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꼼수 봉주 8회가 올려오려나...

주말이면 집에서 일을 하든, 아니면 밖으로 산행을 하든 이제는 습관적으로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꼼수를 듣노라면 늘 딴지총수의 "투표근이 근질거린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제 KBS에서 특집으로 하는 정치 관련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내용인 즉, 이제 사람들이 정치와 생활이 밀접함을 느끼기 시작했고ㅡ

그래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당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취지였다.

 

맞는 말이다.

얼마 전, 한명숙 대표가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로 선출되는데는 새로 도입한 모바일 투표방식과

개방된 국민경선단 제도가 밑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대표로 당선된 한대표 체제는 형식만 새로와졌을 뿐,

본질적으로 구세대적 사고와 정치틀을 깨기 힘들다는 점을 시작부터 드러내기 시작했다.

 

FTA에 대한 애매한 입장도 그렇고, 석패자 부활제 도입을 둘러싼 여야간 흥정도 그랬다.

공천심사가 다가올수록 민주당 앞에 줄을 서서 밀려드는 후보들의 무리 앞에

민주당은 마치 정권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기고만장하는 모습이었고, 국민들이 보기에는 

거들먹거리는 수준에 가까와 보였다.

 

결국 여론은 순식간에 민주당을 민통당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통합의 의미를 져버리려는 민주당에 대해 싸늘하게 반응을 표시했다.

즉각적인 한명숙 대표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언팔 운동이 제안되었고, 

19만명에 달하던 팔로워 수는 불과 이틀만에 16만명으로 3만명이 줄었다.

 

자고로 정치에서 오만은 모든 실패의 근간이다.

자력에 의해 확보하지 못한 교두보를 마치 자신들이 싸워서 얻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스스로 그만큼 허망하게 망하는 지름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론은 차가왔고, 수도권 압승을 장담하던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급기야, 어제는 새벽을 넘겨 담판을 했던지 민통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선거연대에 대한

합의가 힘겹게 발표되었다.

물론 안된 것보다는 다행이지만, 

분위기 다 흐린 뒤에 마지 못해 하는 듯한 모습이라, 영 기분이 흔쾌하지가 않다.

 

제주 강정 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데 43톤의 화약이 쓰일 거라고 한다.

아... 4 3... 그 악몽과도 같은 숫자가 왜 하필 지금 다시 떠오른단 말인가...

 

‎1948년, 이승만 세력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자 민족 분단을 막고자 일어났던

제주도민의 항거를 "빨갱이들이 선동한 폭동"으로 몰아서 무려 3만명 이상의 제주도민을

무차별로 살해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학살 그냥 학살이었다.

 

같은 동족이 이념을 무기로 삼아 동족을 살해한 현대사 최대의 유혈참극을 일으킨 친일파의

잔재들이 지금도 여전히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고, 박정희의 기념도서관을 지으며 웃음짓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가문의 후예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입술을 앙다물고 나섰다.

 

아, 역사는 이리도 비겁하게 되풀이된단 말인가...

 

페이스북에 요 며칠 강정마을 건과 더불어, 야권연대에 대한 기사를 퍼나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보이지 않게 친구들의 숫자가 줄어든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글을 올리면 평소와 달리 눈에 뜨일 만큼 미묘하게 친구 숫자가 준다.

 

그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아,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또 이만큼 스스로 정리되었구나...

진짜 친구를 맞아 들일 수 있는 자리가 이 만큼 또 새로 생겨났구나... 잘 되었다.

 

그렇다, 소셜은 철저하게 현실의 연장이고 확장이다.

실상은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온라인을 매개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친구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그런 소셜 네트워크는 하등 의미도 없고, 유지해봐야 실효도 없다.

 

미안하지만 친구인지 아닌지는 정치적 사안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물론 나와 정치적 입장을 달리 하더라도 얼마든지 친구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과 태도를 존중해주고 이해해 줄 때라야 가능하다.

 

누군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내비칠 때,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자체가 부담스럽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친구 관계라 부르기 힘들다.

그런 부분에서 도를 넘는 사람이 눈에 뜨일 때는 나 또한 망설이지 않고 친구관계를 끊는다,

그런 친구를 계속 두고 바라보는 것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키우는 일일 뿐이니까.

 

무릇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해집단 간의 다툼과 힘의 조정을 놓고 권력을 다투는 행위이고,

그만큼 치열한 싸움의 공간이다.

소셜 또한 현실 사회 관계의 연장이고 반영인 이상 정치적 투쟁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다.

 

치열하게 싸우되, 그 싸움을 즐기는 것도 정치를 재미나게 하는 아주 지혜로운 방법이다.

해학의 전투, 이제는 그런 싸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강정 마을의 구럼비 바위, 43톤의 폭약 앞에 흔적 없이 사라진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역사는 삽질 정권의 만행과 발파 정권의 행패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43을 잊지 않는 것처럼.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정치를 말한다.

그게 바로 내 생활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지름길이니까.

 

졸라 땡큐, 김어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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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

 "5억 명의 ‘친구’가 생긴 순간 진짜 친구들은 적이 되었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홍보용 메인 카피의 문구다.

SNS와 관련된 용어와 더불어 최근 뉴스의 주요 화제로 등장하는 용어가 ‘신상털기’라는 신조어다. 웹서핑 증에 우연히 눈에 뜨인 누군가를 그와 연관된 키워드나 id를 추적하여 개인의 신상정보를 낱낱이 벗기는 것을 말한다. 모 여배우가 정치인 모씨와 잠자리를 했다는 실토 한 마디에 그 정치인이 누구인지 하루도 안 되어서 실명이 거론된다. 이것이 바로 ‘신상털기’의 파워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자신들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은 더 증가한다. 노출 정보들이 증가할수록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숨기고 싶어해도 그 사람을 둘러싼 친구 대여섯 명 정도만 추적해서 ‘털어보면’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네티즌수사대’라 불리는 누리꾼들이 집단적으로 신상털기를 시도했다면 요즘은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만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의 연결성과 검색 서비스가 발전(?)된 덕분이다.

 

국내만 하더라도 20% 이상의 기업 인사채용 담당자들이 새로운 입사 지망생이나 스카우트 후보자가 있을 때 그 사람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같은 SNS 관련 기록들을 ‘털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60~70%의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행하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몸이 아프다고 병가를 내고는 휴가를 떠나서 놀던 사진을 SNS 사이트에 올렸다가 발각되어 회사에서 ‘잘리거나’ 멀쩡하게 웃고 떠들면서 파티를 즐기는 동영상이 노출되어 우울증 치료비로 지급된 의료보험금을 환수 당하는 등의 사례가 외국에서는 속출하고 있다.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트위터 사용자 수가 지난 주 2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http://tki.oiko.cc/service/count  참고) 랭키닷컴이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1월 첫주 페이스북의 주간 방문자 수는 트위터와 한국트위터의 방문자 수를 합한 것에 비해서도 100만 명 이상 앞질러 이제는 랭킹에서도 트위터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난다.

 

 * 이미지 원본 출처 : http://www.rankey.com/blog/blog.php?type=inform 

 

이미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전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신상털기나 스토킹의 위협이 커지더라도 SNS 인구의 증가 추세는 당분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국내 사용자수는 아직 전체 네티즌 수의 5% 미만이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 SNS선진국의 전례를 보건대 전체 인구의 45~50%가 SNS에 가입할 때까지 이런 성장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1~2년 안에 현실화될 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수가 500만 명을 돌파한 지금 200만 명이 트윗질을 한다. 2천만 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800만 명이 SNS를 한다는 계산이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수는 4900만명에 이르고, 스마트폰 미보유자의 70% 이상은 앞으로 1년 이내에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겠다고 답한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네 명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론적으로 200만 명이 400만 명에 이르는 시간과 같다. 이것이 네트워크의 원리이고 힘의 원천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희망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국민 신상털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상처받지 않고 공격받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추고 숨기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대신, 드러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것 외에는 없다!

 

>> 칼럼 전문 기사 보기 : http://www.betanews.net/bbs/read.html?&mkind=399&page=1&num=519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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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

"친구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소셜네트워크--페이스북 5계명" 


여러분은 지금 몇 살인가요?

싱글인가요, 아님 기혼이신가요?

여러분이 페북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얻기 위해 친구를 사귀시나요?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는 것과 오프라인에서 친구를 맺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페이스북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사람마다 아주 다양한 해석과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친구를 통해 또 다른 친구를 사귀는 소셜네트워크!"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 자체가 컨텐츠가 되어 스스로 확장되는 살아있는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의 키워드는 첫째도 친구, 둘째도 친구, 셋째도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친구'라는 키워드야말로 페북을 트위터와 같은 다른 소셜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구분시켜주는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대학 신입생 프로파일 주소록을 웹에서 구현하려는 간단한 아이디어와 시도로 출발한 것입니다. 2004년에 평범한 대학생 친구 다섯 명이 시작한 이  간단한 아이디어 사업이 바로 페이스북의 시초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페이스북의 곳곳에 널려 있고 박혀 있는 [친구맺기 시스템]의 구조와 이유가 어느 정도는 설명됩니다. 


아울러, 이 친구맺기 시스템의 공격성과 독특성이야말로 불과 5-6년밖에 안된 짧은 기간 안에 페이스북이 세계 최대의 검색포털 구글의 접속 트래픽을 능가하는 거대한 소셜 미디어로 급성장시켜 준 동력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1. 친구의 두 얼굴...


주변에서 새로 페이스북을 접하는 분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세상에나.... 10년 동안이나 못 만나던 옛 학교 동창을 여기서 만나게 되었어!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서비스로군!"

하면서 감탄하는 분들이 다수이지만, 또 다른 어떤 분들께서는
"아니, 도대체 이 친구가 나를 언제 보았다고 친구를 하자고 그러는 거야, 왜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스토커마냥 채팅을 요구하는 거야!  이거 완전 스팸 서비스 아냐!"
라며 극단적인 거부감과 불쾌감을 표시하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이 양과 음의 두 가지 속성의 결합이듯이, 페이스북 또한 친구가 갖는 두 가지의 속성을 함께 가진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어쩌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한 사물의 두 가지 측면이라 보시는 게 맞을 겁니다.


과연 어떤 친구가 반갑고, 어떤 친구는 피하고 싶을까요?

또 어떤 때는 반갑던 친구가 어떤 때는 짜증나고 불쾌하고 꼴 보기 싫어질까요?

우리가 현실에서 사귀고 헤어지는 친구 관계의 원리를 온라인 페이스북에 대입해보면 답은 특별히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좋은 친구"라 부르려면, 그 친구로부터 우리는 어떤 이익이나 유익함을 얻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랜 만남 속에서 생겨난 믿음이나 순수했던 어린시절, 혹은 청년시절의 향수를 일깨워주는 마음의 위안이든,
혹은 현실적인 비즈니스나 사업 관계에서 자본이나 협력 파트너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든지,
그도 아니라면 인생에 스승이 되고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멘토가 되어주든지,
내가 삶에 지치고 힘겨워할 때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든지,
그도 아니면 어떤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가지고 궁금증을 풀어주거나 문제 해결사 노릇을 해주는 이들을 일러
우리는 보통 "좋은 친구"라 부르지요...

반대로 "나쁜 친구" 혹은 "싫은 친구"는 어떤 경우일까요?

아마도 위에 든 사례를 거꾸로 해석하면 거의 맞는 경우이겠죠.
오래 전에 싸웠거나 속임을 당해서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픈 추억을 일깨워주어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
사업이나 비스니스 관계로 만났으나 성과나 결실을 내기는 커녕 손실을 입고 어려운 궁지에 몰리게 했던 사람,
도움을 주기는커녕 뒤로 험담을 하거나 심지어는 모함을 해서 나의 성장이나 앞길을 가로막고 방해했던 사람,
그릇된 가치관으로 나쁜 습관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방탕한 길로 유혹하던 사람,
내가 삶에 지치고 힘들어할 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관하거나 나의 능력 없음을 질책하고 비웃던 사람,
내가 모르는 무언가에 답을 주지 못하거나, 혹은 별 것 아닌 경험, 지식, 정보를 가지고 돈이나 댓가를 요구하는 사람...


이런 두 부류의 친구 관계는 페이스북에서도 그대로 존재하게 마련이고,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서 페이스북이 어떤 사람에게는 천사의 얼굴로,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야수의 얼굴로 드러날 것입니다...


2. 페이스북 친구 맺기 5계명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율법으로 10계명을 주셨다고 하지요...

이것을 비유하여 페이스북 친구맺기의 다섯 가지 원칙 정도를 꼽고 추려서, 오계명을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1계명> "나먼저 인사하라!"


친구는 식구가 아닙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친구의 뜻풀이가 이렇습니다. 


친구[親舊][명사]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피를 나눈 형제나 식구라면 한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 주는 관계가 당연시되지만, 친구는 누군가의 소개를 통하든 우연한 조우이든, 본래는 남이었던 관계가 어떤 '만남'을 통해서 가까와진 사이인 것입니다. 그것이 소개이든, 우연한 계기로 부딪힌 것이든 첫 만남의 벽을 허무는 것은 바로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아무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 누군데요...

어느 쪽이건, 한 쪽에서 상대방에게 이 한 마디를 먼저 꺼내는 것으로부터 친구관계는 시작됩니다. 


페이스북에 처음 들어온 분들이 당혹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누군가 아는 분으로부터 초대로 해서 막상 등록(가입)은 하고 들어왔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모임 카페와는 달리, 처음에 가입하면 나 혼자만 덩그렇게 홀로 서 있을 뿐, 심지어는 나를 불러주었던 친구조차도 '내가 수락을 하기 전까지는' 나의 친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친구가 없는 페이스북은 혼자만의 감옥과 다름 없고, 설령 남들의 담벼락이나 프로필 정보를 아무리 많이 들여다보고 다녀도 그들은 남일 뿐 나와 관계를 맺은 친구는 아닙니다. 친구가 없는 페이스북은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할만한 서비스인 것입니다.


모쪼록 그 감옥을 벗어나고 싶다면, 기다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서 나와 친구해달라고 먼저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페이스북에 들어온 대다수 지구촌 사람들은 나이와 성별, 국적을 초월하여 자신과 뜻을 같이하거나 취미를 공유하거나, 서로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언제든 상대의 손을 잡고자 준비된 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친구를 맺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절당하거나 바람을 맞을 확률은 무척 희박합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테스트삼아, 동남아 어디나 이집트의 누군가, 그들이 쓰는 말이나 문장이 영어도 아닌 중국말, 혹은 이상한 나라의 말이나 심지어는 아랍어 문자를 쓰는 누구라도 찾아서 [친구신청하기] 버튼을 클릭해 보십시오. 적어도 열 중 아홉은 분명히 아무런 인사 메시지나 이유를 보내지 않더라도 친구 요청을 수락해줄 것입니다. 

 


<2계명> "나부터 오픈하라"


친구 요청이 수락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프로필 정보를 채우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은 글자 그대로 [얼굴책]입니다. 페이스북은 대학교의 신입생이나 학생들이 서로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사귀기 위해 만들어지는 명부를 말하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흔히들 졸업 동기들의 사진이며 연락처를 엮어서 서로 나눠 가지는 [졸업앨범]이나 각종 협회나 단체의 [회원명부]와 같은 것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라면, 온라인 페이스북은, 한번 만들어지면 몇년씩 묵혀서 책꽂이에 꽂아두는 추억의 앨범이나 죽은 명부가 아니라, 신입생 시절부터 자신의 프로필을 공개해두고, 수시로 업데이트하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내 앨범 안에 [담벼락]이라고 불리는 자유게시판을 공개적으로 설치해두고 그곳에서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는 "살아있는 게시판"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라이브 게시판이 실제로 살아서 작동하려면, 우선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출신은 어떠하며, 관심은 어떠하고, 나의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에 대해 최소한의 소개 정보(프로필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만일 성범죄 경력을 가진 범죄인이나 사기 전과자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자 엉뚱한 가명을 쓰거나 거짓 프로필을 올려두고 얼굴 밝히기를 거부한다면 어떤 사람이 그와 선뜻 친구맺기를 수락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페이스북에서 좋은 친구를 많이 오래 사귀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프로필부터 공개"하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상세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름과 나이, 성별, 출신학교나 종교적 성향, 결혼 여부나 간단한 가족관계, 관심 정보(책, 음악, 영화 등) 등을 적는 란을 공백으로 비워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웬만하면 비공개로 설정하기보다는 가급적 공개해 두시기를 권합니다.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나를 공개할 용도로 페이스북을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분이라면 그런 필드를 비워놓거나, 혹은 친구에 한해서만 공개되도록 제한을 두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으나, 그런 소극적인 자세로는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미지의 친구로부터의 초대 요청과 "크로스 엔카운터"의 묘미를 맛보시긴 어려우실 겁니다...


 

<3계명> "얼굴을 드러내라"


페이스북은 Face + Book 입니다. 다시 말해 [얼굴+ 책]입니다.  핸드북(Handbook)도 아니고 바디북(Bodybook)도 아닌 페이스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현들의 금언을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울"이라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나이 40이면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지요. 


동양에서는 얼굴의 윤곽이나 모양, 생김새를 보고 그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인생의 행로, 심지어는 수명까지 예측하는 관상학이 학문으로 정립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 중요한 인재를 채용할 때 인터뷰 평가 자리에 실력있는 관상 전문 역술인을 심사위원으로 상주시켰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전설이 되어 있지요...


거울 속의 내 눈은 못 속인다고 했듯이, 얼굴 속에는 그 사람의 심성과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담겨져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프로필 정보를 최소한으로 공개하는 경우라도 프로필 사진을 빠뜨리진 마십시오. 페이스북의 진짜 회원자격은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등록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프로필 사진을 올릴 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사진으로나 쓰일 법한 딱딱하고 굳은 제품성 표정은 금물입니다. 그런 사진은 누가 보아도 격식화되고 고정화된 이미지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억지로 꾸미거나 딱딱한 모습을 담은 증명사진보다는,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이나,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낸 프로필 사진을 쓰시는 편이 좋습니다. 증명사진을 쓸 바에는 차라리 얼짱 각도의 셀카 사진이 더 친근하고 편한 느낌을 줍니다.


설령 프로필 소개를 한글로 써서 세계 대다수의 잠재 친구들이 나의 프로필 내용을 못 알아보더라도 얼굴 사진 하나만으로도 많은 내용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필 사진을 공백으로 처리한 '유령 친'구들이 요청하는 친구 신청은 수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름만으로도 익히 알고 있는 오랜 친구들이라면 모를까, 유령 친구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숨기는 게 많은 수상한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될 여지가 많고, 그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될 가능성도 높으니까요...

  

 

<4계명> "최대한 정직하라!"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하고, 얼굴 사진을 넣었다면 여러분은 이제 글로벌 시티즌의 일원으로 페이스북 네트워크에 참여할 자격을 90% 이상 갖춘 셈입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원칙 하나를 잊어선 안됩니다. 여러분이 올린 자기 소개 프로필 내용이나 사진이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거나 뽀샵이 너무 많이 들어가 본판과 실제가 다른 사진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생판 처음 보는 남남인데, 더욱이 지구 반대편 외국인들이 나의 지난 과거를 어찌 알 것이며, 지금 내 얼굴 모습이 어떤지 알게 뭐냐고 생각하시면 페이스북의 힘을 얕잡아 본 것이며, 소셜네트워크의 자정 능력과 집단지성의 평가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경고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믿음의 기초는 친구가 나를 거짓으로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즉  정직할 것이라고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작금,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많은 국민들이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원인은 바로, 진실을 알 수 있는 사실 자료를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접근 자체를 제한했기 때문에 빚어진 당연한 귀결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학창 시절 무척 못생긴 얼굴의 소유자였는데, 페이스북의 얼굴사진을 왕창 뽀샵으로 뽀얗게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장, 학교 친구들이 "너 누구 맞니... 어디서 성형했니... " 하면서 놀려 댈지도 모릅니다. 


한두 명을 잠시 속일 는수 있어도 여러 사람을 오래동안 속이긴 어렵다는 말을 늘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거짓 이력이나 꾸며진 정보로 뭔가를 획책하거나 모색해보겠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페이스북을 활용하면 아마도 그런 공작이 성공하기도 전에 나도 모르던 주변 친구들에 의해 당신의 의도나 생각이 노출되거나 경고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페이스북의 힘입니다. 그러니, 정직하고 또 정직하십시오...


단, 극단적으로 정직하려고 하진 마십시오. 그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프로필 소개 란에, (특히 여성의 경우) 자신의 나이나 자녀들의 본명, 연령 따위를 공개하는 것은 주의하라고 당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이스북이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나의 친구 관계 목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이용하려 들 경우 노출된 신상 정보나 가족 정보들이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에 노출된 사적인 정보들이 범죄에 이용된 사례가 선진국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고, 이 때문에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의 개인 정보 노출에 대한 제한 조치를 법으로 정해 보호해야 한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컨대 극단적인 정보 공개가 능사일 수는 없습니다. 자고로 과유불급이라... 넘치면 미치지 못함만 같지 못하다 하였으니, 적절한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은 페이스북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방법으로도 역시 통하는 기본 원칙일 것입니다...


 

<5계명> "이별을 준비하라"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맛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 일이 되고 놀난 가슴은 새로은 슬븜에 터짐니다"


페이스북의 다섯번째 계명으로, 한용운 님의 시, [님의 침묵]을 다시 한번 읊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전생의 질긴 인연에서부터 이어져온 업(카르마)의 소산일 수도 있고, 노사연의 노랫말처럼 "우리의 바람"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남이 우연히 아니듯이, 어떤 만남도 헤어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죽자고 사랑했던 연인 사이도 주어진 인연이 다하면 이별을 고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천년만년 살고지고, 어화둥둥 내 사랑아를 약조했던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헤어지면 남이 되는 세상입니다.


페이스북으로 만난 친구들 또한 앞서 얘기했던 "나쁜 친구" 이거나 "싫은 친구"로 낙인찍히거나 평가되는 순간 그 관계는 끊기거나 단절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관계를 끊는 것은 [unfollow] 버튼을 한 번 클릭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납니다. 상대방은 누군가가 팔로우를 중단했다고 해서 그리 큰 상처를 받지도 않습니다. 필요하면 보고(구독하고) 필요하지 않거나 내 관심사가 아니면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구독을 멈출 수 있는 것이라고 보니까요...


다만, 페이스북은 처음 관계를 맺는 것부터가 친구맺기 [요청]과 [수락]이라는 상호 승인의 과정을 거쳐서 맺어진 [믿음 관계]이기 때문에, 친구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트위터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서로가 형식적인 친구관계로 동의와 수락을 했을 뿐 개별적인 사귐이나 교류가 깊지 않았다면 상대적으로 그 친구를 멀리 하거나 상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귀다보니 정이 들고, 그 정이 쌓여 깊은 친교나 비즈니스 관계까지 갈 정도로 사이가 깊어졌다면, 그런 관계의 이별에 따르는 아픔은 오프라인에서의 결별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 상처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번 사귄 친구 관계는 어떤 이유로건 깨지지 않고 좋은 동반자에 파트너십으로 오래 유지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러려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의 친구 관계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되겠지요...


소셜 미디어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손쉽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자신의 필요나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경우 그만큼 쉽게 관계가 단절되거나 무시되기 쉬운 이중적인 속성을 가집니다. 만나기가 쉬운 만큼 헤어지기도 쉬운 것이지요... 그러므러 어떤 이유에서건 헤어짐이 닥쳤을 때, 가능하면 쿨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상처를 깊게 남기지 않는 것 또한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작은 지혜일 것입니다.



 

3. 진정한 친구의 의미는....


"한 평생 살다가 죽을 때,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와, 

 그리고 백 권의 좋은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한 사람의 일생을 두고 평생 동안 진정한 친구 열 명을 갖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 국경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기술과 사람이 만나는 융합 지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전 지구촌으로 확산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책상 위든, 도로 위든, 버스나 지하철 안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24시간 지구촌 곳곳의 친구들을 실시간으로 사귀고 만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접속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대이지만, 정말로 평생을 걸고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친구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소수일 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몇 명이 되었든, 한 명이라도 더 그런 친구를 더 가질 수 있다면 그 만큼 우리네 인생은 성공한 삶에 가까와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페이스북은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의 성공을 돕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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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
[2008.12.22] 무자년을 보내는 에피소드 하나... 조회(29)
때때로 메일 | 2008/12/22 (월) 11:44



안녕하세요, 최규문입니다.
어제는 일요일.  모처럼 산행 대신 빈 사무실에 나와 앉았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이라 이런저런 잡념을 추스려 볼 겸 업무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중인데, 휴대폰이 울리더군요. 시골 초등학교 동기 녀석이었죠.  "워쩐 일인겨?" 하니 허허 웃으며, "그동안 빵(!)에 좀 다녀 왔네" 하데요...
 
70-80년대 대학생활 중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언저리에 있어본 이들에게는 ""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은 용어지요. 빠리바게뜨같이 먹는 빵이 아니라, 범죄인이나 정치사범들을 가둬 두었던 감옥, 그러니까 구치소나 교도소의 '감방'을 줄여서 흔히 '' 이라는 은어로 불렀으니까요....저 또한 두어 차례 빵을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대학 동기나 선후배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젊은 팀원들하고 소주라도 한 잔 나누면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줄라치면 제 입에서는 요즘도 심심치 않게 이 빵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러니 '빵에 다녀왔다'는 말은 '징역살이를 하고 나왔다'는 말인데, 표현이야 어찌 되었든 이 고향 동기녀석이 전화를 해서 징역을 살고 나왔다는 얘길 스스로 하는 것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털어 놓아도 스스럼이 없을 만큼 제가 편한 상대인 모양입니다.  
용건인 즉, 지난 여름에 제게서 빌려간(?) 돈을 갚을 터이니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는 거였습니다.  
 
이 친구가 뜬금없이 전화를 해온 것은 올 6월말께였습니다. 가벼운 음주운전이 재수없게(?) 잘못 걸리는 바람에 200만원 가량 벌금이 나왔답니다. 자기 사정이 벌금을 낼 처지가 못되고, 그렇다고 몸으로 때우려니 마침 장이 안 좋아서 고생 중이라, 벌금의 절반 정도만 대신 내 달라는 부탁 전화였죠.
 
이 친구는 운동을 함께 한 정치범 동지가 아니라, 폭력 전과가 화려한 주먹패 출신으로 시골 동기들조차 한 자리에서 대하기 거북스러워하는 친구입니다. 징역살이에는 제법 이골이 난 친구라 사실 이런 일로 전화를 해온 건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아닌 음주운전 벌금으로 내야 할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굳이 빌려줄 필요가 있을까 고민도 잠시 했지요. 그 때는 저 역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새로 시작하던 시점이라 자금 형편이 평소보다 더 어려웠던 때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제 아무리 깡패 출신에 음주운전 벌금일지언정 그래도 불알 친구라고 믿고 손을 벌리는 초등학교 동기의 부탁을 모른 채 뿌리치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 친구는 돈 생기면 꼭 갚을 터이니 빌려달라고 했지만, 애초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그냥 없는 통장을 털어서 부탁한 액수의 절반만을 챙겨 주었더랬습니다.
 
아마도 나머지 금액을 마저 빌려줄 사람을 찾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빵엘 다녀왔다는 말은 결국 남은 벌금은 그냥 징역으로 대신 치르고서(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몸으로 때우고') 나왔다는 뜻이었던 셈이죠. 징역살고 나온 걸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빌린 돈을 갚겠다는 그 친구의 한 마디가 무척이나 반갑더군요. 못받을 거라 생각했던 돈을 받을 가능성이 생긴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전과로 인한 별이 몇 개인 친구일망정 이 친구가 자신이 어려워서 손을 내밀었을 때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그 의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준 데서 친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금일수 하루에 5만원씩을 벌금으로 인정해주는 현행 법률에 따르면 사실 50만원이래봐야 기껏 열흘 어치의 자유값밖에 되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직장을 잃고 실업 상태에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실업급여는 하루에 4만원입니다. 몸은 자유롭지만 일할 자유가 없는 실직상태에서 그것도 한시적으로만 받을 수 있는 4만원의 실업 일당과, 몸은 자유롭지 않지만 징역에서 노무로 상쇄받는 하루 5만원의 징역 일당의 가치에는 과연 얼마 만큼의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그 친구가 돈을 꼭 갚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설령 영영 못 갚더라도 절대 서운해하거나 실망하진 않을 겁니다.  왜냐면 그 친구에게 저라는 존재가 자신이 정말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친구로 인정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작은 도움을 잊지 않겠다는 그 친구의 마음을 이미 확인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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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뭅니다. 흔히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꼭 정리하고 넘어 가라고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 간의 빚이나 돈 문제지요... 해를 지나도 못 받은 돈일랑 아예 못 받는 것으로 잊어 버리고 맘에서 털어 버리세요. 혹시라도 갚을 량이라면 당장은 어려워서 해를 넘길 망정 언젠가는 꼭 갚겠노라고 말로라도 다짐을 전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또 다짐해두는 것이 서로의 우정이나 믿음에 실망이나 불신을 남기지 않는 삶의 지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여기저기 도산하는 업체들도 많고, 아마도 그런 까닭에 빌려준 돈을 못 받는 사례도 그 만큼 늘어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서 꿔온 돈을 못 갚고 이 해를 넘기는 분은 혹시 안 계신가요?  마음으로는 미안해 하면서도 차마 언제 갚겠다고 말하기에는 책임지기 힘든 것 같은 부담감에 말을 못하고 계신 분이 혹 계신가요?

사람에게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흔히들 친구간에 돈 빌려 주지 말고, 친척간에 보증서지 말라고 하지요....돈도 친구도 모두 잃는다고요.  제 경험상,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준 사람들 간에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빌려준 돈을 못 받게 되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든 책임지고 갚으려는 의지가 의심될 때 받게되는 배신감 때문에 발생합니다. 무책임한 상대방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믿었던 자신의 믿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혹여 주변에 친구의 돈을 꿔놓고 못 갚은 분이 계시다면 올 해가 가기 전에 꼭 말씀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떻게든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노라고! 올해가 안되면 내년, 내년이 안되면 그 다음해라도,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는 벌어서 꼭 갚겠노라고!  

아마도 그 말이 상대에게는 가장 기분 좋은 연말 선물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하면 돈을 꿔주고도 못받은 그 친구는, 비록 당장에 돈은 잃을 지언정 친구는 잃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2008년 송년과 2009년 새해맞이 인사를 겸해 오랜만의 [때때로메일]로 안부인사를 대신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보살펴 주시고 도와주신 주변 분들
, 그리고 하늘의 힘으로 또 새롭게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지혜를 키워나갈 수 있는 2009년이 되시길 빌며무엇보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2008년 12월 22일   최 규 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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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