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오마이뉴스]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오마이뉴스의 모든 기사들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편도 아니구요.  다만,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환경 하에서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조명받지 못하는 곳에 대한 취재 공간을 선도적으로 개척해온 점에서는 그 시도를 존경합니다.  특히 보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혹은 다루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열린 시각과 개인들의 발언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는 [프레시안] 및 [미디어오늘]과 더불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또한 개인적으로 진중권 교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최대한 팩트(사실)에 근거해서 전개되고, 앞뒤 논리가 맞는다는 점에서, 보수 정객들의 앞뒤 똥오줌 못가리는 '느자구없는' 주장들에 비하면, 200% 들을 만하고 귀기울일만 하다는 점에서 그를 존경합니다.  특히 그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현장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전경들의 폭력에 노출되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온몸으로 누비면서 앞장서는 실천력에 대해서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최근 완장 찬 유인촌의 MB정부 앞잡이 행태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사태와 관련 문화부의 졸렬한 감사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 데 이어서, 4대강 개발사업을 주축으로 강행되는 MB정부의 삽질 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 기사를 작심하고 싣기 시작하신 것 같네요...  아직 다 마무리되지 않은 진교수님 글을 퍼다가 공유합니다....


제작비 22조, 무너진 경제대통령의 신파
[진중권 칼럼] '삽질 대한민국'... 나라가 어쩌다 이 꼴 됐나
09.06.22 12:11 ㅣ최종 업데이트 09.06.22 14:23 진중권 (angelus)
  
2007년 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15대 총선 선거법 위반 재판 당시 거액을 받는 대가로 위증을 요구받았으며 "위증하지 않았다면 이 전 시장이 구속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대통령을 하느냐?"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자)

 

전직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은 MB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MB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성공한 기업인으로 연출하려 한다. "정치보다는 일을 잘해서 평가를 받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그 때문. '개라고 생각한 고양이.' 이런 것을 유식한 말로 '범주오류'(category mistake)라 부른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범주오류가 하필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사실 MB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이 14대 총선, 그러니까 자그마치 17년이나 묵은 김치다. 깨끗한 축에 속했던 것도 아니다. 15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하고, 범인 김유찬을 외국으로 도피시키며 그에게 허위 자백서를 받아 공개하는 등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될 듯하자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빌미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끝까지 범인도피 부인한 이명박 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의 진실은?' <오마이뉴스> 2007년 2월 16일자)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 그 상황에서 정치를 혐오할 형편이 되는가?

 

성공한 CEO? 그것도 우습다. MB가 몸담은 현대건설은 그가 떠날 때쯤 1차 부도위기를 맞을 정도로 부실했고, 그 여파로 훗날 워크아웃 대상이 된다('믿습니까, 이명박의 유능한 CEO 신화' <한겨레21> 2007년 7월 2일자).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때 8.0%에 달하던 서울시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1%로 주저앉았다. 충남 8.4%, 경북 6.9%, 전국은 4.1%의 성장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민병두 의원실 : 이명박 전 시장 재임 중 서울 성장률 1.1%로 전국 꼴찌' 연합보도자료 2007년 7월 12일자). 금융으로 업종을 바꿔 BBK에 뛰어들었으나, 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기만 당했다. 결국, 현대경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깨끗한 정치인도 못 되고, 성공한 CEO도 못 되고, MB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건설현장의 감독뿐. 그가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1970~1980년대에 형성된 그의 사적 체험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을 매개로, 졸지에 대한민국 경제 및 정치의 패러다임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22조가 넘게 드는 대규모 삽질로 경기를 부양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제요, 대통령이 감독이 되어 국민을 공사판의 인부 부리듯 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쫄티 입은 슈퍼맨... 변화를 읽지 못한 복고 취향

 

  
2008년 12월 6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경제파탄 민주파괴 이명박 정권 심판 국민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경제정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민생민주국민회의

첫 단추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였다. 불행히도(?) 대통령의 주도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관치경제는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되었다. 토대(경제)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상부구조(정치)는 조만간 제거되는 법. 박정희가 괜히 암살당한 게 아니다. 늦어도 전두환 정권 이후 경제의 주도권은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점에 관한 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념이 차라리 정직하고 현실적이다. MB는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한 복고 취향이다.

 

MB가 내건 개도국 구호는 결국 경제위기 속에 극적 파탄을 맞았다. 2008년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2.2%, '경제 망쳤다'고 한탄하던 노무현 정권의 절반 수준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수치로 표현되는 성장률, 그것도 개도국 수준의 고도성장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고도성장이 그렇게도 부러운가? 참고로, MB의 한국이 죽을 쑤는 동안 인도는 6.7%, 중국은 9.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성장률이 높다고 인도와 중국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경제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시대착오적인 믿음의 엔진을 단 '에어 MB'의 보잉 747은 당연히 비상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바다로 추락했다. 동력을 잃고 바다에 불시착한 747은 이제 곁을 지나는 애먼 어선이나 괴롭히는 소말리아 해적선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7% 부활의 복음을 믿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오직 사도 변희재뿐. 오, 반석 같은 믿음이여. 그가 운영하는 <미디어 빅뉴스>의 목표는 아직도 '경제성장률 7%', '국민통합 국민합의'란다. 이런 것을 유식한 말로 犬食草音, 즉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 부른다.)

 

국민들이 MB의 전과 열네 개를 쿨하게 용서해준 것은 고도성장의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 MB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도 통치는 계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자칭 '중도실용정부'가 검·경을 동원해 좌파를 사냥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공안 통치를 하게 된 것이다. 인도에 나부라져 앉았거나 지하철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전경 떼는 20년 만에 다시 서울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경제대통령'의 환상 때문에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제대로 망가졌다.

 

박정희 놀이?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시대 아니다

 

1970년대 관치경제에 사로잡힌 MB의 상상력은 이미 집권 초부터 시대착오로 드러났다. MB는 자신과 재계 사이의 '빅딜'을 믿었다. 한마디로 재계의 숙원이던 '규제 완화'를 해주면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해주리라는 것. 규제완화=경제성장이라 믿는 그 단순한 머리가 부럽다. 현실은 MB의 순진함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기업들은 투자와 채용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소득 통계'에 의하면 올 상반기 건설, 설비, 무형 고정투자를 포함한 총 고정자본의 전년 동기대비 실질 증가율은 0.5%로, 작년 상반기 6.2%에 비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투자 증가율이 '제로'에 머문 셈이다. 일자리 문제도 신통치 않다. 전경련이 7월 초에 발표한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계획에 상당수 그룹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재벌에 무장해제한 MB, 이제와 뿔난들' <프레시안> 2008년 8월 22일자)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투자란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법. 세계경제의 전망도 불확실한데, 대통령 얼굴 봐서 투자를 확대할 수는 없잖은가. 정몽구 회장도 사면해주고, 규제도 완화해주었는데도 재계가 미적거리자, 한나라당에서 단단히 뿔이 났다. 

 

"박희태 대표는 21일 한나라포럼 초청 강연에서 '지금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 돼서 투자를 않고 있다고 하는데 재벌들은 몇 십조 원씩 쌓아 놓고도 투자를 안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8·15 사면에서 경제인이 많이 사면된 것은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경제 살리기를 위해 적극 투자해달라는 뜻이 아니냐'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위의 기사)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하다니,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기업에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어느 매체의 지적처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정권의 문패에 감사해 서민경제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바지할 만큼 '착한 자본'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낭만적이라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재벌에 무장해제한 MB, 이제와 뿔난들…' <프레시안> 2008년 8월 22일자)

 

한편, MB가 경제성장의 비결이나 되는 양 재계에 선물로 안겨준 '규제완화'는 도대체 우리 경제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MB의 대변인(당시 차명진 대변인)이 솔직히 실토한다.

 

"이번에 경제를 살리라는 이유로 욕을 들어가면서 특별사면도 해 줬는데,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에만 급급한 기업인들이 꽤 있다." (위의 기사)

 

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는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였다. 이게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재계는 제 먹을 것만 취하고 입을 씻었다. 하긴, 계약서를 써서 이행의 의무를 지운 것도 아닌데, 계약 아닌 계약을 뭐 하러 지키겠는가? 그래 놓고서 선물을 줬으니 답례를 하라고 종용해대니, 기업들이 아주 귀찮았던 모양이다. 한 그룹의 임원은 이 재판 박정희 놀이를 이렇게 꼬집었다. 

 

"일자리는 투자가 늘어야 하고, 투자는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나와야 하는데, 현 정부가 과거 박정희 시절처럼 투자대상을 직접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전경련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공수표 될 판' <한겨레> 2008년 8월 19일자)

 

박정희 시절이라면 정부가 재벌들 불러 윽박지르고, 또 전두환 정권 초기라면 말 안 들으면 재벌 하나(국제그룹) 쯤은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불행히도(?)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골통(骨筒)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무력한 푸념의 심오한 뜻을 이제야 알겠느뇨?

 

호주 총리도, 영국 총리도 떠나고... 나 홀로 치는 뒷북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한줄로 서서 이명박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건희

물론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하나, 그 방식이 박정희식일 수는 없다. 현대국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경제조정적 개입과 사회복지적 개입. MB 정권은 '작은 정부'라는 모토 아래 이 두 가지 개입을 축소해 왔다. 대기업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고, '강부자'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감세에 따른 세수의 부족은 서민층에게 전가하며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는 축소하며, 이게 세계적 추세이자 '선진화'란다. 과연 그럴까?

 

MB가 열심히 규제를 풀고 있을 때, 앞서 그 짓을 했던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와 함께 197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다. '신자유주의는 죽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 그런데 각하는 다른 나라에서 시체가 된 이념을 경제 살릴 구세주랍시고 들고 나오셨다. 유행을 좇을 때조차 나 홀로 둥둥, 뒷북을 친 것이다. 이를 비웃는 인상적 사건이 있었다. MB가 호주를 방문하기 직전, 호주의 총리가 국내 한 신문에 특별 기고를 했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 궁극적으로 시장의 힘이 이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시장 이념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힘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위기로 몰아넣는지 목격했다. (...) 신자유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으로 금융시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조셉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 안 보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 '[특별기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의 역할' <중앙일보> 2009년 3월 2일자)

 

한마디로, 호주 총리가 자국 방문 기념으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신자유주의자(=MB)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러드 총리 못지않게 신자유주의를 열렬히 신봉하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최근에 생각을 바꾸었다.

 

"세계 경제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이자 흔히 미국식 자본주의 대외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일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영국의 경우 고든 브라운 수상이 "워싱턴 컨센서스는 끝났다."라고 첫마디를 시작하기까지 했다. 모든 것은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저절로 조절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의 결과가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폐해로 드러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베이징 컨센서스의 위력' <노컷뉴스> 2009년 4월 13일자)

 

추세가 이렇게 흘러가자 한나라당에서 당황한 모양이다. 정두언 의원이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로 지정한 책의 저자를 불러 세미나를 열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가 6일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했다. 장 교수는 (...)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 강연회에 참석해 규제완화, 금융시장 자유화 등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강연회에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를 초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정부 여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정하는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 한나라당 의원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장하준, 한나라 토론회서 MB정책 비판' <연합뉴스> 2009년 4월 6일 자)

 

이것이 MB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그건 MB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MB는 꿋꿋하게 제 길을 한다. 하긴,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 재계는 도통 말을 안 듣는다. 투자를 확대할지 말지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야 할 문제니까. 고로 권력으로 뭔가 해 볼 수 있는 곳은 공공부문뿐. 여기서라도 구조조정으로 '효율성' 제고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가 다시 '큰 정부'로 갈 때, MB 혼자 '작은 정부'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MB의 생각이란 결국 공공기관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자신의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니 어떡하나?

 

<조선일보>가 걱정할 정도의 날림공사 속도전

 

  
2007년 6월 22일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윤성효
이명박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대규모 토목사업. 국민들은 이 삽질이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한다. <조선일보>마저 "4대강 살리기가 절박한 것인지" 의심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도 절박하지 않다. 다만 임기 내에 뭐가 보여줘야 하는 MB 개인에게는 매우 절박한 일이다. 7% 성장이 물 건너가는 바람에 구겨진 스타일은 다시 펴져야 한다. 게다가 삽질이야말로 그가 잘하는 유일한 분야인데다가, 현재로서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정책 수단이 아닌가? 그래서 무려 '22조+α'를 쓰겠단다. 문제는 재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8~2010년 우리나라 재정수지 악화 수준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9%로 미국(-5.6%)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재정 상황만큼은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을 부각시켜왔는데 어느새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 더구나 이번 전망에는 얼마 전 편성한 슈퍼 추경 29조원이 빠져 있는 데다 앞으로도 걸핏하면 또 다른 추경을 편성할 태세여서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겠다." ('재정수지악화 너무 가파르다' <매일경제> 2009년 4월 6일자)

 

물론 불황에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으나, 그렇게 지출된 재정은 미래의 비전에 기초하여 장기적 경제효과로 되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자. 정부에서 곧 공공기관장들 모아놓고 4대강 사업 설명회를 열 예정인데, 그것을 앞두고 공공기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단다.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의 예산을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분담시키려 하기 때문이란다.

 

"일부 공공기관은 '정부가 경영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4대강 살리기에 공공기관의 재정적 참여를 유도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 정책을 펴 왔다. (...) 공공기관 129곳에 대해 정원의 12.7%인 2만 2000명을 줄이도록 했다. 민영화가 예정대로 이뤄지면 공공부문에서 1만 2000명이 추가로 줄어든다. (...)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의 초임을 깎아서라도 한쪽으로는 돈을 짜내고 별로 상관없는 사업에 더 많은 돈을 쏟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공기업 4대강 특강 배경' <서울신문> 2009년 6월 19일 자)

 

결국 멀쩡한 일자리 줄여 건설 일용직 창출하는 셈이다. 이 못 말리는 근시안은 물론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747의 추락으로 망신을 당한 MB, 남은 임기 동안 뭔가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경기 정도는 회복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돈을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 물론 그 돈이 장기적 경제효과로 되돌아올지는 퇴임 후의 문제이고, 그 돈을 갚는 것도 퇴임 후에 다음 세대들이 할 일이다. 사업의 추진도 <조선일보>가 걱정할 정도로 날림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사업계획의 큰 틀이 이리저리 바뀌고 사업비가 수조 원씩 들쭉날쭉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아스팔트 깔았다가 뜯어냈다가 다시 깔았다가 뜯어내는 7080 날림공사 수준이다. <조선일보>의 걱정은 이어진다.

 

"환경영향평가는 계절별 영향을 보기 때문에 보통 1년은 한다. 4개월 영향평가로 충분한 환경대책이 마련될지도 걱정이다." (위의 사설)

 

환경평가? MB에게는 그저 속도전의 대상일 뿐이다. 1년이 걸리는 환경평가도 조지면 4개월 만에 다 해낸다. 이게 MB가 말하는 녹색성장의 실체다. 속도전은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토지보상비 또한 신속히 풀려야 한다. 덕분에 한국토지공사 직원들만 바빠졌다.   

 

"요즘 한국토지공사에서 토지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이달 말까지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지역의 토지 및 지장물 조사를 마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이들은 점심 한 끼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시락까지 챙겨서 다닐 정도다. (...) 토공 전체 직원의 10분의 1인 198명과 지자체 공무원 60명, 조사보조원으로 토공이 채용한 청년 인턴 및 사회취약계층 100여명 등 356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토지 및 지장물 조사에 나서고 있지만 이달 말까지 조사를 마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토공 직원들 주말 휴일 반납한채 4대강 조사 올인' <파이낸셜뉴스> 2009년 6월 18일자)

 

거의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 수준이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이러니 22조+α의 혈세가 과연 제대로 집행이 될지 의문이다. 어느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한 자치단체장에게 직접 들은 얘기"를 전했다.  

 

"자기 지역에 4대강이 흐르고 있어 5000억 원이 내려오게 돼 있는데 이 사업과 관련해 세미나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무조건 조기 집행하라고 하니까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토로하더라. 이런 국가적 낭비가 어디 있나. 강 살린다면서 돈 갖다 버리는 것 아닌가 심히 염려된다." ('이명박 정권, 내년 하반기엔 레임덕 올 것' <위클리경향> 2009년 6월 23일자)

 

돈을 풀어야 한다. 돈이 풀리면 경기는 살아난다. 어디에 풀지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이다. 속도전이 낳은 해프닝은 또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을 조기 집행하라는 재촉을 받은 어느 공공도서관 직원의 말이다.

 

"책 구입을 조기 집행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면 대단히 후안무치하고 개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1년의 농산물인데, 이것을 조기에 한꺼번에 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 대통령, 삽질 원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 있소' <프레시안> 2009년 6월 11일자)

 

한마디로, 아침에 세 공기 먹고, 점심과 저녁은 굶으라는 얘기다. 코미디가 아닌가? MB 치하에서는 도서 구입도 마치 건설공사 공기 맞추듯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연, MB의 통치

 

  
19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환송 리셉션에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왼쪽) 등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이게 이른바 '경제대통령', 또는 '성공한 CEO'의 실체요, 그의 발가벗은 모양이다. 그가 국민의 눈앞에서 연출하는 그 모든 해프닝은, 그의 독특한 인생철학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언젠가 그가 <월간조선> 기자에게 들려준 말은, 그가 왜 그토록 병적으로 토목공사의 결과물(대운하 혹은 4대강)이나 단기적 성과(경기부양)에 집착하는지 잘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그분은 경부고속도로나 거대 공업단지처럼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설득당한다." (김성동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나의 전략'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여기서 그가 앓는 병증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토목공사의 업적에 집착하는 것은 전형적인 산업사회의 증상으로, '생산의 비(非)물질화'라는 탈산업사회의 추세에 배치된다. 한마디로 시대착오라는 얘기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란 당연히 경기부양과 같은 단기적 성과를 가리킨다. 이 역시 외연적 속도(가시적인 신체의 속도, 기계의 속도)에 집착하는 산업화 초기의 습속으로, 내포적 속도(비가시적인 생각의 속도, 전자의 속도)라는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친이(李)계 초선의원의 말을 들어 보자.

 

"서울시장 때를 보자. 중앙버스차로 도입 때를 생각해보라. 초반에 얼마나 비판이 많았나. 청계천 살리기에도 처음엔 비판 일색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냐. 이명박 대통령은 그걸 기억한다. 지금 경제가 살아나는 징후가 보인다. 대통령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MB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겨레21> 2009년 6월 12일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MB가 '경기 살리기'와 '경제 살리기'를 혼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경기야 22조의 빚잔치를 하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문제는,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경제체제 속으로 한국경제가 성공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전략이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제 살리기'일 터, 불행히도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MB의 머리에는 '넘사벽'이다.

 

지금은 국민들이 반대해도,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만 내면 국민들은 설득 당할 것이다. 이것이 MB가 그 모든 비판에 귀를 닫는 이유다. "처음엔 비판 일색이었다. 지금은 얼마나 좋아하냐." 이 통쾌한 반전, 이것이 MB가 꾸는 꿈이요, MB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그를 말이 안 통하는 먹통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심오한(?) 실존미학이다. 표 한 번 잘못 던진 죄로, 대한민국 국민은 22조의 표 값을 치르며 한 개인의 유치한 신파를 지켜봐야 한다. MB의 주관적 로망(浪漫)이 대한민국의 객관적 노망(老妄)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대의 비극이다. MB의 통치,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연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진중권 교수, 22일 생중계 강연회

 

진중권 교수가 오는 22일 저녁 7시 30분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위해 생중계 강연회를 엽니다.

 

<미디어아트 - 예술의 최전선>(휴머니스트) 출간기념으로 열리는 이날 '저자와의 대화'는 오마이TV를 통해 생중계됩니다. 이 행사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오마이뉴스>가 주최하고 휴머니스트 출판사가 후원합니다.

 




 
Posted by 렛츠고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지은이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별점

유시민의 헌법에세이,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저자 유시민이 자칭  '지식소매상'으로서 가장 최근에 내놓은 저작 [후불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여  라는 제목을 붙인 이 장은 저자가 20여년 전 자신을 가두었던 독재권력의 폭력죄 실형 선고에 대해 [항소이유서]에서 해명했던 내용들에 대한 20년 이후의 자기성찰이자, 양심고백(?)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현행 법 앞에 불법일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의 양심 앞에 정당했다, 혹은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의 시대사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결론이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84년 84학번, 학내민주화 1세대의 딱지를 붙이고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때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유시민이라는 이름 뒤의 호칭은 전 장관이라거나, 전 머시기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선배'라고 하는 편이 가장 어울리고, 또 부담이 없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80년 광주 학살의 피를 얼추 닦아내고 나서 조금 통치의 여유가 생겼다고 보았는지, 1983년말 경에 대학 캠퍼스로 벤또를 싸들고 출퇴근하던 짭새(사복경찰)들을 교내에서 철수시키면서 이른바 "유화국면"을 조성해주던 시절, 학생들의 눌렸던 민주화의 열망은 다시 열린 학내 집회를 통해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비합법 지하조직처럼 활동했던 언더써클들이 공개써클로 전환하거나, 조직의 일부가 공개써클 활동을 통해 외부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지요.
(70-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 조직의 계보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위클리경향 812호_2009.2.17에 정용인 기자가 쓴 아래 글,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9311&pt=nv  
참고하세요.)

정권이 만들었던 학도호국단을 학생들 스스로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던 당시, 정권과 경찰은 사복경찰을 철수시킨 대신에 캠퍼스 앞 도로를 전투경찰로 틀어막고 가두 진출을 저지하는 한편, 학생운동 조직 및 활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학생을 가장한 학내 정보공작원(이른바 '학원프락치')들을 암암리에 침투시켜 시위 움직임이나 관련 조직을 색출해내 주모자나 주동자를 체포하여 고문하거나 강제로 군대로 끌고가는(이른바 "강집") 나치의 게슈타포식 탄압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은 당연히 학생회나 써클 등의 학생 조직에 신분이 불확실한 자들이 얼쩡거리거나 정보들을 캐고 다니면 일단 '프락치'로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신분이 의심되는 프락치 혐의자(?)들이 학생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이 서너 차례 연속해서 발생하면서, 당시 학생회 및 복학생협의회 같은 조직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던 학생들(선배들)이 폭력 사주범으로 체포되고 연행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 때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유시민 선배가 바로 이같은 혐의의 배후 주동자로 취급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1심에서 참여하지도 않았던 폭행가담 혐의를 근거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1심의 실형이 내려지기까지 말도 안되는 법률 적용에 대해 법관들을 향해, 그리고 정권과 국민들을 향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자 썼던 글이 바로, "80년대 학생운동사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라는 것입니다.
(항소이유서 전문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http://blog.naver.com/hotbloodsoul/140069532860  참고하세요. )

당시 갓 대학문을 밟고서야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게되었던 저에게도 이러한 학내 상황은 시대의 부름 앞에 청년학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주기에 충분했죠... 그런 만큼,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당시 학생운동과 독재정권간 갈등의 현주소를 낱낱히 정의하고 밝혀주는 교본으로 썩 훌륭한 교재 역할을 했고, 실제로 작은 소책자로도 발매가 되었을 만큼 운동권은 물론 일반 지식인 사이에서까지 필독문 중의 하나였죠.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바로 이때부터 씌어지기 시작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왜 다시 읽혀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의 되돌아봄이자, 지난 20여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과연 얼마만큼 민주화되었는지, 그 현 주소를 다시한번 점검해보는 나름의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책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당시 항소이유서에서 거론되었던 사건에 대한 저자의 재평가와 당시 피해자였던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사과라는 개인적인 고해성사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시민은 지나간 과거를 단지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을 들춰 냅니다. 시대적 상황이 선의를 가진 개인들을 얼마든지 악하게도 만들 수 있음을 역사적 실례로 보여주고, 그 악에 봉사하는 도구로 쓰인 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인류 역사의 사례 또한 엄중하게 지적하고 경고합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의 헌법에세이]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사실 매우 소박하게 자전적인 수필 형식으로 씌어진 글들의 모음이어서, 굳이 헌법이나 법률 체계, 혹은 법률 전문용어를 모르는 분들이 읽는다 하여도 전혀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는 매우 "읽기 쉬운" 책입니다.

또한 헌법은 이런 것이다, 혹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을 학자처럼 늘어 놓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이 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그 태생과, 태생으로 인한 한계와 과제를 쉬우면서도 적확하게 집어놓고 있기 때문에 읽어가다보면 그냥 저절로 아... 그렇구나... 맞아.... 그랬었지...그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라고 고개가 곳곳에서 절로 끄덕여지는 책입니다.

전체 380쪽 정도로 이루어진 얇지만은 않은 분량이지만, 마치 재미난 실록 실명 역사소설 단행본 한편을 읽는 기분으로 작심하면 하룻밤, 길어도 이틀 밤 정도만 할애하면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 독서를 권하기에 별 부담도 안 됩니다....

더욱이, 아주 오래 전 고려나 조선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전 정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과, 현재 겨우 1년밖에 채우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의 비교 대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우 리얼한 상황을 옅볼 수 있고, 정권의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결정이나 조율의 비하인드 스토리(뒷얘기)까지 담고 있어서 일말의 흥미나 재미까지 선사해 줍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로 나뉘며, 1부는 [헌법의 당위], 2부는 [권력의 실재] 라는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짐작하겠지만, 당위(Sollen))로서의 헌법과 현실로서의 실재, 혹은 존재(Sein)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밝히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주요한 원리와 원칙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이를테면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이 어떻게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개헌 과정에서 삽입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또 현재 이르러 그 헌법의 가치가 왜 훼손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 선행됩니다.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에 두 번에 걸쳐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여의도 현장에서 경험하고 배웠던 입법부의 현장 경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에 힘입어 입각했던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행정부 현장 경험 등을 통해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국가 정책이 어떤 경로와 절차를 통해 입안되고, 조정 혹은 변질되며, 또 집행되게 되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권력의 이면들을 중계하면서 아주 친절하고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가십성으로 느껴지지만, 왜 당초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김근태가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정동영과 거꾸로 자리가 뒤바뀌게 되는지에 대한 뒷얘기, 박근혜 등과의 막후협상을 통해 거의 다 합의를 볼 뻔했던 국민연금 개혁법안이 한나라당의 얼토당토 않은 보고체계에 의해 어떻게 엉뚱하게 좌초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스토리 등을 포함해서, 조중동의 악의적인 기사 취급이 얼마나 한심하고도 허무맹랑한 수준에서 조작되고 왜곡되는지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아울러 절대권력을 가진 청와대 집권자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참모를 얻지 못하거나 자기성찰의 태도를 스스로 갖지 못할 경우 이를 수밖에 없는 파국적 운명, 즉, 현재 이명박 정부의 독주와 독선이 왜 그리 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파행적인 운명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번뜩이는 예언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합니다.

책장을 넘겨가는 내내 동서양과 고금, 철학과 역사에 기초한 인문학에서부터, 경제학과 사회학을 넘어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풍부한 식견과, 그것을 헌법이라는 얼개 속에 교묘하게 섞어 넣어가면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고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빠지다보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1인칭 소설 한 편을 보는 듯한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후불제 민주주의]가 양심적인 인간으로 살고자 원하는 우리 소시민들에게 진실로 원하고 또 요구하는 바는 결코 명시적이거나 선동적이지는 않지만 글 곳곳 행간 사이사이에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헌법 1조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진실로 우리나라가 그리 되기를 원한다면, 긴 역사의 호흡을 가지고, 늘 공부하고, 연대하여, 깨어서 실천하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의 정책 실패를 자인하면서 했다는 한 마디를, 책의 부록 CD로 주어지는 [저자 강연회] 속에서 스스로도 다시 인정하면서 이렇게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대중은 계몽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중은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치고, 스스로 학습하는 만큼만 깨어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한 나라의 국가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대한민국 헌법 1조를 현실에 깨어있게 하고 실재로 구현하는 과제는 어떤 누군가 선각자나 구세주에 의해 선의나 시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중 스스로가 학습하고 깨달아 깨우친 만큼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결론이자 요청은 "선과 선의 연대"를 통한 악의 축출 입니다! 

그 선과 선의 연대 형태가 어찌 될 것인지,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색해야 하는 현재 진행형으로ㅡ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겨두고 책을 마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갚아야 할 외상값을 다 갚지 못한 후불제 민주주의인 까닭에, 대중 스스로가 더 비싼 값을 치르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면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은 뒤, 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라는 책을 영문판 원서로 주문하기로 작심했습니다.
왜냐구요?  읽어보시면 압니다!!

Posted by 렛츠고
아침에, 우연히 "주지훈은 불쌍할 뿐이고..." 라는 섹시한 제목의 기사가 있길래, 흥미로와서 클릭했더니.
하재근 이라는 분의 블로그 페이지로 연결이 되더군요...
http://ooljiana.tistory.com/550

이 분의 블로그 타이틀 자체에
[새책 <MB공화국, 고맙습니다> 출간] 이라는 광고 문구 비슷한 것이 붙어 있길래,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니 아래와 같은 신문기사가 나오네요.... 

하여 아래에 퍼올리며 짧은 제 생각을 덧붙입니다.....

어제밤까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의 1부 [헌법의 당위]를 읽고, 막 2부 [권력의 실재] 편으로
넘어가던 중인데...
사실 저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지 "감사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거든요...

우리가 그냥 매일처럼 숨쉬고 살 때는 공기나 산소의 소중함이나 귀중함을 모르듯이...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는 독재나 폭압 정치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한, 우리는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게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디제이나 참여정부 10년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댓가를 아직 다 지불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의 선의에 힘입어 잠시나마 민주주의의 가치를 누렸던 시기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아직 덜 지불한 민주주의의 댓가를 여전히 후불로 치르는 시기라고 평가하는 유시민 님의 의견에
십분 공감하니까요....

2010년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롭께 일깨워주고, 전국민적인 정치 학습의 장을 열어준 최고의 교사는
단연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에게 고맙다 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저는 지난 주 6.10 22주년 대회에도 티뷔 뉴스를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그 하수인 노릇을 하는
단순무식한 경찰들이 다시 한번 전경 차벽으로 시청광장을 겹겹이 막아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더랬습니다.
아울러, 한 발 나아가, 집회에 참여하려는 야당 국회의원 중에 한두 명 정도는 심각한 폭력으로 피를
흘리며 끌려가던가 닭장차에 실려가기를 내심 기대했구요....

무고한 시민이나 연약한 아녀자들, 혹은 어린 아이들까지 가리지않고 무자비하게 연행해가거나, 
심하게는 전경들의 방패에 머리가 찢기거나, 눈이 멀어 실명을 하는 무고한 시민들이 한두 명쯤은 생겼으면
하고 비겁하게 바랐습니다.... (비록 광장 현장에는 못나가고, 그냥 아프리카 실시간 중계방송을 보면서...)

왜냐면, 그런 상황이 벌어져야만, 그리고 그것이 국민들 두 눈에 보란듯이 목격이 되어야만 국민들이
우리가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더 빨리, 더 진지하게 실감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야만 도덕성이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과 실적에만 눈이 먼 장사치형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비싼 댓가와, 정치적 판단 미스의 과오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살아있는 정치 학습"이 하루라도 빨리 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실제 집회 강제 해산 과정에서 보여준 전경들의 "방패 휘둘러서 시민 찍어패기" 작전은 그런 점에서 많은
국민들에게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 철거" 사건과 더불어서, 근래 들어 괜찮은 민주주의 학습 도구 교재 중
하나로 활용할 만한 사건이어서, 그나마 저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던 성과? 중의 하나입니다.)

작금,  지구상 어느 파쇼 정권에도 뒤지지 않았던 박정희의 후예들을 이끌고 있는 박근혜가 이명박 이후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단연 1위로 나오는 것을 보노라면,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직도 민주공화제를 완성하려면, 꽤나 많은 민주주의 학습을 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런 정도의 정치적 선택과 판단 수준의 국민이라면, 우리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의 반석에 올리기까지
앞으로도 최소한 10년은 독재정권의 아류 속에서 더 민주주의 학습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좌파정권에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망령들, 그러한 착각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자 후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며 돌이키기까지 앞으로 10년 세월의 학습이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참으로 불행하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래서 그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학습 기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려면, 현재 이명박 정권이
좀 더 악랄하게, 좀 더 반 인권적으로, 좀 더 반민주적인 정책을 대대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고 무자비하게 펴도록 적극 동조하고 박수치며 고무해 주어야만 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로 인한 부작용과 반발, 시민들의 저항, 권력 내부의 비판이 커질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또한 더욱 커질 것이고,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 기회도 더욱 많아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런 현상도 적극 환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영도력을 전 국민과 더불어 쌍수 들어 눈물로 찬양합니다..."

이런 류의 북한 정권 찬양식 선동 구호나, 박정희 시절 유신체제 찬양 구호 수준에 버금가는 지식인들의 선언
같은 것도 가능하면 심심치 않게 종종 나와 주어야 합니다....
조갑제나 뉴라이또(또라이또???) 머시기들, 김똥길 교수 같은 분의 적절한 망언도
독재에 아부하는 무리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한껏 불러일으켜 주기 때문에 나름대로 도움이 됩니다...

물론 아래 소개하는 기사의 책을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저자가 아마도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계셔서, 이런 제목의 책을 펴낸 것으로 미루어 짐작됩니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 다 읽는대로 바로 구입해서 읽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관심 갖고 한번 살펴 봐 주시지요....

혹시 먼저 읽은신 분들은, 아래 댓글란에 [서평] 올려주시면 구입 여부 판단에 더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행복한 한 주 만드시길....

진정한 공화국을 위한 모색…‘MB공화국, 고맙습니다’
 경향닷컴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
 

문학작품에서 실용문에 이르기까지 글로 이뤄진 것에 묘미 중 하나는 ‘반어법’이다.

‘MB공화국, 고맙습니다’(지은히 하재근, 시대의창 펴냄)는 제목에서 부터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엿보이는 책이다.




부제인 ‘자유화, 세계화, 무한경쟁의 나라에서 국민으로 살아가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나 사회가 약자나 서민을 위해 전통적으로 행해 오던 여러 규제와 구조적 보호가 완성되기도 전에 이익과 효율성을 이유로 망가진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크게 2부로 구상된 이책에서 저자는 1장에서도 ‘MB의 고마운 나라’라는 반어법으로 포문을 연 후 ‘자유화’의 본질과 그 후유증을 자세히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MB공화국’이 단순히 이명박 정부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김영삼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20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기간동안 자유화라는 이름하에 교육에서, 사회, 경제, 국가의 시스템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 돈과 권력을 점유한 1%의 상류층을 위한 제도와 규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화나 세계화라는 용어가 한국사회에서는 ‘그랜드서클’이라고 표현한 대한민국 상위 1%가 마음껏 이익을 내도록 돕는 ‘정글의 자유’라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자유화가 강화되고 법적인 정당성을 획득할수록 수혜자는 상위 1%인 그랜드서클 뿐이고 이들이 국민을 상대로 이제는 보호도 규제도 없이 겨뤄보자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를 ‘결과가 뻔한 불공정한 게임일 뿐’이라며 ‘자율 경쟁은 결국 강자가 약자를 수탈할 자유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유화의 종착점은 경제분야는 재벌 중심·수도권 중심의 폐해가 심화되고 교육부문도 ‘일류 학교’ 중심의 체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서열화된 신분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책 후반부인 2장 ‘MB공화국은 어디로 향하는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지향애햐 할 국가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저자는 먼저 미국 사회를 살펴보며 다양하고 풍부한 통계와 영화에서 신문보도를 아우르는 다양한 자료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의료보험 제도의 미숙과 최저임금 노동자계층의 삶을 볼 때 ‘후진국’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일본과 독일에 대해서는 제조업으로 강력한 경제적 역량을 키운 경제모델과 함께 상대적으로 시민들의 연대의식이 있어 그나마 미국 보다는 나은 상태로 평가한다.

저자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체제를 앞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모델로 제시한다. 일류학교를 중심으로 한 서열화 없이 ‘평준화된 학교’를 다니고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선택권 없이 누구나 당연하게 ‘공공복지’를 누리는 국가가 ‘공화국’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이다.

<경향닷컴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


 
Posted by 렛츠고

유시민 "이명박 정부는 문명 역주행"

책 여행 2009/06/10 11:51 꺄르르  
* 원문 출처: http://blog.ohmynews.com/specialin/282999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유시민 전 장관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다음가는 지지도를 보이며 차기 대선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0년 서울시장후보를 따졌을 때, 유 전 장관이 선호도 1위로 뽑혔고, 현직 오세훈 시장과 대결에서도 이기는 것으로 나왔지요.

 

대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 떨어진 그는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와 <후불제 민주주의>[2009. 돌베개]를 펴냈지요. 이 책 1부에서는 헌법에 담겨 있는 민주공화국 정신과 국민 기본권을 이명박 정부가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부에서는 헌법의 당위와 권력의 실재 사이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데, 이 격차를 만들어 내는 요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설명하죠.

 

참여정부는 사회자유주의 정권,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에게 공격당해

 

이 책은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펴냈으나 정치인 유시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글입니다. 자신이 정치계에서 보고 겪은 경험이 녹아나있으니까요. 두 번의 국회의원, 한 번의 국무의원을 하면서 자신의 이상과 거친 현실 사이 틈에서 지은이는 아쉽고 안타까웠다고 얘기하네요. 그러한 자기반성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 비판과 포개지면서 더 깊이 있게 와 닿네요.

 

책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참여정부를 돌아봐야 하죠. 5년 동안 이리저리 욕을 먹은 참여정부는 어떠한 정권이었을까요? 지은이는 ‘사회자유주의’ 정권이었다고 규정하며,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있었다고 얘기하죠. 사회주의도 아닌 자유주의도 아닌, 어울리지 않는 반대 성격의 정치 기조를 묶는 시도를 하였다고 참여정부를 돌아보네요.

 

과거사 진상규명과 과거 국가범죄에 대한 정부의 사과, 신행정수도 건설과 지역균형발전정책 추진, 노사정 위원회와 저출산 고령사회 연석회의, 투명사회 실천협의회 등 사회 대타협을 위한 기구 신설과 강화노력, 국가사회지출의 대폭확대,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기초노령연급 도입, 아동과 장애인 지원, 교원확충, 종부세 신설과 보유세 강화 같은 강력한 부동산 거래, 거기에 신용규제까지 하여 사회 형평과 통합, 기회균등을 이루기 위한 국가 개입을 늘리고 강화하였다고 평가해요.

 

사회공공성 확충과 함께 자유주의가 사회에 퍼집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기초 원리 삼아 한칠레 FTA 비준, 한미 FTA를 체결을 하면서 자유무역을 늘렸죠. 또한 정경유착과 권언유착 같은 짬짜미들을 해체함으로써 권력의 민주화, 분권화를 추진합니다. 사회 곳곳 해묵은 권위주의 문화를 씻어내고자 정부부터 탈권위를 하였으며, 기업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극소화하였지요.

 

이렇게 중도 통합, 또는 중도 진보 정책을 폈지만 참여정부는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에게 신랄한 공격을 받으며 5년 내내 시달렸지요. 진보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며 비판을 하였고, 보수는 사회정책을 보면서 좌익 포퓰리즘이라며 이념 공세를 펼쳤지요. 진보는 자유주의 측면에 화살을 날렸고, 보수는 사회주의 쪽으로 칼을 찔러대었죠.

 

빛과 그림자가 같이 있듯 참여정부를 보면, 잘했던 것도 있고 못했던 것도 있는 게 사실이죠. 국민들은 참여정부 시절 잘했던 것은 그대로 하면서 경제성장과 일자리 만들기를 더 잘할 거라고 믿었던 이명박 대통령을 뽑지요. 그러나 1년 만에 국민들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경제 살리기는커녕 위기관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파탄이 났습니다. 시민들은 이제야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지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권은 문명 역주행, 한국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헌법을 얻었기 때문

 

지은이는 이명박 정부가 ‘문명 역주행’을 하고 있다며 통탄해 하고 있죠. 이명박 대통령을 꼭대기 삼아 그동안 어렵게 만들어온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무너뜨리고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절차를 짓밟고 있지요 그 어떤 정책에 대해서도 공청회나 토론회를 여는 법이 없어요. 그들끼리 쑥덕거리고는 일처리가 끝나죠. 결정한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오로지 힘으로 다스립니다.

 

이러한 반작용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 한국은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얻었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민주공화국이었어요. 1948년 7월 17일 제헌전의회가 한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정치, 경제, 사회 기본질서를 담은 첫 헌법을 널리 알렸지요. 그러나 그 헌법정신을 누리기 위해 치러야할 비용을 한국 사람들이 지불하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꼬집죠.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후불제헌법’이라는 겁니다. 헌법 조문을 보면 동서고금 앞선 사람들이 피땀 흘려 얻어낸 것들인데, 한국 사람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양성평등이 대중 의제가 되지도 않고 여성들이 동등한 참정권을,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노동 3권을 얻은 거죠.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외상으로 민주공화국 정신을 얻으면서 그 값을 지금 치르고 있는 거죠.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의식, 헌법과 민주 절차에 대한 이해, 공정한 경쟁 규칙의 수립과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민주공화국을 만들지요.

 

물론,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60여 년 동안 한국은 꾸준히 외상값을 갚아 나갔죠.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 수많은 시민들이 엄청난 수고와 희생을 치러냈죠.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헤아릴 수 없는 지식인과 언론인, 노동조합 지도자와 대학생들, 종교인과 정치인, 농민과 회사원들이 체포와 구금, 해고와 고문을 당하며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애를 썼지요.

 

하지만 5.16군사반란, 유신체제, 12.12군사반란, 3당 합당 등 권력자들의 일그러진 욕망으로 툭 하면 빚이 늘어났지요. 지도자들이 헌법의 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으면 국민들이 갚아야할 민주주의 비용이 줄어들지만 지금까지 지도자들은 비용을 늘려놓고 국민에게 떠넘겼지요. 국민을 업신여기거나 만만하게 보기에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주권자 스스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죠. 한국에서는 촛불시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작년 10일 저녁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촛불시위는 아름다운 운동이긴 하지만 한국제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또 촛불시위를 하게 되면, 사회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것도 사실이죠. 이러한 비용은 훌륭한 헌법을 거저 가져온 대가이며, 한국이 민주사회를 가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했던 외상값이죠.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이상하게 촛불을 아무리 들어도 갚아야 할 게 쌓인다는 거죠. 거꾸로 가는 한국 정치사회를 보면서 시민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아무리 문명 역주행을 한다고 해도 2013년 2월을 넘기지 못하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죠. 이명박 이후에 무엇이 올지 내다봐야 합니다.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어떠하며, 무엇을 바라고 있는 같이 얘기 나눠야 합니다. 갚아야할 헌법정신과 민주주의 비용이 얼마나 남았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둘레에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 나라 수준은 국민 평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니까요. 딱 그만큼이니까요.

 

평범한 사람들의 비굴함과 굴종이 부당한 정권을 유지, 노무현을 죽인 것은 누구인가?

 

올해는 중국 천안문 민주화운동 20주년이에요. 20주년 기념을 하려고 하자 중국당국의 탄압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려왔죠. 중국과 한국은 얼마나 다른지 눈 감고 비교해봅니다. 한국은 문명역주행을 펼치며 중국을 따라잡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앞선 모습도 보이죠. 사회주의든 자유주의든 부패한 정권이 권력을 잡으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유지 자체가 목적이 되니까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천안문에서는 민주화를 바라는 중국인들이 운동을 벌였지요. 중국공산당 지도자 덩샤오핑은 무력 진압을 지시하고 시위 주동자들을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리죠.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맨몸으로 인민해방군 탱크를 막아선 한 남자는 지구촌 시민들 가슴에 큰 울림을 낳았지요. 자유를 향한 의지는 죽음을 무릅쓰고 탱크 앞에 꼿꼿하게 사람을 세웁니다. 가로막던 저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보기에 덩샤오핑은 중국 인민의 자유를 억누르는 독재자고 이름 모르는 저 남자는 투쟁의 영웅처럼 생각하기 쉽죠.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죠. 중국 인민들이 공산당 독재를 알게 모르게 요구한다면 상황은 달라지죠. 덩샤오핑은 중국 인민들의 의사를 담은 지시를 내린 것일 뿐이고, 저 남자는 중국체제에 금을 내려는 ‘난동자’가 되는 겁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중국인들의 외로움과 고통이 느껴진다. 한 편, 탱크 앞을 가로막은 저 사람을 보며 자유를 향한 의지가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진다. 스튜어트 프랭클린 @가야북스

 

어떤 부당한 정권도 총칼로만 권력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굴함과 굴종이 밑바탕에 깔려야 정권이 유지될 수 있죠. 그 어떤 정권도 그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이 거부 표시를 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70, 80년, 일제시대도 마찬가지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현실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 대니얼 골든하겐 교수는 ‘히틀러의 자발적 사형집행인들’이라는 책에서 왜 독일인들이 유대인 대학살을 집행했는지 설명해요. 그 당시 독일인들이 집단으로 미쳤느냐, 아니죠. 미친 짓을 저지른 독일인들은 대부분 정신 건강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렇다고 학살명령을 거부한다고 해서 나치에게 무거운 처벌을 받느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반유대주의가 뿌리 깊었으며, 여러 언론조작에 평범한 독일 시민들은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기꺼이 학살에 참여했다고 대니얼 교수는 분석하지요.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란 유명한 개념을 내놓죠.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죄로 뒤늦게 체포된 나치 군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사람의 탈을 쓴 악마나 비정상 살인광이 아니었지요.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상부 명령에 복종한 평범한 군인일 뿐이었지요.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아무런 양심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한 것이 아이히만의 죄였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지요. 시민들은 검찰과 족벌언론에 대한 책임을 끄집어내고 있죠. 그들 역시 평범한 아버지들이자 남편들일 겁니다. 또한 너그러운 이웃이자 의리 있는 친구일 수 있죠. 그저 상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한 일꾼이었는지 모르지요. 약간의 공명심과 진급에 대한 욕심과 나름의 애국심 때문에 노무현을 물어뜯었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결코 지울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건 뚜렷하죠. 아이히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검찰과 족벌언론에 엄중한 문제제기와 사회변화를 이끌어내야겠지만 그들에게만 책임을 물어선 안 되지요. 그들이 ‘악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악한 뿌리’를 뽑지 않는 이상 악은 재생산되기 때문이죠. 권력자들은 언제나 선학목적을 들어 악한 방법을 정당화시키고, 선량한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저지르게 만들지요. 민주주의는 악한 뿌리를 뽑고, 헌법정신을 사람들 의식에 심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악한 뿌리가 어디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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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렛츠고
  • 09.06.06 18:27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35

    공화국의 죽음과 새로운 시민의 탄생

     

    [노무현을 기억하며] 노무현을 넘어 '우리'를 보자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6-05 오후 5:12:31

     

    애도는 특히 그 죽음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을 때, 죽음에 대한 슬픔을 공유하며 사람들은 누가 이 사람을 죽였는지, 죽은 이 사람은 누구인지를 다시 물으면서 죽인 사람에 대한 강력한 적대를 형성하게 된다. 누가 죽였는가? 이명박 정부와 검찰, 그리고 하이에나 언론이다. 스스로를 일관되게 인간적으로도 노무현을 싫어했다고 말한 보수주의자부터 노무현의 정책에 거의 대부분 동의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진보주의자에 이르기까지, '검-권-언'이라는 거대한 권력'동일체'를 해체해야한다는 것을 절감하는 '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애도는 이처럼 강력한 정치적 힘이 있다.

    작년 촛불을 통하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외쳤던 이들이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삶의 강퍅함에 대한 슬픔을 공유하며,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우리들의 삶을 애도하고 있다. 자살한 전前 대통령의 주검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수구보수들의 의도대로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부패한 정치인의 주검이 아니라 그 너머에 보이는 공공公共적이고 조화調和로운 삶'이라는 공화국共和國 가치이다.

    보라. 이 나라 어디에 공공적인 것과 조화로운 것이 존재하는가? 법과 감사의 칼바람에 전직 대통령마저 쓰러져버리는 이 사회의 어디에 시민들의 침해될 수 없는 존엄한 권리가 존재하는가? 사람들의 삶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 나라는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애도하고 있는 것은 이 나라 자체, 즉 '공화국'이다.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집권기간 내내 '대결과 불화'의 정치인으로 비하되었던 노무현을 '소통과 화합'의 정치인으로 재생하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노무현은 역설적으로 공화국의 가치를 지킨 '마지막 대통령'으로 복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슬퍼하고 있는 죽음은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죽임이 아니라 공화국의 죽음 그 자체인 것은 아닌가?

    노무현, 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

    ▲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장면. ⓒ프레시안

    공화국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운용, 유지되는가? 간단하게 말해 공화국이란 사회적 갈등이 제도 정치의 영역에서 말과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체제가 아닌가? 말로 하자는 것, 제도권의 영역에서 말로 타협하여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체제, 그것이 바로 공화국이다. 그래서 공화주의자 안에는 사회주의자도 있고, 자유주의자도 있고, 보수주의자들도 있을 수 있다. 공화주의는 철저하게 제도의 운용에 대한 형식적 문제이지 정책 내용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노무현은 말의 가치를 인정하고 타협의 과정을 존중한 근세사에 보기드문 대통령이었다. 그가 권력 기관에 의한 강권과 공작이 아니라 말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었다는 점에서 그는 '말과 토론'이라는 공화국의 가치에 기반을 두어 통치를 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애도의 과정에서 복기되고 있다.(물론 그의 말과 토론은 철저하게 제도권 내에서의 문제이다. 거리의 정치에 대해서 그가 취한 입장은 더 복잡하다. 아래에서 이야기하는 공화국은 철저하게 제도 정치 내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이다. 사실 노무현은 집권 기간 내내 수구보수들은 그의 집권 기간 내내 그를 대결과 불화의 상징으로 몰아갔다. 그가 자신의 파당을 떠나서 공공의 조화를 추구해야하는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망각하고 '회전문 인사'와 '코드 인사'를 통하여 대화와 타협 없이 자신의 주장대로 밀어붙였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는 놀랍게도 노무현이 제도 정치 안에서 한편에서는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 권력을 가진 통치인으로서는 법과 제도의 문제(즉 제도권의 영역)에서 수구보수와 끝까지 말로 해결하려고 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대연정의 제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말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공화국-共과 和의 나라 -대통령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소원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의 수구보수는 말과 타협의 가치를 믿지 않고 그 가치를 존중해주는, 그런 공화주의적 가치가 마음에서 완전히 결여된 존재들이다.(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법이나 다른 법과 제도의 정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불화를 실체화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애초부터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기득권자의 이해 수호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무현의 딜레마가 있었다. 그는 수구보수를 공화국의 파트너로 인정을 하던지(이럴 경우에 그가 취할 수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 아니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밀어붙이던지(이럴 경우 그는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기를 포기하고 우리 사회가 근본적 불화상태에 빠지는 것을 감당해야한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야 했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공화국이라는 틀을 지키는 것을 택하였다. 그 결과 그는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수구보수 기득권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하였지만, 통치의 영역인 법과 제도에서는 그 어떤 불화와 적대도 실체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그 분열은 곧 대화와 통합의 정치의 종식, 즉 형식 민주주의 안에서의 공화국의 포기를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혼란은 노무현 아니라 노무현 할아버지라고 하더라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사회의 분열'이 아니라 '자신의 분열'을 택한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 플라톤의 '하나가 되기 위해 나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전세계와 불일치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격언의 정확하게 거꾸로 간 비극적인 인물인 것이다.

    법과 제도 개혁 앞에서 무릎 꿇은 공화국의 가치

    대표적인 것으로 대체복무제가 있다. 노무현의 서거 이후에 만난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후배가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들 '이렇게 갈 것 같으면 병역거부라도 해결해 놓고 가시지....'라고 한탄하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사실 노무현은 소위 개혁이고 진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거부감을 가졌던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이것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임재성씨의 글에서도 알 수 있다. 그가 쓴 글의 제목이 '총 들지 않을 자유, 그는 알아줬다'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바로 이명박과 노무현을 가르는 기준점이라고 말을 한다. 맞다. 그래서 나도 노무현이 이명박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민주주의와 인권, 즉 인간에 대한 관점은 달랐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노무현이 빠진 근본적인 딜레마 때문에 그가 대체복무제를 제도화할 수 없었다. 그는 대체복무제를 '알아주는' 정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영혼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래서 그의 영혼'만'이 우리와 함께 있었던 집권기간에 당연히 그의 지지도는 곤두박질을 치지 않을 수 없었고, 영혼만 보게 되는(봐도 되는) 그의 죽음 이후에는 우리가 그토록 그의 가치를 존중하고 복기하며 슬퍼할 수 있는 것이다.

    사형제 폐지도 마찬가지였고, 국가보안법도 그렇고 언론 개혁이나 검찰 개혁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불화 상태에 빠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관행이었다. 사형제는 집행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었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건드리지 않는 한 모든 적대는 실체적인 것이 될 수 없다. 통치는 법과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행에 반하는 법과 제도를 남겨둔 채, 그 관행만으로는 처리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그 사문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법과 관행들이 다시 무소불위의 칼이 되어 돌아온 것을 보고 있다.

    용산참사 이후 문제가 되어 있는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 거부에 대해서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검찰이 기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집권 기간 동안 그는 내내 검찰의 권력과 싸웠지만 검찰기소독점의 폐해를 해소할 수 있는 그 어떤 제도나 법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디 이것들뿐인가?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그러했다. 그는 관행적으로 막을 수만 있었을 뿐 그것을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거의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다. 노무현 역시 그 칼에 의해 희생되었다.

    대통령을 갈아치우는 것보다 법 하나 바꾸는 것이 더 어렵다

    노무현의 죽음에서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은 권력의 하부 구조의 민주화 없는 권력 교체는 허깨비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갈아치우는 것보다 더 끔찍하게 어려운 것이 국가보안법이건, 대체복무제이건, 사형제 폐지이건, 이런 제도 하나를 고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것보다 법과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것은 우리가 숱한 정치/사회 투쟁에서 범한 오류이다. 속된 말로 우리는 많은 투쟁에서 '현금주고 어음 받는' 어리석은 짓을 참으로 많이 해 왔다.(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의 '아름다운 도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가 상대해야 할 경제 관료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에 차 있는 사람들이었다. 2002년 대선 전야, 이회창의 낙승을 예상하고 있던 관료사회는 노무현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지자 충격에 휩싸였다. 그 때 재경부의 한 고위관료가 내뱉은 말이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었다. "노무현 아니라 권영길이 돼도 상관없다!")

    지난 촛불 때만 하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인 것에 고무되어 무조건 청와대로만 외치다가 결국은 어청수 하나 제때 쫓아내지 못했으며, 집시법이든 무엇이든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그 어떤 법도 제대로 민주화해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우리는 투쟁을 통하여 국정쇄신과 인적 청산을 요구할 때마다 권력의 시스템을 민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물갈이만 도와주는, 그것도 늑대 쫓아내고 호랑이 불러들이는 식의 악순환에 빠지기도 하였다. 지금 노무현의 서거 이후에 한나라당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적쇄신과 국정기조 전환이 민주주의나 인권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오히려 친이계 파벌간의 파벌다툼의 명분만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봐야하는 것은 바로 악의 평범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노무현이 희생되게 된 것에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세청의 '충성경쟁'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력 앞에서 알아서 슬슬 기고 과잉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용산참사도 그런 과잉충성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만약 노무현을 조사한 검사나, 용산을 침탈한 특공대가 악마가 아니라 그들은 아주 평범하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 과잉하지 않고 그저 수행한 것이라면? 이것이 악의 평범함이다. 관료제사회에서 악이 이토록 평범한 것이라면, 우리는 악을 악마화, 그들을 악마화 하는 방식으로는 거의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악마를 솎아 내봤자 악의 평범함은 평범한 사람을 통해서 언제나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오히려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하는 것은 악의 악마화를 용인하는 현재의 권력 구조이며 그 권력 구조가 작동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문제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마르크스를 빌려 고병권이 비꼬는 것처럼 교회는 그냥 두고 교황만 없애려는 시도이고, 당나귀는 그냥 둔 채 자루만 두들겨 패는 격이 된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이 못지않게 법과 제도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 예를 국가인권위에서 볼 수 있다. 일단 한번 만든 제도이다 보니 이 정권이 없애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하였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다. 결국 인원을 감소하는 것으로 귀결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제도가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버틸 수 있었을까? 제도가 아닌 관행이자 '별정직'이나 '임시직' 형식의 다른 모든 제도들에서 이명박 정권이 사람을 내쫓고 기구를 축소한 것과 비교해보면 이 차이는 더욱 크게 드러난다.

    법과 제도, 특히 권력의 졸(卒)들이 부리는 하위 권력의 민주화가 없이는 법은 언제든 강권통치의 수단으로 바뀌고 하부권력을 악마로 만들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독재 권력인가? 맞다. 그러나 이 정권은 박정희와 전두환과 같은 '초법적인 독재권력'이 아니라 '법을 통한 독재권력'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이 내내 법치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바로 이명박이 이야기하는 그 법과 제도, 그것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공화국을 향하여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에서 루이 16세의 처형을 '국가의 자살'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국민들은 사실 도망가던 루이16세를 붙잡자마자 바로 죽여 버릴 수도 있었는데(즉 살해할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단두대로 끌고 가서 '처형'을 시켰을까? 이에 대한 칸트의 이야기와 주판치치의 해석을 따라가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살해는 국왕 개인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지만 처형은 국왕이라는 형식, 혹은 제도의 종식이 되어버린다. 국왕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 처형함으로써 프랑스의 국민 모두는 이미 국왕제라고 하는 제도를 유지하면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죄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국왕의 처형과 함께 왕정제를 폐지해야만 했다.

    노무현의 죽음은 정확하게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현재의 형식적인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형식적으로만 죽어야했다. 법의 심판대 앞에 끌려가서 법의 엄정함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했으며 이를 통해 부정부패로 상처받은 형식적인 공화국은 재생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체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림으로써 수구보수들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부정부패라는 '사실(지금은 이것도 어느 정도 사실인지에 대해서 온갖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터이지만)'에 맞서 공화국의 진실(이 공화국이 전혀 공화국이 아니라는 것)을 폭로하였다. 형식적으로만 죽어야하는 존재가 진짜로 죽어버린 것이다.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했던 공화국의 대통령이 권력에 의해 신체적으로 자살함으로써 공화국은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의 죽음은 공화국의 죽음이다. 말과 토론,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면 '절제와 품격'있는 법집행이라는 공화국의 원칙과 가치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죽은 공화국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애초에 대한민국은 공화국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가 지키기를 원했던 공화국은 허상-유령이었다. 수구보수 기득권들의 공화국에 대한 파괴의 협박위에 세워진 것이 한국의 공화국이다.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우리 모두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소리를 치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공화국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이제 공화국을 만드는 것이다. 공화국의 죽음을 애도하고 말과 토론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한다. 작년 광우병 파동으로 이 공화국 안에서의 삶의 처지를 경험했었고, 올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죽음을 공유하게 된 '우리'가 말이다. 이 우리는 과연 새로운 공화국의 새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것인가? 이것은 전적으로 그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적어도 삶과 죽음에 대해 이토록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며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동의 감각을 가진 새로운 '우리'의 탄생은 적어도 '희망의 사건'인 것임에는 틀림없으니.

    자. 이제 노무현을 넘어 새로운 '우리'를 보자. 노무현을 애도하며 우리가 무엇을 기억했고, 무엇을 보았는지를 이야기하자. 그러면서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보자.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만들지 않았는가! '우리'가 있다면 여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할 힘은 있는 것이다. 당신을 넘어,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이 '우리'를 보며, 편히 쉬세요. 노무현 대통령.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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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렛츠고

    [커버스토리]우리는 기억하리라, ‘노무현의 가치’를

    2009 06/09   위클리경향 828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서 장례까지 7일간의 기록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엔 5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모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저마다 고인에 대한 마음의 빚에 미안하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광장이 열리자 검은 슬픔은 노란 물결로 승화했다. 수사의 칼날이 다가올수록 깊어졌을 그의 외로움을 위로하러 온 국민, 그가 마지막까지 하려 했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국민들은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노란 풍선과 노란 모자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새벽 5시 봉하마을에서 발인 후 5시간을 달려 경복궁에 도착한 시신은 서울광장 노제를 하고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 후 다시 5시간을 달려 봉하마을 뒤 정토원 법당에 안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49재가 끝나고 봉화마을 뒷산에 묻힐 예정이다.



    초혼가와 진혼곡, 진혼무가 이어진 서울광장 노제. 시인은 “일어나요 노무현”이라고 외쳤고, 50만 이상 모인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 사랑합니다”로 화답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 마음속 대통령, 노무현”을 외치는 국민의 눈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마지막 유언처럼, 고인이여 그렇게 강물처럼 흘러 흘러 잘 가시라. 훗날은 남은 자의 몫이리니….



    새벽 5시 봉하마을 빈소에서 발인식을 하기 위해 고인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다.


    대한문 앞에선 시민장례위 주최로 시민영결식이 열렸다. ‘아침이슬’ 등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가 이어졌다.


    가족만큼 가슴 아픈 사람이 있으랴. 평소 노 전 대통령이 아끼던 손녀들이 미망인이 된 권양숙 여사에게 “할머니 울지 마세요” 하며 안기고 있다. 할머니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경복궁을 빠져나온 운구차량이 서울광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은 안타까움에 오열했다.


    수원 연화장에서 운구 행렬을 기다리고 있는 추모객들. 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화장 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운구됐다.


    시민추모위가 마련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엔 매일 수만 명의 조문객이 찾았다. 밤이 늦도록 줄은 줄지 않았다.


    국민 모두 상주였다. 저마다 조문을 쓰고 조사를 읊었다. 시청역 주변에 국민들의 애도 글이 빽빽하게 나붙었다.


    그들은 기억하리라. 5월 서울의 밤을 잠재우지 않고 깨웠던 그의 유지를….


    국민들의 설움을 모르는 것일까. 보듬어 안아주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슬픔을 분노로 만들었다. 경찰이 추모객을 막는 모습.


    노모와 아들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노 전 대통령을 보내는 설움에 남녀노소가 없었다.


    추모객들은 수천 마리 종이학을 만들어 그를 추모했다. ‘다 잊고 훌훌 가시라’는 염원이었다.

     
    Posted by 렛츠고
  • 09.06.05 20:38 http://cafe.daum.net/mindong1990/MnGi/31

    “바보 노무현 대통령님”을 쓰다 앙앙 운다 [2009.06.05 제763호]
    [표지이야기-눈물의 기억]
    서거일 5월23일부터 영결식 29일까지 ‘민장’ 상주들의 다큐 7일
    임인택 임지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뙤약볕 아래 여고생 흐느낀다. 해거름 중년 남성 들썩이는 어깨 흐릿하고, 새벽 3시 또 다른 울음소리 찬바람에 흔들린다. 다시 땡볕, 운구차 화장길 떠나간다. 곡소리 먼저 타들어간다.

    “슬프다.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황지우 시인은 ‘뼈아픈 후회’라는 시제로 토로한다. 반도의 근대사에서 사랑을 받았다는 정치인이 단 한 명 있던가. 때론 표를 줄지언정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거나…. 5월의 덕수궁은 뼈아픈 후회들로 그렇게 들썩였고, 결결이 주저앉았다.

    » 5월27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분향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 빼곡히 적힌 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봉하마을을 찾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말한다. “국민들이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걸 부끄럽게 여기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노 전 대통령을 다시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건 반토막 진실이다. 시민들은 유가족의 뜻과도 상관없이, 정부의 원천봉쇄를 뚫고 자신들만의 분향소를 덕수궁 앞에 차린다. 정부 지정 분향소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들이 실상 다시 알게 된 건, 비주류의 죽음으로 연명하는 주류 정치학의 폭력이다. 촛불만 켜지면 ‘잠정적 소요사태’로 규정하고, 상여마저 뒤집을 무자비 정치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마련한 덕수궁 일대를, 영결식이 열리기까지 일주일간 배회했다. 회한은 자책에서 슬픔으로, 슬픔은 분노에서 증오로 치올라, 서울 복판은 내내 비등했다. 만나는 이마다 이름은 오열씨요, 분노씨다. 결국 애도문마저 격문과 구호가 되고, 고즈넉한 돌담길 두른 만장이 깃발 되어간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의 민란이다.

    “조문하며 그분께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가 있습니까?”

    “다음 생에도 꼭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말했습니다.”


    5월23일 밤 10시, 다음달 출산 예정인 만삭의 아내(33)를 데리고 온 한 남성(38·경기 고양시)은 한참을 담금질한 외마디를 뱉는다. 눈물을 흘리는 그는 5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묻고서 온전히 듣고 보기가 힘들다. 기자는 집에 돌아갈 때마다 저들의격정에 감전되듯, 녹초가 되어 쓰러진다. 이레 동안의 민장(民葬)은 그렇게 기록된다.
     

    5월23일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결국 또 그리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시금 거리로 불러모았으니, 어쩌면 그가 저승에서도 갚지 못할 신세가 될 모양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던 2002년 겨울,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그에게 실망했다던 2003년, 그러나 탄핵은 안 된다며 100만 촛불을 들었던 2004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며 끝내 등을 돌리겠다던 2007년, 거리는 언제나 ‘노무현’을 불렀다. 퇴임 뒤 봉하에서도 그리 불러세웠다.

    “지난해 12월 봉하에서 따뜻한 봄날 다시 인사 나오시겠다던 그 말씀 끝으로 정녕 마지막 모습이 되었습니다. (당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많이 울었는데 이렇게 오늘도 많이 울리십니다.”

    대한문 앞 분향소 첫날, 굵은 펜 꾹꾹 눌러 조의록을 채운 맹미란씨에게도 노 전 대통령은 가늠 못할 신세를 진다.

    충격은 헤아릴 수 없다. 정부도, 어느 조직도 충격 대처 요령을 알리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이날 오전 김아무개(44)씨가 “오후 4시, 대한문 앞에서 추모를 위해 모이자”는 제안을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올린다.

    한예진(18)양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친구가 보내준 휴대전화 문자로 (서거 소식을) 알게 됐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왔다”고 말한다. 자꾸만 흔들린다. 조문을 위해 달려온 최초의 여고생. 160cm가 안 돼 보이는 작은 체구에선 눈물이 쉴 새 없이 맺힌다. “그분 원래 안 좋아했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거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경찰도 일찌감치 대한문 앞마당에 전경 40여 명을 심어뒀다. 도롯가는 전경차로 막았다. 예정했던 분향소는 30분이 지나 차려진다. 대신 경찰은 사방을 에워싸, 대한문 앞으로 추모객들이 진입하는 것을 원천봉쇄한다. 비 오면 어떡하냐며 들여놓으려던 천막은 진입 시도 2분 만에 경찰이 부순다. 서 울던 이들 나앉고, 비명을 지른다. “예우로 모신다며! 조문도 무섭냐, 이 ××들아.” “오늘은 조문만 할게요, 조문만….” 욕도 애원도 젖어 있다.

    오후 6시 남짓, 정동길 쪽은 전경 대신 버스 3대로 틀어막으려 한다. 전경단에 밀려 깔린 한여민(고2)양의 왼쪽 무릎에 핏빛이 든다. 그사이 서울시청역 쪽 전경 한 명이 서거 관련 호외를 읽는다. ‘울지 마라’ 지휘 명령이 없는 한, 그라고 왜 애타지 않고 충격이 없겠는가.

    저녁 7시 남짓, 광화문 방향 출구를 터주기까지 추모객들은 대한문 앞마당에서 병자인 양 격리되었다. 차라리 게토 안에서 자유롭다. 열 발톱에 연두색으로 화장한 젊은 여성도, “한 달 전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충격적”이라는 40대도, “언론에서 600만달러 어쩌고 의혹을 키워서 노인들은 그게 600억원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던 78살 노인도 떨며 꽃 한 송이 놓는다.

    저녁 8시2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더 큰 영정이 도착한다. 달빛 아래, 그림자도 발 디딜 틈 없다. 어느새 10명씩 합동 분향을 한다. 더 크게 웃는 그 앞에서, 시민들은 더 크게 더 많이 운다. 그리 또 신세진다.


    » 시민 분향소가 차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경찰이 조문객 유입까지 원천봉쇄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어떡하냐며 분향소 천막을 들이려던 노력도, 경찰이 낚아채 2분 만에 부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5월24일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필부들 맺힌 눈물방울에 2003년 5월25일이 비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 진영과의 마찰에 “대통령 못해먹겠다” 말한다. 어쩌면 외로움이었을 테지만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조차 의심한다. “인간 노무현은 믿고 좋아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변했다”며 탈퇴를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조차 참여정부 때 나선 시위가 가장 많다.

    정확히 6년이 지난다. 대한문을 찾은 한 여성은 “더 믿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말한다. 충격 뒤 자책은 죽순처럼 솟는다. 뿌리가 깊다.

    경기 광명에선 시장이 시민 분향소를 치우라 해 마찰이 일었으나, 그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지못미 신드롬’은 덕수궁을 지나 광주와 대구 시민 분향소도 건너고 봉하에 가닿는다. 덕수궁 돌담길, 서울시청역사, 대한문전 바닥에 가슴 치며 눌러썼을 조의문이 가득하다. 지못미, 지못미, 믿지 못해 미안해요….

    자책은 원망으로 이어진다. 5살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덕수궁을 찾은 강아무개(30대·서울 청량리동)씨는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더 당해야 해요. 무능력한 것보단 낫다며 지금 정권을 뽑았잖아요. 그렇게 당하고도 몰라요. 정말 화가 납니다, 제 자신한테도.” 5월23일 오전 내 울었다는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기자 앞에서 펑펑 운다.

    대한문 영정 앞 국화꽃이 수북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추모객에게 나눠준다. 유족 없는 ‘장례’에 이날 하루에만 모인 조의금 400만원이 꽃값이고 물값이다. 분향 첫날, 국화가 부족해 두세 차례 사용되었을 뿐, 5월28일엔 1천만원이 답지한다. 지난해 넘쳐나던 양초의 출처를 캐물었던 이명박 정부는 유족과 협의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결정한다.

     

    5월25일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5월23일부터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이들에게 낮·밤 구분이 의미 없다. 북은 핵실험을 전격 강행했다. 산 자들의 ‘인정 투정’, 망자 앞 곡소리보다 크지 못하다.

    대한문은 분향소가 차려진 날부터, 경계란 경계는 모두 흐린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 있다. 낮·밤, 생사, 자책과 분노, 하물며 “<시티홀>의 김선아, 너무 재미있더라”며 조문하러 가는 20대 여성 둘의 폭 큰 감정선까지. 정동영 의원 지지 모임 회원인 이아무개(33·여)씨는 5월27일까지 모두 네 차례 대한문에 들른다. 조문만 두 번을 했다. 그는 “이틀을 안타까워만 하다, 깨고 보니 분노가 치민다”고 말한다. 이념과 지지의 경계도 흐릿하다.

    한밤 추모 행렬이 낮보다 길다. 밤 10시30분께, 서울시의회 입구에서 한쪽 추모 행렬의 끝이 겨우 보인다. 김기연(경기 남양주)씨와 기성태(서울 종로)씨가 양손에 촛불과 국화를 들고 줄 끝에 선다. 한 명은 지난 대선 때 “경제는 책임져줄 거란 생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뚜껑을 까보니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하지만, 한 명은 “경제 잣대로만 투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선진국이 되긴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쉰 살, 그들은 친구다. 봉하의 자살은 이 사회 ‘쉰 살’이 따르기엔 지나치게 엄격한 순결일지 모른다. 둘은 “그의 죽음이 없었다면, 개인의 성찰이 이렇게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잊고 살던 ‘노무현’과 뒷짐만 지고 보던 ‘이명박’이 되살아난다. 간간이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조금씩 영정 앞으로 다가선다. 한발 두발 성찰 같다. 분향까지 2~3시간은 넘게 걸릴 거라 했더니, 김씨는 “오늘 회사에서 자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5월26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불 속 회한이 광장의 민장을 통해, 성찰이 되고 바투 공분을 빚어내고 있었다. 서울시청역 지하보도로 이어진 추모 행렬은 맞은편 프레스센터 앞까지 닿는다. 땅 아래에서 국화꽃 들고 또 울고 있다. 지하 공간 인파는 제 몸의 열들로 숨이 막힌다. 6시간을 기다리고 헌화해야, 겨우 위로받을 울분들.

    경찰이 끌고, 정부가 부추기는 꼴이다. 전날까지 서울 전역에 104개 중대, 대한문에만 9개 중대가 배치됐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덕수궁 통제 이유로 소요사태 우려를 든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차벽이 병풍 같아서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다”고 말한다.

    슬픔은 증오로 적분된다. 전날부터 이명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한 서명이 본격화했다. ‘지못미’는 저마다 정치나 소외층에 무심했던 개인적 회한이지만, 증오는 그 틈을 악용한 일방통행 정부를 공식으로 겨눈다.

    한국에서 3년을 산 미국인 영어강사 조지프 리트(25)는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일은 모든 시민의 큰 슬픔이다. 놀랍고 역사적인 일인데 경찰은 도리어 시민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고 말한다.

    밤 11시20분, 중년 남성 6~7명이 거칠게 내뱉는다. “서울역에 세운 건(정부 공식 분향소) 허깨비여~.” 군데군데 둘러서고 앉은 이들, 시국 토론 중이다. 서울시청역 1번 출구,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명박 데스노트 - 민주주의, 서민경제, 용산 철거민, 화물연대 노동자 박종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 다음은 당신의 이름일지 모릅니다….” 차마 다 읽지 못한다. 원망 말라던 영정 앞에서 자꾸만 싹을 틔우는 원망은 누구의 책임인가.

    » 지난 5월27일,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려던 추모제가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대신 정동교회 앞 사거리로 옮겨 자발적 추모제가 진행됐다. 당국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회한이 이들에겐 뒤섞여 있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5월27일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새벽 2시, 30대 여성 둘이 1시간째 대자보를 쓰고 있다. 38살, 36살 올케 시누이 사이다. 1시간가량 기다려 조문을 마치는데, 누군가 대자보를 부탁했다 한다. “낮에는 국화, 밤에는 촛불로!” “이명박 정권 끝장내자, 5월 정신 계승하여 민주주의 사수하자! 제2의 6월항쟁의 횃불을 들자! 독재 타도!”

    이들은 “집단행동은 애도 기간이 끝나고 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며 “나도 이런 표현이 좀 그렇긴 한데, 다른 방식의 애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실상 전날 오후부터 많아진 문구들이다. 노조나 시민단체의 플래카드도 는다. 40대 남성은 자유발언을 통해 “울면 끝이냐. 이제 뭐든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외친다. “제 마음속에도 비가 내립니다.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 일 우리의 몫으로 알고 끝없는 부패 정권 단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조의록엔 ‘고2 김민규’가 적혀 있다.

    하지만 한목소리일 리 없다. 추모가 중반으로 접어들며, 국가 원수에 대한 예우로 대한문을 찾은 이도 상당수다. 무엇보다 김아무개(30·여)씨는 “지난해 ‘촛불’을 들었다 연행이 돼 추모 촛불을 드는 것도 무서웠다”고 말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줄을 서 헌화하면 이윽고 저녁 허기가 몰려온다. 자원봉사자들이 컵라면을 나눠준다. 아이 손에 쿠키칩을 쥐어준다.

    건장한 택시기사,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봉하마을 갈 승객들을 호객한다. 왕복 15만원이다. 김밥을 파는 김아무개(66)씨는 “어제 와서 추모하는데 김밥을 판다는 게 정말 민망했다.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먹고살아야 하지 않냐고 해줘 기운이 났다”고 말한다.

    새벽 5시, 가로등이 꺼진다. 30분가량 지나자 퇴근길 조문이 출근길 조문으로 바뀐다. 네온사인도 하나둘 꺼지고 커다란 해 하나 촉광을 높인다. 위아래 하얀 옷을 걸친 김강석(45·서울 상계동)씨는 안개꽃을 들고 50여 명 줄의 끄트머리에 선다.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마친 뒤 꽃집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오는 길이다. “퇴근길 택시비로 꽃을 샀으니, 이따가는 지하철 타야죠.”

    계속되는 삶, 그것만이 진리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분노는 폭발할 듯 끓지만, 풀 길을 알지 못한다. 그의 죽음이 ‘짐’처럼 남긴 숙제가 된다.

     

    5월28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깊은 슬픔, 날선 분노는 구술되기 어렵다. 침묵은 길어지고, 말 대신 눈물로 다진 몇 글자 겨우 시청사, 대한문 앞 광장 바닥에 ‘시’가 되어 붙는다. 첫날부터 겹겹이 붙은 비문들로, 덕수궁 돌담은 거대한 비석이 된다. 13살 아이는 “바보 노무현 대통령님”을 쓰다 앙앙 운다. ‘미안 마라’ 하여 미안하고, ‘원망 마라’ 하여 원망스럽다.

    죽음이 시도 살린다. 일대가 ‘시의 광장’이다. 22살 여대생은 컴퓨터 프린터로 정결하게 글을 추려 덕수궁 돌담길에 붙인다. “무지한 제자들을 위해 몸을 던져 진실을 보여주신 것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저는 공부도 못하고 머리도 좋지 않지만, 적어도 깨어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의 영원한 대통령님, 나의 스승님.”

    “나 좀 치료해주세요. 머리가 텅 빈 것 같아요. 눈물이 계속 나와요, 목이 메어 숨을 쉴 수가 없네요, 가슴이 미어져 답답해요. 많은 조문객들 보면 미소가 나요. 난 요것으로 괴로운데 바보 노통은 천배, 만배 힘들었어도 주변분 걱정하셨네요.”

    5월26일 방송사는 29일까지 예능 프로를 모두 멈추겠다고 발표한다. 온라인 게임 회사는 게임 서비스를 잠시 중단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사표를 냈다가 반려된다. 수감 중이던 강금원 회장은 울며 출소해 봉하를 찾는다. 시민들은 그게 자신들 ‘시’의 힘이라곤 생각지 못한다.

    이날 덕수궁 추모 인파는 50만여 명으로 그간 일일 최대치를 이룬다. 50만 시구가 더 붙을지 모른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더라면 제 삶을 그리 탕진하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 살던 것을 리셋하고… 죽어서 당신을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겠습니다.”(유주영) 작은 비석을 세워달란 유언이, 거대한 ‘시의 민란’을 도발한 셈이다.

     

    5월29일 “운명이다.”

    오전 11시5분, 덕수궁에선 시민들끼리 따로 영결식을 연다. 정부가 주재하는 장례식을 거부한 셈이다. 노란 모자와 노란 머플러,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든 사람들로 서울시청 앞은 물든다. 운구차가 덕수궁을 지날 때 “나의 대통령”을 연호하며 울부짖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다. 불볕에 눈물이 타들어가고, 그도 이미 화장된다. 경복궁에서 서울역을 이글거리는 거대한 민장이다. 공식 영결식 때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자, 덕수궁은 야유로 들썩인다. 곡소리는 ‘반정부’의 다른 말이다.

    시민단체는 전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추모제를 열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하지만 5월29일 운구차가 서울을 빠져나간 뒤, 시민 추모객들은 마침내 서울광장 일대를 거대한 촛불로 뒤덮는다. 서거 이후, 사실상 지난해 촛불 정국 이후로도 처음이다. 두 가지가 보인다. 이제 ‘촛불’은 전통적 시민단체가 더는 주도하지 못한다는 것과 앞으로 촛불 또한 그와 무관하게 전망된다는 것이다.

    노제가 끝난 뒤에도 시민들은 대한문전에서 분향을 했다. 49재까지 지속될 참이다. 그때마다 촛불이 불탈지는 알 수 없다. 일주일 동안 100만 명 이상이 덕수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프게 만났다. 시인 허수경은 ‘불취불귀’ 봄의 이별을 노래한다.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잘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하지만 제(祭)란 무릇 죽음과 삶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 이제 그를 놓아보내야 한다. 1980년 5월, 1987년 6월 그리고 또 오늘. 반도의 오뉴월은 분노의 계절이다. 슬픔의 계절이다. 반도의 민주주의는 오뉴월이 만들었다. 이제 연령을 넘고 시대를 넘어, 그 시절 동참했던 모든 이들, 잔인한 정권 앞에 눈물지었던 모든 이들을 ‘오뉴월 세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반도의 내일은 그들 손에 놓였다. 이제 추모는 끝나고 저마다의 ‘촛불’이 남는다. 그에게 바치는 수많은 ‘시’로, 이제 살아남은 자가 어둡고 어지러운 내일을 모색하는 다짐이 된다. 조종 소리 아직 들린다.

    자원봉사자들

    “봉사라도 해야 내가 살겠다”

    » 추모객들의 경향을 규정하기는 어렵다. 중학생부터 노년들까지 다양하다. 여고생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상갓집에서 귀한 것은 일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5월23~28일 엿새간 2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상황실에서 자원봉사 접수 업무를 담당한 김공헌씨는 “신기하게도 사람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부터 분향 절차를 안내하는 일까지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5월27일 덕수궁 돌담길 아래 홀로 말없이 앉아 국화꽃을 나눠주던 노정자씨.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네 살인 노씨는 토요일 아침 뉴스를 듣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봉사라도 해야 내가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날 아침 대한문 앞에 와 분향을 마친 뒤 상황실을 찾았다. “이 늙은 나도 뭔가 도울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국화꽃 나눠주는 일이 주어졌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다는 그는 “이승만 때부터 지금까지 봐왔어. 무식한 나도 알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라며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칠순의 나이에 힘들 법도 하련만 그는 “죽은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일이 뭐가 힘드냐”고 말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는 바람에 왼손과 왼발이 불편한 문아무개(50)씨는 서울 지하철 시청역 3번 출구 앞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5월25일부터 자원봉사에 나섰다. 분향하러 왔다가 시민들에게 물 나눠주는 일을 도왔는데 시민들이 물장수로 오인하자 아예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게 너무 슬프고 분하다”는 그는 한쪽 팔로도 능숙하게 쓰레기를 정리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거 보면서 나도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인 최혜원·김예가·김지수양은 5월27일 자원봉사 활동을 두 차례나 했다. 오전 10시30분까지는 학교에서 쓰레기 줍기 자원봉사를 했다. 그러고는 교복을 입은 채로 대한문으로 향했다. 김지수양이 먼저 친구들에게 “대한문에 분향하러 가자”고 제안하자 두 친구가 따라나섰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다며 눈치를 봤다. 이들은 분향을 마친 뒤 “자원봉사 하실 분”을 찾는 외침을 듣고 곧장 상황실을 찾았다. 처음엔 조문객들에게 생수를 나눠주다 오후 들어서는 시민들이 접어놓은 종이학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땡볕 아래 앉아서 일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학교에서 한 줄로 서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보다는 대한문 앞에서 땀 흘리는 게 더 의미 있는 봉사활동이라는 게 이들 삼총사의 생각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화보

    » 5월29일 오전 11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거행됐다. 이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노제가 끝난 뒤 만장을 든 운구 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yongil@hani.co.kr

    » 5월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시민 추모제가 당국의 불허로 무산돼 정동교회 앞 사거리로 옮겨 진행됐다. 일부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앞세우고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경찰력에 막혀 무산됐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5월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난 뒤 시민들이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운구 행렬을 보며 “노무현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일째인 5월28일 오후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조문하기 위해 온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대형 걸개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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