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주문도 하지 않은 책이 한 권 택배로 도착했다.
보낸 사람이 @영철!
대학 시절 캠퍼스를 함께 하면 이른바 운동권 패밀리를 함께 했던 84학번 서울농대 동기다.
지금은 동문 친목회로 유지되고 있는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친구다. 

한해를 보내면서 모임 동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며 잘 읽으시라는 안내 문자가 책 받은 이튿날 아침에 들어왔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대학 동기가 꼭 읽어보라며 선물로 보내온 책 한 권과,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로서 주문한 책 한 권!

어제 오후 강남 쪽에 약속이 있어 나가는 길에 지하철에서부터 서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방금 아침에 막 읽기를 마쳤다.
내용이 정말 재미 있고 쉬운데 시의성까지 넘쳐서 술술 익힌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 문턱에서 고민해야 할 게 무엇인지 문제의식을 쉽고도 설득력 넘치는 글로 매우 절실하게 던져준다. 

225쪽 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분량인데, 통찰력이 넘쳐나서 책 귀퉁이를 접어 책갈피를 한 곳만 30군데가 넘는다. 그 중 눈에 띄는 몇 구절만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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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2019년 기준, 인구 10만명을 기준으로 자살 사망을 계산하는 자살율은 26.9명, OECD 국가 중 1위다. 그런데 이것은 반쪽만 말한 것이다. 평균은 26.9명이지만, 70대가 되면 46.2명으로 오르고, 80세 이상은 무려 67.4명으로 치솟는다. 한국은 자살률이 아니라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나라다. 노인이 되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더 이상 살 길이 없어 스스로 죽는다는 것이다. 이런 각박한 판에 무슨 용기로 애를 낳겠는가?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몸집만 불려서는 안 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시기에 맞는 국정 지표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중산층의 비율'이라는 선진의 지표가 있다." (33쪽)

"선진국이 되기까지 지독하게 달려왔다. 바람처럼 내달린 몸이 뒤쫓아오는 영혼을 기다려줄 때다. 해결해야 할 '문화지체'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무턱대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과 '왜'를 물어야 한다. 언제나 문제를 정의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숫자가 말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이 말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돈을 썼으면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국가 CIO(정보최고책임자)와 CDO(디지털최고책임자)는 이를 위해서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지표를 바꿔야 한다. 서른이 넘었으면 키 재는 건 이제 그만!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선진국이다. " (36~37쪽)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입말'을 방송에서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인터뷰를 보자.

"검찰 개혁이 시대적 화두라면 그곳에 종사하는 이들의 정신 상태에 자극과 변화를 줘야 한다. 그들이 당연하다고 쓰는 '폼 잡는 말'을 우리가 먼저 뭉개버리면 된다. 영장 발부? 그냥 '영장을 쳤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돌려보냈다'고 하면 된다. 박근혜 탄핵안이 인용됐다는 보도에 태극기 부대가 박수를 쳤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박근혜가 탄핵됐다'고 보도하면 된다" (56쪽 인용문)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도 있지만 동시에 2차 대전 이후의 독립국이다. 아주 짧은 미성숙의 근대와 현대를 동시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이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제도나 합의가 있는 것처럼 접근해서는 올바른 해답이 나오기 어렵다. 지금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 우리가 하나씩 합의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59쪽)

"컴퓨터는 0과 1만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논리적이지 않으면 컴퓨터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 프로그래밍을 한마디로 말하면 '예외를 처이라는 일'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사고와, 경우의 수를 생각해내는 상상력, 예외를 처리하는 창의성을 기르는 게 곧 AI 교육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82쪽)

"대한변호사회협회가 몇 년 전에 변호사 1586명에게 조사한 결과는 93.7%가 판결문 공개를 지지한다고 했다. 반면 대번원 조사에서는 응답한 판사 1,117명중 미확정 형사 사건 판결문 공개에 대해 찬성한 것이 20.6%에 불과하다. 변호사들의 상당수가 전직 판사다. 법복을 벗자마자 의견이 바뀐다면 논리 외의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선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
판사들은 대배분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공개에 반대하는데, 이런 주장은 '지구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해가 서쪽에서 떠'라는 말처럼 들린다.  미국, 영국과 같은 나라는 불문법이다. 명문화된 법이 있는 게 아니라 과거의 판결, 즉 판례에 따라서 판결을 하는 나라다. 당연히 '미확정 실명 판결문'을 전면 공개한다. 공개 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문을 당연히 공객한다는 논리다. 미국은 판결 이후 24시간 내에 온라인 사이트에 미확정 판결문을 게재한다. 영국, 네덜란드는 미확정 판결문을 1주일 내에 공개한다. 영국과 미국이 프라이버시 보호가 우리보다 몇 배나 엄격하면 엄격하지, 못할 리가 있나. 미국 영국이 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는데." (94쪽)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사회가 받아든 가장 큰 질문은 '히틀러가 다시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었다. 

이 고민을 풀기 위해서 독일의 진보,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 지식인들이 조그마한 시골 도시인 보이텔스바흐에 모인다. 그리고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정치교육 3원칙'에 합의한다. 그 이름을 따 '보이텔스바흐 협약'으로 불린다.

협약엔,

- 강제적인 교화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며
- 논쟁적인 주제는 다양한 입장과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고
- 학생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해 스스로 시민적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니까 독일의 시민 사회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성숙한 시민'이었다. 즉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갖추는 것 못지 않게 그 제고를 운영하는 시민의 역량도 중요하다"라는 것이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정치 교육을 한다.

독일 출신 방송인인 다니엘이 자신의 고교 시절 정치교육 수업을 회고한 게 있다. 수업은 대부분 토론식인데 고1 때 다룬 주제는 '민주주의 대 사회주의'였다. 몇 주 동안 교실의 모든 학생이 참여해 양 체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데, 이 수업의 특징은 하나의 관점에만 머물지 않고 반대 입장으로 바꿔가며 토론한다는 점이었다. 같은 학생이ㅣ 지난주에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논리를 폈다면 이번주엔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한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105쪽)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도심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았던 4차선 도로 인스파트 거리를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만들었다. 상인들의 반발이 엄청나게 거셌지만 결과는 매출이 30%나 올라갔다. 가게 앞 길에 테이블을 놓을 수 있게 되면서 가게의 운신도 더 자유로워졌다. 브뤼셀시는 지하에 대규모 자전거 주차장을 설치해 지하철과 자전거가 끊김 없이 연계될 수 있게 했다. 
전철과 버스, 트롤리, 마이크로 버스, 공용 자전거 등을 제대로 확충하는 한편으로, 승용차가 다니기 불편하게 만드는게 옳다. 한명 많아야 두 명이 승용차를 타고 기름을 낭비하는 일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 때가 됐다. " (129쪽)

"지난 2000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주요 고객의 주식 거래를 위해 600명의 트레이더를 고용해더. 그런데 17년이 지난 2017년 같은 일을 하는 직원이 불과 2명이다. 분당 수백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자동거래시스템이 대신했기 때문이다. 
AI가 고졸자보다 대졸자에게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AI가 고졸 이하 인력보다 대졸자를 5배 가량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153쪽 인용문)

"우리가 (AI=인공지능에 대해) 오해를 하면 안되는 게, 이게 이름에 '지능' 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해서 실제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예를 들어 알파고는 바둑을 배운 게 아니다. 엄청난 연산을 통해서 최적에 가까운 값을 찾은 것뿐이다. 그게 바둑이든, 고양이 그림을 찾는 것이든 컴퓨터에게는 똑같다. 가령 알파고가 두 점 접바둑을 두려면 처음부터 모든 학습을 새로 해야 한다. 맞바둑일 때, 먼저 두는 흑이 여섯집 반을 백에게 주는 조건에 맞춰 최적화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바둑을 배웠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숨겨진 패턴을 찾기 때문에 입력 데이타가 이상하면 결과도 터무니없어진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에게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라는 과제를 주었다고 해보자. 우연히도 주어진 모든 여자 사진이 입을 벌리고 있는 장면이고, 모든 남자 사진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진이라면 인공지능은 아주 간단히 '입을 벌린 게 여자'라고 결론을 내버린다. 아무리 성는이 좋은 인공지능이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가장 명확한 패턴이 입을 벌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 계산에서 전체 시간의 80%가 데이터를 정제하는 데 쓰인다. 아무리 알고리듬이 훌륭하고, 컴퓨팅 파워가 막강해도 오염된 데이터를 넣으면 오염된 결과가 나온다. " (165쪽)

"뉴스 추천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에 의한 추천이 공정한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공정하게 추천하면 이런 모습일 거야'라는 모델이 있어야 한다. 비교 셋이 있어야 추천 결과가 정확한지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델은 누가 만드나?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류의 말은 기술을 하는 사람이 함부로 해선 안 되는 말 중에 하나다. 아마도 그 말은 한 사람은 엔지니어가 아닐 것이다." (172쪽)

"컴퓨팅적 사고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일반화하는 과정이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는 문제는 다양한 변수에 기반한 포괄적이며 유의한 해답 도출이 필요한데, 컴퓨팅 사고를 통해서 발견한 문제 분해, 자료 표현, 일반화, 모향, 알고리듬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경우, "만약 열쇠가 방에 없다면 차 안을 찾아본다. 차 안에도 없다면, 코드 주머니 속을 찾아본다. 어는 곳에서도 찾지 못했다면 열쇠를 새로 만든다"와 같이 프로그래밍 언어의 " If, elif, else" (만약 ~이라면, 그렇지 않다면) 와 유사한 구조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

요약하면 컴퓨팅적 사고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그 중에서도 단답형이 아니라,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크고 복잡한 문제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다룰 만한 크기로 만든 다음, 그 안에 있는 패턴이나 규칙을 찾아내고, 이것을 일반화해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는 다시 고민하지 않도록 풀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이것을 방법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알고리듬이 된다." (193쪽)

"미국의 인구통계조사국에 따르면 미국 전체 2,500만여 기업 가운데 약 78%가 1인 기업이다. 1990년대 말 벤처 거품이 꺼지자 미 서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창조형 1인 기업" 창업 붐이 일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만 3만 3천개의 1인 기업이 설립됐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통해 창출된 고용효과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신규 고용 수준을 넘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 1인 기업의 한 축에 앱스토어에 자기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올려 매일 2천 달라를 버는 대학생도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고민할 것은 '생태계의 복원'이다. 
생태계는 '순환'한다. 망치는 것은 순간이면 되지만 되살리는 데는 한 세대가 필요할 수 있다. .... 생태계는 전체 사이클의 어느 하나만 건드려서 살아나지 않는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리는 일이 곧 한국 사회를 되살리는 일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202쪽)

"키보드가 더 작아질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손가락이 더 작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수저가 바뀌지 않는 것은 인간의 입과 손이 더 발전하지 않기 때문이고, 책걸상이 발전하지 ㅇ낳는 것은 우리 엉덩이와 다리가 발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이 더 발전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귀가, 우리의 영혼이 더 발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발전'은 이 지점에서 발을 멈춘다. " (224쪽)

"아주 궁금하고, 또 간절히 바라는 것은, 계몽주의의 자식인 이 "끊임없는 발전'을 인간을 위해 제어할 방법, 또 다른 철학이다. 인간이 발전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는 거은 갈수록 분명해져 가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변명, 세계화에 대한 가장 단호한 명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라는 것으, 우리가 발전을 제어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의 입, 사람의 귀, 사람의 마음은 더 발전하지 않는다. 역사의 어디쯤에서 우리가 원할 때 "이제 그만 충분하다"라고 속도를 늦추고,, 멈춰 설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225쪽 끝!)

책을 잡자마자 하룻밤새 끝까지 읽어버리게 되는 책이다! 눈 떠보니 선진국! 지은이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근래 들어 원고 작업에 몰두하느라, 굶주렸던 탓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머리말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를 끝내 버렸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 이런 책은 누구라도 한번쯤은 읽어둘 필요가 있다.

"어떻게"를 묻기보다 "무엇을, 왜"를 물어야 할 때라고 강조하는 저자의 생각에 십분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타깃을 찾아주고, 머신러닝이 광고 효율을 높여주는 시대에 마케터가 해야 할 고민과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가 아니라 왜 라는 곽팀장의 문제의식이 이 책과 판박이다!!

위 책 일독(꼭 한번 읽어볼 것)과 더불어 아래 영상 일청(꼭 한번 시청할 것)을 강추한다!!
https://youtu.be/1Y0DPASJW04

 

오늘부터 새로 읽을 책은 "인간 이재명" 이다!!
"어떻게(누구를)"에 대한 답이 아니라 "왜" 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다!! ^^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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