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blog.naver.com/gaeul93/90047907122
어제 밤, 퇴근길에 집과는 반대방향인 시내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시청에서 내렸습니다. 덕수궁 앞 대한문 앞 보도에 차려진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 그를 기리기 위해 늘어선 행렬을 보았습니다. 덕수궁 돌담을 따라 위로 위로, 시립미술관, 정동극장, 이화여고 후문을 지나 광화문 대로가 보일 즈음 정동시네마인가요, 영화관 건물 앞에 이르러서야 겨우 대열의 끝이 나타나더군요...
내친 김에 광화문로를 빙 돌아서 동화면세점 쪽으로 걸어나와 다시 덕수궁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퍼질러 앉은 전경들과 에어콘을 가동하느라 쉴새 없이 소음을 내뿜는 차로변의 경찰 버스 무리를 뚫고 지나 덕수궁 윗쪽 구 서울시민회관 쪽에 이르니까 다시 조문객의 행렬이 나타나더군요.
인도의 양쪽으로 줄이 형성되어 있어서, 왜 이럴까 싶었는데, 죽 따라가 보니, 덕수궁 담벽을 끼고 늘어선 줄이 조문대열의 앞이고, 차로변 쪽으로 이어진 줄은 1호선 시청역 지하도로 연결되어 반대쪽 서울시청 앞에서 프레스센터 쪽으로 이어지더군요.
시청역사 지하보도의 계단벽들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애도사들을 보면서 대열을 따라가 보니, 시청광장으로 통하는 출구는 모두 전경들이 꽉 막고 틀어앉아 통행 자체가 차단되어 있고, 프레스센터가 보일 무렵이 되어서야 대열의 끝에서 자원봉사 아저씨 한 분이 [분향소]라는 안내판 하나를 들고 서 있더군요... 여쭤보니 거기가 조문 행렬의 시작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덕수궁을 빙 둘러싼 조문행렬 양쪽 대열의 끝과 끝을 잡아보기까지 걷는 데만 꼬박 30분이 걸리더군요... 분향 순서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족히 두 시간은 넘어야 할 것 같았구요... 어른, 아이, 친구, 가족, 학생, 직장인... 쉼없이 밀려오고 밀려나는 인파로 거리는 꽉 미어차고...
거리에는 마실 물이며 국화를 나누어주고,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도로 내려서는 사람들을 인도로 인도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쉰 목소리가 계속되고 한편에서는 쓰레기 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연신 "쓰레기 버리실 분 주세요!" 라고 외치며 쓰레기를 걷어가는 봉사자들도 계셨습니다.
길가 한편에서는 어디서 동원했는지, 소형 스크린에 프로젝터로 돌리면서 바보 노무현이 살아온 일대기 인터뷰 필름을 쉬지 않고 상영하는 분도 계셨고, 느린 템포로 고객을 추모하고 기리는 노래를 선사하는 노래패 무리도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모이신 분들도, 모임을 진행해 가는 봉사자들도 모두 자발적으로 나선 분들이었습니다. 누가 오라 하지 않았고, 누가 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 모두는 하나처럼 움직였습니다. 거리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차분했고, 행렬 주변은 지나칠 만큼 깨끗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무겁고, 마음은 한없이 아파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시민들은 그 분노를 무분별한 구호나 피맺힌 절규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가신 분의 뜻을 가슴 속에 새기며 남은 우리가 앞으로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두눈 뜨고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그러나 처절하게 되돌아보는 듯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때 젊은 시절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민중의 나라, 노동자 농민, 서민대중이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해 보겠노라고 진보정당 운동에 뜻을 모으고, 한 때나마 청춘의 열정을 걸었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조문 행렬에 구경꾼의 한 사람으로 감상문 따위나 적고 있는 일이라니, 참 부끄럽고, 또 참 못나 보였습니다.
바보 노무현이 남기고 간 유서의 메시지는 제게 이렇게 들려 왔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은, 독재에 침묵을 강요당하더라도 스스로를 비하하진 말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말은, 미안해 할 마음이 있거든 생활 속에서 작은 행동 하나라도 실천하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은, 아무 조건도 없이 무조건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스스로를 먼저 심판해 보라는 외침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2009년 5월 27일, 아침, 아고라가 있는 다음 카페에 [민동, 세상사는 이야기] 라는 오래된 제목으로 카페를 개설합니다.
한 때 민중당이 해산되고 1년여 동안 흩어진 분들간에 근황과 소식을 전하고자 1인 미디어처럼 발행했던 옛날의 민동 소식지가 문득 떠올랐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오시는 민동분 모두 대한문 앞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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