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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9 [서평]정관용,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모처럼 짬을 내어 포털 뉴스란의 헤드라인들을 살펴 보니, MBC 엄기영 사장께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뉴스가 실려 나오네요...
언뜻 주변으로 흘러나오는 기사들을 보니, 정치권 진출(도지사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서 사표를 내는 것이라고, 민주당에서 영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을 거라 한다는 말도 함께 들려오는군요...

저는 언론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인들 중에 존경할 만하다 싶은 사람들을 사실 별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한때는 괜찮은 언론인이었다 싶은 분들이 결국에는 자신의 팔린 얼굴이나 인기를 무기로 하여 정치권으로 진출을 하게 되고,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언론 방송인 출신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주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는, 박찬종이나 홍사덕, 그리고 맹형규, 박성범, 정범구 같은 분들.... 요즘은 여류 정치인들도 꽤 많아졌지요... 전여옥 같이 지잘난 맛에 독설을 뿜어대는 여인네들이 있는가 하면, 박선영, 신은경 같은 이들도 있고, 김은혜처럼 정치부 기자에 뉴스앵커를 거쳐 청와대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언론/방송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들은 공인으로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또 그 공인성과 신뢰도를 이용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곤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치적인 적군이나 타 정파들에게는 일차적인 공격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송인 출신 정치인들이 가지는 장점이자 맹점이랄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방송인들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와 정체성에 대해 공격당할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한 도전'입니다. 그 만큼 신중하거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일 거구요... 그동안 정치와는 최대한의 거리를 둔 분으로 나름 공정 방송, 혹은 인간적인 방송의 표본으로 지키고 싶은 엄기영 사장 같은 분이 과연 일개 도지사 직을 차지하기 위해 MBC라는 방송사 사장직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저는 무척이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꼭 그러지 말란 법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믿어왔던 엄기영 사장님의 이미지로 보자면, "도지사 출마을 위한 사퇴"라는 해석은 한나라당이나 MB쪽의 정치 참모(나쁘게 얘기하면 모사꾼)들이 그의 사퇴에 대해 끊임없이 나돌았던 청와대나 여당의 압력설을 희석시키기 위해 "물타기" 용으로 자작해내는 루머로 우선 해석됩니다....

설령 누군가의 추천이나 옹립을 통해서 마지 못해, 혹은 뭔가 가슴 속에 품을 뜻을 펼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그런 존경받는 방송인들이 정치권에 들어설 입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넓게 열려 있다고 보니까요...

엄기영 사장님과 유사하게 제게 그런 심정을 갖게 하는 두 사람의 방송인이 더 있는데, 바로 MBC 시사토론을 주도했던 손석희 교수와 KBS 시사토론의 사회를 주도했던 정관용 선배입니다. 방송인 정관용 님에 대해 굳이 "선배"라 호칭하는 것은 실제로 학교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사회 조직에서도 선배로 모시고(?)  짧게나마 같이 일을 해본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MB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이른바 방송계 내의 "좌파"를 척결한다는 미명(?)아닌 미명하에, 디제이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시사 토론이나 사회 고발성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진행(사회자를 포함해서)을 주도했던 세력들에 대한 일종의 숙청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관용, 정연주, 손석희, 엄기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들이 과연 "좌파냐" 하는 논쟁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10여년이 넘게 전 국민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공간 앞에서 너무나 오래동안 자신의 모습을 늘상 노출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이념적 지향점이나 색깔에 대해 굳이 규정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이들의 지향점은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늘 중립의 위치에서 합리와 상식, 중도를 표방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였던 "중도적 조정자"로서의 모습이 좌파에게는 우로 보이고, 우파에게는 좌로 보였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즉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규정이라서, 절대적으로 이들의 색깔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 중의 한 사람인 정관용 선배가 최근에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책을 출간했더군요... 출간 소식를 듣자마자 직접 온라인 주문으로 구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방송 토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꼭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에서부터 솟아나서 이렇게 서평 글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이 책의 소제목이랄까, 케치프레이즈랄까 하는 부제는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소통의 부재" 라는 말입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4대강 예산이 변변한 토의도 없이 원안 통과가 강행되는 마당에, 실상 우리 사회는 소통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탕"을 한다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 책은 바로 "소탕을 끝내고 소통의 단초를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싶었던 저자의 간절한 소망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필이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책의 제목 자체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듯이,
책 문두의 서문 또한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볼테르 | 1694-1778 "

어쩌면 이 책의 논지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건 볼테르의 이 한 마디에 담긴 정신과 철학일 것입니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소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 정관용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시작이요 끝이라 보입니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 방송토론 잊어버리기, 2장 불통공화국, 대한민국, 3장 적대적 공존관계에 빠진 한국정치와 언론, 4장 소통하는 대한민국 만들기 로 전개되고, 뒷 부분에 요약에 해당하는 부록-배우는 토론, 설득의 법칙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뒷 부록에는 방송토론에 어떻게 임하고 준비하면 좋은지에 대해 방송토론 일선에서 사회를 맡았던 저자의 경험적인 팁들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10년이 넘게 방송토론을 주도해 온 사회자 출신의 저자가, 정작 토론 일반에 대해 논하면서 첫번째 요구사항이 바로 방송토론을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의미심장합니다. 저자는, 우리 머리 속에서 그동안 마치 토론의 전형처럼 자리잡고 있는 '방송토론에 대한 통념'과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출발하지 않는 한 토론의 본원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말의 속내는 우리나라의 방송 토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토론 패널 출연자가 일반 시청자 중 중도적 입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층"들을 설득하여 내 편으로 만드는 "포섭"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미 "내 편"인 사람들에게 "우리"의 논리를 강변하여 명쾌하게 확인시켜주고,  더 좋기로는 상대편을 촌철살인 한 방의 말 펀치로 케이오!! 시켜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인기"와 "박수"를 얻어내는 데 목표를 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송토론은 "토크 쇼"의 하나일 뿐, 상대방, 혹은 중간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설득의 도구나 방법으로서 토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토론이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할 때, 또 양쪽 입장이 모두 옳을 수 있는 경우 시작되는 것으로, 어떤 가치나 정책에 대한 논제 가운데 찬반양론이 모두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고, 스스로의 장점을 입증하기 위한 논리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때라야 비로소 적절한 토론의 논제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규정합니다.

당연히 토론은 양측이 각자의 논리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각자 자기 주장의 장점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과정인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논리적 모순이나 비합리성을 찾아내 공박하는 과정이자, 자신의 주장 중에 문제가 있는 대목들을 걷어 내고 상대방의 내용 중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받아들여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거나,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 경우 "공통의 합의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이란 것입니다.

저자는 방송토론은 기본적인 속성상 이처럼 공통의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으로서의 목적과는 많이 상이하기 때문에 애시당초 토론의 모범이나 전형이 될 수가 없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토론 하면 방송토론을 떠올리기 때문에, 방송토론의 해악이 너무 크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방송토론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구요. 쇼로서의 방송토론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토론의 모습은 구분해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특히 우리나라의 방송토론이 갖는 대부분의 해악은 토론이 갖는 특성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론에 임하는 토론자들의 "태도"의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합니다. 즉 일상적인 토론에서는 그러지 않던 사람들도, 방송토론에 어느 한 집단을 대표해서 나오게 되면 그 순간, 중립자나 중도의 부동층을 상대로 설득한다는 토론의 기본 전제를 망각하거나 아예 제쳐두고 자기 편 사람들에게 더 큰 박수를 받음으로써 인기를 관리하려는 "카타르시스 창출의 대변자" 역할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송토론의 해악과 구조적인 한계에 대한 폭로(?)에 이어서, 저자는 2장 불통공화국, 대한민국 편에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토론에 그토록 어려움을 느끼는지, 왜 토론이 아닌 언쟁, 심지어는 인신공격을 일삼게 되는지에 대해 그 역사적인 연원을 살펴봅니다.  급속한 경제성장, 초고속 압축 성장이 초래한 세대간, 지역간 격차와 물질과 정신의 불일치, 이로 인해 파생된 최악의 "문화지체"로부터 그 연원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정치와 언론이 적대적인 공존 관계에 빠짐으로써, 이러한 소통 부재 현상을 해소하기보다는 도리어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소설가 김훈 선생의 표현을 빌어서,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 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는 김훈 선생의 말을 빌려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의식을 작금의 언론을 향해서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 사회의 불통 구조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 마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희망을 찾기 위해 그 해결의 실마리, 소중한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마지막 4장에서 우리가 기존의 "적대적 공존관계" 대신에 "건설적인 대립관계"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해 보고자 시도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소박한 출발점,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로 하여금, 성공신화의 주술로부터 벗어나서 행복신화로 대체토록 하자"는 것입니다.

즉, 이기고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한 경쟁, 뺏고 빼앗기는 약육강식의 전쟁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사회에서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 수밖에 없는 "성공의 미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공존과 나눔에 기반한 최소 행복의 추구를 기본적 가치이자 권리로 새롭게 인식하고 이것을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로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재산이 얼마냐고 묻기 전에 얼마나 행복하냐고 묻는 사회, 함께 행복하자고 서로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그런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회색도 엄연한 하나의 색깔"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검거나 희거나, 흑백 택일이 아니면 안된다는 '편 가르기'의 논리를 넘어서서, 검은색과 흰색의 성질 둘 다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색깔로서 회색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회색인이 당당할 수 있도록" 용인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우에 따라, 사안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의 장점만을 가려내고 섞어서 우리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하며 글은 끝이 납니다...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저자 정관용이 던지는 또하나의 토론 화두, "회색은 색이 아닌가?" 라는 테마가 결코 가볍게만 들리지 않기에, 우리 시대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십사 강권합니다.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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