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아시아나편으로 인천공항을 다시 밟았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 오후에 서울을 출발해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거쳐서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의 수도인 비쉬켁에 내려서 몇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주말 양일간을 이용해서 이스쿨 호수로 달렸습니다. 꼬박 일주일 동안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리는 키르기즈스탄을 다녀왔더랬습니다...

우연찮은 계기로 반은 여행 목적, 반은 비즈니스 환경 점검차 다녀오게 된 것이지만, 이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 이스쿨 호수의 명소 휴양시설인 아브로라(오로라) 호텔에서 묵었던 1박2일의 일정이었습니다.  평균 해발고도 1700미터, 수평선이 보일 만치 넓은 호수 뒷편으로 남쪽 중국과의 국경 전체를 가로지르는 천산(톈샨)산맥의 만년설이 수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비추는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멋진 광경입니다.

7-8월 여름 성수기면 방 잡기도 힘들다는 오로라 호텔의 가을 정원은 만개한 장미꽃들로 은은하게 빛나고, 사람 인적 하나 없이 고즈넉한 가을 낙엽으로 뒤덮인 넓은 뜰은 조경의 아름다움을 떠나서 그 자체로 가을의 정취를 전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만년설 산맥들을 뒤로 한 모든 풍광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그 자체로 화선지에 옮겨놓은 한 폭의 수채화나 유화마냥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명작으로 변해버리더군요...

이방인의 발길이 마땅치 않았던지 게으른 걸음걸이로 짖어대는 개들의 목청만이 계절의 적막을 깨뜨리는 아시아 고원의 정원에서, 셔터 소리와 함께 담긴 키르기즈스탄의 가을을 같이 맛 보시지요....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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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는 필독서
-- 짐 로저스의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

"천 년 전, 즉 서기 1000년 1월 1일에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했음을 깨달은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 무렵에는 지구 상에 기독교인들보다 무슬림 수가 더 많았고, 무슬림들은 고유의 달력을 썼다. 더구나 이들보다 인구가 더 많았던 아시아인들 역시 전혀 다른 달력을 사용했다. 당시 서반구에서 뛰어난 천문학 기술을 갖고 있었던 마야족은 인간의 역사 주기를 5200년으로 한 롱 카운트(Long Count) 력으로 날짜를 세었다. 우리가 말하는 서기 1000년은 마야족에게는 3188년이었다. 롱 카운트 력에 따르면 현재의 문명이 쇠퇴하고 다시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시점은 우리 달력으로 서기 2012년 동지가 된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자.)...."

지금까지 제아무리 모험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세계 일주, 꼬박 3년 동안 자그만치 116개국에 걸쳐 15만 2000마일, 킬로로 환산하면 약 24만 5천 킬로를 자동차 한 대로 전 세계를 일주한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2003년에 쓴 [Adventure Capitalist: The Ultimate Investor's Road Trip]의 번역판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의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16장 [다시 집으로] 편 중에서 따온 한 대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라는 이름은 알지만, 짐 로저스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해 합니다. 아니 "월가의 전설"이라 불릴 만치 투자의 귀재라고들 칭송하는 것을 보면 여태 저만 모르고 알 만한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짐 로저스라는 이름을 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고, 이 책은 짐 로저스가 지은 책 중에서 제가 네 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짐 로저스가 지은 책 중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다섯 권 중에서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 , 상품시장에 투자하라, 불 인 차이나 : 무한성장 가능성, 세계 최대시장에 투자하라 에 이어서 읽은 것인데, 이 책이야말로 짐 로저스의 투자 원칙과 인생 철학, 그리고 세계를 보는 혜안과 식견이 가장 풍부하고도 해박하게 서술된 책이라 단언하고 강추할 만합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단번에 읽어 낸다는 것은 재미난 소설류가 아닌 이상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마치 흥미 넘치는 소설을 읽는 듯한 생동감 속에 시간과 돈에 얽매어 사는 우리들이 가지는 일생 최대의 로망 --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 여행--을 대리 충족시켜 주는 묘한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그 덕분인지, 500쪽이라는 분량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게 넘어갑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껏해야 사나흘, 혹은 그리 열심히 읽지 않는다 해도 일주일 정도면 누구라도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읽는 즐거움을 듬뿍 선사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더욱 강추하는 까닭은 이 책이 단지 읽는 동안 일시적인 흥미만이 아니라, 우리가 작금의 지구촌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치 경제적인 혜안과 더불어 세계 각국의 경제 현실과 투자 여건에 관해 탁월한 식견과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1990년 초부터 2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6대륙에 걸쳐 10만 4천킬로, 52개국을 돌고서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란 책을 낸 바 있는 저자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이번에는 오토바이 대신 자동차로, 혼자가 아닌 예비신부를 동행하여 북구 유럽의 끝, 아이슬란드에서 시작하여 뉴욕으로 되돌아오기까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꼬박 3년에 걸친 세계 일주기를 담은 것으로, 이 책은 10년 전 자신이 오토바이로 누볐던 세계일주기의 속편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1942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데모폴리스 태생인 짐 로저스는 예일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발리올 칼리지에서 정치 경제 철학을 공부한 경력의 소유자로, 1969년 헷지 펀드의 왕으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창업해 그가 소로스와 일하는 12년 동안 3365% 수익률이라는 경이적인 No 마이너스 기록을 세우고, 1980년 한창 일할 나이인 서른 일곱살에 자신의 몫으로 1400만 달러를 챙겨서--저자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일생 동안 모험을 즐기며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가지고-- 12년 동안의 월가 생활을 깨끗하게 접고 그 이후 모험가이자 교수 및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월가 은퇴 후에도 세계 각국을 직접 발로 돌아다니며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며 경제 현실 등을 진단하며,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가이드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1998년에 그가 직접 설립한 2억 달러 규모의 상품인덱스 펀드는 2004년까지 16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 상품은 물론 주식과 채권 등 어떤 자산 투자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올린 펀드로 인정받고 있을 만큼, 그의 투자에 대한 감각과 예지력은 탁월하다고 합니다.


이토록 멋진 사람의 이름이 왜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혹은 미연방 중앙은행 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 만큼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았던 걸까요?  못내 궁금하여 그의 책을 읽어보고 내린 결론은, 그가 가진 경제철학이나 주장하는 정책들이 미국의 정치가들이나 투기적 자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비판적인 것이라는 점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느낌입니다.

실제 이 책에서 조지 부시나 그린스펀의 미국 경제 정책이나 통화 정책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매우 직설적이고 신랄한 수준입니다.

 " 그린스펀은 2001년에 다시 패닉에 빠졌다. 그 해의 미국 중앙정부는 국가 수립 이래 가장 높은 통화 공급 증가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통화 공급을 확대했다. 그런스펀은 끊임없이 경제에 돈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엄청난 통화 팽창은 전례가 없었다. 이와 동시에 재정 지출도 크게 늘었다. 정부는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양쪽 모두에서 방탕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그린스펀이 통화를 증발하는 속도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지출을 늘려나갔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마에스트로는 이제 금리를 계속 떨어뜨려 주택 시장과 소비 시장의 거품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거품은 반드시 좋지 않게 끝난다. 더구나 이번 거품이 터지면 그 때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  (490쪽에서 인용)

여기 인용한 구절은 로저스가 미국 경제 정책 및 통화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의 아주 일면에 불과합니다. 그는 오히려 중국의 경제정책이 훨씬 더 자본주의적이며, 중국의 관료들이 미국의 관료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에 앞서, 영국의 파운드화는 물론 미국의 달러화까지 거의 다 정리해버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싱가폴로 아예 거주지를 옮긴 그는 나이 60이 넘어 얻은 첫 딸을 위해 중국인 보모를 통해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음을 늘 자랑하곤 합니다.

위와 같이 2003년에 이미 미국 경제에 대해 심각하게 버블 붕괴를 경고했던 그의 예상은 아니나다를까 작년에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상징으로 폭발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지금도 미국경제는 그 몰락의 구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언론 기사나 인터뷰를 보면, 미국 경제에 대한 로저스의 예상은 결코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위기를 또다시 봉합한 것일 뿐,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근본적인 해소책을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공개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남은 최후의 해결책은 달러화의 붕괴와 미국 경제의 강제적 파산--대공황 뿐임을 은연 중에 비칩니다. )

그가 3년 동안 여행한 궤적을 따라가면서 세계 지도를 훑어보면, 그동안 이름만 겨우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작은 신생 소국들까지도 그 사정이 훤히 보일 듯이 잡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로저스가 우리처럼 아름다운 경치나 풍광을 찾아 다니며 증명사진이나 찍는 여행 투어식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라의 일반 시장과, 암시장, 매춘사업, 국경과 경찰, 관료들의 부패 관행, 그리고 주식거래소 등을 찾아 다니며 각 나라의 밑바닥 경제 사정 및 투자 환경을 동물적으로 체크해내고, 이것을 생생한 현장감각으로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끊임 없이 벌어지고 있는 제3세계에서의 종족간 분쟁이나 종교 분쟁, 아프리카의 내전들의 씨앗이 결국은 유럽 및 미국 열강들이 남긴 식민지 시대의 잔인한 잔재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들이 어떻게 저렇게 반듯한 직선인지 아는가? 라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전 지구를 식민지로 분할하여 지배했던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2차 대전 후 식민지를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인종이나 종교, 민족, 문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위로 편의에 따라 이리 긋고 저리 긋고 해서 국경을 정한 결과요, 그것이 오늘날 원유 등 천연 자원을 둘러싸고, 혹은 인종과 종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 각국의 분쟁이나 내전의 일차적 원인이라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원을 독점하여 부를 축적하려고 혈안이 된 세계 각국의 멍청한 정치가들과 독재자들의 정책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스스로와 국민들을 공멸의 함정으로 빠뜨리게 되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 및 제3세계에서 평화의 사도를 자처하는 이른 바 NGO들이 해당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압제나 분쟁을 존치시키는 역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의 특권적 지위와 호사로운 생활을 누리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아프리카 재건 정책방안에 대한 제언도 일견 귀 기울여 들을 만합니다.

"서방 선진국에서 제공하는 모든 무상원조를 즉각 중단하라!  다만, 아프리카 등 구 식민지 국가에 대한 모든 부채를 전면 탕감해주고, 그 비용을 산업 복구와 생산에 쓰게 하라. 더 이상 개입하지 말고 스스로 경쟁하고 일어서게 하라!"  

선진국들이 제공하는 원조 자금이 가장 먼저 투입되는 곳이 무기 구입이고, 대부분의 자선 구호 물자들이 제3세계 약사빠른 장사꾼들의 농간으로 그들의 판매 상품으로 뒤바뀌는 역설적인 현실을 고발하면서 내리는 로저스의 대안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의 경제 정책 및 일반 시장에서 드러나는 각 나라 사람들의 경제 행태들을 통해 언제 어디에 투자를 하고, 반대로 투자한 것을 정리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동시에, 풍부한 현장 사례와 세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진지한 학습과 천착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인류가 처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향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는 짐 로저스의 이 책은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라는 제목 그대로 모험심 가득한 한 자본가(자본주의자!)의 세계 경제 진단서이자 대안서요, 백만장자가 되어 세계일주 하기를 꿈으로 삼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인생 지침서로 꼽혀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한 필독서입니다.

 이 책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 400년 뒤까지는 아닐지라도 다음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가 되면 분명히 미국인들 가운데 누구도 단 한 명의 미국 대통령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조지 워싱턴조차 잊을 것이다. 
   세상의 영화는 덧없이 사라져간다. (Sie Transit Gloria Mundi.) 
 
   하지만 인류는 계속 살아 남을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그 변화를 이겨내는 능력은 자연의 힘 만큼이나 강력하다." 
(499-500쪽 중에서)

>> P.S.
글을 포스팅하고서 드는 사족은,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짐 로저스의 모든 것을 찬양하는 예찬론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가 로저스의 글과 주장을 높이 사는 것은, 투자가로서의 탁월한 판단력과 예지력,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 원리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입니다. 짐 로저스는 어찌보면 지나치게 자본주의의 힘과 경쟁의 원칙을 숭상하는 사람으로, 보호주의의 필요성과 보호무역이 갖는 장점을 인정하는 데 아주 인색한 편입니다. 어쩌면 세계 최대강국인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적 시스템을 통해, 평생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일찌감치 벌어놓고 세상을 놀면서 유랑할 수 있는 "여유있는" 자의 한가하고 자만스러운 주의 주장처럼 들릴 소지도 다분합니다. 이 점 책 읽으실 때 참고하시고, 가능하다면 장하준 교수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비교하여 세계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letsgo.tistory.com/133  서평 참고!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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