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고전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인간, 즉 왕이나 장군, 반인반신의 용사들인데, 이들은 타고난 운명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외디푸스왕이나 햄릿 왕자, 발렌쉬타인 장군은 모두 고귀한 신분과 준수한 용모, 고매한 인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타고났으나 한 순간에 영광의 절정에서 치욕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러한 추락의 낙차가 클수록 관객이 느끼는 공포와 연민의 강도는 증가한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아내는 미적 정서는 흔히 숭고미와 비장미로 규정된다.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비상하다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추락하는 주인공은 외경과 감동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미와 비장미는 역사적 인물들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사한 이순신과 관운장은 ‘성웅’과 ‘군신’으로 추앙되고,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다가 처형된 전봉준과 스파르타쿠스는 비운의 혁명가로 미화된다.
그의 비극적 죽음,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
그렇지만 노무현의 죽음은 이러한 숭고하고 비장한 영웅들의 죽음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고전비극의 주인공처럼 왕이나 장군, 귀족도 아니고 반인반신의 용사도 아니었다.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혁명가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지도자, 신출귀몰한 책략가도 아니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나,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고집 때문에, 인권 변호사로, 바보 정치인으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의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농민으로 돌아온지 1년만에 절벽에서 몸을 던진 어수룩한 촌놈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되 그 추락의 낙차는 크지 않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결코 신비로운 만년설로 빛나는 절대권력의 봉우리에 올라간 적이 없었고 그저 해발 백 미터의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다가 부엉이바위에서 사십 미터 아래 골짜기로 떨어졌을 뿐이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휘두를 수도 없었으니까. 기득권 세력은 탄핵으로 그를 무력화시켰고 재벌의 앞잡이인 수구족벌언론은 집요하고 야비하게 그를 씹어댔다. 이제 권력은 청와대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탄식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진단이었다. 그는 시장의 힘에 떠밀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함으로써 지지층으로부터 고립되었고, 퇴임 직전 힘겹게 성사시킨 남북정상회담의 영광도 그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의 무조건적인 ‘거꾸로/뒤집기정책’으로 원천무효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그의 비극적인 추락이 4·19와 5·18, 6·10으로 얻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과에 안주했던 우리 모두의 탐욕과 나태와 위선의 결과임을 깨닫는다. 한때 그에게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던 서민 대중은 주식과 대운하, 뉴타운으로 떼돈을 벌어볼 욕심에, 이른바 386세대의 중산층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어 출세시키기 위해, 등을 돌렸다. 민주시민과 노동자, 지식인들은 반대세력을 모질게 짓밟지 못하는 촌놈 노무현의 무력함과, 속내를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투박한 언행을 나무라며 현실정치를 외면하고 한탄만 하다가, 허황한 경제살리기 747공약을 내세운 수구기득권세력에게 민주주의를 헌납하고 말았다.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
노무현의 죽음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한다. 온갖 풍파에도 끄떡없이 버텨온 세련되고 영악한 기득권세력은 재산도 학벌도 없는 시골 출신 대통령의 우직한 정의감을 비웃고 왕따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가 낙향한 고향 마을까지 따라와 처자식과 친구, 후배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끝장을 볼 때까지 괴롭혔다. 물고 뜯고 짓밟고 조롱했다.
약삭빠른 수구족벌신문과 방송은 권력에 빌붙어 알량한 잇속을 챙기려고 온갖 거짓말과 욕지거리를 끝없이 쏟아냈다. 심지어는 소박한 촌집이 ‘아방궁’으로 왜곡되고, 봉하마을을 찾는 버스에 30만원씩 돈을 준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나는 1980년대에 전라도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선생 만세’를 외치치 않으면 기름을 팔지 않는다는 유언비어를 대학 교수휴게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줄을 풀어준 너그러운 주인한테 버릇없이 대들던 검찰과 경찰은 강퍅한 새 주인이 ‘물어라 쉭’ 하고 줄을 당기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전 주인이건 누구건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정적을 역적이라고 모함하여 유배를 보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3족을 멸하여 씨를 말리던 왕조시대의 잔혹한 정치보복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토끼몰이를 당하는 고통이 오죽했으면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도 없다”고 비명을 질렀을까. 그들이 악에 바쳐 부르짖던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는, 민주화의 대세에 밀려 빼앗겼던 기득권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되찾아 다시는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과연, 그들은 ‘촛불’로 흔들리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언론과 집회와 표현의 자유, 남북화해, 양극화 해소 등 보편적 가치와 상식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경멸을 불사함으로써 우리시대를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내팽개친 ‘야만의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이 기막힌 퇴행과 모욕에 맞서 힘없는 농민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온몸을 내던져 지켜내는 투신뿐이었으리라.
잘 가시오, 벗이여!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치욕을 감수하며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했던 노무현은 너무도 우직한 촌놈이었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인 자연”으로 돌아갔다.
1946년 병술(丙戌)생 개띠. 그가 기득권세력의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탐욕으로 파헤쳐지고 남북분단과 지역주의로 갈갈이 찢긴 산하를 장엄하고 처절한 낙조로 물들이며.
잘 가시오, 벗이여! 같이 태어나 같은 길을 걷다가 먼저 간 동갑내기 도반들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본다. 화가 오윤, 시인 김남주, 음악가 문호근, 변호사 조영래 그리고 바보 촌놈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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