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이던가, 도올 김용옥 교수가 한 때 KBS를 통해 해박한 지식과 걸죽한 입담으로 청강생 머리에 침을 튀겨가면서 노장 사상을 강의해 한창 장안의 화제가 될 무렵,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당돌한 책을 통해 도올의 노자 해석에 일침을 가해 일약 또 다른 스타로 등장했던 이경숙 아줌마. 그녀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도올이 MBC로 되돌아온 이 무렵에 자신이 한 글자 한 글자 원문을 번역했다며, 도덕경 완역본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사실 난 아직 "노자를 웃긴 남자"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다만 도올의 노자 이해를 도올 만큼이나 걸쭉한 입담으로 비판을 해 놓았기에 상당한 원전 이해의 경지에도 불구하고 정제된 학문적 논쟁으로 비치기보다 육두문자식 싸움으로 비쳐 오히려 그 비판서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는가를 우려한 한두 가지의 서평만을 보았을 뿐이다.

아무튼 그런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이번엔 다른 특정인을 지칭한 비판이나 세간의 재미삼은 입방아 따위는 싹 거두고 그야말로 원문 독해에 입각하여 도덕경을 충실하게 해설하고 있다. 표현은 비교적 점잖게 진행되지만, 적어도 한자로 된 고전에 대한 번역의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 만큼은 이번에 결판을 내기로 아주 작심을 한 듯 보인다.

도경과 덕경이 따로 2권의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합해서 81장으로 구성된 책의 20장까지를 읽었으니 이제 겨우 4분의 1 정도를 읽어본 셈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참으로 한문 고전의 번역과 이해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 주었다.

류영모 선생의 강론을 풀어 엮은 박영호의 도덕경과, 최진석 교수가 해설한 도덕경에 이어 세번 째 접하는 도덕경 해설서인지라, 그 내용이 서로 많은 대비가 되었다. 특히 한문 고전의 번역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점에서 이경숙 아줌마의 논지는 단연 백미라 할 만 하다.

이 책은 도덕경이 "어렵다"는 기존의 생각들이 그릇된 편견이거나, 한자 오역과 악역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일깨워 주었다. 가장 제대로 아는 사람이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고,당대의 문화와 사회상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루어지는 고전의 해석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빗나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실감케 해주었다.

적어도 이경숙의 도덕경은 저자 스스로가 얘기하듯이 "필생의 역작"이라 할 만큼, 그리고 "2,500년 이어진 오역과의 전쟁"이라 한 출판사측의 홍보문구가 아깝지 않을 만큼 도덕경의 한 글자 글자, 한 귀절 귀절마다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제공하고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뼈대를 제공한다.

출발은 단연,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이라는 첫 귀절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도덕경이 그 귀절의 의미를 "도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라고 해석하면서 매우 철학적인 추상의 극치로 "알듯 모를 듯한 도의 개념"을 총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으로 해설하면서 시작한다. 이 첫 문장부터가 신비적 주술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도덕경을 대하는 일반인들을 시작부터 기를 죽여버리는 데 반해, 이경숙은 이 귀절은 도의 본질에 대한 규정도 아닐 뿐더러 철학적인 문구도 아니라고 이해한다.

그 보다는 그냥 책 머리에 자신이 지금부터 설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단지 이름을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글의 서두, 이를테면 오프닝 멘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도가도비상도"란 말의 뜻은 노자가 글을 통해 설하려는 바를 말하고 알아 듣기 편하게 "도"라 칭하지만, 그것을 굳이 항상 "도"라고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명가명비상명"이란 것도 이름은 이름일 뿐 꼭 그 이름이 아니어도 무방하니 이름 자체에 빠져들지 말라는 부연설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덕경의 가장 심오한 철학적 진리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들었던 이 귀절에 대한 이같은 해설을 대하는 순간, 뒷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왜 그렇게 도덕경이 어렵게 느껴지고 알쏭달쏭한 것이었는지 그 이유를 한 방에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첫 귀절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다른 해설서들을 통해 그렇게 주절주절 추상적이고 어렵게 풀이되었던 설들이 모두 헛공론처럼 들리고, 나아가 그 뒤로 이어지는 구절 구절들이 앞 뒤 아귀가 서로 맞아 떨어지면서 술술 이야기의 맥이 잡히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경숙은 도덕경을 어떤 도인이 되기 위한 수신용 독본이나 우주 철학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엄연히 당시 사회상에 비추어 가장 바람직한 '성인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한 노자의 정치철학 사상의 핵심 요약본으로 이해하고 시종일관 그에 따른 논거들을 제시하며 해설해 나간다.

물론 중간 중간 이경숙 님의 해설처럼 정말로 노자의 생각이 그랬을까 하는 느낌이 불현듯 들지 않은 곳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20장에 이르기까지, 그런 느낌에 따른 의구심보다는 기존의 해설서로부터 얻지 못했던 갑갑함이 확 풀리고 문맥이 환히 트여오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이경숙의 해설에 도움받아 도덕경을 읽어가기 시작하노라면 그동안 이런 저런 도덕경 해설서들을 읽어도 머리만 더 혼란스러웠던 많은 의문점들이 매우 명쾌하게 풀린다. 이와 같이 그 어렵던 도덕경이 상당히 쉽고 평이하게 이해되기 시작한다는 점 만으로도 이 책은 노자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로 자리잡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시사를 받은 점은, 글이란 특히 고전이란 그 글이 쓰여진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3황5제로부터 이어진 하, 은, 주의 성립과 멸망에 따른 당시의 권력쟁탈과 전쟁에 따른 세상의 혼란상, 그 속에 숨어 있는 백성의 굶주림과 애환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당시 사회사상의 큰 흐름이었던 유가를 비롯한 백가 사상의 등장이며, '인'과 '의'를 세우는 것이 태평성대로 돌아가는 키워드라 인식했던 공자류의 사상적 배경을 알 수 있고, 그래야만 이들과 달리 노자가 추구한 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노자가 꿈꾸었던 진정한 '성인정치'와 이상적인 정치, 그리고 그가 원했던 치자의 상을 올곧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고래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동양사상의 크나 큰 두 줄기 사상적 맥을 형성해온 공맹의 사상과 노장의 사상을 그들이 살았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만 그 속에서 노자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경숙 또한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장자에 실린 공자와 노자의 대화를 옮겨 해설하는 것에서부터 도덕경 해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더 앞서 노자가 [도덕경] 이라는 5천자의 경문을 남기게 된 당시의 중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프롤로그로 달아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경숙의 도덕경은 한 마디로 쉽다. 그리고 그 뜻이 심오하여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주술서나 철학서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이치를 그대로 관조하면서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추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한 현자가, "이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 소박한 정치철학을 담고 있는 치세학이요, 개인의 처세론이다.

더욱이 도덕경은 매우 깔끔하게 정제된 자구들이 시귀절 형식의 운율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성마저 뛰어난 하나의 작품이다. 무릇 하나에 통달한 자는 만물의 이치를 꿰뚫는 법이다. 적어도 노자는 피비린내나는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아 "무위" 속에 삶과 치세의 답이 있음을 깨달았던 성인이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경숙의 [도덕경]을 통해 2천여 년 전에 살았던 한 성인의 내음을 문학적 향기까지 더해서 다시 맡는 것은 가히 누구에게라도 주저함 없이 권할 만한 즐거움이다.

by 때때로 | 2004/03/0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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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새봄 at 2004/04/16 14:53
좋은 책입니다.
재대로 이해를 하려 노력하면 쓴 책이죠..
마음의 여행도 적극 추천합니다..^^
Commented by 다원 at 2004/05/11 09:30
저두 다른 역서들 더러 보았는데요.... 이경숙씨 것 외엔
대개가 애매모호 긴가민가에요... 마치 목사님들이 성경구절
한 줄 읽고 자기가 하고픈 말 한시간씩 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이경숙씨의 입장은 대단히 명쾌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죠. 과연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고전들이 과연 제대로 읽혀왔나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
Commented by 지석훈 at 2004/05/31 20:40
Music Collection

“ ‘진본 도덕경’ 드디어 출시! ”

천 년의 신비 드디어 풀려.
학문이 아닌 노자의 바른 말씀 겸허히 해석.
객관적인 해석으로 하늘의 뜻 알림.

" 도 덕 경 "
중국의 사상가이며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저서.

그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왔던 ‘도덕경’이 제대로 해석되어, 도서와 음반으로 출시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조현진 님이 해석하고 일월사에서 낸 ‘진본 도덕경’이 바로 그것.
조현진 님은 ‘도덕경’의 그 본 뜻 보다는 각자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 해석된 경우가 많아 불합리하다고 판단,
이를 바로 잡고 노자의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진본 도덕경’을 내게 되었다.


조현진 님은 ‘도덕경’이란 학문이라는 측면보다 말씀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이번 ‘진본 도덕경’은 도서와 음반으로 출시되었는데 평범한 대중이 노자의 올바른 말씀을
편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열을 기울였다고 한다.

방대한 양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보석 같은 의미를 지녀 접해 본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빠져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특히 음반에는 성우 박 일씨가 참여하여 매력적인 목소리를 뿜어내고 있으며 배경음악 또한 도(道)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진본 도덕경’의 출시는 지금까지의 어줍잖은 이들의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일반 대중이라도 좋은 말씀을 새겨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차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다가오는 여름..
이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음반으로 진정한 도인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진본 도덕경’은 시중의 서점과 음반샵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제작사는 뮤직콜렉션으로 ( http://www.musiccollection.co.kr )
" 진본도덕경 " 감상하기와 구매하기를 제공한다.

http://www.musiccollection.co.kr/z/zboard4/zboard.php?id=gmusic
감상하기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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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04-01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이 책의 제목을 스치듯 처음 본 건 지지난 주인가, 조선일보 주간 서평에서였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책 제목을 담은 그 기사가 한 눈에 나의 시선을 붙든 것은, 아마도 시간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까닭에 몸에 밴 조건반사와 같은 것이었으리라. 게다가 올해 내 삶의 기본 테마로 잡은 "양지 지향"의 구체적인 목표가 바로 "디지털 시간관리 전문강사"로서의 입지를 개척하고자 했던 터라, 그 제목이 더 눈에 띄었던 것같다.

인간이 과연 시간을 정복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지극히 천재적이거나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위인이나 성인들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당연히 평범한 사람에게서 시간을 정복한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나 역시도 이 책을 대하고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 반 의심 반 심정으로 그 기사를 대했지만, 책을 소개하는 글이 웬지 쉽게 흘려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제목 자체가 무슨 무슨 시간관리법 따위의 처새학 원론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존했던 특정한 사람의 실명을 붙여놓고, 거기에 '시간을 정복한 남자'라고 붙여 두었으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만약에, 그 남자가 예수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혹은 간디 같이 아주 위대하고 유명한 위인이어서 평소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면 난 굳이 그 책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데, 류비셰프라는 이름은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나의 호기심을 두 배로 자극했다.

그 서평을 본 다음 월요일 오후 퇴근 무렵에 [YES 24]에 신규회원으로 등록하고서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했다. 이틀 후 오후 느지막이 들린 사무실에 그 책이 택배로 배달되어 놓여 있었다. 그 다음 날인 5일 새벽, 화장실 가는 길에 5시부터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그 책은 붙잡기가 무섭게 근 2시간 동안 절반을 훌쩍 읽어 내려가게 했다.

오줌 마려우니 그만 뭉개고 빨리 나오라는 집사람의 성화에 못이겨 하는 수 없이 책을 중간에 덮고 화장실을 나오니 아침 7시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이틀이 지난 일요일 밤 두 시간 가량을 투자해 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읽기를 끝마쳤다.

200여 쪽밖에 안되는 두껍지 않은 분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휴도 아닌 일상 시기에 불과 사나흘만에 책 한 권을 후딱 읽어 치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이 책의 내용이 나를 몰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 류비셰프는 20대 초반부터 82세로 죽는 날까지 근 60년 동안 자신이 하루 하루 소비한 시간의 내역을 각 항목별로 분 단위까지 헤아려 시간통계 장부를 적어두었던 인물이다. 굳이 줄여서 말하자면 "시계부"를 작성해 두었던 것인데, 우리가 하루 하루 현금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가계부"를 적듯이 이 사람은 마치 시간을 현금의 지출인 양, 꼼꼼히 분류해서 그 사용처를 적어두었던 것이다.

책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72쪽)

- 소스노코르스크 시 방문 -0.5
- 기본과학 연구: 도서색인 - 15분, 도브잔스키 저서 읽기-1시간 15분
- 곤충분류학: 견학- 2시간 30분, 두 개의 그물 설치-20분, 곤충 분석- 1시간 55분
- 휴식(처음으로 우흐타 마을에서 수영을 함)
- 이즈베스티야 지 - 20분
- 의학신문 - 15분
- 호프만의 소설 <황금단지> - 1시간 30분
- 안드론에게 편지 - 15분
---------------------------------------------
총계 - 6시간 15분

이처럼, 자신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늘어놓는 정도를 떠나서, 구체적으로 각각의 업무에 얼마 어치의 시간을 소비했는지를 분 단위로 적고, 이를 총 시간으로 통계까지 합산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이론적인 분석과 권위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와 논쟁을 강조했던 그는 자신의 전공이었던 곤충 분류학과 해부학은 물론 유기체의 형태 및 체계, 진화론, 수리 생물학, 유전학 심지어 분산분석 등에 걸쳐 방대한 저서를 남겼고, 이 외에도 문학과 예술, 철학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지적 호기심으로, 생전에 70권 이상의 저서와 12,500장 이상의 논문과 자료를 남겼다고 한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로 힘든 분량의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작 이렇게 많은 분량의 작업을 하면서도 그가 하루 동안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운동이나 산책 시간을 줄이거나, 독서나 공연을 관람할 시간을 줄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나 감탄스러운 것은, 앞서 예를 든 시간사용 통계 기록을 하루 이틀이나, 한두 주 정도 연습 삼아 시범적으로 남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을 때까지 60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남겼고, 심지어는 통계를 내는 데 사용한 시간마저도 계산에 넣어서 기록에 남겼다는 점이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믿기 힘든 사실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과연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스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류비셰프의 삶을 추적한 저자가 스스로 감사하는 글의 어투나 전개 내용에서 이게 결코 거짓 과장으로 꾸며낸 픽션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류비셰프의 이러한 철저하고도 끈질긴 인내심과 시간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에 기초한 시간통계 방법이야말로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해답이자 최고의 시간관리 방법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류비셰프는 단지 사용한 시간의 내역만을 단순이 기록으로 남긴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분야에 얼마 만큼의 시간을 배분할 지를 미리 계획하고, 그 계획에 대비하여 실제로 소비한 시간을 측정해서 목표에 대한 실행도를 평가했다는 점인데, 그 오차가 기껏해야 1%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인간이 아닌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인데, 정작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면, 진리를 도출하는 도구로서 논쟁하기를 피하지 않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오는 편지에는 몇 십 장에 이르는 답신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전혀 시간통계 처리자답지 않게 시간을 허비(?)하는, 지극히 모순적이지만 참으로 따뜻하고 인간적인 성품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런 의문이 꼬리를 이어 머리 속을 오갔다.

- 과연 인간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시간을 미리 계획하고 또 통제하고 결산할 수 있을까?
- 만약 그렇다면 누구라도 그 만큼 많은 저작과 훌륭한 성과물을 남길 수 있는 것일까?
- 과연 나 역시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일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최종적인 느낌은 불가능하지 않겠다, 오히려, 정말로 그렇게만 할 수만 있다면 시간에 대한 태도와 관리방식을 가히 혁명적으로 바꿀 수 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40평생 이름도 모르고 살아왔던 류비셰프라는 사람을 올 해 초에 알게 된 것은 어쩌면 내게는 필연이 아니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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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책을 읽는 것에 특히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매일 매일 하루를 설계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구정을 필두로 하나 하나 누적해가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서 시간에 대한 관리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남는 것이란 생각을 자꾸 더 크게 하게된다.

신년 초 [인간 붇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에 이어서, 재가 불자들의 기본 경전이랄 수 있다는 [유마경]을 연이어 읽고서, 구정 때 권유받은 [질문의 힘]에 이어 올 해 네 번째로 읽어낸 책이 바로 [류비셰프]였다.

이 책은 지금 읽고 있는 [한 가지로 승부하라]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과 더불어 지금 나의 시간관리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 선택이고, 12,000원이라는 볼륨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이 결코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별난 작품이다.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by 때때로 | 2004/02/09 02:17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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