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메일(07.6.7)] 혼불 예찬--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조회(299)
때때로 메일 | 2007/06/07 (목) 22:13
 
안녕하세요?  렛츠고, 최규문입니다.....
1월에 새해 인사를 드린 지 근 5개월을 훌쩍 넘겨버린 6월, 이렇게 불쑥 인사 드립니다.

 

봄이 왔다고 움츠린 어깨 펴던 것은 잠깐, 어느새 뜨거운 햇볕에 얼굴을 찡그리며 손 채양을 만드는 이른 여름을 맞아 버렸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인사를 드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제 고향 지리산의 원추리꽃이 문득 떠올라 사진 한 컷 따다 붙이는 것으로 계절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그간 다들, 무고하셨는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신 옛말을 믿고, 여러분 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빌며 오랜만에 안부 여쭙습니다.

 #1.마침내 5년 만기를 채웠습니다
 
5년 만기 장기 적금의 불입이라도 끝낸 거냐구요?
그건 아니구요, 2002년 6월 첫날에 웹플랜이라는 회사에 입사하면서 한국리더십센터와 인연을 맺은 지 지난 5월 말로 꼬박 5년을 채우고, 6년째를 맞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91년에 대학 졸업 후, 졸업 전부터 간여하던 사회단체에서 본격적으로 진보정당 건설 운동에 몸담다가졸업 후에도 취직할 생각은 아예 접어버리고 근 2년 정도를 그 쪽에서 일했었지요...
 
총력을 다했던 92년 총선에서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93년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래, 광고기획사에 영상물 판매, 다시 시민연구단체에서 정당 부설 정책연구소로, 그리고 다시 국회와 복지부, 국민연금관리공단을 거쳐 과감하게 IT벤처 업계 쪽으로 투신하는 등등, 청춘의 에너지를 쉼없는 도전으로 불사르다(?)가 10년 만에 딱 열번 째 명함을 만든 회사가 바로 지금 몸담고 있는 한국리더십센터, 의 자회사였던 웹플랜이었죠.
 
10년만에 10군데면, 평균적으로 매 해마다 직장을 바꾼 셈이니, 제가 생각해봐도 좀 심한 듯 싶습니다. 선후배들이 의레껏 올해는 어디로 옮겼냐며 새 명함 달라고 손을 내밀던 게 연례행사 같았으니까요...
 
그게 자격지심으로 느껴졌던 탓일까, 5년 전 입사 당시 제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던 것은, 이번 회사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5년은 떠나지 않고 머물겠다는 저만의 각오였습니다.  누가 꼭 그러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건만, 그게 제 스스로에 대한 주문과도 같이 각인되어, 한 해 한 해 넘겨오다보니, 어느 새 한 직장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채우고,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지요.
 
마음의 약속은 설령 그렇게 했을망정, 제가 추구하는 가치랑 조직의 가치가 동떨어진 것이었다면, 그동안의 제 모습에 비추어 여태까지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가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또한 주변에 삶의 귀감이 될 많은 분들을 접하면서 지금의 조직에 정이 쌓여, 마음의 큰 부담 없이 훌쩍 다섯 해를 채운 것입니다...
 
5년 세월을 지나면서 돌이켜보면, 많이 변한 제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물리적인 나이가 마흔을 넘기게 되고, 불혹을 넘기다보니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고, 또 무언가 한 분야에서만큼은 전문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갖게 됩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외모상의 변화는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재작년 갑상선 질환을 심하게 앓고 난 뒤로는 부쩍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고, 볼에 살이 붙어서 이젠 제법 나잇살이 들어보인다는 점, 그리고 눈꺼풀의 주름이 깊어져서 쌍꺼풀이 더욱 확연해진 점과, 일찍 찾아온 노안 탓에 책을 읽거나 가까운 것을 보려면 안경을 벗어야만 제대로 보인다는 점 등이, 굳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을런지... 
 
다만, 얼굴 모습과는 달리 마음은 나이 만큼 많이 성숙한 것 같기도 합니다.
 
리더십센터에서 일하다보니, 여기저기서 주워 듣는 많은 강의와 좋은 말씀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준 덕분인지, 예전마냥 사소한 일로 얼굴 붉히거나 목청 돋울 일도 많이 줄었고,
제 화를 못 이겨서 열 받아하고, 한숨을 쉬던 짓도 요즘에는 많이 뜸해졌습니다...    
 
살면서  "새옹지마의 뜻을 다시 새기된 된 덕분일까요? 
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안달복달 애달아하는 일도 함께 줄었고요, 또 일이 너무 잘 된다고 마냥 좋아하거나 기뻐하기도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저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도 그 만큼 생기려니 싶고, 슬프거나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또 그 만큼은 즐겁고 기쁜 일도 생기려니 하는 믿음이 돋아나니까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조급해 하거나, 불필요하게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고, 뿌리면 뿌리는 만큼 거두리라 하는 심정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는 게 무척 다행스런 일이지요.
 
조직이라는 게 오래 있다보면, 그게 매너리즘이나 관성에 빠진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좋게 생각하자면 쉼 없이 성장하는 조직 속에서 그만큼 저도 훈련되고 다듬어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자위도 해 봅니다...
 
지난 5년간 한 곳에 발 붙이고, 명함 바꾸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격려하고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하고 또 고맙다는 말씀으로 인사 드리며, 오랜만의 때때로 메일 시작하렵니다...

 #2. 건강 검진 받아 보셨나요?
 
음...  위에 붙인 로고는 저희 회사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전문 검진센터 간판인데요... 뭐, 제가 이 센터랑 무슨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소개를 하려는 뜻은 전혀 없구요, 혹시 여러분께서는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고 계신지, 또 올해는 받아 보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서 붙여 보았습니다.
 
제가 재작년엔 갑상선 이상으로 고생하고, 또 연이어 작년에는 목/어깨 통증으로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는 소식은 틈틈이 말씀 드려서 아시는 분은 아실 터라, 거듭 병치레 타령을 들려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제가 아니라 저의 부친께서 졸지에 전립선암 진단을 받게 되어, 지난 달에 원자력병원에 2주 가까이 병상 신세를 지시면서 전립선 적출 수술을 받으셔야 했더랬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는 게 약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동네 보건소에서 주민들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종양 세포 관련 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면서 정밀 조직진단을 받아보시라고 권하길래,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립선 쪽에 암조직이 자라는 걸로 나타난 것이지요.
 
평소에 워낙 뭐든 잘 드시고, 또 고향에서 소일 삼아 밭일도 잘 하시고, 거의 감기 한번 안 걸리실 정도로 건강하게 지내시는 데다, 작년 7순 잔치까지 아무런 탈없이 잘 마치신 터라, 암같은 진단이 나오리라고는 당신이나 식구들 모두 생각지도 못했었지요.
그런 만큼 다소 당혹스러웠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조직이나 골수 쪽 전이가 일어나지 않는 초기 단계여서 다소간의 후유증이 있더라도, 완전 적출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보고 시술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허나, 암이라는 녀석이 원래 체질이나 식이 습성적인 요소가 큰 데다,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전립선 제거로 인해 방광을 받쳐주는 근육 조직이 사라져서 요실금 같은 후유증이 사람에 따라 오래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하니, 그 또한 당사자로서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감당하기가 그리 만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담배는 전혀 안 하시지만, 평소 육류 지방질 섭취를 즐겨하고, 과음까지는 않으시나 매 끼니마다 약간의 반주를 반찬처럼 빼지 않고 즐겨 드셨던지라, 그게 주요하게 발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은 됩니다만, 암이라는 놈이, " 나 이렇게 해서 발병했소!" 라고 증빙을 하는 녀석이 아니라서 딱히 누구 잘못이라 하기도 뭐하고, 그러자니 누구한테 하소연하거나 억울해할 수도 없다는 점이 참 난감하더군요...
 
설마 하니 우리 식구들 중에 암이 생기기야 하겠나 싶었는데, 한국인 3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린다는 통계의 그물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로구나 싶어 "통계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새삼 실감했더랬습니다.  
 
저도 2년 내리 연속 이런 저런 몸의 질병과 이상으로 고생을 하고 나니까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어, 근 2년 가까이 주말 산행을 빠짐 없이 하면서 최소한의 건강 관리를 해 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늘상 지속되는 업무 하중에 사실 쉬고 싶어도 맘 놓고 쉬지 못한 채 집중해서 밤을 새며 일해야 하는 경우가 아직도 한 달이면 사나흘 정도는 됩니다.
 
지난 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근 2달 넘게 번역 작업에 집중하느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서 한 달이 넘도록 주말 산행을 빼 먹었더니, 그 사이에 근력이 다소 쇠약해진 느낌이 들더군요... 하여, 요즘엔 어떤 형태로든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자주 스트레칭 시간을 갖고, 주말이면 꼬박 꼬박 아이랑 배드민턴을 치는 재미를 새로 붙였습니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니, 산행도 그렇고 배드민턴도 그렇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땀이 배어나서, 운동효과는 한결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기분 좋게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 찬물 샤워할 때의 쾌감은 참 좋지요..... 
 
아무튼 아버님의 암진단과 수술을 계기로, 저도 평소 즐겨 먹던 육류를 의식적으로 줄이거나 멀리 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채식과 과일, 생선을 먹는 쪽으로 식단을 눈에 띄게 바꾸게 되었고,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일도 더 많아지는 편입니다. 가족 중의 암 발병이 우리 식구들에게는 오히려 더 큰 자극제가 되고 있는 셈이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타산지석"이라고 하겠지요...
요즘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인생관과 애정관을 알려 준다는 사자성어가 유행한다던데,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크게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 것이라"
했던 옛 성현들의 말씀을 거듭 새기고 또 새기셔서, 부디 돈일랑은 좀 적게 벌고, 심지어는 잃을지언정, 요즘 대기업 모회장처럼 명예를 잃어 '크게 잃는' 우는 피하시고, 행여라도 무절제한 생활이나 식생 습관으로 건강을 잃는 우를 자초하는 일은 더더욱이나 삼가하시길, 제가 아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또 권합니다.
 
그리고, 근래 2년 넘게 건강 검진 받아보지 않으셨다면, 늦추지 말고 꼭 한번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3. 민족의 얼, 최명희의 [혼불]을 예찬하며...
 
" 매달 [혼불] 연재 기다리는 재미에 감옥 한 달이 어찌 가는지도 모른답니다.
피로 찍어 쓴 듯한 문장에서 뿜어 나오는 기가 제 몸속 옛 기억을 짚어내는 순간
불덩이처럼 솟는 시의 영감에 한동안 눈을 감고 얼어붙곤 합니다.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절로 경배하고픈 순간입니다.
 
그러니 선생님, 제가 낯뜨거운 부탁 하나 드립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기한 없는 제 감옥살이에 [혼불] 연재 거르지 않게시리
밥 꼭꼭 드시고 잠 편히 드시고 정말 건강하셔야 합니다.
이 땅의 한 많은 인생들 위해 저 푸른 목숨의 불, 혼불이 훨훨"
 
-- 경주 남산자락 독방에서 박노해....
 
위 글은 한길사에서 펴낸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마지막권인 10권의 뒷 표지에 실린 시인 박노해의 추천사로 인용된 구문입니다.
 
"최명희는 문체에 관심하는 희유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정겨운 서정성과 예스러운 정취를 지향하는 문장으로 된 [혼불]은
우리말의 보고로서 주술적인 힘과 기운마저 가지고 있다.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는 풍속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의 가락이 된다.
독특한 울림이 호소력을 발휘하는 노작이다." 

-- 유종호(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독재 시절 저항시인으로부터 평단의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혹은 중학교 학생에서 칠순 노인네까지...
누구라도 한번 읽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작품을 이제서야 접한 저로서는 뒤늦은 독서에 대해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더군요...
 
작년 말, 회사 동료로부터 추천을 받고 빌려서 틈틈이 읽기 시작한 최명희의 [혼불] 10권을 이제서야 겨우 일독을 마치고, 가슴에 남는 느낌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아쉬움과 가슴 저며 오는 안타까움 이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한창 중반을 넘어 갈 정도다 싶은 대목에서 끝이 나버린 허무함에서 오는 아쉬움이 아니라, 작가의 죽음으로ㅡ 더 이상은 최명희의 문체와 표현의 절묘함을 대하고 싶어도 대할 수 없게 된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지요.
 
1981년에 집필을 시작, 1996년 12월에 이르기까지 근 17년간 단 한 질의 장편 대하 소설에 자신의 온 혼과 넋을 다바쳐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엮어 놓은 채ㅡ 1947년 전주생인 작가 최명희는 1998년 51세의 아까운 나이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까닭이지요...
 
구한말, 일제 강점기 남원 이씨 매안을 배경으로 삼아, 종가집의 3대에 걸친 종부들의 시집살이를 얼개로 하여 씨줄 날줄 베필을 짜내듯이, 혹은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이, 한편으로는 실타래를 풀어 헤치는 듯 싶지만, 그 사이에 어느새 가다보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모습으로 유장하게, 역사와 문학과 사상을 하나로 녹여서 만들어진 커다란 예술 대작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미시적 접근과 묘사를 통해서 독자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거시적 틀거리를 완성해내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그의 유려한 문장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참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사이에 벌써 여름 기운이 끼친다.
달구어진 햇볕에서 훅 놋쇠 냄새가 난다. 더위가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누우런 오조 이삭이 어느덧 묵근하게 살이 차고, 청대콩도 익어간다...
비워 놓고 나온 집에서는 어린 것이 집을 보면서 멍석에 보리를 널어 말리고 있을 것이다.
마침 뙤악볕이라 참으로 잘 마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칫 헛눈을 팔고 해찰하기 일쑤라...."
 
"... 눈발 없는 동짓달의 마른 바람이 무겁게 캄캄한 밤 한복판을 베폭 찢는 소리로 날카롭게 가르며 문풍지를 후려친다. 그 서슬에 놀란 등잔불이 허리를 질려 깝북 숨을 죽인 채 까무러들더니 이윽고 길게 솟구쳐 오르며 너훌거린다. 방안으로 끼쳐든 삭풍 기운에 소름을 털어 내듯 흔들리는 불 혓바닥이 검은 그을음을 자욱하게 토한다..."
 
그나마 읽던 중간 중간에,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한두 구절만 옮겨본 것이지만, [혼불] 속에는 이와 같이 작가 최명희 만이 구사할 수 있을 법한 표현들이 부지기수로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뜻을 알듯 모를 듯 싶은 우리네 살가운 토속어와 고유어의 풍부하고도 자유 자재한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네 세시 풍속들이 마치, 색바랜 흑백 필름 속에 비내리는 잡티가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우리네 풍습이며 고향 풍경에 대한 세밀한 표현의 생생함이 마치 형형색색 올 칼라로 연출되는 선명한 장면들을 마치 눈 앞에서 찬찬히 한 장 한 장 기록사진으로 떠 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혼인한 남편과 하룻밤도 치르지 못한 채, 소복 청상으로 종부살이를 해야 했던 청암부인이, 시조카를 양자로 들여 종가집의 핏줄을 잇게 하고, 그로부터 아들 하나를 얻지만 그 손자 강모는 업장과도 같은 종손의 처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촌 강실이를 마음에 둔 채 방황하다 만주로 도망을 가버린 사이, 손자를 기다리던 청암부인은 결국 세상을 뜨고, 큰집 강모에게 첫 정을 주었던 작은집 강실이는 근친 상사에 빠져 넋이 빠져, 거멍굴 춘복이에게 몸을 빼앗겨 상놈의 아이를 배고는 죽지도 못한 채 피접길에 오르는데...
 
소설의 스토리 얼개와는 무관하게, 혼불은 이 단순한 이야기 뼈대 속 곳곳에,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의 통일이 가져온 백제사, 민족사의 왜곡과 망실을 비롯해, 일제의 수탈과 만주 이민의 처참했던 상황을 묘사하며, 단군 조선 이래 잃어버린 고구려 강역의 역사를 다시 복원하고자 시도함으로써, 일제에 강점 당해 악랄하게 자기 것을 빼앗기고 정신을 잃어가는 민족의 현실에서, 그래도 빼앗길 수 없는, 아니 몇 십 년, 몇 백 년이 흘러도 기어코 다시 회복해야 하는 민족의 혼, 그 질긴 혼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미신이나 비합리의 극치로 여겨지는 풍습이나 모습들까지도, 그냥 내다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혼과 얼, 지혜가 담긴 가치 체계로서의 풍속이며 문화 요소들임을 증명해 냅니다. 이를테면, 내간 서신, 신문기사, 제도 문서, 전래 시조, 민요, 역사서, 경전, 신화, 야담 등등 각각에 얽힌 선조들의 삶을 파헤치고 다시 정교한 퍼즐처럼 짜맞추고 되살려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일깨워 줍니다.
 
특히나, 제4부 꽃심을 지닌 땅 중 "어느 봄날의 꽃놀이, 화전가" 편(8권 수록)을 읽다 보면, 작가 최명희의 타고난 필력과 표현력을 정말이지 유감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언뜻 상춘곡을 새로 풀어 쓰는 듯한 4언 절구의 운문으로, 우리 고유의 문체 가락을 그대로 되살려 놓아, 마치 물흐르듯 굴러가는 신명어린 판소리 한 자락을 그대로 따라 흥얼거리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제가 오랜만의 때때로 메일에서, 소설 한 편(10권)을 이리도 길게 예찬하며 특별히 권하는 까닭은, 어쩌면 이런 글을 다시 읽고 우리 문화를 올곧게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참된 문명의 선진국, 문화 선진국으로 위상을 새롭게 세우는 첫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얼마 안남아 훌쩍 여름 휴가도 다가올 터인데, 혹 시간 여유 얻으시거들랑,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께는 필히 [혼불] 한 번 읽어 보십사 거듭 강추합니다...


   #4.[해리슨 진단]을 아시나요?
 
제가 지난 1월에 드린 e메일에 [한국역량진단센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더니,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 중에 저더러 직장을 딴 데로 옮긴 거냐고 여쭤보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더군요...
그런 것은 아니구요, 서두에서도 잠깐 말씀 드렸듯이, 한국역량진단센터는 한국리더십센터의 신규 사업파트로, HR(인재관리) 분야의 조직 진단 및 개인 역량 평가 업무를 전담하는 부설 조직입니다.
 
못해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안부 삼아 보내던 메일을 넉 달이 넘어서야 겨우 이렇게 보내게 된 사연도ㅡ굳이 따지자면, 이쪽 역량진단센터로 부서를 옮겨오면서 새로 맡게 된 [해리슨 어세스먼트] 한글화 프로젝트에 시간적, 정신적으로 집중하느라, 따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서 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습니다.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지난달 말에, 한글화 프로젝트의 1차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어, 이제는 한글화된 진단도구를 좀 더 널리 알리고, 국내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펼쳐야 할 단계에 이르렀기에, 여러분께도 잠시 소개해 올립니다.
 
혹시, 기업이나 단체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적성이나 특성에 따라 보여지는 행동역량에 기반해서, 어떤 부서나 위치에 배치하고, 어떤 자격과 특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해야 할지, 혹은, 현재 직원들의 강점과 특성에 비추어 향후 어떤 경력개발 경로가 더 성공 가능성을 높일지 등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해리슨 진단]이 많이 도움이 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직접 경험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해리슨 어세스먼트]는 조직심리학을 전공한 단 해리슨(Dan Harrison) 박사가 30년 가까운 연구경험을 토대로 대인관계, 업무성취, 리더십 영역에서  개인의 행동 역량을  과학적으로 측정, 진단자가 선택한 직책이나 특정 직무에서 요구되는 직무요건과 비교한 적합도를 제공해 줌으로써,  임직원의 선발 배치를 비롯해 자기 개발, 코칭, 경력 개발 등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개인 행동특성/역량 진단 툴입니다.
 
- 개인의 행동특질을 비롯해서, 직무선호, 환경선호, 흥미 등 약 150가지 이상의 직무 적합성 요소를 측정하여,
- 이를 특정 업무나 직책(position)이 필요로 하는 요건(템플릿)과 비교하여, 직무 적합도는 얼마나 되는지,
- 해당 직무에 대해 필수적인 특질과 바람직한 특질, 그리고 피해야 할 특질까지 상세하게 알려주고, 
- 그에 기초하여 자신에게 적합도가 높은 직종이나 직업군, 아울러 권장 직업 목록 등을 안내받을 수 있으므로
개인의 경력개발이나 자기 개발, 혹은 코칭 진단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진단 툴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특징은, 개인의 행동패턴이나 특성을 분석할 때, 자기 응답에 기초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점수를 부여하는 평가 방식이 아니라, 어떤 요소나 특질이 더 자신과 잘 맞고 혹은 거리가 먼지를 "우선순위 배열 선택식" 응답을 택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의적인 점수 부여가 갖는 위험을 피할 수 있어 그만큼 과학적인 데이터 추출이 가능하고,
 
또 철학적인 이론 배경 자체가, 인간의 특성은 매우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것으로 보아, 기존의 MBTI나 DISC같이 혈액형 나누듯이 유형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사람의 행동 특성이 어느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처한 상황이나 여건, 스트레스 여부에 따라 평소 행동과 전혀 다른 행동 패턴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스트레스 상황에서 예견되는 행동 특성까지 복합적으로 진단해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면서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이는, 동양의 음양이론에 기초한 패러독스 이론으로 정리되어, 각 개인이 드러내는 행동특성을 주요한 12가지 패러독스 그래프를 이용해서 보여주는데, 패러독스라 함은, 얼핏 겉보기엔 모순되거나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특질의 쌍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조화롭게 양자의 특성을 고루 갖고 있어야만 더욱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보일 수 있고, 그러한 행동 특성을 갖추고 있을 때, 관련된 행동역량도 더 크게 발휘되고, 결과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사람이 자기 주장도 충분히 강하지만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능력도 뛰어날 때라야만 더 좋은 리더로서의 자질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컨대, [자기주장적]인 특성과 [개방성/공감]의 특성을 상호 배치되는 것으로 보아 어느 성질이 강한 편이라고 유형화(고정화)시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특성이 함께 조화롭게 발휘되어야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이고, 이 두가지 보완적인 특성의 균형이 깨어질 때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적인 상황에 처하면 평소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예기치 않은 행동 패턴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런 만큼 개인의 행동 특성과 예상되는 행동 패턴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자기 관리 및 경력개발 대한 시사점을 다양하고 상세하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요....
 
상업적인 자기 홍보 같아서 조금 소개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동안 혹시 스스로가 진단하는 자기 모습에 대해 좀 더 과학적으로 진단해보고, 자신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자기 진로를 모색해보고 싶어 하셨던 분들이라면, 해리슨 진단이 상당히 강력한 진단 도구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비록 외국 것을 들여오는 데 따르는 아쉬움은 늘 남기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지식이나 도구를 들여와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나름대로 적지 않은 보람과 의미를 선사해 주어 고생하는 만큼의 뿌듯함을 선사해 줍니다. 이왕에 시작한 작업이니,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물을 내어줄 수 있는 툴로 개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작정이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말로 소개를 줄이렵니다.

요즘, 작년에 BBC에서 제작되어 우리말 해설로 방영중인 KBS스페셜, [살아있는 지구]를 볼 때마다 지구의 자연과 동식물이 보여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에 탄성과 함께 소름 끼치는 경이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땅 속 밑을 흐르는 강이며, 남극 한 데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이 떼로 뭉쳐 체온을 유지하는 모습이나, 평원의 건기를 이겨내고 생존하기 위해 사자떼가 코끼리를 사냥하는 모습이나, 이끼류가 곤충에게 독을 퍼뜨려 전염병을 일으킴으로써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밀림의 법칙 등을 보노라면, 대자연의 위대함과 우주의 섭리에 경외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이런 지구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훼손으로,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 효과 등에 따라 점점 기후가 상승하고 여름이 빨리 오고, 자연재해의 규모도 커져가는 모양입니다. 그 덕분인지, 요즘 이른 무더위에 심신이 쉬 지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모쪼록 이 더위에 건강 관리 유의하셔서, 건강한 여름 나시길 기원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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