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오랜만에 좀 늦게 출근하느라 늦은 아침을 집에서 먹는데, 아내가 말하더군요...
"이 정부 들어선 이래, 도무지 장례식 그칠 날이 없는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아! 그래 맞다!"
그런 생각이 왜 그리 새삼스레 가슴에 와 닿던지...
돌이켜보면 숭례문 화재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과, 불안의 징조들....
민심의 우려와 심기 불편은, 광우병 소고기와 얽힌 촛불논쟁과 PD수첩에 대한 고소로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미디어법 개악을 통한 방송 장악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보면서 차차로 커졌더랬지요. 한 켜 한 켜, 굵어지는 나무등걸의 나이테마냥!  

김수환 추기경의 타계로부터, 작년초 용산 철거민 참혹한 화재참사, 곧바로 이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과 해를 넘기지 않고 이어진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 4대강 삽질 강행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올 들어서 다시 시작된 죽음의 행렬은 법정 스님의 입적소식이 채 가시기 전에 천안함 꽃다운 젊은이 46명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 어느 대통령 치하에서 이토록 장례식과 조문의 행렬이 끝이 안 나는 일이 또 있었나요?
오죽 했으면, 저자 거리에서는 "자고로 임금이 덕이 없고 악업이 쌓이면 나라에 흉사가 끊이질 않고 액운이 낀다."는 이들도 있고, "앞서 죽어간 원혼들의 억울함과 분노가 뼈에 사무쳐 혼령들이 구천을 떠돌며 산 자들을 벌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자문하기도 합니다. 

"2010년의 잔인한 4월"은 그렇게 또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정작 미안해야 할 이들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온 국민을 "살아남은 죄인"들로 만들어가며, 성금을 강요하는 나라,
"미안하다"며 울부짖는 부모형제들의 오열과 몸부림을 이용하여, 사고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터에 "피의 보복"을 다짐케 하는 이상한 국면,
정말로 용서를 구해야 할 이들은 따로 있어 보이는데, "용서해줘!" 라며 눈물짓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마치 국민들의 "해이해진 안보의식"이 사고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서 본질을 흐트러 뜨리는 교묘한 술책과 비겁한 작태들...

저는 누가 들으면 욕을 바가지로 할 수도 있겠지만,
희생 당한 이들에 대해 절대 미안해 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을 겁니다...
무엇을 미안해 해야 하는지, 무엇을 용서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겠기 때문이지요....

또한 저는 천안함에서 희생 당한 안타까운 혼령들에게 결코 "영웅"이란 가식적인 칭호를 붙이지도 않을 겁니다...
그들의 죽음과 희생은 우리들 모두의 가슴 속에 뭔가 커다란 숙제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고귀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죽음이 왜, 어쨌길래,"영웅적"이라고 불리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요컨대, 천안함은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식과 더불어 우리의 기억에서 덮어져야 할 사건처리의 끝이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초래한 근본 원인과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세상의 어지러움과 통한의 울부짖음들을 모두 뒤로 떨치고, 북한산에 올랐더랬습니다...
잔인한 4월! 푸른 소나무 가지 끝에서, 골짝 바위틈 사이 사이에서, 아찔한 벼랑 끝에서도...
붉고 화사한 진달래 꽃무리는 삼각산 연봉을 굽이굽이, 지천으로 피어 바람에 흩날리더군요....

46인의 젊은 수병들,
그들의 꽃다운 죽음 앞에, 80년 대학시절 해마다 4월이 돌아오면 즐겨 불렀던 노래 한 소절 진혼곡으로 올립니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쓰러져 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 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詩 '진달래' (중3 국어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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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
  • 09.06.04 08:52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26

    [여론조사] "盧 서거, 현 정권 책임"

     

    ◀ANC▶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서는 현 정권의 책임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여론은 부정적입니다.

    이어서 왕종명 기자입니다.

    ◀VCR▶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
    본인의 책임이 크다 36.6%,
    외부의 책임이 더 크다 60.8%였습니다.

    외부의 압박이 주된 요인이라고 답한
    응답자에게, 그러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냐고 묻자
    이명박 대통령을 지목한 답이 39%,
    검찰 27, 언론 21% 순이었습니다.

    둘씩 꼽으라 했을 때는
    검찰 64, 대통령 55, 언론 45%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치보복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 62.5%로,
    정당한 수사로 본다는 의견 32.2%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검찰 수사 자체도 공정하지 않게
    이뤄졌다는 의견도 58.3%에 달했고,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로는
    가족과 측근에 대한 과도한 수사 확대,
    확인되지 않은 혐의로 망신주기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정국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67.8%가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풀기 위해서 대화 등
    유화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54%,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요구 42.5%보다
    약간 높았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고 보는 견해는 49.9%로,
    옳은 방향이라는 43.6%보다 많았습니다.

    이번 조사는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전화로 했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입니다.

    MBC 뉴스 왕종명입니다.

     

    원문 출처: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359022_26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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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렛츠고
  • 09.06.02 17:52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20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보내며


                                                             
    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고전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인간, 즉 왕이나 장군, 반인반신의 용사들인데, 이들은 타고난 운명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외디푸스왕이나 햄릿 왕자, 발렌쉬타인 장군은 모두 고귀한 신분과 준수한 용모, 고매한 인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타고났으나 한 순간에 영광의 절정에서 치욕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러한 추락의 낙차가 클수록 관객이 느끼는 공포와 연민의 강도는 증가한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아내는 미적 정서는 흔히 숭고미와 비장미로 규정된다.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비상하다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추락하는 주인공은 외경과 감동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미와 비장미는 역사적 인물들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사한 이순신과 관운장은 ‘성웅’과 ‘군신’으로 추앙되고,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다가 처형된 전봉준과 스파르타쿠스는 비운의 혁명가로 미화된다.

    그의 비극적 죽음,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


    그렇지만 노무현의 죽음은 이러한 숭고하고 비장한 영웅들의 죽음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고전비극의 주인공처럼 왕이나 장군, 귀족도 아니고 반인반신의 용사도 아니었다.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혁명가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지도자, 신출귀몰한 책략가도 아니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나,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고집 때문에, 인권 변호사로, 바보 정치인으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의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농민으로 돌아온지 1년만에 절벽에서 몸을 던진 어수룩한 촌놈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되 그 추락의 낙차는 크지 않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결코 신비로운 만년설로 빛나는 절대권력의 봉우리에 올라간 적이 없었고 그저 해발 백 미터의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다가 부엉이바위에서 사십 미터 아래 골짜기로 떨어졌을 뿐이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휘두를 수도 없었으니까. 기득권 세력은 탄핵으로 그를 무력화시켰고 재벌의 앞잡이인 수구족벌언론은 집요하고 야비하게 그를 씹어댔다. 이제 권력은 청와대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탄식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진단이었다. 그는 시장의 힘에 떠밀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함으로써 지지층으로부터 고립되었고, 퇴임 직전 힘겹게 성사시킨 남북정상회담의 영광도 그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의 무조건적인 ‘거꾸로/뒤집기정책’으로 원천무효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그의 비극적인 추락이 4·19 5·18, 6·10으로 얻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과에 안주했던 우리 모두의 탐욕과 나태와 위선의 결과임을 깨닫는다. 한때 그에게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던 서민 대중은 주식과 대운하, 뉴타운으로 떼돈을 벌어볼 욕심에, 이른바 386세대의 중산층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어 출세시키기 위해, 등을 돌렸다. 민주시민과 노동자, 지식인들은 반대세력을 모질게 짓밟지 못하는 촌놈 노무현의 무력함과, 속내를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투박한 언행을 나무라며 현실정치를 외면하고 한탄만 하다가, 허황한 경제살리기 747공약을 내세운 수구기득권세력에게 민주주의를 헌납하고 말았다.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


    노무현의 죽음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한다. 온갖 풍파에도 끄떡없이 버텨온 세련되고 영악한 기득권세력은 재산도 학벌도 없는 시골 출신 대통령의 우직한 정의감을 비웃고 왕따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가 낙향한 고향 마을까지 따라와 처자식과 친구, 후배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끝장을 볼 때까지 괴롭혔다. 물고 뜯고 짓밟고 조롱했다.

    약삭빠른 수구족벌신문과 방송은 권력에 빌붙어 알량한 잇속을 챙기려고 온갖 거짓말과 욕지거리를 끝없이 쏟아냈다. 심지어는 소박한 촌집이 ‘아방궁’으로 왜곡되고, 봉하마을을 찾는 버스에 30만원씩 돈을 준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나는 1980년대에 전라도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선생 만세’를 외치치 않으면 기름을 팔지 않는다는 유언비어를 대학 교수휴게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줄을 풀어준 너그러운 주인한테 버릇없이 대들던 검찰과 경찰은 강퍅한 새 주인이 ‘물어라 쉭’ 하고 줄을 당기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전 주인이건 누구건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정적을 역적이라고 모함하여 유배를 보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3족을 멸하여 씨를 말리던 왕조시대의 잔혹한 정치보복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토끼몰이를 당하는 고통이 오죽했으면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도 없다”고 비명을 질렀을까. 그들이 악에 바쳐 부르짖던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는, 민주화의 대세에 밀려 빼앗겼던 기득권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되찾아 다시는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과연, 그들은 ‘촛불’로 흔들리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언론과 집회와 표현의 자유, 남북화해, 양극화 해소 등 보편적 가치와 상식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경멸을 불사함으로써 우리시대를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내팽개친 ‘야만의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이 기막힌 퇴행과 모욕에 맞서 힘없는 농민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온몸을 내던져 지켜내는 투신뿐이었으리라.

    잘 가시오, 벗이여!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치욕을 감수하며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했던 노무현은 너무도 우직한 촌놈이었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인 자연”으로 돌아갔다.

    1946
    년 병술(丙戌)생 개띠. 그가 기득권세력의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탐욕으로 파헤쳐지고 남북분단과 지역주의로 갈갈이 찢긴 산하를 장엄하고 처절한 낙조로 물들이며.

    잘 가시오, 벗이여! 같이 태어나 같은 길을 걷다가 먼저 간 동갑내기 도반들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본다. 화가 오윤, 시인 김남주, 음악가 문호근, 변호사 조영래 그리고 바보 촌놈 대통령 노무현!

    글쓴이의 다른 보기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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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렛츠고
    때때로메일 05.06.20] 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조회(239)
    때때로 메일 | 2005/06/21 (화) 16:47
     
    안녕하세요, 최규문입니다.  메일 드린 지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었군요...
    인사드린 지가 꽤나 오래 지난 일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지난 몇 주 동안 제가 몸이 많이 아팠던 탓이 아닌가 싶네요...
     
    딱 한 달 전쯤에 산정호수가 있는 철원의 명성산에 가서 아주 오랜만에 1박 야영을 했는데, 너무 춥게 밤을 지샌 탓인지, 산의 기운을 몸에 충전받고 오기보다는 도리어 몸의 기를 심하게 빼앗기고 온 모양입니다.
     
    그 며칠 뒤부터 몸살이 심하게 오더니, 몸이 제대로 회복이 되지를 않더군요, 영 기운이 없고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등줄기에 땀이 나면서 머리에 열이 오르고, 뭘 좀 먹어볼라치면 연신 배탈이 납니다. 근 3주 가까이 이런 꼴로 버티려니까 얼굴 살까지 눈에 띄게 빠져, 제가 봐도 좀 민망하군요...때이른 여름 무더위에 일찌감치 더위를 먹어버린 것 같기도 한데요...
     
    이 상태를 벗어나 보려, 결혼 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보약까지 지어서 먹고 있는 중입니다...병원 좀 가 봐라, 운동 좀 해라 등등 주위에서 보는 분마다 안타까이 조언들을 해 주시는데, 정작 몸에 기운이 빠지니까, 충고들을 따르려고 해도 정작 몸이 따라 주질 않습니다...
     
    나이를 탓하기보다는 운동 부족을 탓하는 것이 정답일 터라, 염치 체면 불구하고 여러분께도 모두들 건강 유의하시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무더운 여름, 건강 각별히 챙기십시오!



    1. 난 꽃이 피었습니다, 나리 꽃도 피었습니다...
     
     
     지금의 부서로 옮길 때 함께 가져온 사무실 책꽂이 옆의 동양란 한 그루가 이사온 뒤 두번 째로 꽃을 피웠더랬습니다. 보름 넘어쯤 전에 꽃대가 하나 올라와 2주일 넘게 수수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 아침에 주말을 보내고 출근하니까 꼭대기 한 송이만 달랑 남아 있더군요...
     
    꽃잎이 넓고 색깔이 화려한 서양란과는 달리 동양란은 꽃잎도 가늘고 색깔도 수수해 잎사귀 속에 묻혀 있으면 언뜻 꽃이 눈에 띄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꽃대도 한 대씩만 나와서 꽃을 피우다가 한 달 쯤 지나면 스러져 마르곤 하지요... 
     
    문득 서양란의 화려함과 동양란의 그윽함이 마치 동서양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난초의 꽃 모양 하나로 서양과 동양을 가르긴 그렇지만 요즘 들어 서구적 가치와 동양적 가치에 대해 비교해보고 그 차이와 보편성을 생각해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구촌이 하나로 엮이면서 여기저기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는데, 혹시 우리가 미국적 가치를 서구 전반의 가치로 일반화시켜서 미국식 기업지상주의에 입각한 시장논리만을 최고의 가치고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끊임 없는 경쟁,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기지 못하는 자는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적응하여 살아가야 하는 현실, 이따금씩 경쟁으로 인해 지친 이들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명상 속에서나 그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동양의 정신적 가치를 보노라면, 자연과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주장했던 동양의 가치는 작금에는 도무지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인 이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다르지 않겠지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세상,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문제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나 내용이 과연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원색적이거나 크고 화려한 꽃이 서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절집 앞의 작약 꽃이나, 산과 들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나리꽃은 화려하기로 치면 서양란 못지 않지요...

    특히나
    붉은 바탕에 검은 점박이, 뾰족한 꽃술까지 활짝 벌려 피어나는 나리꽃은 백합과의 꽃이니만큼 아름답기가 다른 어떤 꽃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모두 지고 푸른 잎 나무가지 위로 까치며 뻐꾸기, 가끔씩 딱다구리 울음소리까지 울려오는 집 앞 동산 끝 자락에, 어디에서 왔는지 푸른 잔디 한 복판에 나리꽃 한 그루가 불쑥 솟아나더니, 커다란 꽃 봉오리 4개가 활짝 입을 벌리고 서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계단을 내려설 때마다 꽃잎이 방긋 인사를 하는 듯한 느낌인데요, 환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나리꽃을 보노라면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새로와집니다...

    자연은 이렇듯 사람을 기쁘게 하고 언제나 잔잔한 위안을 주는 존재로 말없이 우리를 
    보살펴 주는데, 우리네 사는 모습은 얼마나 그것을 닮고 또 보답할 수 있을런지...
     
    출근길 지하철 환승역에서, 출입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쏟아져 나와, 긴 환승통로를 쫓기듯 바삐 뛰는 사람들하며, 빼곡이 늘어선 행렬을 마주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자면 웬지 가슴이 갑갑해집니다. 
     
    집 나올 때 바라뵈는 나리꽃이나 책꽂이 옆 청아한 난의 인사라도 없다면 정말로 삭막한 하루의 시작이겠지요...



    2. 잭 웰치; WINNING, [위대한 승리]인가, [이기기]인가?

    컨디션이 안 좋아 몸져 누운 와중에 정신이 들 때마다 틈틈이 책을 한 권 보았습니다.
     
    서평을 써주기로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서 읽었던 책인지라, 다른 책보다도 집중을 해서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400쪽이 넘는 책이라 처음 집어들었을 때는 좀 부담스럽더군요...
     
    근데, 책을 읽어갈수록 분량은 별로 문제가 되질 않았고, 잭 웰치에 대한 제 자신의 이중적 관점 때문에 그것을 중립으로 돌려놓는 것이 더 힘들더군요...
     
    무릇,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성공자(?)들의 자서전적 경험을 담은 책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성공을 과장하고 절대시하여,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바로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심리적으로 강요를 받게 되곤 하지요...
     
    때문에, 잭 웰치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견해나 관점에 혹 문제가 있을지라도 모두가 옳은 것으로 해석되어 버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더욱이 책의 원제부터가 "WINNING(이기기?)" 라고 붙여져 있으니, 이게 더 문제였습니다... 
    이긴 자보다는 진 자에게, 일등보다는 꼴찌에게 우선 먼저 동정심이 가는 저로서는, 초장의 제목 편성부터 시작해서 책을 잡는 느낌이 도무지 흔쾌하질 않았습니다.
     
    책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전체 20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책은 이렇게 구성되더군요. 
     
    1부: 비즈니스의 원칙 - 사명과 가치/ 정직성/ 차별화/ 의사표현의 권리와 존엄성  
    2부: 당신의 기업 - 리더십 / 인재 고용/ 인재 관리/ 해고/ 변화/ 위기관리
    3부: 당신의 경쟁력- 전략/ 예산 수립 / 조직 확장 성장/ 인수합병/ 6시그마
    4부: 당신의 경력- 적합한 일자리/ 승진/ 고약한 상사 대처법/ 일과 생활의 균형
     
    위와 같이 크게 네 가지의 범주로 엮여져 있고,  마지막 20장은 앞 장들에서 못 다룬 질문들에 대해 간추려 답변하는 장입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자신이 40여년간 몸담았던 GE를 은퇴하고 세계 각지로 강연을 다니면서 말했던 경영에 대한 소견이나,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각 주제별로 엮어 쉽게 풀이한 것들입니다.  덕분에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얘기가 많고, 그리 어렵지 않저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어렵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죠!
     
    읽는 동안 내내 잭 웰치가 무척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그가 단행했던 대규모 해고로 인해 "중성자탄"이라는 악명을 안을 수밖에 없었던 주제를 다룰 때에도, 해고 상황에 처해 리더가 갖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가감없이 얘기합니다. 사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경험으로밖에는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없다고 말하는 점이 상당히 공감이 가더군요...
     
    또 직장인이 승진하는 방법이나 기술에 대해서, 혹은 급여 문제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을 결코 과장되게 포장하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각 장의 제목들만 대충 훑어 보아도, 비즈니스 원칙에서부터 기업 경영 과정에서 부닥치는 갖가지 이슈들에 대한 나름의 견해, 나아가 개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견을 펼쳐 놓은 그의 글들에서는,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크게 개의치 않고 하고픈 말을 과장 없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의 그릇 크기가 느껴집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예산 수립에 대한 장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매년 되풀이하는 목표(예산) 설정 방식의 맹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모든 성장 목표는 각 구성원들이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스트레치 목표를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성과급은 (의도적으로 낮게 잡을 수도 있는) 목표(예산) 대비 달성율에 따라 줄 것이 아니라, 전년도 실적에 대비하여 초과 달성한 정도에 따라 성장 비율대로 나눠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론을 강조하는데, 꽤 합리적인 설명이라 생각되어 많은 공감이 가더군요...   
     
    물론 책은 잭의 개인적인 솔직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데 주 목적이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 경영의 현장에서 추출된 경영의 원리와 철학을 전파함으로써, 좀 더 많은 경영자나 직장인, 혹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시장에서 생존을 넘어 승리하기 위한 방법과 태도를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이 모든 것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승리의 원리를 알려 줌으로써, 사람들이 잘못된 길에서 헤매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잭 웰치의 식지 않는 열정에 기초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혹 있을지 모르는 잭에 대한 편견만 버린다면 말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제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었던 잭 웰치에 대한 편견과 싸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지금까지 잭 웰치가 쓴 책이나 저작물을 거의 접하지 못했고, 작년에 위성강연 행사의 녹화 필름을 잠시 들어본 것 외에는 그저 여기저기 흘러다니는 그에 대한 소문들과 어깨너머 지식(이를테면 해고의 화신, 자본주의 신봉자 등)들로 다소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그의 책 한 권으로 그동안 제가 가졌던 그런 생각들이 싸그리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의 솔직함 속에서 그의 입장과 의견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솔직함으로 인해 제가 가진 선입견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만큼은 읽는 데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시간이 허락하시거든,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3. 몸이 휴식을 요구할 때는...
     
    몸의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은 탓인지, 점심을 먹고 난 뒤 후유증에 자울자울 고개를 떨구있었는데, 무심결에 누른 [보내기/받기]로 새로 수신된 메일 한 통이 잠을 쫓아버리는군요...
     
    대학교 동기회장이 보내온  " * * *  동문 별세 " 라는 일곱 글자 제목의 메일이었습니다. 잠시 믿기질 않아 잘못 보았나 싶은 마음에 급히 내용을 클릭해 보고선 순간 망연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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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동기 여러분,
    충격적인 비보를 전하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 회원(제주대 수의학과 교수)이 오늘 새벽(2005. 6.20) 심장 마비로 별세를 하였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부터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 했었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향후 자세한 장례식 절차가 확정되면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84동기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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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겨우 마흔인데,,,  졸업 후 한 번도 제대로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했는데,,,
    그런 동기가 심장마비로 졸지에 세상을 뜨다니...
     
    편지를 읽고선 동기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 앞서, 바로 당장 제 스스로에 대한 건강관리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인지, 요즘엔 조금만 몸을 힘들게 움직여도 심장 박동이 가빠지는 게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거든요....
     
    어제는 전방 부대에서 한 사병이 동료 병사들을 8명이나 죽인 사건으로 마음이 갑갑했었고, 아침 출근길에는 통근 버스로 보이는 버스 한 대가 도로변에서 가로수와 전봇대를 운전석 정면으로 들이받고 앞 유리창이 왕창 날아가버린 장면을 목격했더랬습니다...
    운전자가 살아 있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빠져 나왔더랬는데, 오후엔 또 생각지도 않았던 대학 동기의 죽음 소식을 접하니까 웬지 가슴이 답답해지네요...
     
    그래서겠죠? 많은 분들이 이렇게들 얘기하지요...
     
    현재, 살아있는 지금, 바로 오늘의 삶에 충실하라고요...
    우리에게는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직 살아 존재하는 지금 현재가 있을 뿐이라고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의 단면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
    니다....



    몸도 덜 회복된데다, 갑자기 우울한 죽음 소식들이 많이 접해진 탓인지, 오랜만의 안부편지가
    안타까운 내용들로 채워져 버렸군요....  이것도 세상 사람 사는 모습의 한 부분이려니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때이른 무더위에 심신이 지치는 여름입니다.
    혹시 일찍 여름 휴가 떠나시는 분들께서는 건강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고요,
     
    모쪼록 건강 관리에 더욱 유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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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렛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