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쪽수가 390이다.
400쪽에서 열 페이지가 모자란 책인데, 첫 장을 펼친 이래 쉬지 않고 모두 읽어내는 데 대여섯 시간, 얼추 한 나절 정도 걸린 듯 싶다. 어제 새벽에 읽어 치운 [눈 떠보니 선진국]에 이어서 연짱이다. 마침 토요 휴일, 눈까지 많이 내려서 내일까지 집밖으로 나갈 일은 없겠다 싶어서, 오늘은 [인간 이재명]을 읽기 시작했다.
이른 저녁을 간단한 간식으로 대신하고, 책을 붙들기 시작한 게 아마 오후 5~6시께였던 듯. 중간에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 마지막 장을 덮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전문 기술 서적이거나, 실습으로 따라해야 하는 자습서라면 400쪽 짜리 분량을 한 나절에 후딱 읽어 치우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스토리북이나 이야기를 담은 소설류들은 다르다. 머리 속에 장면을 드라마처럼 상상해가면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한번 이야기 전개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집중도가 훨씬 더 높아진다. 당연히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성장 일대기를 구술이나 인터뷰, 일기장의 내용들을 모아서 재구성하고, 내가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풀어놓은 스토리 구성 방식이다. 덕분에 별 부담 없이 술술 읽힌다. 억지스러운 표현이나 어렵고 현학적인 문장도 거의 없다.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는 터라 누구라도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책이다.
하지만 문체가 쉽다고 해서 내용까지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독자에게 두 가지 면에서 불편함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는,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 한 사람의 가정 형편이나 환경이 어쩌면 우리 나이 또래 인생들이 평균적으로 살아왔음직한 삶보다 훨씬 더 삭막한 빈민촌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초-중-고 학창 생활을 평균적으로 살아온 우리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상당히 이질적이고 딴 세상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육성회비 낼 돈이 없어서 선생님께 얻어 터지는 '몸빵'으로 대신한다. 병원 갈 돈이 없어서 몸이 병신이 되는 것을 방치하고 고통을 참아낸다. 이런 장면들이 지속되는 장에서는 일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질감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접한 이재명의 "전과 4범" 기록이나 법정 다툼들이 애초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인지를 다루는 대목이다. 전후 맥락과 팩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면, 기존에 미디어와 주변의 입소문에 의해 주입되었던 편견과 선입견을 180도 깨야 하는 "자기 부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편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성남 산동네 청소부에 공중변소 문지기네 집 아이가 학교 문턱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고입 검정고시와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의 A급 특별장학생이 되는 과정이 특히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꼬박 3년간 매일 공부만 해서 얻는 교육 과정 이수 자격을 1년은커녕 수 개월도 안 되는 학습 기간을 통해 검정고시로 통과한다. 누구는 9수를 해서야 겨우 통과할 만큼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대학 졸업 후 1~2년만에 거뜬히 통과한다. 이런 과정은 마치 억지 드라마 대본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같은 성공 스토리의 연속이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나는" 수준의 극적 반전이 넘치고 있어서 그런지 좀처럼 쉽게 공감이 가질 않는다.
결국 이런 내용의 끝에서 독자가 내리는 결론은 두 가지 중 하나일 듯싶다.
자기 부정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자기 부정을 하느니 차라리 끝까지 기존에 주어진 인식을 고집하든가...
자기 부정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 두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우했던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한 인간의 성장 스토리를 곧이 곧대로 이해하고, 그의 말 속에 담긴 진심과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쪽을 말한다.
반대로 지금까지 매스미디어와 주변 사람들의 막연한 입소문에 의해 형성된 인식을 고집하는 경우라면 결국 이 책의 제작 의도와 내용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더하는 것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니 그에 대해 좋은 점만 추려서 최대한 부각하고, 그동안 약점으로 비판받았던 대목들에 대해서는 앞뒤 사정을 그럴듯하게 꿰매어 합리화시켜놓은 '선거용 홍보책자'에 불과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인터뷰 형식을 가장한 후보 선전 책자의 하나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그 의미를 평가절하해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전자를 선택하게 되면 기존에 내 편견이나 생각이 깨지는 데서 오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후자를 선택하게 되면 기존의 판단을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데서 자기 합리화가 가능하다. '인지부조화'의 불편이나 고통을 굳이 자초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후자의 입장을 선택하여 자기 합리화를 꾀할 때 과연 마음이 안 불편할까 하는 점이다.
최대한 객관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내용의 흐름이 실제 사실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논란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 이재명의 주장이 아니라, 직접 관계하여 당시 전후 맥락을 제일 잘 알 것 같은 주변인 증언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책의 내용을 부정하고 싶다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인터뷰 당사자들 또한 모두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거나, 인간 이재명이 썼다는 과거의 일기장들 또한 '조작된 소설'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겨야 하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쯤 되면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기 힘든 대목을 스스로 만나게 된다.
책이란 게 아무리 객관성을 강조해도 집필 의도에 따라 어느 정도 윤문 처리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팩트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미디어에 의해 오래 동안 뇌리에 박힌 선입견이나 편견이 책 한 권 읽는다고 뚝딱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번 굳어진 편견의 벽은 절대로 그리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존에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깨야 할 벽은 어쩌면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무기 탈취 난동이라고 믿다가 5.18 학살 비디오 영상과 사진들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속아 왔음을 깨달아야 했을 때와 비슷한 감정과 자기 부정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민주당의 경선 과정에서부터 이번 대선에서 유일하게 믿고 찍을 만한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 뿐이라고 판단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예전엔 심정적으로는 정의당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자칫하면 정권이 한나라당 같은 수구 꼴통 보수들에게 넘어갈까 염려되어 마지 못해 민주당 후보를 찍어주었던 경우도 있었다. 엊그제 "양당 후보가 다 이 모양이면 차라리 심상정 후보를 찍어주면 안 될까?" 하면서 슬그머니 정의당 지지를 호소하는 딸아이의 질문에 단호히 "No!" 라고 답했다. 마지 못해서 찍어주는 게 아니고, 이번에는 진짜로 지지하고 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내린 판단이라서다.
지금까지 정당의 계급성과 정책의 진보성을 후보 지지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시절이 꽤 길었다. 나는 지금도 녹색당의 당원으로 벌써 4~5년 넘게 꼬박 꼬박 매달 당비를 내고 있다. 한 사회의 정책 전환과 미래 방향성에 대한 결정은 어느 정당이 시기적으로 더 혁신적이거나, 덜 개혁적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일상적 선거나 투표 행위를 통해 이루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그리 따지면 정책의 진보성이란 것도 우리 사회의 누구에게, 어떤 계층에게 더 큰 혜택이나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관점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본다.
노동자, 농민을 계급 혁명의 주체로 보는 시각은 폐기 처분한지 벌써 오래다. 지금은 월급쟁이 직장인일지라도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면 보유한 지분의 크기 만큼 자본가가 되는 시대이다. 평생에 걸쳐 18평 연립주택 한 칸 겨우 마련한 나같은 사람을 '자산가 계급'으로 분류하는 것이 합당할까? 연봉 1억을 넘게 받으면서 정규직 자리 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노조 간부들을 연봉 2500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해관계가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같은 논리로 따져 보자면, 평생 청소부에 화장실 미화원 직업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밑바닥 인생들을 위해서 정책을 고민할 것이며, '부의 약자 배분'에 과연 얼마나 제대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수십억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일개 직장인들이 내는 건강보험료보다도 적게 내는 자들이 과연 일반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말을 어디까지 진정성이 있다고 믿어 줄 수 있을까?
사람의 의식과 인식은 처한 환경과 물질적 조건에 따라서 결정되기가 쉽다.
인생의 철학과 가치 체계 또한 살아온 경험과 주변의 인간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게 태반이다. 이같은 기본 상식에 비추어서 [인간 이재명] 이란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이런 "비천한 천출" 출신도 한번쯤은 우리 사회 지도자로 뽑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성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재주는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은 결국 그 동안 그 사람이 뱉아온 말들과 행동을 반추하여 얼마나 언행이 일치했었는지를 되돌아 평가해보는 수밖에 없다. 운 좋게 직접 내가 경험했다면 좋을 것이나, 그러지 못했다면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이나 직접 경험자의 평을 대신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재명이 그동안 해왔던 말들, 아내될 사람에게 청혼 검증 자료(?) 삼아서 통째로 넘겨주었다는 자신의 일기장과, 성남시장-경기지사를 거치면서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공약들에 대해 그 결과나 성과(약속 이행율)를 통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인간 이재명]이란 책은 한 인간이 살아온 평생의 궤적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했던 말을 어떻게 실천했었는지를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낸 하나의 증명서이자 한 인간의 평범한 인생 스토리북이다.
그의 인생 스토리가 결코 흔치 않은 이야기이기에 드라마처럼 보인다는 점이 오히려 맹점이고 쉬 넘어서기 힘든 문턱이다. 다만 그게 영화의 대본이나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참으로 찾을래야 찾기 어려운 희한한 사람을 우리 사회 차기 리더로 선출할 수 있는 희귀한 기회가 우리 앞에 주어졌다는 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유권자로서 평생에 걸쳐 단 한번도 쉽게 만나기 힘든 행운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던 시점부터 이번 대선은 "노무현 시즌2"가 될 것이라고 미리 예견한 바 있다.
https://letsgo.tistory.com/266
대선 투표일이 석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노무현 시즌2" 선거라는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앞으로 기회나 짬이 나면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들을 종종 정리해서 나눠보고 싶다.
읽다가 기억하고 다시 되새겨보고 싶은 대목으로 책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들은 약 서른 군데, 아래와 같다.
21, 146, 174, 196, 207, 214, 222, 229, 233, 235,
239, 254, 257, 260, 265, 269, 274, 279, 281, 289,
295, 318, 323, 329, 333, 341, 344, 376, 386쪽...
인간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혹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건,
적어도 내 소중한 한 표를 조금이나마 '상식과 공정'의 기준에 맞추어 행사하기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실 것을 강추한다.
#오늘의 감사일기 612일째_211218. [인간 이재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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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만에 경리단길 커피스미스 행차 송년미팅 해피!
2. 녹사평역앞 경리단길 짜글이 맛집 점심 해피감사!
3. 고객관계관리 CRM 전자책 내용 반응 좋아 다행!!
4. 390쪽짜리 인간 이재명 스토리북 내리 완독 감사!
#백일백포_087 D-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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