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규문입니다...
작년 12월 초입에 메일 드리고, 해를 넘겨서 그것도 새해의 첫 달이 거의 저물 무렵에 인사드리게 되는군요.
딴 해 같았으면 연말연시 인사를 빠뜨리지 않고 드렸으련만, 올해는 이런 동보 메일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본래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간간히 안부 삼아서 전하겠다고 한 애초의 초심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한두 번 메일을 써놓고도 정작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아래 첨부해드린 성명서 한 장을 읽다가, 아! 바로 이런 글을 나눠야겠구나 하는 강렬한 충동이 일어서 이렇게 오랜만에 키보드를 다시 잡았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언뜻 들으셨겠지만, 경부고속철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던 지율 스님이 며칠 전에 청와대 앞에서 사라지셨다는 기사를 접하고서 "이런!" 하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리고 웹 뉴스기사들을 살펴 보니, 종교계의 다수 지도자분들이 지율 스님의 단식에 참회의 뜻으로 동조하는 단식을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실려 있군요....
그런데, 이런 경우 제 마음과 시선을 더 아프게 하는 것들은 이런 기사를 바라보는 일부 네티즌들의 이른바 리플=덧글들입니다...
한번 보실래요?
지율이 독립운동이라도 합니까? 왜이리 시끄럽노,,,간다면 보내세요,,,밥안먹고 죽겠다면 제발 내버려두세요? 그사람 하나 없다고 환경이 뭐 잘못됩니까? 힘없는 대통령, 종교, 환경, 단식을 무기로 죽지도 않을 땡초가 금방 죽을것처럼 생쑈한다는 사실을 다알고 있어요, -지율은 안죽어요! 단식91일째 생쑈중!-(건강해보임)
2005-01-26 08:24:37
ㅁㅣ 친 땡중들 산속에 ㅊ ㅕ 박혀서 할일 없느니까 ㄱ ㅐ 지랄들을 하는구먼.... 2005-01-25 23:24:06
여자가 한을 품으니 1월에도 눈이 내리는군요.... 90일 단식이라!!! 역시, 지독한 여자야!!! 2005-01-25 20:29:54
지랄스님인지 뭔지 도대체 뭐하는짓이야? 제발사라져 나타나지마라...죽든지...그게 이나라에 도움이된다. 이노므 땡중들 산속에 가만히 쳐박혀있지 왜 세상일에 이래라 저래라 난리야? 너희들만 가만 있으면 세상이 조금은 살기 나아질텐데...굶어서 죽는다고 쇼하지말고 쉽게 가는 방법 마안타.~ 2005-01-25 15:13:17
아마도 혹시 지율 스님의 단식 행동을 보면서 어느 고집쟁이 독종 여승의 쑈 라고 보시는 분이 혹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서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작년에 지율 스님이 단식 43일을 넘기면서 1차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들어갔을 때, 긴급 10만명 서명 운동에 잠시나마 동참했던 저로서는, 이런 글들을 대할 때마다 한 사람의 생각과 진심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또한 본질과 달리 왜곡될 수 있는지를 절감하면서, 여론사회의 허구성과 맹점을 보게 됩니다....
불가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상하고 우주에 나 아닌 것은 없다는 불이 정신을 근본 철학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나고 죽음도 대수로울 게 못됨을 깨달은 경지에 도달하면 살아있음 또는 살아가는 행위 또한 잘 죽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요 방편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고 들은 바, 지율스님 같은 경우는 그런 인간 생명의 한계성을 이미 깨닫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둘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번 천성산 터널 공사 저지와 도룡뇽 소송에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만 천하에 공표한 분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을 힘으로 살아라 라는 말을 하지요... 죽을 결심을 하면 못할 일이 무엇이냐고도 합니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고도 말하지요...
하지만 정작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실천행위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일신의 고통이나 생계를 비관한 자살이라 할 지라도 죽자는 결심과 실제로 죽어버리는 행위만큼 힘든 결단과 고뇌는 세상에 또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의 죽음 앞에서도 겸허해야 하고, 어느 누구의 죽음 선언 앞에서도 조금은 그 사람의 진심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마흔 해를 살아오면서, 가깝게는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단식 행위들을 보았지만, 정작 그러한 공개적 단식 행위로 실제로 죽어버린 사례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결사 단식" 운운하면 일종의 "쇼"로 보아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 지율 스님이 40여 일도 아닌 90일이 넘는 단식을 하고 있다는데도 위의 네티즌들 마냥 여전히 그것을 일종의 "정치적 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나무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것 역시도 정치권이나 예전의 운동권 사람들의 "단식 쇼"들이 가져온 후유증이나 불감증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엊그제 지율 스님이 "이젠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말만을 지인에게 남기고 청와대 앞에서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어이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분이 진짜 죽음을 맞으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입니다.
아마 동료 종교인들이 단식에 동참한 것도 저와 같이 이 분이 정말 죽으려 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작년에 서명운동에 동참했을 때도, 그대로 두면 살기 어렵겠다는 주변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거든요...
단식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번 지율 스님의 죽음을 무릅쓴 단식은 일상의 실천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온 제 자신에 대한 커다란 질타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불어 죽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매스컴은 여전히 스님이 왜 단식을 하고 있는지보다는 사람이 자진 단식으로 정말로 죽는 현대사 초유의 사건이 발생할 지에 대해 오히려 촛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율스님이 천성산을 떠나 청와대 앞 단식에 이르기까지 다음의 사이트를 통해 노대통령에게 80여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보려 합니다.
새해 첫 메일을 다소 무거운 주제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민망한데요...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해서, 아래에 제가 회원으로 있으면서도 정작 개인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주고 있지 못한 시민단체에서 메일로 보내온 성명서 한 장을 첨부해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수요일, 난초에 물 주는 날이라는 아웃룩 약속이 생각나서 책상 머리맡 화분에 물 한 컵 주었습니다.
새해엔 더 큰 삶의 가치를 발견하시고, 뜻하시는 소망 이루시고, 가족 모두 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