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06.06 10:07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34

    빈자의 무기, 그리고 노무현
    한겨레 한승동 기자
    » 빈자의 무기, 그리고 노무현
    디아스포라의 눈 /

    호찌민의 청빈 이미지는 항미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청빈과 도덕성은 빈자나 약자가 부자나 강자와 싸울 때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노무현씨와 호찌민을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굳이 그런 시각을 제시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봄에 죽음을 생각하다’라는 글을 썼는데,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국민장을 치르는 날에 이 글을 쓴다.

    실은 지난주 충북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이틀간 한국을 찾았다. 5월 23일 아침 일찍 일본에 돌아왔는데 하네다 공항 텔레비전 뉴스가 노 전 대통령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잘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도 차리기 전에 그는 “뉴스 봤어요?”라는 말부터 꺼내더니 “이제 한국 사회도 좀 평온해지려나 했는데…. 나 울어버릴 것 같아요”라고 했다. 아내는 노무현씨 팬이었다. 일본인인 그에게도 노무현씨는 진보·민주·평화라는 가치들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가 충격을 받은 사실에 놀라면서 새삼 나 자신이 몹시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한국에 있는 지인 두세 사람에게 감상을 물어봤다. 어떤 이는 울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몹시 분개했다. 대답은 모두 예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것은 그들이 노 전 대통령과 민주화나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꿈을 공유하고 고락을 함께하며 싸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내가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공유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므로 나 같은 국외자가 왈가왈부하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이 채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라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처음 내게 떠오른 생각은 “나약하구나”라고 할지 “서투르구나”라고 할지, 그런 것이었다.

    제3세계 정치지도자들은 사후에 권력남용, 부정축재, 친인척 비리, 이성관계 등 생전의 부정이 폭로되기 일쑤다. 예외는 저우언라이, 체 게바라, 그리고 호찌민 정도일까.

     

    호찌민에겐 형과 누나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프랑스에 대한 저항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당한 적이 있다. 1945년 8월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독립했을 때 그의 누나는 새 정부의 주석이 오랜 세월 소식도 없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오리 2마리와 달걀 22개’를 선물로 싸들고 하노이까지 동생을 만나러 갔다. 그 뒤 누나는 고향마을에서 보통의 농촌 아낙네로 살다가 9년 뒤 죽었다. 형도 동생을 만나러 갔으나 호찌민은 형을 관저에 들이지 않고 교외의 친척 집에서 1시간 정도 만났을 뿐, 그 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것은 호찌민의 결벽증을 전해주는 삽화들 가운데 하나다. 어쩐지 잘 만들어진 우화 같은 느낌도 들지만, 이야기의 진위야 어떻든, 이런 이미지를 호찌민 자신과 그 동지들이 전략적으로 중시하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얇은 파자마 같은 농민복을 입고 폐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은 가난한 사람들이 강대한 미국을 상대로 싸웠다. 이런 청빈 이미지가 남베트남 정권의 부정부패를 증오하는 국내 민중에게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항미(抗美)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데 사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청빈과 도덕성은 빈자나 약자가 부자나 강자와 싸울 때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노무현씨와 호찌민을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굳이 그런 시각을 제시해보고 싶어졌다.

     

    이명박 정권이 검찰을 동원해 정치보복을 했다는 얘기는 사실일 것이다. 거기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정치권력은 으레 무자비하고 낯 두꺼운 정치보복을 한다. 노씨가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재임중에 그런 걸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았다면 가열찬 정치투쟁을 한 지도자로서는 좀 서툴렀던 게 아닐까. 본인은 받은 줄도 몰랐던 것 같고, 문제가 된 돈의 액수도 과거 권력자들이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고 누가 변명해줄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씨가 내건 원칙과 그에게 쏠린 기대를 생각하면 그것도 구차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한다면, 노씨와 그 주변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도덕성이라는 귀중한 무기를 잃은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사건 다음날 이렇게 논평했다. “대통령에게 강대한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하에서 사리사욕을 탐하는 세력이 지연·혈연을 이용해 대통령 주변에 접근하고, 가족 측근들도 온통 돈으로 오염되는 추태가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돼 왔다. 청렴결백을 표방한 좌파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보수파가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세력의 도덕성을 냉소하는 그런 일을 허용해선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구실을 주고 말았다. <요미우리신문> 사설은 이어진다. “노무현 전 정권 시대에 한일관계는 역사인식이나 다케시마(독도) 문제로 냉각돼 정상끼리의 셔틀외교도 중단됐다. 당시 한국은 일방적인 북조선 지원 쪽으로 기운 유화정책을 고집했고 그 때문에 일본·미국과의 안전보장관계는 삐걱거렸다. …노무현씨의 죽음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여기엔 노 정권의 역사적 공적이 거꾸로 투영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역사인식 문제로 일본에 단호한 자세를 취한 것은 <요미우리>에겐 문제였을지 몰라도, 재일조선인뿐만 아니라 식민지주의와 싸워온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부터는 큰 환영을 받았다. 남북관계에 대해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더는 과거의 대립시대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그런 급속한 시대변화를 일본 보수파는 즐기고 있다. 이 시대를 그런 식으로 지나쳐버려도 좋은 걸까?

     

    노무현씨는 호찌민만큼 청빈하진 않았고 다른 많은 정치지도자들만큼 낯 두껍지도 않았다. 그가 훌륭한 것은 자신의 실책과 약점을 인정할 줄 아는 정직성의 소유자라는 점이리라. 내가 그에게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그도 마침내 어깨짐을 벗었다. 하지만 그가 벗어버린 어깨짐은 곧 다른 누군가가 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짐에는 상처받은 도덕성의 재건이라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덧붙여졌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Posted by 렛츠고
    ,
  • 09.06.04 08:52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26

    [여론조사] "盧 서거, 현 정권 책임"

     

    ◀ANC▶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서는 현 정권의 책임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여론은 부정적입니다.

    이어서 왕종명 기자입니다.

    ◀VCR▶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
    본인의 책임이 크다 36.6%,
    외부의 책임이 더 크다 60.8%였습니다.

    외부의 압박이 주된 요인이라고 답한
    응답자에게, 그러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냐고 묻자
    이명박 대통령을 지목한 답이 39%,
    검찰 27, 언론 21% 순이었습니다.

    둘씩 꼽으라 했을 때는
    검찰 64, 대통령 55, 언론 45%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치보복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 62.5%로,
    정당한 수사로 본다는 의견 32.2%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검찰 수사 자체도 공정하지 않게
    이뤄졌다는 의견도 58.3%에 달했고,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로는
    가족과 측근에 대한 과도한 수사 확대,
    확인되지 않은 혐의로 망신주기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정국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67.8%가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풀기 위해서 대화 등
    유화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54%,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요구 42.5%보다
    약간 높았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고 보는 견해는 49.9%로,
    옳은 방향이라는 43.6%보다 많았습니다.

    이번 조사는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전화로 했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입니다.

    MBC 뉴스 왕종명입니다.

     

    원문 출처: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359022_2687.html

  • Posted by 렛츠고
    ,
  • 09.06.02 17:52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20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보내며


                                                             
    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고전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인간, 즉 왕이나 장군, 반인반신의 용사들인데, 이들은 타고난 운명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외디푸스왕이나 햄릿 왕자, 발렌쉬타인 장군은 모두 고귀한 신분과 준수한 용모, 고매한 인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타고났으나 한 순간에 영광의 절정에서 치욕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러한 추락의 낙차가 클수록 관객이 느끼는 공포와 연민의 강도는 증가한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아내는 미적 정서는 흔히 숭고미와 비장미로 규정된다.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비상하다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추락하는 주인공은 외경과 감동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미와 비장미는 역사적 인물들의 죽음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사한 이순신과 관운장은 ‘성웅’과 ‘군신’으로 추앙되고,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다가 처형된 전봉준과 스파르타쿠스는 비운의 혁명가로 미화된다.

    그의 비극적 죽음,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


    그렇지만 노무현의 죽음은 이러한 숭고하고 비장한 영웅들의 죽음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고전비극의 주인공처럼 왕이나 장군, 귀족도 아니고 반인반신의 용사도 아니었다.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혁명가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지도자, 신출귀몰한 책략가도 아니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으나,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고집 때문에, 인권 변호사로, 바보 정치인으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의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농민으로 돌아온지 1년만에 절벽에서 몸을 던진 어수룩한 촌놈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되 그 추락의 낙차는 크지 않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결코 신비로운 만년설로 빛나는 절대권력의 봉우리에 올라간 적이 없었고 그저 해발 백 미터의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다가 부엉이바위에서 사십 미터 아래 골짜기로 떨어졌을 뿐이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휘두를 수도 없었으니까. 기득권 세력은 탄핵으로 그를 무력화시켰고 재벌의 앞잡이인 수구족벌언론은 집요하고 야비하게 그를 씹어댔다. 이제 권력은 청와대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탄식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진단이었다. 그는 시장의 힘에 떠밀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함으로써 지지층으로부터 고립되었고, 퇴임 직전 힘겹게 성사시킨 남북정상회담의 영광도 그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의 무조건적인 ‘거꾸로/뒤집기정책’으로 원천무효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그의 비극적인 추락이 4·19 5·18, 6·10으로 얻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과에 안주했던 우리 모두의 탐욕과 나태와 위선의 결과임을 깨닫는다. 한때 그에게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던 서민 대중은 주식과 대운하, 뉴타운으로 떼돈을 벌어볼 욕심에, 이른바 386세대의 중산층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어 출세시키기 위해, 등을 돌렸다. 민주시민과 노동자, 지식인들은 반대세력을 모질게 짓밟지 못하는 촌놈 노무현의 무력함과, 속내를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투박한 언행을 나무라며 현실정치를 외면하고 한탄만 하다가, 허황한 경제살리기 747공약을 내세운 수구기득권세력에게 민주주의를 헌납하고 말았다.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


    노무현의 죽음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야만성을 증명한다. 온갖 풍파에도 끄떡없이 버텨온 세련되고 영악한 기득권세력은 재산도 학벌도 없는 시골 출신 대통령의 우직한 정의감을 비웃고 왕따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가 낙향한 고향 마을까지 따라와 처자식과 친구, 후배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끝장을 볼 때까지 괴롭혔다. 물고 뜯고 짓밟고 조롱했다.

    약삭빠른 수구족벌신문과 방송은 권력에 빌붙어 알량한 잇속을 챙기려고 온갖 거짓말과 욕지거리를 끝없이 쏟아냈다. 심지어는 소박한 촌집이 ‘아방궁’으로 왜곡되고, 봉하마을을 찾는 버스에 30만원씩 돈을 준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나는 1980년대에 전라도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선생 만세’를 외치치 않으면 기름을 팔지 않는다는 유언비어를 대학 교수휴게실에서 들은 적이 있다.) 줄을 풀어준 너그러운 주인한테 버릇없이 대들던 검찰과 경찰은 강퍅한 새 주인이 ‘물어라 쉭’ 하고 줄을 당기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전 주인이건 누구건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정적을 역적이라고 모함하여 유배를 보내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3족을 멸하여 씨를 말리던 왕조시대의 잔혹한 정치보복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토끼몰이를 당하는 고통이 오죽했으면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도 없다”고 비명을 질렀을까. 그들이 악에 바쳐 부르짖던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는, 민주화의 대세에 밀려 빼앗겼던 기득권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되찾아 다시는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과연, 그들은 ‘촛불’로 흔들리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언론과 집회와 표현의 자유, 남북화해, 양극화 해소 등 보편적 가치와 상식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경멸을 불사함으로써 우리시대를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내팽개친 ‘야만의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이 기막힌 퇴행과 모욕에 맞서 힘없는 농민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온몸을 내던져 지켜내는 투신뿐이었으리라.

    잘 가시오, 벗이여!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치욕을 감수하며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했던 노무현은 너무도 우직한 촌놈이었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인 자연”으로 돌아갔다.

    1946
    년 병술(丙戌)생 개띠. 그가 기득권세력의 사냥개들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았던 개같은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탐욕으로 파헤쳐지고 남북분단과 지역주의로 갈갈이 찢긴 산하를 장엄하고 처절한 낙조로 물들이며.

    잘 가시오, 벗이여! 같이 태어나 같은 길을 걷다가 먼저 간 동갑내기 도반들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본다. 화가 오윤, 시인 김남주, 음악가 문호근, 변호사 조영래 그리고 바보 촌놈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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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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