소를 다시한번 점검해보는 나름의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책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당시 항소이유서에서 거론되었던 사건에 대한 저자의 재평가와 당시 피해자였던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사과라는 개인적인 고해성사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시민은 지나간 과거를 단지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을 들춰 냅니다. 시대적 상황이 선의를 가진 개인들을 얼마든지 악하게도 만들 수 있음을 역사적 실례로 보여주고, 그 악에 봉사하는 도구로 쓰인 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인류 역사의 사례 또한 엄중하게 지적하고 경고합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의 헌법에세이]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사실 매우 소박하게 자전적인 수필 형식으로 씌어진 글들의 모음이어서, 굳이 헌법이나 법률 체계, 혹은 법률 전문용어를 모르는 분들이 읽는다 하여도 전혀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는 매우 "읽기 쉬운" 책입니다.

또한 헌법은 이런 것이다, 혹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을 학자처럼 늘어 놓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이 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그 태생과, 태생으로 인한 한계와 과제를 쉬우면서도 적확하게 집어놓고 있기 때문에 읽어가다보면 그냥 저절로 아... 그렇구나... 맞아.... 그랬었지...그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라고 고개가 곳곳에서 절로 끄덕여지는 책입니다.

전체 380쪽 정도로 이루어진 얇지만은 않은 분량이지만, 마치 재미난 실록 실명 역사소설 단행본 한편을 읽는 기분으로 작심하면 하룻밤, 길어도 이틀 밤 정도만 할애하면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 독서를 권하기에 별 부담도 안 됩니다....

더욱이, 아주 오래 전 고려나 조선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전 정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과, 현재 겨우 1년밖에 채우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의 비교 대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우 리얼한 상황을 옅볼 수 있고, 정권의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결정이나 조율의 비하인드 스토리(뒷얘기)까지 담고 있어서 일말의 흥미나 재미까지 선사해 줍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로 나뉘며, 1부는 [헌법의 당위], 2부는 [권력의 실재] 라는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짐작하겠지만, 당위(Sollen))로서의 헌법과 현실로서의 실재, 혹은 존재(Sein)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밝히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주요한 원리와 원칙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이를테면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이 어떻게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개헌 과정에서 삽입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또 현재 이르러 그 헌법의 가치가 왜 훼손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 선행됩니다.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에 두 번에 걸쳐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여의도 현장에서 경험하고 배웠던 입법부의 현장 경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에 힘입어 입각했던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행정부 현장 경험 등을 통해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국가 정책이 어떤 경로와 절차를 통해 입안되고, 조정 혹은 변질되며, 또 집행되게 되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권력의 이면들을 중계하면서 아주 친절하고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가십성으로 느껴지지만, 왜 당초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김근태가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정동영과 거꾸로 자리가 뒤바뀌게 되는지에 대한 뒷얘기, 박근혜 등과의 막후협상을 통해 거의 다 합의를 볼 뻔했던 국민연금 개혁법안이 한나라당의 얼토당토 않은 보고체계에 의해 어떻게 엉뚱하게 좌초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스토리 등을 포함해서, 조중동의 악의적인 기사 취급이 얼마나 한심하고도 허무맹랑한 수준에서 조작되고 왜곡되는지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아울러 절대권력을 가진 청와대 집권자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참모를 얻지 못하거나 자기성찰의 태도를 스스로 갖지 못할 경우 이를 수밖에 없는 파국적 운명, 즉, 현재 이명박 정부의 독주와 독선이 왜 그리 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파행적인 운명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번뜩이는 예언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합니다.

책장을 넘겨가는 내내 동서양과 고금, 철학과 역사에 기초한 인문학에서부터, 경제학과 사회학을 넘어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풍부한 식견과, 그것을 헌법이라는 얼개 속에 교묘하게 섞어 넣어가면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고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빠지다보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1인칭 소설 한 편을 보는 듯한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후불제 민주주의]가 양심적인 인간으로 살고자 원하는 우리 소시민들에게 진실로 원하고 또 요구하는 바는 결코 명시적이거나 선동적이지는 않지만 글 곳곳 행간 사이사이에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헌법 1조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진실로 우리나라가 그리 되기를 원한다면, 긴 역사의 호흡을 가지고, 늘 공부하고, 연대하여, 깨어서 실천하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의 정책 실패를 자인하면서 했다는 한 마디를, 책의 부록 CD로 주어지는 [저자 강연회] 속에서 스스로도 다시 인정하면서 이렇게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대중은 계몽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중은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치고, 스스로 학습하는 만큼만 깨어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한 나라의 국가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대한민국 헌법 1조를 현실에 깨어있게 하고 실재로 구현하는 과제는 어떤 누군가 선각자나 구세주에 의해 선의나 시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중 스스로가 학습하고 깨달아 깨우친 만큼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결론이자 요청은 "선과 선의 연대"를 통한 악의 축출 입니다! 

그 선과 선의 연대 형태가 어찌 될 것인지,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색해야 하는 현재 진행형으로ㅡ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겨두고 책을 마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갚아야 할 외상값을 다 갚지 못한 후불제 민주주의인 까닭에, 대중 스스로가 더 비싼 값을 치르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면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은 뒤, 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라는 책을 영문판 원서로 주문하기로 작심했습니다.
왜냐구요?  읽어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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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
  • 09.06.06 10:07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34

    빈자의 무기, 그리고 노무현
    한겨레 한승동 기자
    » 빈자의 무기, 그리고 노무현
    디아스포라의 눈 /

    호찌민의 청빈 이미지는 항미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청빈과 도덕성은 빈자나 약자가 부자나 강자와 싸울 때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노무현씨와 호찌민을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굳이 그런 시각을 제시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봄에 죽음을 생각하다’라는 글을 썼는데,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국민장을 치르는 날에 이 글을 쓴다.

    실은 지난주 충북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이틀간 한국을 찾았다. 5월 23일 아침 일찍 일본에 돌아왔는데 하네다 공항 텔레비전 뉴스가 노 전 대통령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잘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도 차리기 전에 그는 “뉴스 봤어요?”라는 말부터 꺼내더니 “이제 한국 사회도 좀 평온해지려나 했는데…. 나 울어버릴 것 같아요”라고 했다. 아내는 노무현씨 팬이었다. 일본인인 그에게도 노무현씨는 진보·민주·평화라는 가치들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가 충격을 받은 사실에 놀라면서 새삼 나 자신이 몹시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한국에 있는 지인 두세 사람에게 감상을 물어봤다. 어떤 이는 울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몹시 분개했다. 대답은 모두 예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것은 그들이 노 전 대통령과 민주화나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꿈을 공유하고 고락을 함께하며 싸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내가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공유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므로 나 같은 국외자가 왈가왈부하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이 채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라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처음 내게 떠오른 생각은 “나약하구나”라고 할지 “서투르구나”라고 할지, 그런 것이었다.

    제3세계 정치지도자들은 사후에 권력남용, 부정축재, 친인척 비리, 이성관계 등 생전의 부정이 폭로되기 일쑤다. 예외는 저우언라이, 체 게바라, 그리고 호찌민 정도일까.

     

    호찌민에겐 형과 누나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프랑스에 대한 저항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당한 적이 있다. 1945년 8월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독립했을 때 그의 누나는 새 정부의 주석이 오랜 세월 소식도 없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오리 2마리와 달걀 22개’를 선물로 싸들고 하노이까지 동생을 만나러 갔다. 그 뒤 누나는 고향마을에서 보통의 농촌 아낙네로 살다가 9년 뒤 죽었다. 형도 동생을 만나러 갔으나 호찌민은 형을 관저에 들이지 않고 교외의 친척 집에서 1시간 정도 만났을 뿐, 그 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것은 호찌민의 결벽증을 전해주는 삽화들 가운데 하나다. 어쩐지 잘 만들어진 우화 같은 느낌도 들지만, 이야기의 진위야 어떻든, 이런 이미지를 호찌민 자신과 그 동지들이 전략적으로 중시하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얇은 파자마 같은 농민복을 입고 폐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은 가난한 사람들이 강대한 미국을 상대로 싸웠다. 이런 청빈 이미지가 남베트남 정권의 부정부패를 증오하는 국내 민중에게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항미(抗美)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데 사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청빈과 도덕성은 빈자나 약자가 부자나 강자와 싸울 때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노무현씨와 호찌민을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굳이 그런 시각을 제시해보고 싶어졌다.

     

    이명박 정권이 검찰을 동원해 정치보복을 했다는 얘기는 사실일 것이다. 거기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정치권력은 으레 무자비하고 낯 두꺼운 정치보복을 한다. 노씨가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재임중에 그런 걸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았다면 가열찬 정치투쟁을 한 지도자로서는 좀 서툴렀던 게 아닐까. 본인은 받은 줄도 몰랐던 것 같고, 문제가 된 돈의 액수도 과거 권력자들이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고 누가 변명해줄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씨가 내건 원칙과 그에게 쏠린 기대를 생각하면 그것도 구차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한다면, 노씨와 그 주변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도덕성이라는 귀중한 무기를 잃은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사건 다음날 이렇게 논평했다. “대통령에게 강대한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하에서 사리사욕을 탐하는 세력이 지연·혈연을 이용해 대통령 주변에 접근하고, 가족 측근들도 온통 돈으로 오염되는 추태가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돼 왔다. 청렴결백을 표방한 좌파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보수파가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세력의 도덕성을 냉소하는 그런 일을 허용해선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구실을 주고 말았다. <요미우리신문> 사설은 이어진다. “노무현 전 정권 시대에 한일관계는 역사인식이나 다케시마(독도) 문제로 냉각돼 정상끼리의 셔틀외교도 중단됐다. 당시 한국은 일방적인 북조선 지원 쪽으로 기운 유화정책을 고집했고 그 때문에 일본·미국과의 안전보장관계는 삐걱거렸다. …노무현씨의 죽음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여기엔 노 정권의 역사적 공적이 거꾸로 투영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역사인식 문제로 일본에 단호한 자세를 취한 것은 <요미우리>에겐 문제였을지 몰라도, 재일조선인뿐만 아니라 식민지주의와 싸워온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부터는 큰 환영을 받았다. 남북관계에 대해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더는 과거의 대립시대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그런 급속한 시대변화를 일본 보수파는 즐기고 있다. 이 시대를 그런 식으로 지나쳐버려도 좋은 걸까?

     

    노무현씨는 호찌민만큼 청빈하진 않았고 다른 많은 정치지도자들만큼 낯 두껍지도 않았다. 그가 훌륭한 것은 자신의 실책과 약점을 인정할 줄 아는 정직성의 소유자라는 점이리라. 내가 그에게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그도 마침내 어깨짐을 벗었다. 하지만 그가 벗어버린 어깨짐은 곧 다른 누군가가 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짐에는 상처받은 도덕성의 재건이라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덧붙여졌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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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렛츠고

    전 눈물이 메마른 줄 알았습니다.
    나이 마흔 넷!  나름 세상 물정 어렵고 힘들다는 것, 경험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한 길 사람 속 알 수 없으니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정말 무섭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조직은 결코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 쓰린 맛 보았습니다.

    웬만큼은 세상을 알 법한 나이가 되었으니, 더 이상은 눈물 흘릴 일 없으리라 자신했더랬습니다.
    내 부모님 돌아가신다 해도 과연 진정어린 눈물이 솟아날까 스스로 반신반의했습니다.
    하물며, 피붙이 부모도 아닌 타인의 죽음 앞에 눈물 흘릴 일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날만은 아니었습니다.
    참으려 참으려 해도 끝내 글썽이던 눈물은 안경 밑으로 솟아 흐르고,
    참, 멋쩍게도 가슴을 들먹이며 울었습니다.

    바보 노무현을 시청 앞 노제로 떠나보내는 그 순간,
    "고마와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를 반복하는 외침을 듣는 순간,
    "고맙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
    도종환 시인의, 하늘을 향한 외침을 귓가에 담는 순간,
    눈물샘은 터지고 또 터졌습니다...

     

    안희정의 울분과 분노에 찬 항변의 외침에는 결코 흐르지 않았던 눈물인데,
    "지켜드리지 못했는데,,, 제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라는
    이광재의 말 한 마디에는 왜 가슴이 미어 터지는지,
    "미안해하지 말라 하셨지만 오늘은 미안해 해야겠다"는 김제동의 한 마디에
    왜 그리도 진한 회한이 물밀듯이 터져 밀려 오는지,..

    바보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우리에게 눈물과 한숨과
    우리가 살아 생전 또 다시 저런 가슴 따뜻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상실감을
    온 국민에게, 아니 적어도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처럼 남겨 놓고
    황망하게 떠나버렸습니다.

    시청 앞 노제를 마치고 끊임 없는 만장과 인파의 물결을 따라,
    거대한 추모 행렬은 남대문으로, 또 서울역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출렁거리며 흘렀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회한과 비탄으로 접고 말 수는 없습니다.
    그가 남긴 유지를 교훈삼아 살아남은 자로서 짊어져야 할 숙제를 마쳐야 하는 지금,
    우리는 바보 노무현의 가치와 더불어 또한 '참여정부'의 한계 또한 분명히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권력을 장악하고서도 조중동을 쳐서 확실하게 보수세력의 반발 근거지를 무너뜨리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고 보호해줄 확고한 매체나 미디어 파워를 확보하지 못한 채,
    검찰과 경찰권력, 세무권력 등 국가권력을 너무나도 순진하게 내려놓아 버린 탓이요,

    기업과의 타협 아래 급기야는 부동산 폭등이라는 귀신을 잡지 못한 정책 실패 탓이요... 나아가,
    미국 및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타협한 이라크 파병, FTA 강행 등을 통해 지지세력과 지원군을
    상실하고 고립을 자초한 데서부터 어쩌면 예견된 "복수당함"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애당초 정치권력이나 국가권력의 속성은 이해집단간 대립 속에서 부득이하게 폭력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이든 제도적인 폭력이든, 아니면 국민 대중 다수의 표심에 기반한 힘이든,
    가진 자와 없는 자들 간의 투쟁에서 어정쩡한 타협은 결코 오래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힘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주류 집권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긴커녕 탄핵이라는 극한의 카드까지 동원하며 호시탐탐 반전을 노리던
    반대 세력들이 자신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무척이나 순진한 오산이요,
    이상주의자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만약 그러한 공격을 미리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아낼 방책과 수단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대항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정치적 어리석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원하던 것입니까!"
    라고 고개 쳐들고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울부짖던 안희정의 외침은 스스로 복수를 대비하지 못한
    패배자의 궁색한 변명이요, 절규이자,
    주군을 위해 먼저 자신들의 목숨을 대신 내놓지 못한 비겁자들의 항변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고, 노무현의 죽음은 단지 엠비정권이나 정치검찰만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중동에게 그 책임을 전부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순진한 망상입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이라고 해서 노대통령을 공격하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으니까요...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22 [미디어오늘] 보수언론 못지않은 경향·한겨레 책임론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구는 이들이야말로,
    그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의 반쪽을 절감하고 인정하는 것이라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즉, 그 책임의 절반은 노무현 대통령을 앞장서 지켜내야 했던 친위세력이나 민주당 만의 것이 아니요,
    바보 노무현을 지지하고 뽑았던 국민 대중들, 바로 우리 자신의 몫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엄격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이명박 개인이나 정치검찰, 수구언론들의 일방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점입니다. 양비론을 주장하자는 게 아닙니다.
    싸움에서 진 자들, 패배한 세력이 감내해야 할 불가피한 멍에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를 뽑아 놓고도 이런저런 정치적 이해득실 차원에서 막상 현실 정치에서는 그와 선을 긋고,
    심지어는 갈라서서 고립시키기를 서슴치 않았던 무리들과 진보 진영을 포함한 정치 세력들,
    그리고 보수언론의 비주류 깍아내리기에 편승하여, 바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위한
    방어벽을 철회해 버림으로써 그를 져버린 우리 자신의 책임 또한 무시해서는 안될 몫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이 권력을 손에 쥐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소수파에 비주류라는 점을 잊고,
    탄핵 복권 이후 다수당의 착각(?) 속에 빠져, 그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정책을 고집스레 고수한
    이상주의자 노무현 사단의 정치적 미숙과 판단착오도 분명히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힘에 부쳐서 하고 싶어도 못했는가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는
    아래 사례 글에서 보다시피, 상황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다를 수 있을 겁니다.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20   [정지창]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보내며

    요컨대, 도덕주의 자체가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도덕성이 현실 정치 대결의 장에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나 절대 무기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명박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숱한 비리 전력과 도덕적 흠결에 대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정권을 잡은 과정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지금까지의 경과
    자체가 웅변으로 반증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은 그 근본적인 속성상 피를 묻히지 않고서 깨끗하게만 존속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을 전국민적인 애도의 물결 속에 치러낸 지금,
    다음 총선, 혹은 다음 대선에서 지금보다 나은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고자 다짐하고 절치부심하는
    개인들이나 정치세력이 있다면, 절대로 바보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속으로는 복수의 통쾌감에 희색을 띄며 시원해 죽을 맛이면서도, 전 국민과 함께 더 할 수 없이 슬프다는
    표정으로 함께 애도를 표시하며 넙죽대는 조중동의 영악하고 간교한 두 얼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땅에 또 한번 노무현과 비슷한 색깔의 비주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혹여 용인하게 될 경우,
    그 때는 정말로 자신들이 복수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의 학습이자, 가슴졸임의 반대쪽 표정이라고
    해석해야 맞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참으로 용기있는 선택을 했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고귀한 선택을 보고 우리가 놓치지 말고 배워야 할 또 하나의 숨은 교훈은,
    단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라는 고인의 인간적인 유지가 아니라,
    권력은 권력을 쥐어준 국민들의 뜻에 맞추어 그 힘을 제 때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그것이 결국 자신의 목을 베는 칼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는 냉혹한 역사의 진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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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렛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