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여기저기 송년 모임이 잦다. 작년 10월 중순에 처음 페이스북에 둥지를 마련한 이래 1년 가까이 페이스북을 이용하면서 요즘 들어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 에티켓의 중요성이다. 소셜네트워크 자체가 친구나 지인들간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의 통로이자 사회에서의 관계가 실명으로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매개체다. 때문에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 이른바 '매너'는 더욱 중요하다.

기존에 서로 잘 알던 관계여서 무슨 말을 해도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깊은 속마음까지 헤아려 줄 수 있다면야 막말이나 진한 농담도 얼마든지 용인이 될 수 있을 터이다. 문제는 새로 사귀는 사람과의 관계다.

트위터와 같이 ‘요청과 수락’이라는 동의 절차가 없이 일방적으로 팔로우와 언팔로우가 가능한 매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지만, 친구 ‘요청과 수락’이라는 쌍방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페이스북의 ‘친구’ 관계에서는 에티켓의 중요성이 훨씬 커진다.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면 말뿐 아니라 표정과 몸동작, 어조나 상대에 대한 배려심 등이 곧바로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쉽다. 실제로 행동 심리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타인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랭귀지(언어) 요소가 작용하는 정도는 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표정이나 행동 등 비언어적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것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위험성을 이루는 핵심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일차적으로 글(언어)만으로 소통을 시도하기 때문에 비언어적 요소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을 더 신중한 ‘말(글)’과 표현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다. 실제로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전혀 의도치 않은 뜻으로 상대방에게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페이스북과 같이 자신의 실명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면 이러한 오해들이 커져서 인간적인 실망으로 남거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 이러한 오해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킬 것을 권한다.

 

1. 프로필 사진을 ‘유령’으로 비워두거나, 사물이나 동물로 대신하지 마라.

2. 친구 맺기를 요청할 때는 왜 친구를 맺으려 하는지 ‘메시지’를 꼭 추가하라.

3. ‘좋아요’ 버튼을 밥 먹듯이 클릭하라. 마음의 정성이 클릭 한 번에 담긴다.

4. 쪽지는 뭉개지 말고 신속히 답글하라. 하루를 넘기면 친구의 기대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다.

5. 사진/동영상 태깅 기능은 적절히 활용하되 남용하지 마라. 잘못 쓰면 절교의 지름길이다.

6. 친구의 글을 [공유하기] 할 때는 간단한 소개 코멘트를 추가하라. RT에 덧붙이는 말처럼.

7. 개인 프로필 계정을 [회사소개 페이지]로 사용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일 뿐 회사가 아니다.

8. 뉴스피드 글을 인용할 때는 꼭 원작자와 출처를 첨부하라. 작자가 혼동되면 오해가 생긴다.

9. 온라인이 능사가 아니다. 때에 따라 필요하면 직접 만나서 소통하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10. 상대방의 본심을 헤아려라. 말이 아무리 험악해도 속뜻은 깊은 애정의 표시일 수 있다.


>> 칼럼 전문 보기 :  
http://www.betanews.net/bbs/read.html?&mkind=399&page=1&num=523245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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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짬을 내어 포털 뉴스란의 헤드라인들을 살펴 보니, MBC 엄기영 사장께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뉴스가 실려 나오네요...
언뜻 주변으로 흘러나오는 기사들을 보니, 정치권 진출(도지사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서 사표를 내는 것이라고, 민주당에서 영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을 거라 한다는 말도 함께 들려오는군요...

저는 언론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인들 중에 존경할 만하다 싶은 사람들을 사실 별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한때는 괜찮은 언론인이었다 싶은 분들이 결국에는 자신의 팔린 얼굴이나 인기를 무기로 하여 정치권으로 진출을 하게 되고,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언론 방송인 출신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이 아주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는, 박찬종이나 홍사덕, 그리고 맹형규, 박성범, 정범구 같은 분들.... 요즘은 여류 정치인들도 꽤 많아졌지요... 전여옥 같이 지잘난 맛에 독설을 뿜어대는 여인네들이 있는가 하면, 박선영, 신은경 같은 이들도 있고, 김은혜처럼 정치부 기자에 뉴스앵커를 거쳐 청와대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언론/방송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들은 공인으로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또 그 공인성과 신뢰도를 이용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곤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치적인 적군이나 타 정파들에게는 일차적인 공격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송인 출신 정치인들이 가지는 장점이자 맹점이랄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방송인들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와 정체성에 대해 공격당할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한 도전'입니다. 그 만큼 신중하거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일 거구요... 그동안 정치와는 최대한의 거리를 둔 분으로 나름 공정 방송, 혹은 인간적인 방송의 표본으로 지키고 싶은 엄기영 사장 같은 분이 과연 일개 도지사 직을 차지하기 위해 MBC라는 방송사 사장직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저는 무척이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꼭 그러지 말란 법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믿어왔던 엄기영 사장님의 이미지로 보자면, "도지사 출마을 위한 사퇴"라는 해석은 한나라당이나 MB쪽의 정치 참모(나쁘게 얘기하면 모사꾼)들이 그의 사퇴에 대해 끊임없이 나돌았던 청와대나 여당의 압력설을 희석시키기 위해 "물타기" 용으로 자작해내는 루머로 우선 해석됩니다....

설령 누군가의 추천이나 옹립을 통해서 마지 못해, 혹은 뭔가 가슴 속에 품을 뜻을 펼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그런 존경받는 방송인들이 정치권에 들어설 입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넓게 열려 있다고 보니까요...

엄기영 사장님과 유사하게 제게 그런 심정을 갖게 하는 두 사람의 방송인이 더 있는데, 바로 MBC 시사토론을 주도했던 손석희 교수와 KBS 시사토론의 사회를 주도했던 정관용 선배입니다. 방송인 정관용 님에 대해 굳이 "선배"라 호칭하는 것은 실제로 학교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사회 조직에서도 선배로 모시고(?)  짧게나마 같이 일을 해본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MB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이른바 방송계 내의 "좌파"를 척결한다는 미명(?)아닌 미명하에, 디제이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시사 토론이나 사회 고발성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진행(사회자를 포함해서)을 주도했던 세력들에 대한 일종의 숙청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관용, 정연주, 손석희, 엄기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들이 과연 "좌파냐" 하는 논쟁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10여년이 넘게 전 국민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공간 앞에서 너무나 오래동안 자신의 모습을 늘상 노출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이념적 지향점이나 색깔에 대해 굳이 규정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이들의 지향점은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늘 중립의 위치에서 합리와 상식, 중도를 표방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였던 "중도적 조정자"로서의 모습이 좌파에게는 우로 보이고, 우파에게는 좌로 보였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즉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규정이라서, 절대적으로 이들의 색깔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 중의 한 사람인 정관용 선배가 최근에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책을 출간했더군요... 출간 소식를 듣자마자 직접 온라인 주문으로 구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방송 토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꼭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에서부터 솟아나서 이렇게 서평 글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이 책의 소제목이랄까, 케치프레이즈랄까 하는 부제는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소통의 부재" 라는 말입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4대강 예산이 변변한 토의도 없이 원안 통과가 강행되는 마당에, 실상 우리 사회는 소통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탕"을 한다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 책은 바로 "소탕을 끝내고 소통의 단초를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싶었던 저자의 간절한 소망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필이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책의 제목 자체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듯이,
책 문두의 서문 또한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볼테르 | 1694-1778 "

어쩌면 이 책의 논지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건 볼테르의 이 한 마디에 담긴 정신과 철학일 것입니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소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 정관용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시작이요 끝이라 보입니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 방송토론 잊어버리기, 2장 불통공화국, 대한민국, 3장 적대적 공존관계에 빠진 한국정치와 언론, 4장 소통하는 대한민국 만들기 로 전개되고, 뒷 부분에 요약에 해당하는 부록-배우는 토론, 설득의 법칙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뒷 부록에는 방송토론에 어떻게 임하고 준비하면 좋은지에 대해 방송토론 일선에서 사회를 맡았던 저자의 경험적인 팁들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10년이 넘게 방송토론을 주도해 온 사회자 출신의 저자가, 정작 토론 일반에 대해 논하면서 첫번째 요구사항이 바로 방송토론을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의미심장합니다. 저자는, 우리 머리 속에서 그동안 마치 토론의 전형처럼 자리잡고 있는 '방송토론에 대한 통념'과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출발하지 않는 한 토론의 본원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말의 속내는 우리나라의 방송 토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토론 패널 출연자가 일반 시청자 중 중도적 입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층"들을 설득하여 내 편으로 만드는 "포섭"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미 "내 편"인 사람들에게 "우리"의 논리를 강변하여 명쾌하게 확인시켜주고,  더 좋기로는 상대편을 촌철살인 한 방의 말 펀치로 케이오!! 시켜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인기"와 "박수"를 얻어내는 데 목표를 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송토론은 "토크 쇼"의 하나일 뿐, 상대방, 혹은 중간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설득의 도구나 방법으로서 토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토론이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할 때, 또 양쪽 입장이 모두 옳을 수 있는 경우 시작되는 것으로, 어떤 가치나 정책에 대한 논제 가운데 찬반양론이 모두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고, 스스로의 장점을 입증하기 위한 논리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때라야 비로소 적절한 토론의 논제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규정합니다.

당연히 토론은 양측이 각자의 논리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각자 자기 주장의 장점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과정인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논리적 모순이나 비합리성을 찾아내 공박하는 과정이자, 자신의 주장 중에 문제가 있는 대목들을 걷어 내고 상대방의 내용 중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받아들여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거나,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 경우 "공통의 합의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이란 것입니다.

저자는 방송토론은 기본적인 속성상 이처럼 공통의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으로서의 목적과는 많이 상이하기 때문에 애시당초 토론의 모범이나 전형이 될 수가 없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토론 하면 방송토론을 떠올리기 때문에, 방송토론의 해악이 너무 크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방송토론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구요. 쇼로서의 방송토론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토론의 모습은 구분해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특히 우리나라의 방송토론이 갖는 대부분의 해악은 토론이 갖는 특성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론에 임하는 토론자들의 "태도"의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합니다. 즉 일상적인 토론에서는 그러지 않던 사람들도, 방송토론에 어느 한 집단을 대표해서 나오게 되면 그 순간, 중립자나 중도의 부동층을 상대로 설득한다는 토론의 기본 전제를 망각하거나 아예 제쳐두고 자기 편 사람들에게 더 큰 박수를 받음으로써 인기를 관리하려는 "카타르시스 창출의 대변자" 역할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송토론의 해악과 구조적인 한계에 대한 폭로(?)에 이어서, 저자는 2장 불통공화국, 대한민국 편에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토론에 그토록 어려움을 느끼는지, 왜 토론이 아닌 언쟁, 심지어는 인신공격을 일삼게 되는지에 대해 그 역사적인 연원을 살펴봅니다.  급속한 경제성장, 초고속 압축 성장이 초래한 세대간, 지역간 격차와 물질과 정신의 불일치, 이로 인해 파생된 최악의 "문화지체"로부터 그 연원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정치와 언론이 적대적인 공존 관계에 빠짐으로써, 이러한 소통 부재 현상을 해소하기보다는 도리어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소설가 김훈 선생의 표현을 빌어서,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 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는 김훈 선생의 말을 빌려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의식을 작금의 언론을 향해서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 사회의 불통 구조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 마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희망을 찾기 위해 그 해결의 실마리, 소중한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마지막 4장에서 우리가 기존의 "적대적 공존관계" 대신에 "건설적인 대립관계"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해 보고자 시도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소박한 출발점,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로 하여금, 성공신화의 주술로부터 벗어나서 행복신화로 대체토록 하자"는 것입니다.

즉, 이기고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한 경쟁, 뺏고 빼앗기는 약육강식의 전쟁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사회에서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 수밖에 없는 "성공의 미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공존과 나눔에 기반한 최소 행복의 추구를 기본적 가치이자 권리로 새롭게 인식하고 이것을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로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재산이 얼마냐고 묻기 전에 얼마나 행복하냐고 묻는 사회, 함께 행복하자고 서로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그런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회색도 엄연한 하나의 색깔"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검거나 희거나, 흑백 택일이 아니면 안된다는 '편 가르기'의 논리를 넘어서서, 검은색과 흰색의 성질 둘 다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색깔로서 회색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회색인이 당당할 수 있도록" 용인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우에 따라, 사안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의 장점만을 가려내고 섞어서 우리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하며 글은 끝이 납니다...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저자 정관용이 던지는 또하나의 토론 화두, "회색은 색이 아닌가?" 라는 테마가 결코 가볍게만 들리지 않기에, 우리 시대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십사 강권합니다.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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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꼭 보았으면 하는 책, [설득의 심리학2]

 


똑같은 책, 똑같은 영화를 보아도, 사람마다 감동을 느끼는 대목이나 느낌, 이른 바 필이 오는 부분은 다르게 마련이지요.

그때문에 같은 책을 보고 나서 올리는 책에 대한 리뷰나 서평도 모두 사람마다 제각각이구요.

한달 전쯤에 뭉텅이로 사놓았던 책들 중에 언제 볼까 언제 읽을까 미루다가, 이 책을 6월의 마지막날 아침에 읽기를 마쳤더랬습니다.

로버트 치알디니 라는 저자의 이름은, 해외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만은 심리학 분야에서 꽤나 독보적인 존재로 이름을 떨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가 국내 심리학 분야에서 공전의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을 한국어로 펴낸 것이 2002년이고, 그게 작금 100만부 이상이나 팔렸다고 하니, 나름 유명할 만도 하지요....

그게 고마와서였던지, 저자는 이번에 펴낸 [설득의 심리학2]에서 한국 독자를 위해 친히 별도의 감사 서문을 싣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왜 자신의 책이 유독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팔리게 되었을까에 대한 자기 나름의 분석의견을 이렇게 내놓고도 있습니다. 

 ".... 한 마디로 말해서 설득은 권력 행사 없이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이 한국에서 [설득의 심리학]이 환영 받는 이유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정부가 '똑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 입니다. 즉, 남한 사람들은 시장경제를 경험했고 형제 나라인 북한은 계획경제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공식적인 권력과 독재에 바탕을 둔 경제시스템이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정책을 실시하는 경제 시스템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는 강제력과 계급이 발휘하는 권력으로는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설득의 과학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설득의 심리학2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말지는 출판사 사장의 할애비가 와도 모른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습니다. 사실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100만부 넘게 팔린 이유에 대해 짐작이나 추측을 하라면 아마도 100만명의 생각이나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분단 국가의 특성에 따른 사회적인 배경의 독특성, 분단 조건에서 정부권력과 경제권력이 나누었던 유착과 특혜의 구조, 가진자와 못가진 자 간의 갈등과 평등 지향적인 전통, 세계 어느 곳 못지 않게 여성의 권리에 대한 형식적 보장이 급속하게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뿌리깊게 잔존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따른 의식과 실재의 괴리, 불과 5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하위 빈국에서 10대 경제강국으로 탈바꿈한 초고속 성장에 따른 사회 변화의 어지러운 속도와 그 폭의 깊이 등등....

사실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설득의 가치나 필요성에 대한 자각 혹은 문제제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대화나 설득의 미덕에 대해 말로는 인정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읽기]와 [쓰기]는 배웠을 지언정, [듣기]와 [말하기]는 사실 거의 뒷전이었고, 듣기와 말하기가 국어 공부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살아 왔다고 해야 합니다.

실제 대학입시에서도 최근 수년 동안 [논술]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강조하고 여기저기서 논술 전문학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듣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말하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이제서야 겨우 생겨나고 있는 형국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자녀간 대화법]이라든가 [결정적 순간의 대화] 따위 같은 것들이 바로 시간과 상대에 따른 대화의 방법론들을 겨우 문제제기 하는 차원이니까요....

근데 모든 대화는 상대방이 필요한 행위이고,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가진 마음 속의 생각이나 의도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거나 설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말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위해서는 [말하기]와 더불어 [듣기] 능력의 향상이 필히 함께 요구됩니다.  작금, 국회나 여야간 정치협상이나, 텔리비젼의 이슈 시사토론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사회적인 이슈나 주제에 대해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는 과정은 없이, 무조건 자기 주장과 생각만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개념 없는 패널들을  수도 없이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방통행식 대화의 끝은 늘, 원시적 물리력을 동원한 몸싸움이거나 난장판으로 귀결되고, 지루한 협상의 끝은 주로 대개는 "결렬"과 "충돌"로 마무리되곤 하지요. 대화 단절이나 충돌의 책임은 물론 전적으로 상대방 책임이라면서 자신은 떳떳한 척 속이 뻔히 들여야보이는 대변인 성명들을 발표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풍토를 벗어나는 해답을 줄 수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런 풍토 속에서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어 내거나,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설득을 당하는지에 대한 "원리와 과학"을 학습해야 할 필요성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더욱 크다고 생각됩니다. 심리학 이라는 영역 또한 학문으로 인정받는 데서 더 나아가 "심리과학"으로 인정받기까지는 꽤나 오랜 연구와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심리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고 움직이는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고 존재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과학적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심리학 연구 또한 새롭게 한 차원 도약하는 지점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즈음에 [설득의 심리학2]를 보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읽었으면 싶은 분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 이었습니다.

왜냐구요??  한 대목만 추려서 인용해 드리지요...

전체 50개의 키 센텐스로 이루어진 본문 내용중 34번 챕터의 제목은 "똑똑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한다" 입니다.
이 챕터 중에 아래와 같은 그림과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배경은 어떤 회사의 연간 실적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고, 실험에 참가한 두 그룹의 참가자들 중 한 그룹에게는 저조한 실적의 원인이 내부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이나 대응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인정하는 보고서(A)를 보여주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환경 변화와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고 분석한 보고서(B)를 보여준 뒤에 어떤 그룹의 참가자들이 회사의 경영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해본 결과, 저조한 실적의 원인을 내부의 문제로 인정한 보고서를 읽은 그룹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회사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확대하여, "실제로 14개의 회사를 상대로 21년 동안의 연차보고서를 검토하고 이와 연관된 진술을 수백 가지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 결과적으로 저조한 실적의 원인을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문제 탓으로 돌린 경우보다 통제할 수도 있었던 내부적인 문제 탓으로 돌린 경우에 1년 후 주가가 더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설득의 심리학2] 호감의 법칙편 중 163-166쪽 참고)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제 머리 속에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소통의 부재로 인해 고난 받으사, 오늘도 떡볶이와 오뎅을 입에 물고 증명사진을 찍어서 관제 TV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홍보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빠진 그 분께서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라는 느낌이 왜 가장 먼저 뇌리를 치고 떠올랐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아마도 이 책을 읽어보시면 제 말씀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우병 소 수입 협상의 문제점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에 대해 프로그램 제작진이 정권을 음해할 목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고발을 해대질 않나, 촛불집회를 좌익 불순세력들의 정권 타도 음모 차원으로 이해를 하지 않나, 치솟는 물가와 실업율의 원인을 이전 정부의 문제 또는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나 에너지 가격 폭등 탓으로만 돌리려 하질 않나, 기타 등등 모든 사회 문제의 원인을 이른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원인, 바로 남의 탓"에서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모든 정책 실패나 경제 위기 등에 대한 원인을, 모두 이전 "좌파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 탓으로 돌리거나, 국제 경제여건의 급속한 악화 탓으로만 돌려대고, 정작 자신들은 별로 잘못한 게 없다는 식으로 둘러대는 꼴을 매일처럼 목격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스스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는 커녕,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결정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연차적으로 지원금액을 늘리도록 했던 복지정책들에 대해서는 시행 과정에서 이를 가로막거나 기존에 책정된 예산마저 깍아버리면서도, 복지예산의 절대 지출액이 참여정부 때보다 늘어났다고 자랑스레 자신들의 업적인 양 큰소리치는 대목에 오면 아주 그 뻔뻔스러움이 한심스럽다 못해 측은할 정도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 스탭진들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국민 대중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논리와 정책에 대해 이해하고 "설득을 당할 수 있는지" 제발 좀 공부를 했으면 싶습니다. 이 책은 [설득의 심리학]에서 다루었던 이른 바 [설득의 기본원리] 여섯 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구체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된 사례들을 각 원리별로 보완하여 제시하면서, 원리를 [설득의 과학] 수준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느낌을 줍니다.

전편을 읽으신 분이라면, 설득의 여섯 가지 불변의 법칙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보셔서 감회가 새로우실 겁니다.

1. 사회적 증거의 법칙 =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이 더 많이 팔린다
2. 상호성의 법칙 = 인간은 먼저 받으면 다시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3. 일관성의 법칙 = 내가 선택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최고라고 믿고 싶어한다
4. 호감의 법칙 = 잘생긴 피의자일수록 무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5. 희귀성의 법칙 = 한정판매나 백화점 세일 마지막날에 사람들이 몰린다
6. 권위의 법칙 = 권위있는 상을 받은 상품이나 높은 직책, 우아한 옷차림 앞에 꼬리를 내린다
는 것이지요...


[Yes를 끌어내는 설득의 50가지 비밀]
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번 2권은, 전편에서 다룬 이들 여섯 가지 법칙에 대해 각각 6~9개의 주제들을 선정하여 "주제문" 형식의 제목을 붙인 50개의 챕터로 구성됩니다. 심리학의 다양한 실제 적용사례와 연구 성과들을 통해 그야말로 "설득력 있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 심리학이 일종의 과학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게 되실 겁니다....

부디 이 나라의 남의 탓이나 하고 자빠져 있는 위정자들이 이 책을 빨리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남의 탓이 아니라 진실로 "내 탓"을 할 때라야 비로소 상대방이나 국민들이 더 긍정적으로 봐주고, 설득당한다는 점을 제발 좀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일반인들에게는, 에필로그 중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설득의 오해와 진실" 소제목 부분을 꼭 한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246-250쪽 참고!)

이 부분의 요지는 주로 글(문장), 특히 이메일로 이루어지게 되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도구로서 왜 위험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 사례와 그 치명적일 수 있는 결과들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목소리나 직접 얼굴을 보고 메시지를 전달한 그룹과 문자만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 이메일 그룹은, 메시지 전달 정확도에 대해 두 그룹 모두 비슷하게 89퍼센트 정도 될 것이라고 장담(예측 답변)했지만, 정작 실험 결과를 보니, 목소리-대면 그룹은 메시지 전달의 정확도가 74퍼센트였던 반면, 이메일 그룹은 6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글(문자)을 써서 어떤 메시지(의도)를 전달하려 할 경우, 제아무리 용을 써도, 말(표정)이나 목소리가 없이는 전달 메시지의 정확성이 63%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머지 37%가 바로 오해의 소지를 낳는 위험의 근원이 되는 것이지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의 차이를 옛 선조들의 속담으로 부터 배워온 우리는 37%의 메시지 불통이나 왜곡이 곧 "님"과 "남"의 차이 만큼이나 클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하는 것입지요.

상대방이 왜 내 말을 안 들어 주는지, 혹은 못 알아 듣는지 속이 답답한 대한민국의 모든 분들, 특히 소통의 부재를 외치는 분들께 모처럼 재미와 교훈을 가득 전해주는  [설득의 심리학2]를 꼭 한 번 읽어 보시라고 강추합니다!!!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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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의 경찰 차벽 바리케이트를 상징으로 현 정권의 안하무인과 소통 부재에 대한 여론의 질책이 끊임없는 시국선언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늦은 밤 오랜만에 [MBC 100분토론- 민주주의, 위기인가] 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기술과 방법의 저급함이랄까, 공격성이랄까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했습니다. 

의사소통, 혹은 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소통이란 말이나 행동을 주고 받는 상대가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고, 따라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는 아무리 합리적인 의견이나 견해를 표방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요나 자기독선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민주주의의 근간 역시, 민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로부터 제대로 설 수 있고 또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작금 그러한 기본원리가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버려진다면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위기라 할 수 있지요...

토론 생방송 시청자 전화의견을 듣는 코너에서 한 시민이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하더라!”는 발언을 하신 모양인데, 어떤 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뜩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며 맞장구를 치시더군요. “그래, 나도 그런 떡 제발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라구요,,,  소통의 부재 속에 이심전심 역설의 소통이 더 잘 '통하는' 공감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관련 글: http://go.idomin.com/252 )

문득 지난 가을, 소통에 대해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던 메일이 떠올라서 아래 퍼다가 붙여 드립니다....



From: 최규문 [mailto:letsgo@uhakn.com]
Sent: Tuesday, September 02, 2008 6:23 AM
To: 아무개 외 다섯 분
Subject: [공유] FW: [하승범]불편함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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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첨부 전달하는 것은 제가 예전에도 한번 소개해드렸던 하승범 님의 정기 메일인데요,
오늘 아침 메일의 타이틀 글이 나름 의미 있고 재미가 있어서, 회사 식구분들께 공유합니다.

불편함을 통한 의사소통이라….
매우 역설적인 컨셉인데 이웃 일본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하니, 한번 새겨 들어 보시지요…

혹시라도 우리 조직 내에서도 일이나 업무, 혹은 성원들간에 말로는 다하지 못하는 불편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 불편함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알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자세로 임한다면 오히려 그 불편함이 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타산지석이라 하지요… 늘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응대할까,,,,
내가 상대방이라면, 왜 저런 의견을 저런 표현으로 말하는 걸까?
이것을 역지사지라 부르지요…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언행에 대해 근본적인 의도를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지난 주에 고향에서 어머님께서 된장이며 쌀이며 고추며, 몇몇 가지를 택배로 보내 오셨는데
그것을 열어본 집사람이 질겁을 하고, 제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를 비난하고 욕하면서
난리가 났더군요…

이유인 즉, 택배 포장을 뜯어보니, 그 안에서 구더기처럼 생긴 쌀벌레(나방이 되기 전의 애벌레)
들이 줄줄이 기어 나왔던 것이지요.
풍뎅이에 바퀴벌레같이 제법 모양을 갖춘 곤충들에도 질겁을 하고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정도로 유별나게 징그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구더기라니 오죽 했겠습니까?

어머니께서 나름 먹어보기 힘들다는 맵쌀을 먹어보라고 보내주신 모양인데, 아니나 다를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억지로 구더기 쌀을 화장실 세수대야에 담궈 놓았다는데, 들여다보니,
쌀벌레 구더기 열 마리 정도가 둥둥 떠서 노닐고 있는 것이 제가 봐도 정이 떨어지더군요…
덕분에 저희 부부간에 한참 동안이나, 또 입씨름이 시작되었지요.

"누가 보내달라 했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런 썩은 쌀을 보내느냐?
앞으로 이런 거 보내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릴 테니 다시는 보내지 마시라고 해라.
시어머니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한 것이 아니냐?" 등등...

과거에 며느리로서 서운했던
기억들까지 다시 들춰가면서, 쉬지 않고 어머니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기 시작하더군요….
대개 부부싸움의 태반이 바로 경제적인 문제와 시집 사람들에 대한 의견차에서 시작되지요.
당연히, 집사람의 오바하는 모습에 저도 역시 열이 받았지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새끼한테 먹거리를 보내면서 일부러 썩은 것을 보내겠느냐?
내가 보내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뭐 하나라도 좋다는 게 있으면 자식에게 먹여보고 싶고
주고 싶은 것이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고 자식들에 대한 정성이다.
묵은 쌀인 줄 모르고 실수로 보내셨을 수는 있지만, 그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니다!
제발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고서 시어머니를 욕하기 전에 그 분의 정성과 안에 담긴 마음과
의도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욕할 필요는 없는 일 아니냐…."

이게 제 논리이자 항변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분위기는 쉽게 꺼지질 않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밤 무렵에 어머니께서 보낸 물건 잘 받았느냐고 확인 전화를 해 오셨더군요….
저는 듣기 싫지 않을 만큼, 맵쌀이 묵어서 쌀벌레가 많이 나와 모두 버렸고, 집사람이 덕분에
많이 놀랐다고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도 무척 놀라시며, 맵쌀이 구하기도 힘들고 해서 잘 아는 시장 사람에게 부탁해서
받은 것을 아무 의심 없이 확인도 하지 않고 봉다리째 넣어서 보낸 것인데, 그런 줄 몰랐다고,
그 상인에게 항의하고 변상이라도 요구를 해야겠다며 거듭 미안해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왜 유독 너희 집에 보내는 물건에서는 그렇게 자꾸 문제가 생기냐 하시며,
앞으로는 아예 아무 것도 안 보내야겠다고, 제가 요청하지도 않은 약속까지 하시더군요…
저는 사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영 안 좋았습니다.

집사람이 하도 싫어하니까, 이왕 일이 터진 김에 말씀은 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식
챙기려는 정에서 나오는 행동까지 하지 마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 심정이 영 흔쾌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차라리 안 보내셨으면 썩은 쌀을 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집사람이 어머니를 오해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그게 서로의 관계에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아마도 자식새끼 챙겨보고 싶어
과실 하나, 쌀 한 되 보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씀씀이마저도 소통할 길이 영영 막혀 버리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좋은 일일까요?

중요한 것은, 겉으로 표현되는 말이나 결과에 앞서서, 그 말이나 행동이 나오게 된 애당초의
의도나 동기를 우리는 서로 읽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법원의 판결에서도 어떤 범죄 행위가 있었을 때, 형량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의도성, 목적성 여부입니다.

즉 애당초 범죄를 행하거나 사람을 해할 의도가 있었는지, 이른바 계획된 범죄였는지 아니면
순간적인 분노나 우발적인 실수, 혹은 어쩔 수 없는 정당 방위로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가
발생한 것인지를 따져서 범죄 성립의 여부와 형량의 경중을 나누곤 합니다.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범죄 성립 여부를 가지고 비유하자니 너무 나간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어떠한 행동의 기저에 깔려있는 의도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지간에서나 조직에서나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동료나 팀원들에게 말로 직접 드러내어 표현하지 못하는 불만이나 맘에
안 드는 구석들이 있다면, 제일 먼저 떠올려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역지사지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그 상대방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맘에 안 들거나 불만인데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감정은 혹시 없을까?
나의 어떤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남의 언행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를 돌아보는
“자기수신”의 자세와 더불어,
설혹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더라도 상대방이 근본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내면의 선한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읽어내서 올곧게 보려는 “역지사지”의 마음…

아마도 이런 것이 바탕에 깔린다면 우리네 세상은 법이 없이도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이고,
그런 직장에는 늘 웃음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넘쳐날 것이라 믿습니다.

모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새로 읽은 메일 하나 공유하고 소개하려다가 쓸 데 없이 제 말이
무척이나 길어져 버렸네요…

새로운 9, 비가 그친 하늘 창 밖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바야흐로 가을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읽어주면서 모쪼록 그 동안 어렵게 뿌린 씨앗을 조금이나마
거두는 알찬 수확의 계절을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싶습니다…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2008
92,  동트는 아침에…
목동에서 초심 드림.


 <아래는 위의 메일을 쓰게 된 자극을 받은 메일 원문 입니다.>
From: 하승범 [mailto:win1004ha@unitel.co.kr]
Sent: Tuesday, September 02, 2008 12:46 AM
To:
Subject: [
하승범] 불편함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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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넷

우리는 보통 ‘불편함’이라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 ‘불편함’이 주는 이점을 꿰뚫어 봄으로써 크게 성공을 거둔 곳이 있습니다. 홋카이도 도카치 지방의 중심부 오비히로 시내의 새로운 명소인 기타노 포장마차가 바로 그 곳입니다. 오늘은 ‘씽크 이노베이션’에 소개된, 불편함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기타노 포장마차의 사례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타노 포장마차는 18개의 포장마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열 명만 들어가면 꽉 차는 가게들 어디서나 손님들의 목소리가 흘러넘치고,
밤이 깊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줄 모릅니다. 이곳은 전국의 약 30곳에서 이곳을 본뜬 시도가 이루어져 포장마차촌에 의한 지역 활성화 물결의 도화선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타노 포장마차의 성공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불편함’이라는 요소입니다.
언뜻 잘 이해가 안 되지요? ‘불편함’이 어떻게 성공의 요소가 될 수 있을까요?

기타노 포장마차는 의도적으로 가로 3m, 세로3.3m의 고작해야 3
평 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무 좁아서 손님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기타노 포장마차의 창안자인 사카모토 가즈아키 전무이사는 이러한 불편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게가 좁으면 손님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손님 사이의 의사소통을 낳아요. 혼자 온 손님은 대개 가장 안쪽에 앉으므로 화장실에 가려면 옆자리의 손님에게 말을 걸어야 하죠.
거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됩니다. 불편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는 거죠.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제일 소중히 여긴 것은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었어요.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사카모토와 그의 동료들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불편함이 낳는 의사소통’입니다. 이는 18개 포장마차 각각의 점주들 사이에서도 적용됩니다.
기타노 포장마차의 경우, 주방 부분은 고정식이지만 객석 부분은 조립식이라서 점주들은 저녁에 출근하면 주방 옆의 수납고에서 객석 부분을 꺼내어 조립해야 합니다. 의자까지 고정식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의사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사마모토 전무이사와 콤비를 이루는 구보 유지 전무이사는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점주에게는 개점 전에 포장마차를 조립하고, 폐점 후에 수납하는 일이 귀찮고 불편합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웃 가게나 맞은편 가게와 서로 돕게 됩니다
. 포장마차의 불편함이 점주들간의 의사소통을 낳고 있는 거지요. 우리를 본떠 만든 포장마차촌 대부분은 좌석을 전부 고정식으로 만들어 옆집이 언제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서로간의 유대감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요.

이런 방식을 통해 각각의 포장마차는 하나하나의 독립된 사업체이면서도, 전체적인 운영에서 강한 팀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편함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낳는다.’ 이 한결같은 컨셉이 기타노 포장마차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상 기타노 포장마차는 2001년 문을 연 이래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첫 해에 오비히로시의 전체 인구에 가까운 15만 명 이상이 찾아와 2
억 엔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그 후 상승세를 타고 매상이 늘어 4년째에는 고객 수가 18만명을 넘어섰고 매출액이 34천만 엔에 달하게 되었지요. 그 사이 ‘내일의 일본을 만드는 협회’의 고향 가꾸기 상, 총리 대신상, 일본도시 계획가협회 대상 등 지역 활성화와 관련된 여러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례를 보면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불편함’이란 것이 완전히 장점으로 탈바꿈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의사소통’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불편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있다면 한번 그런 요소를 이용해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해 보세요. 그건 어쩌면 서로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간의 부담 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사람 사는 곳의 느낌, 따뜻함, 동지애 등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기 계발 작가 김보승 드림
*참고 자료: ‘씽크 이노베이션’, 노나카 이쿠지로, 가쓰미 아키라 지음, 남상진 옮김, 북스넛
첨부 파일 참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승범의 사명***
"나는 자기계발을 통해
지혜롭고 현명한 코치로서
파트너들과 함께
매일 더 나은 삶을 성취하고
행복 실현하는 천년가문을 세운다."
리하는 , Success Navigator!


Posted by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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