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 그도 한때는 나름 공영방송 KBS의 메인 앵커를 맡았던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자 국회 부의장이란 양반이, 직권상정만 슬쩍 해놓고 의사봉 두드리기를 피해간 "비겁한" 국회의장을 대신해서 표결 절차를 진행했더군요. 되풀이 방영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 양반이 만약 지금도 뉴스방송의 앵커를 맡고 있다면 그 날 국회의 비상식적인 표결 행태에 대해서 과연 뭐라고 멘트를 날렸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투표를 종료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차! 이런... 정족수 숫자가 모자라는군요.... 에~~ 그럼...) 다시 투표해 주십시오, 다시 투표해 주십시오...."
재석의원 과반, 표결 정족수에 미달하자 뒤늦게서야 허둥지둥 "표결 불성립"이라는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용어를 동원하여 표결 결과를 번복하면서 즉석에서 다시 재투표를 해서 통과시키는, 이 희안하고 어처구니 없는 코미디를 보면서 국민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아! 대한민국 국회 헌정 역사의 수치이자 한심함의 극치!!
의회 민주주의 혹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기본마저 무너뜨리는 이 다수 여당의 뻔뻔스러움과 후안무치한 작태들...
많은 선진국들의 의회에서 보자면 정말이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을 이 코미디 명장면은 아마도 우리나라 국회 역사에 두고두고 치욕의 사례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어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아마도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 제도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비민주적" 표결의 모범 사례(?)로 교육될 것입니다.
의회민주주의 선진국인 유럽 뿐만 아니라, 한때 프로레타리아 일당독재를 자랑했던 러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라면서, 러시아 언론들이 대한민국 의회의 멱살잡이 모습을 대서 특필했다는군요....
http://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411288&page=1&menuid=8&boardtype=L&articleid=8313
위의 링크 한번 눌러 보시지요... 에효~~ 국제적인 개망신...
법안 통과 경위야 어찌 되었건 다수당의 희안한 표결로 통과된 법안을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방통위는 법안 시행령을 마련하겠다는 둥 쇼를 하면서 "굳히기 작전"에 돌입하는 형세입니다. 문제는 방송법의 재투표 과정의 석연찮음에 더해서, 다른 법안들의 표결 과정에서도 남의 투표 버튼을 대신 눌러주는 대리투표 정황까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절차상 무효의 소지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 사무처는 표결 당시 의원석 상황을 담은 CCTV 화면을 보게 해달라는 야당측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는데, 표결에 하자가 없고 떳떳하다면 뭐가 구려서 증거화면들을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동네 반장 선거나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해도, 한 사람이 다수의 표를 행사한다거나, 내가 찍어야 할 표를 남이 대신 찍어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표결권의 침해요, 엄격하게 불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번 미디어 관련 법안들의 이상한 표결 처리는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향후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그 결과에 관계 없이 두고 두고 논란의 소지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법안의 정통성 또한 끊임없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온갖 비난과 국민들 눈보기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런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통과시킨 것은 과연 그들에게 득이 될까요, 아니면 독이 될까요??
경향신문을 보니, 그동안 역대 정권들이 "악법 날치기 강행" 이후 어떤 전철을 밟았었는지를 죽 정리해본 기사가 있더군요..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제가 한나라당 사람이라면 뒤가 구리고, 마음이 불안 불안 한 것이 앞으로 영 잠자리가 개운치 않을 듯 싶습니다...
국민 상식에 부합할 듯 잠깐 제스처를 쓰다가는 은근 슬쩍 자신의 당내 존재가치(입김의 힘)만 확인하고 냉큼 조중동의 요구에 빌붙어버린 박근혜 또한 자신의 줏대없음과 수구적 본질을 다시 한번 국민 앞에 드러냄으로써 대중 지도자로서의 자질 부족을 여실히 증명해준 셈이고요...
정치 싸움판은 이래서 구경할 맛이 나고, 역사는 그래서 공부할 맛이 나는 모양입니다...
지나온 역사, 아래 기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조용히 리뷰해 보시지요....
다수결의 파워가 과연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득이 되는지, 아니면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독이 되는지.....
<경향신문 2009.07.27>
‘직권상정’ 9대 국회서 첫 도입
역대로 집권당 또는 다수당의 국회 ‘날치기’는 반대당과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민심 이반을 가속시켜 ‘날치기 세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민심 이반에 부딪혀 날치기된 안건이 철회되거나 개정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은 1973년 9대 국회에서 처음 도입됐다. 9대부터 11대까지는 한 차례도 시도되지 않다가, 12대 국회부터 집권여당에 의해 날치기 처리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역대 직권상정을 통한 날치기 중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96년 노동법 날치기였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제3자 개입 금지’ 등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다.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로 진척이 없자, 여권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 같은 해 12월26일 새벽 신한국당 의원 155명은 본회의장에 ‘몰래’ 모였고, 노동법 등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노동계의 파업은 한 달여간 이어졌다. 파업 등으로 3000여명이 구속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놀란 여권은 97년 3월 야당 및 노동계와 협상을 통해 민주노총을 합법화하고, 3자개입 금지 조항을 없애는 내용으로 노동법을 재개정했다. 하지만 민심은 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렸고, 이후 한보사태에 이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97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신한국당 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다시 역사에 기록될 강행처리를 시도했다. 야당이지만 제1당인 한나라당은 옛 민주당과 함께 소수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저지를 물리력으로 봉쇄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옛 민주당은 촛불집회 등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고,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역사는 되풀이돼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2005년 12월9일 한나라당과 몸싸움 끝에 직권상정을 통해 개방형 이사제를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 대표 주도로 장외투쟁에 나섰고, 사학재단과 종교계 등이 ‘날치기’라며 반발했다. 열린우리당의 정국 주도력이 위축됐고, 사학법은 결국 2007년 재개정됐다.
앞서 독재정권 시절에 벌어진 대표적 날치기 처리들도 야당의 강한 반발과 민심의 이반을 가속시켜 종국에는 정권의 몰락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았다.
1958년 12월 집권 자유당은 국가보안법 통과를 위해 경호권을 요청,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개정된 보안법을 적용해 진보당을 해산하고 죽산 조봉암 선생을 사형시켰다. 하지만 이로써 촉발된 민심 이반은 60년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79년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 의원 제명안 처리를 위해 국회 경호권을 발동했다. 공화당은 회의장을 옮겨 단독으로 제명안을 의결했고,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극한투쟁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부마 항쟁 등 민주화운동이 전국에서 발발했고, 박정희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우규 기자 banco@kyunghyang.com>
<한겨레신문 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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