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거제도 누이에게 보내는 회신...

 

지난 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업무상 비즈니스 목적이 아닌 순순한 여행으로 3박 4일동안
일본을 다녀왔단다.

어제 삼일절 휴일을 맞아, 아침에 누이의 메일을 받아보고, 반갑고도 미안한 마음이 앞서더구나...
지난 번 설 연휴에 아쉽게 얼굴 보지 못하고 뒤늦게 너의 메일을 받고서도 답장도 주지 못한 것이
문득 떠오른 때문이었겠지...

누이도 벌써 두 아이의 엄마이니, 세상 삶의 고단함이나 부모로서의 고충을 실감하기 시작할 터...
이젠 이래라 저래라 주제 넘은 충고를 하거나 아랫사람 대하듯 말을 놓는 것도 쉽지가 않구나...

돌아보면, 우리가 서울에서 어린 학창시절을 반 자취 생활로 함께 했던 날들이 형제로서 우의를
다질 수 있는 짧지 않은 기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늘 누이에게 밥이며 빨래며, 힘든 집안
살림살이만 도맡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단다...

누이가 시집이라도 번듯한 집안에 가서 화목하게 잘 살고 있으면 그나마 미안함이 덜어지련만,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하자면, 늘 누이에게 웃음보다는 한숨이 더 많은 날들인 것 같아서,
행여, 못난 오빠들이 좀 더 현명하게 잘 챙기지 못한 탓은 아닐까,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거든...
허나, 어쩌겠는가,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늘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을!!

나 역시, 지금의 내 모습을 보노라면, 어쩌다 그런 대학을 가게 되었는지, 또 어쩌다 그런 엄혹한
시대를 만나 학생운동을 하게 되고, 또 나아가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지금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게 나의 선택과 판단의 몫이었다기보다는 무엇인가 내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고 한단다...

패배적인 운명론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나오게 된 어떤 소명이나 신에게 부여받은
사명이 있는 것이려니 여기게 되면, 이상스러울만치 마음이 평안해지고 평정심을 되찾게 되곤해...
누이 역시, 지금의 삶이 고단하고 스스로 한숨이 먼저 나올지라도,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와 소명을 찾게 하기 위해 하늘이 내게 주는 일종의 시련이거나, 좋은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자신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

내가 짧은 지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고, 불교나 철학을 논하는 것도,
어떤 사람이나 삶의 순간순간마다 겪게 되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갈등과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터라, 그 고민의 한 자락이나마 함께 나누고자 함이란다...
그건 누이에게도 마찬가지라...

우리에게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 느껴지는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어찌보면,
그보다 더할수 없이 소중한 나 자신의 훈련과 수양의 도구들이 되는 것일 게야....

요즘은 드라마 [서동요]를 집사람과 더불어 자주 본단다.
시간을 못 맞춰 놓치게 되는 날이면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서라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데,
허구를 엮어만든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품성과 리더로서의
본새를 배울 수 있기에 흥미를 갖고서 일부러 보는 것이지...

어제는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최신 개봉작인 [음란서생]을 보고 왔더랬는데,
제목이 주는 부담감과는 달리, 사람들의 내밀한 성적 욕구에 대한 점잖고 해학어린 은유와 더불어,
사람과 사람간에 싹트는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담은 한 편의 잘 된 그림을 보는듯 싶더라.

내가 감사하고 고마운 것은, 그런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마음의 작은 여유와 더불어,
그것을 조조 2천원씩에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우리네 집안의 작은 화목함이라...
내년이면 결혼 10년을 맞게 되는 우리 역시 어찌 서로 다툼이 없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결별의 위기가 없었겠느냐만은... 최악의 순간에서 한번 물러서고, 그 끝에서 한번 더
참고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여서, 어지간하면 예전의 골만큼
서로에게 상처주고 자극하는 언행은 조금씩이나마 자제하게 되더구나....

누이가 지금 힘들어하는 모습이 언젠가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서 아이들이 자라고 하는 동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망상들을 부여잡고 불필요한 가슴앓이만을 제 풀에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 전하고 싶다...

교회도 좋고, 절집을 다녀도 괜찮고, 혹은 천주당이거나, 심지어 무당집이면 또한 어떻겠느냐...
중요한 것은 그런 주변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 가는 곳을 스스로 알아 자신에 대해
깨어있는 모습이니, 모든 종교나 철학 나부랭이들은 결국 내 마음의 내면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한
갖가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신앙으로 다가온다면 그 또한 그렇게 믿음이 왔을 때 더 크게 행하면 그 뿐이요,
지금은 내 한 마음 추스리는 것이 급하다면 내 마음을 바라보는 그 자체에 충실하기 바란다....
늘 기회가 닿을 때마다 누이에게 권하고 바라는 바는,
스스로 갖고 있는 마음의 짐과 욕심,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니...

남편에 대한 것이든, 아이들에 대한 것이든, 그리하여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것이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한낱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은 욕심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깨달아가다 보면,
어느 한순간 내가 인생을 걸고 추구하던 일상의 가치들,
이를테면 돈이며, 남편이며, 아이들, 가정 따위 등등 그 모든 것들이 그리 악다구니처럼 집착할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게다...

부실한 몸에, 두 아이 뒤바라지 하랴, 남편 못 마땅한 모습들 간수하랴, 여러모로 경황이 없으리라
익히 짐작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심지를 굳게 하여, 작은 일들에 연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싶구나..

성현들이 말하듯, 만병의 근원이 마음이요, 모든 신체의 변고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마음을 대범히 하고 자잘한 일에 대한 근심 걱정을 버리면 몸은 언제든 제 정신을 차리는 법이라,
버려야 할 때 버리는 지혜만 터득한다면 세상에 어떤 일을 더 걱정하고 근심할 필요가 있겠느냐...
더 많이 읽고 공부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게을리하지 말기를 오랜 세월 네 신세를
졌으면서도 그 때 더 많이 보답하고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는 오라비가 바랄 뿐이다...

틈틈히 짬이 나면 더 얘기 나누자꾸나... 늘 평정심을 잃지 않는 나날이 되기를 먼 데서 빈다...
아, 벌써 내일이면 벌써 예순다섯 어머님 생신이로구나...
대저 가정을 이룬 자식놈들이 불효하지 않고, 효를 다하는 가장 좋은 모습은, 새로 일군 가정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화목한 모습으로 자식들과 더불어 행복한 모습 보여주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어늘...

모쪼록 누이 집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 있더라도, 너무 미주알 고주알 일러서 어머님 속 끓이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일 터이니,
가능하면 나나 우리 집사람, 혹은 형제들에게는 알려서 서로 마음의 위로를 청하고 받을지언정,
부모님께 기대고 의존하여 늙어가시는 분들 심려 더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더 좋겠구나...

거듭, 하루하루 마음 수양에 힘써 즐거운 마음 잃지 않고 평안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서원한다...

2006년 3월 이튿날 아침에, 서울에서, 작은 오라비가...
늦은 회신을 대신하여 몇 자 적는다...

최 규 문 컨설팅그룹 /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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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수선화 [mailto:art304@hanmail.net]
Sent: Wednesday, March 01, 2006 7:54 AM
To: 최규문
Subject: [RE][최규문's 때때로메일(06.2.16)] 저 만치서 새 봄이 오려나봅니다...

오빠 메일 읽고 너무 감동 받았어요.
매번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 거리로 생각을 충족시켜주어서 좋네요.
오빠가 자랑스러워요.
아무튼 그래도 저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사는것도 복이라고 할수 있는거 같아요.
저는 요즘 많이 맘을 다스리고 살아요.
나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고쳐야지 **

신랑도 나에게 다가올거같고
나도 잘한거 별로 없는거 같아 반성하는 겨울 이였던거 같아요.

겨울엔 시아버지도 오시고 애들과 함께 많이 힘들어요.
그래도 내가 잘해야한다는거 알면서도 많이 짜증부리고 힘들어했거든요.
내가 좀 이기적이라 내몸 힘든거 못 참거든요.

사실 아프기도 많이해서 요즘도 계속 한의원에 침맞고 다니긴해요.
편두통에 자주 시달리고 운전 조그만해도 목도 안좋고 그러네요.
한의원에 가니 내상이라고 체력이 바닥이 났다고 하더라구요.
진맥을 해보더니 할매맥이라네요...

생각이 너무 많으면 장이 나빠진다고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거기 한의사가 친절해서 가서 얘기하면 많이 위로해주고
간만에 친절한 의사인거 같아 기분 좋더라구요.

오빠는 요즘도 불교 공부 하나요?
저는 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은데..그럴수가 없네요.
교회다니고 있거든요.

그러더라고 불교 공부는 하고싶은데...마음의 평안은 불교가 더 많은거 같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불교를 무시하는게 개인적으로 속상하더라구요.
자연을 보고있으면 신이 있어서 정말 내맘을 위로해주는거같기도 하고..
내생각인지 몰라도..

가끔 힘들고 지치면 그냥 바닷가에 가서 맑고 넓은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나마 위로를 받고 돌아오곤합니다.

제가 겨울에 갔던 거제도 바닷가 풍경하나 올려드립니다.

오빠 건강하고 다시 또 연락 드릴께요.
항상 마음 써주어서 고마워요..












































































by 때때로 | 2006/03/02 09:43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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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보내는 감사편지] 일곱개의 쉼표

 

안녕하세요,

창밖은 우중충하지만, 겨우내 언 땅이 풀려 촉촉히 젖은 모습이 봄을 노래하게 하는 하루로군요...

오래 별러서 설날 연휴에 구입한 MP3에 저장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노래들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업무시간 중에 이렇게 사적인 메일을 보내는 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연시에 무척이나 업무에 바쁘게 시달리다, 2월 설 연휴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 동안 페이스가 회복이 되지 않아서 꼭 슬럼프라고까지 할 건 아니지만 근 한달 동안을 다소 의기소침해 침잠해 있었더랬습니다.

어제 아침에 전혀 기대치 않았던 택배가 왔길래 궁금한 마음에 뜯어 보았더니, [21세기 북스]에서 전병국 님의 [일곱 개의 쉼표] 라는 신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주변에 알려주십사 하는 내용이 담긴 서신이 안에 들어 있더군요...

작년 연말 내신 [Delete!] 의 감동이 아직도 여운이 있었던 터라,
불과 일 년도 안된 사이에 이번에는 또 어떤 내용인가 싶어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집중해서 단숨에 내리 읽어보았습니다.

역쉬~~~

지난 번 딜리트를 통해서도 독자를 사로잡는 전병국 님의 탁월한 글재주에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제 판단이 녹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여지없이 증명해 주시더군요...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메시지 전달력이 뛰어나서, 한번 책을 잡은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전달해 주는 힘이 느껴집니다.

미처 후반부의 한두 꼭지를 건성으로 넘겨서 마지막 장을 읽어보는 성급함을 보이긴 하였으나,

나침반을 따라 재능과 강점의 길로 간다
동행자와 함께하는 헌신의 길로 간다
더 멀리 하늘을 보며 믿음의 길로 간다
여행을 즐기는 감사의 길로 간다
도착할 날을 준비하며 결단의 길로 간다


고 정리하신, "달이 전해준 메지지" 가
딜리트의 디카프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떠올리게 해서 바로 메시지의 뜻이 전해져 오더군요...

좋은 책 보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언제가는 전병국 님의 메시지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만의 선물을 남기고 싶은 제 자신의 꿈에, 항상 용기와 도전의지를 불러 일으켜 주고, 일상에 타협해버리는 게으른 모습에 각성의 계기를 주시는 점에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합니다.

봄이로군요...
꽃향기가 미처 진동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자리 하고 살아가는 얘기 한 번 나누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으면서 논어의 몇 구절을 새삼스레 해석해보게 되었는데요.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는 내용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정말로 즐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전병국님이 얘기하는 [내가 정말로 잘 하는 것] 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를 한 권으로 재편집한 [한 권으로 읽는 사기] 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고자가 되는 치욕스런 형벌을 무릅쓰고 이를 악물고 후대에 길이 전할 역사서를 남기려 했던 사마천의 치열한 삶을 상상하며, 필생의 꿈을 세운 한 인간의 집념과 헌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더 좋은 내용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두드림과 울림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시길 빕니다...


수서역 사무실에서 최규문 드림.

by 때때로 | 2005/03/10 14:49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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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게 보낸 편지를 받는 기분...

 

지난 주에 제가 제게 보낸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어제 밤에 제가 제게 보낸 두번 째 편지를 또 받았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집사람도 보았지만, 어제 받은 편지는 부끄러워 슬며시 제 호주머니로 숨겼답니다...

지난 1월 1일 신년목표 설계하기 워크숍에 참석해서 올 한 해의 여러가지 목표를 의욕적으로 세우고서는,
실제로 작심3일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알아보고, 스스로를 점검하고 격려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1주 후, 2주 후에 본인이 스스로 받고자 하는 편지를 미리 작성했더랬는데,
그 편지가 지난 주와 어제ㅡ 두번에 걸쳐 차례로 집으로 도착한 것이지요....

내용을 보니, 작심3일이 어디까지 지켜지고 또 한편 얼마만큼 깨어지고 있는지가 명확해 지더군요....

첫 번째 제가 제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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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 규문씨,

신년 벽두부터 가족까지 팽개쳐두고 하루 종일 목표설계 한답시고 귀한 시간을 투자했었지..
어때 지금은 할 만 한가!
그 때 세운 목표들이 혹시 불과 열흘도 못되어 접혀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시게나,

무엇보다 안되고 있는 게 있다면 그 목표를 위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계획"을 먼저 세웠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재정계획"은 세우셨는지
그것이 가능한 목표였는지를 돌아보게나!

- 일기는 제대로 쓰고 있는가!
- 하루 한 사람에게 안부 전화하고 있는가?
- 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는가?

- 2주에 한번 때때로 메일을 누군가에게 쓰고 있는가?
- 플러스3시간 사이트에는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가?
- 3일에 한번씩은 헬쓰클럽에 시간 투자를 하고 있는가?

- 불교대학 수강증은 끊어서 새로 재수강을 시작하셨는가?
- 집안 재정과 부모임 여행을 위한 구체적인 비용은 알아보고 형과 상의해 보셨는가?
- 블로그와 커뮤니티 활동에 대한 시간투자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 오늘 하루 누군가 타인을 위해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 일주일에 한번씩 세미나 참석은 잘 하고 있는가?
- 사이버 MBA 수강은 매일 빠짐 없이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

사람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바로 "자신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하지.
아마도 너무 많은 목표를 세워만 놓고, 정작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서 "그림의 떡"과 같은
계획의 포로가 되고 있지 않은지를 한번 쯤 돌아보시게!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다히 한번 계획들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해 보게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선순위가 약하거나 미뤄도 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것도 한 방법일세.
이왕 비싼 돈 투자해서 받은 목표설계 교육이고, 또 새롭게 만난 사람들의 인연이니 소중한 계기로 삼아서
스스로 다시 한 번 자기 실천의 엔진을 가동시켜 보시게나!

성공을 비네!
그리고 한 주 뒤에 이 편지를 꼭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길!
미래는 현재 나의 투자의 결과물이므로,
과거는 내 인생의 거울인 법이라네!

Good Luck to Mr. Choi
2005.1.1 최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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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제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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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Mr. Choi ?

어찌 벌써 2주가 흘러버렸네 그랴!
한 주 전에 한 번 점검을 하고 나니 훨씬 낫지 않나!

작년 한 해 동안 자기 습관과의 싸움에서 많이 나태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 극복의 단초를 잘 마련해 보시게나!
무엇보다도 건강 관리를 시작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법이니,
타인에게 뭔가를 전수하고자 하면 스스로 자기 스스로가 모범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잊지 마시게나!
앞으로도 매일처럼 자네의 블로그를 지켜 보겠네.

오늘은 무슨 일로 일기가 적혀 있는지를,
오늘은 누구를 칭찬하고 격려했는지,
오늘은 누구누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는지,
오늘은 누구로부터 삶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지,
자네 스스로의 실천과 네트워크를 점검해 보시게!

혹시 자네 스스로의 세계와 핑계, 합리화의 유혹에 빠지고 있지 않은지 언제나 경각심을 잃지 말고,
부디 성공하시게!

2005. 1. 1. 역삼동에서 최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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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미래 어느날 스스로 받아보게 미리 써서 미래로 보내는 편지,
그것은 작심3일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무기인 듯 싶습니다...


by 때때로 | 2005/01/19 17:35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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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아이 키우는 고민은 누구나 마찬가지지요...


안녕하세요, 선교회 활동은 요즘도 여전히 열심히 하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이렇게 이메일 회신으로나마 다시 만나 뵙게 니 무척 반갑습니다.

더욱이 제 어줍잖은 메일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신다니 정말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직접, 혹은 간접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지만,
사람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서 특별한 인상을 각인시켜 놓지 않는 한 기억하는 경우보다는
잊어버리거나 잊혀지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지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이따금씩 저 역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인연으로 이 분이 나의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오게 되었을까를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명함철을 모조리 다시 뒤져보거나, 혹은 아웃룩 연락처의 카테고리를 하나씩 뒤져보면
어디선가
그 만남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 만남의 계기가 어디였던들, 혹은 만남의 목적이 무엇이었던들 굳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요, 현재의 인연을 다리 삼아 새로 엮어나가게 될 미래인 것을요...

누군가 내 기억에 불확실한 어떤 분이 어디선가 저를 지켜보고 있고, 또 이따금씩 제가 보내
드리는 안부메일에 잘 보고 있다는 회신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스스로 살아가는 자세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CTT 과정을 통해서, 저 역시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교사의 입장에 서게 될 때
얼마나 노력하는 모습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득 타산지석, 반면교사(反面敎師) 라는 한자성어가 생각나네요...
타인의 삶을 내 삶에 귀감으로 삼아서 남이 잘하는 점은 따라 하되, 남이 잘못하는 점은 따르지
말아야 할 본보기로 삼아 스스로를
경계하라는 뜻이지요...
제 살아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반면교사의 모델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고자 항상 노력합니다...
종종 격려 말씀 주시면 그런 다짐을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이 되겠습니다.

아이 교육하는 문제는 정말이지 엄마들에게는 더욱 큰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애가 하나뿐이다 보니,
집사람의 아이에 대한 기대나 투자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마련인 듯 싶습니다.
제가 옆에서 보기엔 과하다 싶지만 딱히 그것을 나무랄 일도 아닌지라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다만, 부모의 기대나 요구가 지나쳐서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 무엇보다도
주의하고 있구요, 과외나 학원은 사실 보내고 싶어도 돈이 모자라 못 보내지만, 하기 싫다면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하고 싶다고 본인이 조를 때 최소한만 시킨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집사람에게는 항상 아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의 희망사항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혹시라도 아이의 잘난 모습으로부터 자신이 이루지못한 어떤 보상심리를
충족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를 항상 경계하
라고 말합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실상은 자신의 성취욕을 대신 충족시키려 하는 것은 아닌지,
결과적으로 아이를 자신의 만족을 위한 재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라는 것이지요...
남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비교하고, 남보다 앞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한
아이도 엄마 자신도 결코 경쟁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
가는 룰이 단지 무한경쟁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권하곤 합니다.

짧은 경험으로 보건대,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세상살이가 무척 힘들어집니다.
비교란 참으로 이상하게도, 나보다 못한 사람에 비추어 나의 행복함과 충만감을 얻기 보다는,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비추어 나의 못남과 부족함을 보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교는 하면 할수록 결국은 자신의 모자람과 비참함을 키우고 부채질하기 십상이고,
그로부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오도된 경쟁의식을 발동시켜 무한 경쟁의 함정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넣게 되거든요...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저 또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비교와 경쟁 논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거꾸로 보는 관점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현재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돈과 물질적 안락함, 타인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꼭 성공이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 보면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패배자들의
자기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의 습관으로부터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남들은 모르는 행복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요...

결국 행복하냐 불행하냐를 가르는 것은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가치관이거든요....
내일(?) 아침, 전체 교육회의 시간에 간단한 10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로 한 게 있는데,
그것 잠깐 할 꺼리를 준비하느라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또 하루 밤을 새게 되는군요...

답신 주신 데 다시 한번 감사드리구요...
환절기 건강 관리에 더 유의하십시오.. 저는 리더십센터나 리더십센터가 개최하는 행사장에
오시면 대부분 얼굴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다시 인사 나누지요...

저에 대해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제 홈피 (http://myhome.hanafos.com/~letsgo)
에 오시면
좀 더 자세히 아실 수 있고요, 혹시라도 지난 [때때로메일]을 다시 보고 싶으시면 아래 서명
란에 올려둔 블로그 페이지로 찾아 오시면 됩니다. 종종 인사 남겨 주시면 반갑겠습니다.

월요일 새벽입니다. 새로 맞는 이번 한 주도 활기차고 알뜰한 주간 되세요!

아자, Go Go!!

by 때때로 | 2004/10/18 10:32 |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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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회신] 자기소개서 작성법- 사회 첫 발을 준비하는 수연씨에게

음.... 이력서 잘 봤슴다...

81년생이라... 내 대학 학번이 84학번이니까...

ㅎㅎㅎ 우~ 와~~

내가 대학 들어갈 때, 나이가 겨우 4살쯤 되었겠군요....
그런데 벌써 대학 졸업하고 사회의 문을 두드려야 할 때가 되었다니....
음, 내 나이가 마흔 줄에 접었들었다는 게 실감나는구먼요..... ^*^

자기소개서를 죽 보아 하니, 이래 저래 홀로서기를 하려구 열심히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이네요....

나도 큰 직장은 아니지만 이곳 저곳 떠돌면서, 여러 직종을 대해보고 직접 사람을 뽑아 보기도 했지만,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그 사람과 더불어 어느 정도 미래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매우 어렵고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입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듯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좋은 인재를 뽑아서 쓰느냐에 따라서 직장이나 조직의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수연씨의 자기 소개서는 깔끔한 편입니다...
저도 사람을 뽑을 때 단 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50명이 넘는 이력서를 뒤적인 적도 있었고ㅡ
또 디자이너를 뽑을 때는 포트폴리오들을 검토하는라 밤을 새며 신청자들의 저작 사이트들을 서핑하면서
기술력을 검증하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을 뽑게 될까 신청한 사람으로서는 그 기준이 매우
궁금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맨 먼저 보는 것이 [자기소개서]의 독특성(무조건 튀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뭔지 평범해 보이지만은 않은 뭔가의 '필' 이랍니다.
그리고, 일단 거기서 걸러지면, 그 다음에 [직접 면접]을 보자고 하지요.

1차적으로 자기 소개서에서 보는 핵심은,

자신에 대한 표현을 글로 논리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논리성과 표현력을 갖추고 있는지 사회생활의 기초적인
소양을 먼저 보는 거구요...
(가끔씩 보면 자기소개서 문장의 주술 관계조차 일치하지 않아 글이 버벅대면서 끝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바로 버리지요...)

그 다음에는 내용적으로, 얼마나 인상적으로 자기 내면의 가치관을 드러내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는 것이 스킬(기술)과 열정(에너지) 그리고 성격이나 성품입니다.
성격이나 성품은 자신의 노력이나 조직의 문화(분위기)에 따라 적응하거나 어느 정도는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그리 크게 보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하게는 실무적인 기술력과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주로 보구요,
특히 자신의 자질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배여 있는지를 주의깊게 보지요.
요즘은 워낙 당장에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 바로 실전에 활용하기를 원하는 업체들이 많으니까,
사실 열정보다는 기술력을 검증할 수 있는 경력을 우선해서 보는 경우가 많지요.

자기소개서를 잘 쓰라고 조언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짤막한 A4 용지 한 장에서 그 사람이 가진 능력과 자질
(언어표현력, 논리력, 기술력, 독창성 등등)이 거의 모두 스며서 묻어나오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직접 어떤 자리에 소개하거나 쓰거나 말기를 권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이런 사람이 있답니다 하구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넘겨주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결국 판단은 다시 사람을 직접 찾아서 쓰고자 하는 그들의 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설령 중간에 누가 소개를 해 주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작성한 소개서가 그 사람들에게는
첫 인상으로 다가가는 법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내 경험으로 보아 수연씨에게 한두 마디 더 조언을 한다면,

이력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 너무 자세히 시시콜콜 적을 필요는 없구요....
다만, 자기 소개서는 조금 구성과 내용 서술의 촛점을 바꾸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누구누구의 몇째로 태어나 어디서 자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소개서는 너무 평범하고 일반적인 구도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첫 인상을 주기가 어렵거든요...

그리고 성장 배경이나 가정 환경이 그 사람의 성품이나 자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생업이나 가풍 등에 관해 보조적으로 보긴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학벌과 더불어 그 또한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자기소개서는 제한된 지면 내에 가장 강하고 짧게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매체인 만큼 두괄식(서두에 자신의
핵심 요지를 먼저 정의하는 것)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의 꿈은 앞으로 몇 년 안에 어떤 어떤 분야에서 상위 몇 프로 안에 들어가는 어떤 프로가 되는 겁니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저는 지금 어떤 목표를 세워두고, 이런 공부와 이런 자기 개발 활동들에 시간을 얼만큼
투자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실무 분야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분야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계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대학 생활 중에 이런 이런 자격증을 땄고, 동아리 활동이나 어학연수나 여행 등을 했는데 그러한 데 투자를
했던 계기는 이런 이런 사유로, 제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그것이 이런 면에서 기여하리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어떤 어떤 실무적 기술능력을 갖고 있고, 특히 이 부분에는 어떤 실제 경력을 갖고 있고
업무 처리면에서는 이러이러한 업무 판단력과 처리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어떤 어떤 아르바이트나 업무를 하면서 얻게 된 것들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난 후로 고객(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신뢰나 정직,
봉사의 정신이 왜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느꼈고, 이 점이 제게 평생 행동의 기준이자 추구할 가치로 정해졌답니다.

제 성격의 장단점은 이러한데,
이런 것은 부모님과, 어렸을 적 이러이러한 성장 배경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등등..."

자기 소개서를 쓰는 데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꼭 빠뜨리지 않아야 할 핵심은

1. 어떤 일이 주어지든 해낼 수 있다는 자기 자신감과 당당함,

2. 어떤 어떤 업무를 이렇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실무능력을 갖추고 있고,

3. 이런 꿈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고
   ㅡ 앞으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일하고 싶다 하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가치 설정과 비전(목표)입니다.

이것을 표현하는 데 A4 한 쪽이 모자란다고 생각되면 두 장, 세 장을 넘겨도 됩니다.
하지만 아마 4장을 넘기면 오히려 핵심 요약 표현력이 모자란 것으로 보여 안 읽어버릴 수도 있을 터이니
조심하시고...

내가 굳이 이렇게 길게 답신을 하게 되는 것은, 수연씨 메일 보구 내 자신이 10여년 전 대학 졸업하던 시절에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사회에 첫 발을 내밀 때를 돌아보고 내가 다시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어떤 심정일까
하는 맘이 들어서 조금이나마 내 경험이나 판단이 수연씨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래서입니다.

앞으로 살면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 나가기 위해 사회생활을 할 요량이라면 이런 저런 곳에 여러 번
자기 소개서를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이런 조언도 일찌감치 들어두고, 또 실제로 여러 군데 인터뷰 해보시고,
사회 초년생의 벽을 경험하고 깨져보는 것이 인생살이 시작에 많은 경험과 도움이 될 겁니다.

아무튼 아직 인사 한번 없이 온라인 초면에 경우 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은데...

훈련하는 셈 치고, 자기소개서는 다시 한번 과감히 뜯어 새로 고쳐서 써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참고로, 회사에서 사람 뽑을 때 어떤 자기소개서들을 우선적으로 채택하는지 조회해 볼 수 있도록
잡코리아에 개설된 <인사담당자가 선택한 자기소개서> 샘플을 찾아볼 수 있는 링크를 하나 소개해 드릴 터이니,
거기에 추천된 이런 저런 자기소개서들을 찬찬히 비교해서 한번 읽어 보시고,
내가 왜 자기 소개서를 이리 강조하는지를 생각해 보기 바래요...

http://www3.jobkorea.co.kr/jobtimes/channel/bizresume/

참고로,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모회사인 한국리더십센터에서도
인턴사원을 모집 중인데, 혹시 자격이 된다면 응모해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고생은 좀 되겠지만, 여기도 배울 것이 꽤 있는 회사니까요....

모집 광고 원고를 첨부해 놓을 터이니, 살펴보시고 판단해 보시지요...
영어 실력을 과다한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나...
뭐 그건 회사 특성상 요구하는 거니까,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구요...

지난 번에 얘기했던 대로, 18-19일날 내가 잘 아는 후배가 있는 잡코리아와 관련 부서 주최로 코엑스에서
무역인재 채용박람회가 열린다고 하여, 특강을 의뢰받은 게 있는데, 혹시 서울에 올 수 있으면 한 번 들리기 바래요...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도록!

http://job.kita.net/
행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 및 참가 신청은 위 링크로 안내 받으시구요....

대학 졸업 진심으로 축하하구요... 좋은 사회 새 출발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람 구하는 곳이 있으면 최대한 소개를 해 드릴 터이니... 자기 소개서 한번
다시 잘 써 보세요... 그럼 이만....

*** 피에쑤(사족)인데,

보내준 메일의 마지막 붙임글이 약간은 감상적이고 소극적으로 느껴집니다.

메일의 서명글 하나에서 풍기는 메시지나 분위기 마저도 인사 담당자들에게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정보이자
판단의 요소가 된답니다. 가능하면 보다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문구로 바꾸세요...


난 그대의 무관심속에 그대 인생속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by 때때로 | 2004/02/07 16:52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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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3749933] 제갈공명의 출사표 

[네티즌 채택답변] 나라말싸미 뒹귁에 다라.
genpro님이 2003-11-25 09:19 작성

출사표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 今天下三分, 益州罷 ,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선제께서 왕업을 시작하신 지 아직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이제 천하가 셋으로 나뉘었는데 익주가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으니,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차성위급존망지추야. 연시위지신, 불해어내, 충지지사, 망신어외자,

이는 진실로 위급하여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모시고 지키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뜻이 있는 무사들이 밖에서 자기 몸을 잊고서 애쓰는 것은,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개추선제지수우, 욕보지어폐하야. 성의개장성청, 이광선제유덕,

대개 선제의 특별히 두터웠던 대우를 추모하여 이를 폐하에게 갚고자 함입니다. 진실로 마땅히 성스러운 폐하의 귀를 열고 펴시어, 그것으로써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하여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회홍지사지기, 불의망자비박, 인유실의, 이색충간지로야.

뜻 있는 선비의 의기를 넓고 크게 해야 하고, 망령되이 스스로 덕이 없다고 여겨 비유를 끌어대 의를 잃어, 그것으로써 충간의 길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奸犯科及爲忠善者,
궁중부중, 구위일체, 척벌장부, 불의이동. 약유작간범과급위충선자,

궁중과 승상부가 모두 일체이니 선과 악을 척벌함을 달리해서는 안될 것이요, 만일 간사한 짓을 하여 죄과를 범하는 자 및 성실하고 선량한 일을 한 자가 있으면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의부유사, 논기형상, 이소폐하평명지리, 불의편사, 사내외이법야.

마땅히 담당자에게 넘겨서 그 형벌과 상을 논하여 그것으로써 폐하의 공정하고 밝은 다스림을 밝혀야 할 것이요, 사사로움에 치우쳐 내외로 하여금 법을 달리 해서는 안됩니다.

侍中侍郞, 郭攸之.費褘.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
시중시랑, 곽유지.비위.동윤등, 차개량실, 지려충순, 시이선제간발,

시중과 시랑인 곽유지· 비위·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뜻과 사려가 참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선제께서 뽑으시어

以遺陛下.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이유폐하. 우이위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연후시행,

그것으로써 폐하께 남기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이들에게 물은 연후에 시행하시면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필능비보궐루, 유소광익. 장군향총, 성행숙균, 효창군사, 시용어석일,

반드시 부족하거나 빠진 것을 도와주고 보충하여 널리 이익이 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위가 선량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군대의 일에 밝아 두루 아는지라 예전에 시험삼아 써 봄에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擧寵爲督.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선제칭지왈..[능]. 시이중의거총위독. 우이위, 영중지사, 사무대소,

선제께서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으니 제가 생각건대 군영 중의 일은 일의 크고 작음 없이

悉以咨之,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也. 親賢臣遠小人,
실이자지, 필능사행진화목, 우열득소야. 친현신원소인,

모두 그에게 물으면 반드시 각 부대들로 하여금 화목할 수 있게 되어 우수한 자와 졸렬한 자가 각각 마땅한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先帝在時,
차선한소이흥륭야, 친소인원현신, 차후한소이경퇴야. 선제재시,

이것이 선한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이것이 후한이 기울어지고 쇠한 까닭입니다. 선제께서 계실 때에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侍中尙書.長史.參軍,
매여신론차사, 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시중상서.장사.참군,

매번 저와 함께 이일을 의논하며 일찍이 후한의 환제와 영제의 일을 탄식하고 몹시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시중, 상서, 장사, 참군,

此悉貞亮死節之臣也. 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차실정양사절지신야. 폐하친지신지, 칙한실지륭, 가계일이대야.

이들은 모두 곧고 어질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오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하시고 이들을 믿어 주시면 곧 촉한의 황실이 흥륭하다는 것을 날을 세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難世, 不求聞達於諸侯,
신본포의, 궁경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신이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갈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구하지 않았더니,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선제께선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을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由是感激, 許先帝以驅馳.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유시감격, 허선제이구치. 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간,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힘써 일할 것을 허락하였더니 그귀에 국운이 기울어짐을 만나 패군의 때에 임무를 받고 명령을 위급한 때에 받은 것이

爾來二十有一年矣. 先帝知臣勤愼. 故臨崩, 寄臣以大事也. 受命以來,
이래이십유일년의. 선제지신근신. 고임붕, 기신이대사야. 수명이래,

그 이래로 21년이 됩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지라 그러므로 돌아가심에 임하여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으니 명령을 받은 이래로

夙夜憂慮, 恐付託不效, 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숙야우려, 공부탁불효, 이상선제지명. 고오월도로, 심입불모.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근심하고 탄식하며 부탁하신 일에 효과가 없어서 그것으로써 선제의 밝으심을 해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에 깊이 들어갔더니 ,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奬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姦凶,
금남방이정, 병갑이족, 당장솔삼군, 북정중원, 서갈노둔, 양제간흉,

지금은 남쪽이 이미 평정이 되고 무기와 갑옷이 풍족하니 마땅히 삼군을 권려하여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을 평정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고

以復興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이부흥한실, 환우구도, 차신소이보선제, 이충폐하지직분야.

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이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직분인 것이요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褘.允之任也. 願陛下,
지어짐작손익, 진진충언, 칙유지.위.윤지임야. 원폐하,

손해와 이익을 짐작하고 나아가 충성스러운 말을 다하는 것은 곽유지, 비위, 동윤의 임무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탁신이토적흥복지효, 불효칙치신지죄, 이고선제지령.

신에게 도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키는데 실효를 거둘 일을 맡기시어 효과가 없으면 곧 신의 죄를 다스리어 그렇게 함으로써 선제의 영앞에 고하시고

若無興德之言則責攸之.褘.允等之咎, 以彰其慢. 陛下亦宜自謀,
약무흥덕지언칙책유지.위.윤등지구, 이창기만. 폐하역의자모,

곽유지, 비위, 동윤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것으로써 그 태만을 밝히십시오. 폐하께서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꾀하시어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이자추선도, 찰납아언, 심추선제유조. 신불승수은감격, 금당원리,

臨表涕泣, 不知所云.
임표체읍, 부지소운.

좋은 방도를 자문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소서. 신이 은혜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지라, 지금 멀리 떠나게 됨에 표에 임하여 눈물이 나서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답변] 제갈공명의 출사표
didrnrqh님이 2003-11-25 08:07 작성
제갈공명의 출사표

[출처] 엠파스 지식거래소 (http://kdaq.empas.com/)
[원문] [질문-3749933] 제갈공명의 출사표 (문학 > 고전문학 )

by 때때로 | 2004/08/24 09:55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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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新 인맥]서울대학교 1970년~80년대 ‘언더서클’

2009 02/17   위클리경향 812호

이명박 정부의 ‘저격수’로 등장

‘언더서클’은 70년대 말~80년대 초 군사독재정권의 학원 탄압이 빚어낸 독특한 대학문화였다. 사진은 1984년 전투경찰이 서울대에 진입, 잔디밭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 <경향신문>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송기호 변호사는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국제통상 전문변호사로서 그의 전문적 지식과 역량에 쇠고기 협상을 주도한 통상관료는 진땀을 뺐고 촛불시위는 전국으로 퍼졌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역시 MB정부의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국제관계학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하며 정부 당국자들을 몰아붙였다. 정치권에서는 비록 원외지만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미국산 쇠고기 개방정책에 대해 국민투표에 붙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 FTA협정, 쇠고기 협상 과정은 물론이고 독재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명박 정부에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을 묶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 대학 시절, 서울대 언더서클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송 변호사(사회대 81학번)와 이 교수(외교학과 81학번)는 ‘농법회’ 소속이고, 심상정 대표는 ‘대문’ 출신이다. 이들은 최근 ‘고소영’ 인맥이 주축인 MB정부의 반민주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과거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농법학회, 가장 활발한 모임 이어져
(위 왼쪽부터)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김학규 진보신당 동작 갑 위원장, 박석운 민생민주국민회의 운영위원,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 교수, 송기호 변호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강택 전 PD연합회장, 이선근 경제민주화를위한민생연대 대표, 이진경 서울산업대 사회학과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진중권 중앙대 독문과 겸임교수, 최민 사회복지법인 ‘너머’ 이사장, 최철국 민주당 의원.
패밀리, 집, 가족, 식구. 80년대 전반 대학사회에서 떠돌던 은어다. 같은 언더서클 멤버라는 뜻이다. ‘언더’는 7, 80년대 군사독재가 만들어놓은 독특한 문화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패밀리는 60년대까지 선배세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리고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의 중심에는 이들 ‘언더서클’이 있었다. ‘언더서클’이 만들어진 경로는 다양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소위 ‘80년 봄’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학원 탄압이다. 공개서클도 ‘유사시’를 대비하여 이중구조, 즉 ‘언더’를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대에선 흔히 ‘5대 패밀리’ ‘8대 패밀리’ 식으로 불린 주류 패밀리들이 존재했다. 패밀리들은 보통 약칭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과는 사회과학학회의 약칭이며 보통 ‘사과’에서 연상되는 ‘애플(apple)’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문화연구회가 대문→게이트(gate)로 불린 것도 같은 원리다. 농법학회는 농법, 후진국경제연구회는 후경으로 약칭됐다. ‘아카’는 흥사단아카데미를 줄여 부른 이름이다. 벌써 상당한 세월이 흘렀고, 또 ‘언더모임’이다 보니 구성원에 대한 기억은 엇갈렸다. 게다가 당시에도 일부 서클은 구성원 간 서로 같은 모임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 인사는 “가끔 지나치면서 눈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식구’라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지속적으로 모임을 한 경우는 그나마 역사나 학번별·기수별 멤버가 정리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농법학회는 그나마 가장 활발하게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있다. 2004년 봄, 대통령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모임 내에서 일부 회원을 중심으로 ‘심재철 의원 제명’이 거론됐다. 농법회 77학번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심 의원만 ‘성토’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었다. 심규철(76학번) 전 의원 역시 제명 대상자로 거론됐다.

‘한사’는 1980년대 초반 최대 패밀리
81학번 4년 후배로 역시 84년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호윤 (나우리서치 이사)의 말.
“아무래도 우리가 학생운동 출신이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반론도 있었다. 지금 있는 농법학회가 무슨 비밀단체도 아니고, 친목단체인데…. 그래도 기본 정체성은 있지 않냐는 재반론도 오갔다. 결국 심 의원 제명 이야기는 흐지부지됐다.”

농법학회가 배출한 면면을 보면 정체성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규성 민주당 의원, 이원영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도 여럿 배출됐다. 법대에서 시작된 학회라 아무래도 법조계에 진출한 사람도 많다. 82년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상준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 윤우현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현직 교사),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77학번·전 한겨레신문 경영기획실 이사) 등도 이 학회의 멤버다. 앞에서 거론한 송기호 변호사나 이해영 교수 역시 81학번으로 농법회 회원이다.

아무래도 ‘전통’이 있는 서클이다 보니 요직에 진출한 사람도 많다. 역시 농법학회 회원 출신인 최철국 민주당 의원 측에 따르면 임채진 검찰총장,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서울대 법대 교수) 등도 농법학회 선배다.

‘한사’, 한국사회연구회는 80년대 초반 서울대 최대 패밀리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운영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1967년에 만든 ‘한사’는 김승호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고 김병곤 전 민청련 부의장(71학번), 박석운 민생민주국민회의 운영위원·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73학번), 정의헌 일반노조 공동위원장(74학번) 등 쟁쟁한 전·현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배출했다. 멤버 중에는 재계에 나가 있는 사람도 있다. 부윤경 삼성물산 상무(75학번), 김수천 에어부산 대표(75학번) 등이 그들이다.

흥사단 아카데미는 조금 독특한 경로를 밟았다. 연합서클로 70년대까지는 합법적인 등록서클이었지만 80년 5·18사태가 일어나 등록이 취소되면서 언더로 잠적했다. 흥사단 회원이던 윤철호 사회평론 출판사 대표(80학번)는 5·18 이후 지하 점조직식 서클이 되었다고 기억한다. 흥사단 출신으로는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68학번),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69학번), 신철영 전 경실련 사무총장(70학번), 이선근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대표(74학번), 이강택 KBS PD(전 PD협회장) 등이 있다.

‘대문’은 독서회 ‘청넝쿨’이 전신
(위 왼쪽부터)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 김상준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 김수천 에어부산 대표, 부윤경 삼성물산 상무,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신철영 전 경실련 사무총장,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 이호윤 나우리서치 이사, 현무환 전 웅진미디어 대표이사.
물론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멤버 중에서는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회원도 있다. 이들은 MB정부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77학번)이나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가 대표적이다. 홍 이사는 1982년 서울대 사회2계열에 입학한 뒤 흥사단 아카데미에 가입했다. 학생운동으로 제적 위기에 처하자 1983년 정치학과로 재입학했다. 홍 이사는 87년 하반기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NL계열 지하운동 활동을 하던 홍 이사는 90년대 중반 이후 공개적으로 사상전향을 선언하고 ‘뉴라이트386’의 기수로 앞장섰다.

‘대문’은 1973년 만든 독서회 ‘청넝쿨’이 전신이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한림대 교수) 등이 만들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75학번),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최민 사회복지법인 ‘너머’ 이사장(78학번), 유강근 변호사(79학번), 황인상·안병용 변호사(80학번) 등이 주요 멤버다. 박종운 한나라당 경기 부천·오정 당협위원장(81학번)은 “원래 학생운동과 거리가 먼 독서클럽이었던 모임에서 최민 등 78학번 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수를 해서 81년도 사회학과에 들어간 박 위원장은 사회대평론이라는 편집실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지하그룹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모임은 박 위원장이 2학년 때 ‘대문’과 일종의 합병을 한다. 박 위원장이 경험한 학습 시스템은 2학년까지는 소위 RP(reproduct)팀이라고 학생운동 인자의 재생산을 담당하고, 3학년 때부터 운동조직에 들어간다. 그와 동기인 백태웅씨(전 서울대 학도호국단장, 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법대의 공개 모임인 ‘피데스’ 쪽 후배들을 이끌었는데, ‘대문’은 82년도에 본부서클인 세계문화연구회(세문)를 또 만들었다. 그리고 이쪽에서 최민 등을 중심으로 80년대 학생운동사의 다른 축인 CA그룹이 만들어진다.

82학번에선 신성범 한나라당 의원(전 KBS기자),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83학번엔 김찬훈 인터넷 법률서비스 예스로 사장 등이 대문의 주요 멤버다. 수배 중이던 박종운씨는 87년 1월, ‘대문’ 84학번인 박종철씨 자취방에서 후배를 만나기도 했다. 나중에 박종철씨가 경찰에 연행돼 “박종운의 거처를 대라”며 물고문을 당했다. 결국 박씨가 사망하고 이 고문치사사건은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군소 규모의 패밀리도 있다. 김학규 진보신당 동작 갑 위원장은 ‘젠틀맨’이라고 불리던 신사(신식민지사회연구회) 출신이다. 70년대 야학을 주로 하던 대학연합서클인 신사 출신 멤버로 유명한 이는 작곡가 김민기다.

주로 475세대와 386세대가 섞여 있는 언더 패밀리 멤버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의 파워로 등장한 것은 1997년 정권 교체 무렵이다. 국민의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에 진출하거나 공공기관장을 맡아 활동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법조·관계 인사들 출신 밝히기 꺼려
(위 왼쪽부터)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 박종운 한나라당 경기 부천·오정 당협위원장, 신성범 한나라당 의원, 심규철 한나라당 전 의원, 임채진 검찰총장,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

보수정권으로 바뀐 지금은 어떨까. ‘후경’ 멤버였던 현무환 전 웅진미디어 대표이사는 “20~30년이 지난 지금 과거와 똑같은 입장일 수 없지만 청년시절 고민의 핵심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박종운 위원장은 “사실 이명박 정부야말로 보수정권이라기보다는 운동권 정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과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현 정부 요처에 두루 진출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민주화뿐 아니라 시장원리를 관철하는 것도 민주화”라며 현재 자신의 활동이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반대편, 즉 구 여권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다소 움츠러드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지금도 서클별로 친목·취미 모임을 갖는 경우는 많지만 법조나 관계에 진출한 경우 ‘오해를 살까봐’ 과거 이념서클 멤버였다는 것을 밝히기 꺼리는 경향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출발점은 서로 달랐지만 언더 패밀리들의 종점은 거의 비슷하다. 대부분 서클은 85학번이 막내다. “서클주의·종파주의를 청산하자”는 운동이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로 모일 일 없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안기관의 주목을 받기보다 과나 단대 학생회 단위로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우면서 또한 과학생회 단위로 재편되는 것이 운동 발전의 자연스런 요구였다는 것이다. 이호윤씨는 당시 “서클 해체라는 방향이 옳았다”라고 말하면서도 “지성인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 중에는 언더서클이 아닌 공개서클 출신도 적지 않다. MB 정부의 정책사안에 대해 날카로운 논평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진중권 중앙대 독문과 겸임교수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사회학과 교수(수유+너머 연구원)과 함께 공개서클 탈반의 멤버였고 같은 ‘공부팀’ 소속이었다. 이 교수는 “개인적으로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일부에서 머리만 커진다고 안 좋아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지성원을 받은 편”이라며 “4학년 때는 이른바 D(Demonstration·데모)팀이었는데, 말하자면 데모가 있으면 주동이 아니라 머리를 채워주는 일종의 전투요원”이라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피데스 회장을 맡았지만 백태웅씨가 주도하던 ‘대문’의 멤버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언더서클’ 외곽조직의 책임자였던 셈이다. 조 교수는 “당시에는 반독재민주화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1987년 형식적·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는 다양했던 지향이 드러났고 그중 일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기도 했다”라며 “돌이켜보면 우리를 버티게 한 힘은 사회과학 공부나 세미나라기보다 당시 양심이나 상식에 반하는 현실과 모순이었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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