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 안팎으로 떡볶이집 논란이 눈총을 사고 있다더군요. "어묵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나오고요... 재래시장의 떡볶이집과 골목상가 튀김집에서 오뎅을 직접 먹는 사진을 찍어서라도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억지로 연출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친부자-반서민"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정치 행보와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823 
(경호원으로 추정되는 어깨들을 뒤로 도열하고 MB께서 오뎅 먹는 연출 장면 나름 볼 만합니다...)
그런데 서민을 앞세우겠다는 소리높은 구호 뒤로, 최저임금액마저 깍으려고 터무니없는 시도를 하다가 시급 기준으로, 현행보다 겨우 110원 오른 4,110원으로 결정했다고 하네요...

"임기중에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둘러대는 와중에 정작 조사도 준비도 제대로 안된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몇주 몇 달 사이 추가로 수조원씩 뭉텅이로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으면서 4대강을 살리겠다고 전국에서 삽질 개시에 한창입니다. 환경이 파괴되든, 문화재가 수몰되든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란 투입니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에 즐겨 쓰던, 전형적인 밀어부치기 속도전 양상이지요.

이른바, 경제 부흥과 국가 발전(?)을 위해서 일부의 반대나 소수의 피해는 무시해도 좋다, 결과만 폼나면 국민들은 다 박수치게 된다는 단순한 논리입죠. 헌데, 그 하는 꼬락서니가 얼마나 졸속이고 불안했으면 정부정책이라면 무조건 옹호하고 변호하기에 바쁘신 보수언론의 오야붕, 조선일보까지 나서서 그 한심함에 대해 점잖은 충고를 하고 계시네요.

6월 29일, 87년 6월 항쟁의 성난 불길 앞에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이라는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이지요.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어제 조선일보 사설의 일부를 잠시 인용해 드리지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29/2009062901964.html  (조선일보 2009.6.29 사설)
"....국민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정부 의욕이 앞서 4대강 사업이 졸속으로 흐르진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부 마스터플랜엔 4대강 사업을 오는 10월 착공해 2012년까지 3년 동안 22조원을 들여 완공하는 걸로 돼 있다. 경부고속철은 1992년 착공돼 19년 만인 2011년 완공 예정인데 전체 예산이 19조9000억원이다. 4대강은 경부고속철의 6분의 1도 안 되는 사업기간에 경부고속철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4 27일 4대강 사업 중간발표 때만 해도 사업비가 14조원이었다. 그랬던 게 6월 8일 마스터플랜에선 22조원으로 늘어났다. 특히 보(洑) 설치에 따른 오염을 막기 위해 수질대책비로 3조9000억원이 새로 책정됐다. 지난 4월 국립환경과학원이 보를 설치하면 유속(流速)이 정체돼 수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낸 데 따른 것이다. 국민은 한 달 반 사이 몇조원짜리 사업 항목이 뭉텅뭉텅 추가되는 것을 보면서 4대강 사업이 면밀한 계획을 거쳐 시행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한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과연 제 정신 박힌 우리 국민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 3년 동안(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청계천마냥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가 온 국민에게 보여져야 하므로....) 국민의 혈세 22조원을 강바닥 긁어내는  "노가다판"에 쏟아 붓겠다는 사업에 박수 치며 바로 동의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게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개선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요?

물론 강이 메말라서, 혹은 수질이 나빠져서 만성적인 식수난을 겪고 있거나, 또는 매년 홍수 피해로 상습적인 수해를 겪는 지역의 주민들이라면. 또는 4대강 삽질로 인한 토목 사업으로 일자리가 생길 일용직 잡부들이나 건설 토목 기업 관계자, 그로 인해 밥벌어 먹고 사는 기업의 가족들이라면 정부 정책의 타당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일단 일거리가 생기는 것 자체를 환영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정부가 퍼붓는 돈, 이른바 재정이라는 것은 정부가 따로 해외에서 돈벌이 수익사업을 재주껏 하지 않는 한 결국 그 재원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나라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충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서민을 포함한 절대다수 국민들의 세금이나 간접 조세를 통해서 동원할 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그러므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아닌 한, 자칫하면 소수(기업)의 혜택을 위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그 비용 조달의 고통을 분담하게 되는 것이 바로 국가 공공 재원을 동원한 대규모 개발사업이 갖는 위험성입니다.
(IMF시절 부실 기업이나 망해야 마땅한 은행들의 채무 변제와 구조를 위해 수십 조원의 공적 자금=국민 세금이 속절없이 낭비되고, 국부가 유출되는 와중에서도 이들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던 사례를 떠올려 보십시오. )

그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국가나 정부의 업적과시 의욕보다 실제 그 정책으로 인해 혜택이나 혹은 피해를 볼 수 있는 이해당사자, 즉 국민들의 의견을 더 깊이 있고 신중하게 듣고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근데 이런 절차나 공공의견의 수렴을 무시한 채, 단지 차기 선거를 위한 방편으로, 또는 자기 업적 과시를 위한 용도로 국고를 함부로 축내려 할 경우 그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으로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금, 유일하게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견지하고 있는 MBC에 대해 방송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검찰을 동원해서 고발하고 조사하는 작태에 이어, 십여년 넘게 유지되어온 이사회 구성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간섭하고 노사 추천 이사를 배제하겠다고 공공연히(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서는 것은 이런 사회적인 비판에 대해 원천적으로 입을 틀어 막겠다는 치졸한 의도와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거대 신문사의 방송 참여 및 겸영을 허용하는 것을 "경쟁의 효율화"라는 단순논리로 포장하여,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겠다고 나서는 의도 또한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짓입니다. 짐작컨대 비판적 언론을 상업적 언론과의 무한경쟁 구도 속으로 몰아넣어, 결과적으로 광고 및 자본을 더 동원할 수 있는 상업 방송의 난립을 통해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더 나아가 아예 눈을 멀게 하고 싶은 기득권 정치세력과 기존 거대 언론 자본간의 야합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최근 네이키드(발가벗긴) 여성 앵커를 동원한 뉴스 방송 채널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런 걱정이 더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발독재 시절 뿌리내린 정경유착 50년의 귀결로 언론권력을 장악한 경제권력이 이제 바야흐로, 신문과 방송, 통신을 모조리 장악하고, 그 힘으로 이제는 정치권력 자체를 좌우하기에 이른 듯 보입니다. 삼성의 탈법 비리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등에서 보듯이, 우리는 시장이 권력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는 셈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같은 서민, 혹은 시민, 국민들이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나 무기는 무엇일까요? 과연 그런 방법이 있기나 할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 밤 뉴스를 들으니, 제주도에서, 도민들의 의사에 반해 군사기지 시설 유치를 추진하려던 도지사가  20%가 넘는 도민들의 주민소환 발의 서명에 따라 소환 투표를 앞두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그 도지사 역시 도를 발전시키려는 자신의 충정에서 나온 정책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소신론"을 당당하게(?) 펴고 계시더군요....

저는 지난 대선에서 투표를 어찌 했건, 쉽게 말해 이명박 후보를 찍었건 안 찍었건, 지금 대통령을 갈아 치워야 한다거나 탄핵하자는 의견에는 별로 동조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회의원들이 자기들끼리 의석 쪽수만 믿고 철없이 탄핵안을 가결시켰다가 된통 혼쭐이 난 적이 있다는 지난 역사의 교훈을 떠올려서만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학습의 핵심은 완벽하지는 못할지언정, 형식적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랄 수 있는 선거에서 행하는 선택입니다.즉, 자신이 선택한 리더가 어떤 정책 실패, 또는 성공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그 결과의 참담함 또는 만족도에서 얻는 교훈으로 학습되는 것이라고 믿는 까닭입니다.  물론 최악의 경우 탄핵 소추나 주민소환, 혹은 "전국민적 궐기"라는 최후의 방법까지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을 염려한다면, 조금 더 시일은 요구하겠지만 3년 뒤 선거를 통해서 심판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고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의 민주주의 역량이나 국가 지도자에 대한 선택 판단 능력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전준비 기간이자 자습 기간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조선일보조차 나서서, 위에 예를 든 것 같이 "우려 섞인 사설"을 공공연하게 써대는 것을 보면 현재 친정부편에 서있는 많은 보수 기득권층의 인사들조차도 다음 번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이 어찌될 지 두렵고 걱정이 된다는 반증이 아닐까 해석됩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떡볶이 빨아먹는 대통령, 오뎅 뜯어먹는 대통령, 4대강 삽질에 올인한 대통령 덕분에 깨끗한 물을 먹게 되었다는 환상에 빠져서 이같은 개발독재를 서민 대통령의 치적이라 믿는 국민들이 또다시 다수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자 잘못 뽑아 5년 동안 겪어야만 했던 스트레스를 또다시 잊어버리고, 개발독재 후예 그룹의 수장을 자처하고 있는 "박근혜" 류의 정치세력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중대한 착각에 빠지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작금 선정적인 언론들의 섣부른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노라면, 불과 2년 전 이명박의 "경제 대통령" 론에 속았던 우리는 아마도 3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논리를 앞세운 채 개발독재의 망령을 부활시켜 그 명줄을 연장해보려는 대통령 후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독재자였다. 그러나 그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만평은 우리 모두가 두고 두고 기억해둘 가치가 있습니다. 
또 속을지 안 속을지 그 결과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린 일이고, 선택은 그 때도 또한 여전히 각자의 자유일 테니까요!!



Posted by 렛츠고
,
여러분은 아침에 눈을 뜨거나 사무실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저는 플래너를 펼치고 오늘 해야 할 일들과 일정들을 생각해보고 간단한 메모를 한 뒤에는 거의 예외 없이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열어 [받은 편지함]을 살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스팸 메일이 하도 많아서 정상적인 메일도 못보고 놓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고 하소연하시는데, 저는 메일은 기본적으로 [MS오피스]에서 제공하는 [MS아웃룩]을 이용하면서 [규칙] 설정 기능을 통해 스팸을 걸러내고, 메일의 주제나 발송처에 따라 카테고리를 트리구조로 세분하여 관리하기 때문에 하루에 보통 100통~200통이 넘는 메일을 수신하지만 스팸과 정품(?) 메일을 구분하기 위해 고생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간혹 메일 송신자의 이름이나 메일의 제목이 영문으로 불규칙하게 표기되어 있거나, 성인 취향의 키워드가 섞여 있어서 저도 모르게 [정크메일]함이나 [자동 이동] 필터링 규칙에 걸려 [지운편지함]으로 직행해버린 메일 중에 업무 관련 메일이 끼어 있는 경우가  발생하긴 하지만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아웃룩의 [규칙] 설정 기능을 이용해서 메일을 자동 분류하고 카테고리별 폴더로 넣어버릴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어떤 메일들이 왔는지를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해당 폴더들을 하나하나 따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면 중요하고 읽어볼만한 메일을 뒤늦게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아웃룩에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메일] 메뉴의 [즐겨찾기 폴더] 하단에 [읽지 않은 메일] 폴더를 제공합니다.


이는 수신한 메일을 내가 아직 읽지 않았을 경우, 미개봉 메일들의 목록만을 수신시각 순으로 몽땅 한꺼번에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하루에 한두 번 이 폴더를 열어보면 설령 자동분류 규칙에 따라 하위의 하위 폴더에 숨어 들어가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혹시 중요한 메일이 왔는데 미처 놓친 것이 없는지 한 눈에 다시 살펴볼 수 있지요.

이 기능을 이용하면 평소 즐겨보던 웹메일진 등을 제목만 추려서 본 다음 꼭 읽어야 할지 스킵해도 될지를 대충 판단할 수 있는데, 가끔씩 "아이쿠! 이런 기사를 놓쳤으면 아쉬웠겠는걸..." 하는 마음이 드는 메일들이 섞여 있습니다. 아래 첨부하는 메일도 제가 [다산연구소] 메일과 함께 즐겨 찾는 [과학 향기] 폴더로 오늘 아침에 배달되어 온 따끈한 메일입니다.

메일 발행호수가 이미 932호를 넘길 만큼 나름대로 역사가 쌓인 메일인데, 살펴보니까 이제는 YTN과 사이언스TV에서도 방영될 만큼 인기가 높아진 것 같네요.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빙(BING)이라는 새로운 지능형 검색엔진(결정엔진)을 내놓았다고 잠시 시끌했는데, 오늘 [과학향기] 에서는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께서 개발했다는 또다른 개념의 검색엔진을 소개하고 있군요. 인터넷 검색엔진의 진화ㅡ 과연 어디가 끝일까요?



Home > 과학향기 기사보기 > SCI-FUSION

신개념 검색엔진 울프럼알파, 구글에 도전장
[제 932 호/2009-06-24]
인터넷 검색엔진 시장의 절대 강자는 단연 구글(Google)이다. 미국의 닐슨 온라인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인터넷에서 검색 100건 중 64건을 구글을 통해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콤스코어는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에서 지난 4월 구글의 점유율이 무려 81.4%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10년만의 일이다.

1998년 구글은 검색엔진의 새로운 세대를 열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 야후가 인터넷에서 디렉터리 검색 엔진을 주도하고 있었다. 사람이 좋은 사이트를 선별하여 정리하는 이 방식은 정보량이 많아지면서 관리하는데 한계에 다다랐다. 또한 알타비스타처럼 키워드 매칭(keyword matching)을 기반으로 자동화된 검색엔진이 등장했지만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키워드만 일치하면 무작위로 펼쳐놓는 수 백 페이지의 쓰레기 검색 결과(Junk results)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절묘하게 파고든 것이 구글이었다. 당시 스탠포드 대학원생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두 사람은 사용자가 원하는 내용과 가장 근접한 결과부터 보여주는 검색엔진을 생각해 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웹 페이지를 생산해내는 사람들과 사용자들이 웹 페이지에 접근하는 행태를 분석해 자동으로 랭킹이 계산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해당 페이지의 중요도는 다른 웹페이지에서 해당 페이지를 가리키는 인바운드 링크(inbound link)의 수로 결정되었다. 이는 중요한 논문일수록 인용하는 횟수가 높다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구글은 야후의 디렉터리 엔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데이터들을 검색했다. 하지만 자동화된 랭킹을 부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불과 1~2페이지 안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았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탁월한 검색 알고리즘에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다. 기업을 공개하고 서버에 대한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면서 ‘인공지능에 의한 단순 웹 검색으로는 구글을 따라갈 서비스가 나오기가 힘들다’는 평판을 얻었다. 일단 끌어오는 웹페이지의 수가 다르니 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 서비스를 시작한 검색엔진 울프럼알파(www.wolframalpha.com)는 색다른 검색 서비스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검색엔진은 스티븐 울프럼(Stephen Wolfram· 50) 박사가 개발했다는 이유로 서비스 시작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미 16세 때 입자 물리학에 대한 논문을 썼고, 17세 때 옥스퍼드에 입학해 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또한 20세 때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박사학위와 함께 교수로 임용되어 천재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손을 거처 탄생한 검색엔진은 구글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다. 구글이 수집한 정보들을 나열하는 방식이라면, 울프럼알파는 정보를 재분석한 지능형 답변을 제공한다. 즉 창에 검색어를 넣었을 때 구글은 답이 있을 법한 관련 사이트를 수 만개 검색한 다음 이를 중요도 순서로 나열해 준다. 반면 울프럼알파는 수집해 놓은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자신이 직접 간략한 형태의 답을 만들어 제공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 날씨’을 검색창에 넣으면 구글은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웹사이트들을 나열한다. 반면 울프럼알파는 기온, 풍속, 기상 조건 등을 일목요연한 표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과거의 날씨를 그래프로 만들어 시각적으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울프램 박사가 자신의 검색엔진에 대해 “전통적 검색엔진이 아니라 연산능력을 갖춘 지식엔진”이라고 자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울프럼알파는 천재 물리학자의 작품답게 복잡한 수학 계산과 통계, 차트처리에서 탁월한 역량을 자랑한다. 구글 검색에서 ‘$250 + 15%’는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지만, 울프럼알파에서는 250달러와 이의 15%인 37.5달러를 합한 287.5달러를 표시해 준다. ‘250 USD + 100,000KRW’만 입력해도 합을 414,800원으로 한국 원화로 환산하여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울프럼알파만이 갖고 있는 강점이다. 검색창에 20inch(인치)를 치면 feet, cm, mm, m 등 다른 단위로 변환된 값은 물론 폭, 너비, 전자기 복사 파장 등과 비교했을 때의 값도 함께 검색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울프럼 알파에서 250달러와 10만원을 더한 결과. 원화와 달러는 물론 엔화, 유로화, 위완화와
홍콩달러 등 다양한 화폐 단위로 환산한 값을 보여준다.>

이는 울프럼 박사가 1988년 선보인 매스매티카(Mathematica)에 기반을 둔 검색엔진이기 때문이다. 수학, 물리학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소프트웨어의 하나인 매스매티가는 약간의 과장을 섞자면 수학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처리해 주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매스매티카는 수치계산(numerical computation), 기호계산(symbolic calculation), 그래픽 처리(graphical operation) 등의 연산이 가능하다. 특히 기호 계산은 가장 큰 강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매스매티카는 우리가 연필로 종이 위에 계산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령 분수식의 약분, 인수분해와 부정적분 등)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번에 서비스를 시작한 울프럼알파는 이런 매스매티카의 프로그래밍을 대중화한 것이다. 실제로 울프럼알파는 직접 답변을 제공하기 위해 세계에서 44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를 비롯해 많은 컴퓨터를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울프럼알파가 구글의 검색분야에서의 절대적인 지위를 위협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새로운 개념의 검색엔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약점도 많다. 우선 울프럼알파는 검색 결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검색한 결과를 재구성해 보여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응 속도가 느리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 등을 검색하면 검색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아직까지 다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구글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구글은 최근 검색 결과에 관련 도표를 제공하고, 많은 양의 결과를 특정 범위를 지정해 볼 수 있는 서치 옵션 기능을 더하는 등 서비스를 보강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진화발전하면서 사용자들의 호감을 얻어온 구글의 평판은 울프럼알파가 넘기 힘든 장벽이 될 것이지만, 울프럼알파의 서비스로 인해 검색엔진 서비스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포털사이트 운영회사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정보(전산) ; 통신 ; 전기/전자 ; 수학(통계)
구글; 검색엔진; 울프럼알파
Posted by 렛츠고
,
저는 개인적으로 [오마이뉴스]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오마이뉴스의 모든 기사들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편도 아니구요.  다만,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환경 하에서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조명받지 못하는 곳에 대한 취재 공간을 선도적으로 개척해온 점에서는 그 시도를 존경합니다.  특히 보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혹은 다루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열린 시각과 개인들의 발언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는 [프레시안] 및 [미디어오늘]과 더불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또한 개인적으로 진중권 교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최대한 팩트(사실)에 근거해서 전개되고, 앞뒤 논리가 맞는다는 점에서, 보수 정객들의 앞뒤 똥오줌 못가리는 '느자구없는' 주장들에 비하면, 200% 들을 만하고 귀기울일만 하다는 점에서 그를 존경합니다.  특히 그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현장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전경들의 폭력에 노출되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온몸으로 누비면서 앞장서는 실천력에 대해서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최근 완장 찬 유인촌의 MB정부 앞잡이 행태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사태와 관련 문화부의 졸렬한 감사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 데 이어서, 4대강 개발사업을 주축으로 강행되는 MB정부의 삽질 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 기사를 작심하고 싣기 시작하신 것 같네요...  아직 다 마무리되지 않은 진교수님 글을 퍼다가 공유합니다....


제작비 22조, 무너진 경제대통령의 신파
[진중권 칼럼] '삽질 대한민국'... 나라가 어쩌다 이 꼴 됐나
09.06.22 12:11 ㅣ최종 업데이트 09.06.22 14:23 진중권 (angelus)
  
2007년 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15대 총선 선거법 위반 재판 당시 거액을 받는 대가로 위증을 요구받았으며 "위증하지 않았다면 이 전 시장이 구속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대통령을 하느냐?"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자)

 

전직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은 MB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MB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성공한 기업인으로 연출하려 한다. "정치보다는 일을 잘해서 평가를 받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그 때문. '개라고 생각한 고양이.' 이런 것을 유식한 말로 '범주오류'(category mistake)라 부른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범주오류가 하필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사실 MB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이 14대 총선, 그러니까 자그마치 17년이나 묵은 김치다. 깨끗한 축에 속했던 것도 아니다. 15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하고, 범인 김유찬을 외국으로 도피시키며 그에게 허위 자백서를 받아 공개하는 등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될 듯하자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빌미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끝까지 범인도피 부인한 이명박 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의 진실은?' <오마이뉴스> 2007년 2월 16일자)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 그 상황에서 정치를 혐오할 형편이 되는가?

 

성공한 CEO? 그것도 우습다. MB가 몸담은 현대건설은 그가 떠날 때쯤 1차 부도위기를 맞을 정도로 부실했고, 그 여파로 훗날 워크아웃 대상이 된다('믿습니까, 이명박의 유능한 CEO 신화' <한겨레21> 2007년 7월 2일자).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때 8.0%에 달하던 서울시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1%로 주저앉았다. 충남 8.4%, 경북 6.9%, 전국은 4.1%의 성장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민병두 의원실 : 이명박 전 시장 재임 중 서울 성장률 1.1%로 전국 꼴찌' 연합보도자료 2007년 7월 12일자). 금융으로 업종을 바꿔 BBK에 뛰어들었으나, 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기만 당했다. 결국, 현대경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깨끗한 정치인도 못 되고, 성공한 CEO도 못 되고, MB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건설현장의 감독뿐. 그가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1970~1980년대에 형성된 그의 사적 체험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을 매개로, 졸지에 대한민국 경제 및 정치의 패러다임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22조가 넘게 드는 대규모 삽질로 경기를 부양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제요, 대통령이 감독이 되어 국민을 공사판의 인부 부리듯 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쫄티 입은 슈퍼맨... 변화를 읽지 못한 복고 취향

 

  
2008년 12월 6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경제파탄 민주파괴 이명박 정권 심판 국민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경제정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민생민주국민회의

첫 단추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였다. 불행히도(?) 대통령의 주도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관치경제는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되었다. 토대(경제)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상부구조(정치)는 조만간 제거되는 법. 박정희가 괜히 암살당한 게 아니다. 늦어도 전두환 정권 이후 경제의 주도권은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점에 관한 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념이 차라리 정직하고 현실적이다. MB는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한 복고 취향이다.

 

MB가 내건 개도국 구호는 결국 경제위기 속에 극적 파탄을 맞았다. 2008년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2.2%, '경제 망쳤다'고 한탄하던 노무현 정권의 절반 수준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수치로 표현되는 성장률, 그것도 개도국 수준의 고도성장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고도성장이 그렇게도 부러운가? 참고로, MB의 한국이 죽을 쑤는 동안 인도는 6.7%, 중국은 9.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성장률이 높다고 인도와 중국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경제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시대착오적인 믿음의 엔진을 단 '에어 MB'의 보잉 747은 당연히 비상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바다로 추락했다. 동력을 잃고 바다에 불시착한 747은 이제 곁을 지나는 애먼 어선이나 괴롭히는 소말리아 해적선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7% 부활의 복음을 믿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오직 사도 변희재뿐. 오, 반석 같은 믿음이여. 그가 운영하는 <미디어 빅뉴스>의 목표는 아직도 '경제성장률 7%', '국민통합 국민합의'란다. 이런 것을 유식한 말로 犬食草音, 즉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 부른다.)

 

국민들이 MB의 전과 열네 개를 쿨하게 용서해준 것은 고도성장의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 MB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도 통치는 계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자칭 '중도실용정부'가 검·경을 동원해 좌파를 사냥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공안 통치를 하게 된 것이다. 인도에 나부라져 앉았거나 지하철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전경 떼는 20년 만에 다시 서울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경제대통령'의 환상 때문에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제대로 망가졌다.

 

박정희 놀이?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시대 아니다

 

1970년대 관치경제에 사로잡힌 MB의 상상력은 이미 집권 초부터 시대착오로 드러났다. MB는 자신과 재계 사이의 '빅딜'을 믿었다. 한마디로 재계의 숙원이던 '규제 완화'를 해주면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해주리라는 것. 규제완화=경제성장이라 믿는 그 단순한 머리가 부럽다. 현실은 MB의 순진함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기업들은 투자와 채용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소득 통계'에 의하면 올 상반기 건설, 설비, 무형 고정투자를 포함한 총 고정자본의 전년 동기대비 실질 증가율은 0.5%로, 작년 상반기 6.2%에 비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투자 증가율이 '제로'에 머문 셈이다. 일자리 문제도 신통치 않다. 전경련이 7월 초에 발표한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계획에 상당수 그룹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재벌에 무장해제한 MB, 이제와 뿔난들' <프레시안> 2008년 8월 22일자)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투자란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법. 세계경제의 전망도 불확실한데, 대통령 얼굴 봐서 투자를 확대할 수는 없잖은가. 정몽구 회장도 사면해주고, 규제도 완화해주었는데도 재계가 미적거리자, 한나라당에서 단단히 뿔이 났다. 

 

"박희태 대표는 21일 한나라포럼 초청 강연에서 '지금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 돼서 투자를 않고 있다고 하는데 재벌들은 몇 십조 원씩 쌓아 놓고도 투자를 안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8·15 사면에서 경제인이 많이 사면된 것은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경제 살리기를 위해 적극 투자해달라는 뜻이 아니냐'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위의 기사)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하다니,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기업에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어느 매체의 지적처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정권의 문패에 감사해 서민경제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바지할 만큼 '착한 자본'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낭만적이라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재벌에 무장해제한 MB, 이제와 뿔난들…' <프레시안> 2008년 8월 22일자)

 

한편, MB가 경제성장의 비결이나 되는 양 재계에 선물로 안겨준 '규제완화'는 도대체 우리 경제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MB의 대변인(당시 차명진 대변인)이 솔직히 실토한다.

 

"이번에 경제를 살리라는 이유로 욕을 들어가면서 특별사면도 해 줬는데,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에만 급급한 기업인들이 꽤 있다." (위의 기사)

 

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는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였다. 이게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재계는 제 먹을 것만 취하고 입을 씻었다. 하긴, 계약서를 써서 이행의 의무를 지운 것도 아닌데, 계약 아닌 계약을 뭐 하러 지키겠는가? 그래 놓고서 선물을 줬으니 답례를 하라고 종용해대니, 기업들이 아주 귀찮았던 모양이다. 한 그룹의 임원은 이 재판 박정희 놀이를 이렇게 꼬집었다. 

 

"일자리는 투자가 늘어야 하고, 투자는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나와야 하는데, 현 정부가 과거 박정희 시절처럼 투자대상을 직접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전경련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공수표 될 판' <한겨레> 2008년 8월 19일자)

 

박정희 시절이라면 정부가 재벌들 불러 윽박지르고, 또 전두환 정권 초기라면 말 안 들으면 재벌 하나(국제그룹) 쯤은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불행히도(?)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골통(骨筒)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무력한 푸념의 심오한 뜻을 이제야 알겠느뇨?

 

호주 총리도, 영국 총리도 떠나고... 나 홀로 치는 뒷북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한줄로 서서 이명박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건희

물론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하나, 그 방식이 박정희식일 수는 없다. 현대국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경제조정적 개입과 사회복지적 개입. MB 정권은 '작은 정부'라는 모토 아래 이 두 가지 개입을 축소해 왔다. 대기업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고, '강부자'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감세에 따른 세수의 부족은 서민층에게 전가하며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는 축소하며, 이게 세계적 추세이자 '선진화'란다. 과연 그럴까?

 

MB가 열심히 규제를 풀고 있을 때, 앞서 그 짓을 했던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와 함께 197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다. '신자유주의는 죽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 그런데 각하는 다른 나라에서 시체가 된 이념을 경제 살릴 구세주랍시고 들고 나오셨다. 유행을 좇을 때조차 나 홀로 둥둥, 뒷북을 친 것이다. 이를 비웃는 인상적 사건이 있었다. MB가 호주를 방문하기 직전, 호주의 총리가 국내 한 신문에 특별 기고를 했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 궁극적으로 시장의 힘이 이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시장 이념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힘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위기로 몰아넣는지 목격했다. (...) 신자유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으로 금융시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조셉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 안 보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 '[특별기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의 역할' <중앙일보> 2009년 3월 2일자)

 

한마디로, 호주 총리가 자국 방문 기념으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신자유주의자(=MB)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러드 총리 못지않게 신자유주의를 열렬히 신봉하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최근에 생각을 바꾸었다.

 

"세계 경제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이자 흔히 미국식 자본주의 대외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일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영국의 경우 고든 브라운 수상이 "워싱턴 컨센서스는 끝났다."라고 첫마디를 시작하기까지 했다. 모든 것은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저절로 조절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의 결과가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폐해로 드러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베이징 컨센서스의 위력' <노컷뉴스> 2009년 4월 13일자)

 

추세가 이렇게 흘러가자 한나라당에서 당황한 모양이다. 정두언 의원이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로 지정한 책의 저자를 불러 세미나를 열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가 6일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했다. 장 교수는 (...)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 강연회에 참석해 규제완화, 금융시장 자유화 등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강연회에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를 초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정부 여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정하는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 한나라당 의원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장하준, 한나라 토론회서 MB정책 비판' <연합뉴스> 2009년 4월 6일 자)

 

이것이 MB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그건 MB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MB는 꿋꿋하게 제 길을 한다. 하긴,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 재계는 도통 말을 안 듣는다. 투자를 확대할지 말지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야 할 문제니까. 고로 권력으로 뭔가 해 볼 수 있는 곳은 공공부문뿐. 여기서라도 구조조정으로 '효율성' 제고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가 다시 '큰 정부'로 갈 때, MB 혼자 '작은 정부'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MB의 생각이란 결국 공공기관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자신의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니 어떡하나?

 

<조선일보>가 걱정할 정도의 날림공사 속도전

 

  
2007년 6월 22일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윤성효
이명박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대규모 토목사업. 국민들은 이 삽질이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한다. <조선일보>마저 "4대강 살리기가 절박한 것인지" 의심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도 절박하지 않다. 다만 임기 내에 뭐가 보여줘야 하는 MB 개인에게는 매우 절박한 일이다. 7% 성장이 물 건너가는 바람에 구겨진 스타일은 다시 펴져야 한다. 게다가 삽질이야말로 그가 잘하는 유일한 분야인데다가, 현재로서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정책 수단이 아닌가? 그래서 무려 '22조+α'를 쓰겠단다. 문제는 재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8~2010년 우리나라 재정수지 악화 수준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9%로 미국(-5.6%)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재정 상황만큼은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을 부각시켜왔는데 어느새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 더구나 이번 전망에는 얼마 전 편성한 슈퍼 추경 29조원이 빠져 있는 데다 앞으로도 걸핏하면 또 다른 추경을 편성할 태세여서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겠다." ('재정수지악화 너무 가파르다' <매일경제> 2009년 4월 6일자)

 

물론 불황에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으나, 그렇게 지출된 재정은 미래의 비전에 기초하여 장기적 경제효과로 되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자. 정부에서 곧 공공기관장들 모아놓고 4대강 사업 설명회를 열 예정인데, 그것을 앞두고 공공기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단다.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의 예산을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분담시키려 하기 때문이란다.

 

"일부 공공기관은 '정부가 경영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4대강 살리기에 공공기관의 재정적 참여를 유도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 정책을 펴 왔다. (...) 공공기관 129곳에 대해 정원의 12.7%인 2만 2000명을 줄이도록 했다. 민영화가 예정대로 이뤄지면 공공부문에서 1만 2000명이 추가로 줄어든다. (...)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의 초임을 깎아서라도 한쪽으로는 돈을 짜내고 별로 상관없는 사업에 더 많은 돈을 쏟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공기업 4대강 특강 배경' <서울신문> 2009년 6월 19일 자)

 

결국 멀쩡한 일자리 줄여 건설 일용직 창출하는 셈이다. 이 못 말리는 근시안은 물론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747의 추락으로 망신을 당한 MB, 남은 임기 동안 뭔가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경기 정도는 회복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돈을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 물론 그 돈이 장기적 경제효과로 되돌아올지는 퇴임 후의 문제이고, 그 돈을 갚는 것도 퇴임 후에 다음 세대들이 할 일이다. 사업의 추진도 <조선일보>가 걱정할 정도로 날림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사업계획의 큰 틀이 이리저리 바뀌고 사업비가 수조 원씩 들쭉날쭉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아스팔트 깔았다가 뜯어냈다가 다시 깔았다가 뜯어내는 7080 날림공사 수준이다. <조선일보>의 걱정은 이어진다.

 

"환경영향평가는 계절별 영향을 보기 때문에 보통 1년은 한다. 4개월 영향평가로 충분한 환경대책이 마련될지도 걱정이다." (위의 사설)

 

환경평가? MB에게는 그저 속도전의 대상일 뿐이다. 1년이 걸리는 환경평가도 조지면 4개월 만에 다 해낸다. 이게 MB가 말하는 녹색성장의 실체다. 속도전은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토지보상비 또한 신속히 풀려야 한다. 덕분에 한국토지공사 직원들만 바빠졌다.   

 

"요즘 한국토지공사에서 토지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이달 말까지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지역의 토지 및 지장물 조사를 마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이들은 점심 한 끼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시락까지 챙겨서 다닐 정도다. (...) 토공 전체 직원의 10분의 1인 198명과 지자체 공무원 60명, 조사보조원으로 토공이 채용한 청년 인턴 및 사회취약계층 100여명 등 356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토지 및 지장물 조사에 나서고 있지만 이달 말까지 조사를 마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토공 직원들 주말 휴일 반납한채 4대강 조사 올인' <파이낸셜뉴스> 2009년 6월 18일자)

 

거의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 수준이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이러니 22조+α의 혈세가 과연 제대로 집행이 될지 의문이다. 어느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한 자치단체장에게 직접 들은 얘기"를 전했다.  

 

"자기 지역에 4대강이 흐르고 있어 5000억 원이 내려오게 돼 있는데 이 사업과 관련해 세미나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무조건 조기 집행하라고 하니까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토로하더라. 이런 국가적 낭비가 어디 있나. 강 살린다면서 돈 갖다 버리는 것 아닌가 심히 염려된다." ('이명박 정권, 내년 하반기엔 레임덕 올 것' <위클리경향> 2009년 6월 23일자)

 

돈을 풀어야 한다. 돈이 풀리면 경기는 살아난다. 어디에 풀지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이다. 속도전이 낳은 해프닝은 또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을 조기 집행하라는 재촉을 받은 어느 공공도서관 직원의 말이다.

 

"책 구입을 조기 집행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면 대단히 후안무치하고 개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1년의 농산물인데, 이것을 조기에 한꺼번에 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 대통령, 삽질 원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 있소' <프레시안> 2009년 6월 11일자)

 

한마디로, 아침에 세 공기 먹고, 점심과 저녁은 굶으라는 얘기다. 코미디가 아닌가? MB 치하에서는 도서 구입도 마치 건설공사 공기 맞추듯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연, MB의 통치

 

  
19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환송 리셉션에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왼쪽) 등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이게 이른바 '경제대통령', 또는 '성공한 CEO'의 실체요, 그의 발가벗은 모양이다. 그가 국민의 눈앞에서 연출하는 그 모든 해프닝은, 그의 독특한 인생철학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언젠가 그가 <월간조선> 기자에게 들려준 말은, 그가 왜 그토록 병적으로 토목공사의 결과물(대운하 혹은 4대강)이나 단기적 성과(경기부양)에 집착하는지 잘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그분은 경부고속도로나 거대 공업단지처럼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설득당한다." (김성동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나의 전략'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여기서 그가 앓는 병증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토목공사의 업적에 집착하는 것은 전형적인 산업사회의 증상으로, '생산의 비(非)물질화'라는 탈산업사회의 추세에 배치된다. 한마디로 시대착오라는 얘기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란 당연히 경기부양과 같은 단기적 성과를 가리킨다. 이 역시 외연적 속도(가시적인 신체의 속도, 기계의 속도)에 집착하는 산업화 초기의 습속으로, 내포적 속도(비가시적인 생각의 속도, 전자의 속도)라는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친이(李)계 초선의원의 말을 들어 보자.

 

"서울시장 때를 보자. 중앙버스차로 도입 때를 생각해보라. 초반에 얼마나 비판이 많았나. 청계천 살리기에도 처음엔 비판 일색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냐. 이명박 대통령은 그걸 기억한다. 지금 경제가 살아나는 징후가 보인다. 대통령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MB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겨레21> 2009년 6월 12일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MB가 '경기 살리기'와 '경제 살리기'를 혼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경기야 22조의 빚잔치를 하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문제는,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경제체제 속으로 한국경제가 성공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전략이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제 살리기'일 터, 불행히도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MB의 머리에는 '넘사벽'이다.

 

지금은 국민들이 반대해도,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만 내면 국민들은 설득 당할 것이다. 이것이 MB가 그 모든 비판에 귀를 닫는 이유다. "처음엔 비판 일색이었다. 지금은 얼마나 좋아하냐." 이 통쾌한 반전, 이것이 MB가 꾸는 꿈이요, MB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그를 말이 안 통하는 먹통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심오한(?) 실존미학이다. 표 한 번 잘못 던진 죄로, 대한민국 국민은 22조의 표 값을 치르며 한 개인의 유치한 신파를 지켜봐야 한다. MB의 주관적 로망(浪漫)이 대한민국의 객관적 노망(老妄)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대의 비극이다. MB의 통치,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연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진중권 교수, 22일 생중계 강연회

 

진중권 교수가 오는 22일 저녁 7시 30분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위해 생중계 강연회를 엽니다.

 

<미디어아트 - 예술의 최전선>(휴머니스트) 출간기념으로 열리는 이날 '저자와의 대화'는 오마이TV를 통해 생중계됩니다. 이 행사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오마이뉴스>가 주최하고 휴머니스트 출판사가 후원합니다.

 




 
Posted by 렛츠고
,


서울광장의 경찰 차벽 바리케이트를 상징으로 현 정권의 안하무인과 소통 부재에 대한 여론의 질책이 끊임없는 시국선언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늦은 밤 오랜만에 [MBC 100분토론- 민주주의, 위기인가] 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기술과 방법의 저급함이랄까, 공격성이랄까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했습니다. 

의사소통, 혹은 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소통이란 말이나 행동을 주고 받는 상대가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고, 따라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는 아무리 합리적인 의견이나 견해를 표방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요나 자기독선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민주주의의 근간 역시, 민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로부터 제대로 설 수 있고 또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작금 그러한 기본원리가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버려진다면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위기라 할 수 있지요...

토론 생방송 시청자 전화의견을 듣는 코너에서 한 시민이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하더라!”는 발언을 하신 모양인데, 어떤 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뜩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며 맞장구를 치시더군요. “그래, 나도 그런 떡 제발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라구요,,,  소통의 부재 속에 이심전심 역설의 소통이 더 잘 '통하는' 공감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관련 글: http://go.idomin.com/252 )

문득 지난 가을, 소통에 대해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던 메일이 떠올라서 아래 퍼다가 붙여 드립니다....



From: 최규문 [mailto:letsgo@uhakn.com]
Sent: Tuesday, September 02, 2008 6:23 AM
To: 아무개 외 다섯 분
Subject: [공유] FW: [하승범]불편함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낳는다
--------------------------------------------------------------------------------
아래 첨부 전달하는 것은 제가 예전에도 한번 소개해드렸던 하승범 님의 정기 메일인데요,
오늘 아침 메일의 타이틀 글이 나름 의미 있고 재미가 있어서, 회사 식구분들께 공유합니다.

불편함을 통한 의사소통이라….
매우 역설적인 컨셉인데 이웃 일본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하니, 한번 새겨 들어 보시지요…

혹시라도 우리 조직 내에서도 일이나 업무, 혹은 성원들간에 말로는 다하지 못하는 불편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 불편함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알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자세로 임한다면 오히려 그 불편함이 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타산지석이라 하지요… 늘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응대할까,,,,
내가 상대방이라면, 왜 저런 의견을 저런 표현으로 말하는 걸까?
이것을 역지사지라 부르지요…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언행에 대해 근본적인 의도를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지난 주에 고향에서 어머님께서 된장이며 쌀이며 고추며, 몇몇 가지를 택배로 보내 오셨는데
그것을 열어본 집사람이 질겁을 하고, 제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를 비난하고 욕하면서
난리가 났더군요…

이유인 즉, 택배 포장을 뜯어보니, 그 안에서 구더기처럼 생긴 쌀벌레(나방이 되기 전의 애벌레)
들이 줄줄이 기어 나왔던 것이지요.
풍뎅이에 바퀴벌레같이 제법 모양을 갖춘 곤충들에도 질겁을 하고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정도로 유별나게 징그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구더기라니 오죽 했겠습니까?

어머니께서 나름 먹어보기 힘들다는 맵쌀을 먹어보라고 보내주신 모양인데, 아니나 다를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억지로 구더기 쌀을 화장실 세수대야에 담궈 놓았다는데, 들여다보니,
쌀벌레 구더기 열 마리 정도가 둥둥 떠서 노닐고 있는 것이 제가 봐도 정이 떨어지더군요…
덕분에 저희 부부간에 한참 동안이나, 또 입씨름이 시작되었지요.

"누가 보내달라 했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런 썩은 쌀을 보내느냐?
앞으로 이런 거 보내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릴 테니 다시는 보내지 마시라고 해라.
시어머니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한 것이 아니냐?" 등등...

과거에 며느리로서 서운했던
기억들까지 다시 들춰가면서, 쉬지 않고 어머니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기 시작하더군요….
대개 부부싸움의 태반이 바로 경제적인 문제와 시집 사람들에 대한 의견차에서 시작되지요.
당연히, 집사람의 오바하는 모습에 저도 역시 열이 받았지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새끼한테 먹거리를 보내면서 일부러 썩은 것을 보내겠느냐?
내가 보내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뭐 하나라도 좋다는 게 있으면 자식에게 먹여보고 싶고
주고 싶은 것이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고 자식들에 대한 정성이다.
묵은 쌀인 줄 모르고 실수로 보내셨을 수는 있지만, 그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니다!
제발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고서 시어머니를 욕하기 전에 그 분의 정성과 안에 담긴 마음과
의도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욕할 필요는 없는 일 아니냐…."

이게 제 논리이자 항변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분위기는 쉽게 꺼지질 않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밤 무렵에 어머니께서 보낸 물건 잘 받았느냐고 확인 전화를 해 오셨더군요….
저는 듣기 싫지 않을 만큼, 맵쌀이 묵어서 쌀벌레가 많이 나와 모두 버렸고, 집사람이 덕분에
많이 놀랐다고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도 무척 놀라시며, 맵쌀이 구하기도 힘들고 해서 잘 아는 시장 사람에게 부탁해서
받은 것을 아무 의심 없이 확인도 하지 않고 봉다리째 넣어서 보낸 것인데, 그런 줄 몰랐다고,
그 상인에게 항의하고 변상이라도 요구를 해야겠다며 거듭 미안해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왜 유독 너희 집에 보내는 물건에서는 그렇게 자꾸 문제가 생기냐 하시며,
앞으로는 아예 아무 것도 안 보내야겠다고, 제가 요청하지도 않은 약속까지 하시더군요…
저는 사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영 안 좋았습니다.

집사람이 하도 싫어하니까, 이왕 일이 터진 김에 말씀은 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식
챙기려는 정에서 나오는 행동까지 하지 마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 심정이 영 흔쾌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차라리 안 보내셨으면 썩은 쌀을 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집사람이 어머니를 오해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그게 서로의 관계에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아마도 자식새끼 챙겨보고 싶어
과실 하나, 쌀 한 되 보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씀씀이마저도 소통할 길이 영영 막혀 버리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좋은 일일까요?

중요한 것은, 겉으로 표현되는 말이나 결과에 앞서서, 그 말이나 행동이 나오게 된 애당초의
의도나 동기를 우리는 서로 읽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법원의 판결에서도 어떤 범죄 행위가 있었을 때, 형량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의도성, 목적성 여부입니다.

즉 애당초 범죄를 행하거나 사람을 해할 의도가 있었는지, 이른바 계획된 범죄였는지 아니면
순간적인 분노나 우발적인 실수, 혹은 어쩔 수 없는 정당 방위로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가
발생한 것인지를 따져서 범죄 성립의 여부와 형량의 경중을 나누곤 합니다.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범죄 성립 여부를 가지고 비유하자니 너무 나간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어떠한 행동의 기저에 깔려있는 의도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지간에서나 조직에서나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동료나 팀원들에게 말로 직접 드러내어 표현하지 못하는 불만이나 맘에
안 드는 구석들이 있다면, 제일 먼저 떠올려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역지사지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그 상대방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맘에 안 들거나 불만인데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감정은 혹시 없을까?
나의 어떤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남의 언행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를 돌아보는
“자기수신”의 자세와 더불어,
설혹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더라도 상대방이 근본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내면의 선한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읽어내서 올곧게 보려는 “역지사지”의 마음…

아마도 이런 것이 바탕에 깔린다면 우리네 세상은 법이 없이도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이고,
그런 직장에는 늘 웃음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넘쳐날 것이라 믿습니다.

모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새로 읽은 메일 하나 공유하고 소개하려다가 쓸 데 없이 제 말이
무척이나 길어져 버렸네요…

새로운 9, 비가 그친 하늘 창 밖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바야흐로 가을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읽어주면서 모쪼록 그 동안 어렵게 뿌린 씨앗을 조금이나마
거두는 알찬 수확의 계절을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싶습니다…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2008
92,  동트는 아침에…
목동에서 초심 드림.


 <아래는 위의 메일을 쓰게 된 자극을 받은 메일 원문 입니다.>
From: 하승범 [mailto:win1004ha@unitel.co.kr]
Sent: Tuesday, September 02, 2008 12:46 AM
To:
Subject: [
하승범] 불편함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낳는다
-----------------------------------------------------------------------------
휴넷

우리는 보통 ‘불편함’이라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 ‘불편함’이 주는 이점을 꿰뚫어 봄으로써 크게 성공을 거둔 곳이 있습니다. 홋카이도 도카치 지방의 중심부 오비히로 시내의 새로운 명소인 기타노 포장마차가 바로 그 곳입니다. 오늘은 ‘씽크 이노베이션’에 소개된, 불편함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기타노 포장마차의 사례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타노 포장마차는 18개의 포장마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열 명만 들어가면 꽉 차는 가게들 어디서나 손님들의 목소리가 흘러넘치고,
밤이 깊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줄 모릅니다. 이곳은 전국의 약 30곳에서 이곳을 본뜬 시도가 이루어져 포장마차촌에 의한 지역 활성화 물결의 도화선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타노 포장마차의 성공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불편함’이라는 요소입니다.
언뜻 잘 이해가 안 되지요? ‘불편함’이 어떻게 성공의 요소가 될 수 있을까요?

기타노 포장마차는 의도적으로 가로 3m, 세로3.3m의 고작해야 3
평 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무 좁아서 손님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기타노 포장마차의 창안자인 사카모토 가즈아키 전무이사는 이러한 불편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게가 좁으면 손님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손님 사이의 의사소통을 낳아요. 혼자 온 손님은 대개 가장 안쪽에 앉으므로 화장실에 가려면 옆자리의 손님에게 말을 걸어야 하죠.
거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됩니다. 불편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는 거죠.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제일 소중히 여긴 것은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었어요.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사카모토와 그의 동료들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불편함이 낳는 의사소통’입니다. 이는 18개 포장마차 각각의 점주들 사이에서도 적용됩니다.
기타노 포장마차의 경우, 주방 부분은 고정식이지만 객석 부분은 조립식이라서 점주들은 저녁에 출근하면 주방 옆의 수납고에서 객석 부분을 꺼내어 조립해야 합니다. 의자까지 고정식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의사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사마모토 전무이사와 콤비를 이루는 구보 유지 전무이사는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점주에게는 개점 전에 포장마차를 조립하고, 폐점 후에 수납하는 일이 귀찮고 불편합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웃 가게나 맞은편 가게와 서로 돕게 됩니다
. 포장마차의 불편함이 점주들간의 의사소통을 낳고 있는 거지요. 우리를 본떠 만든 포장마차촌 대부분은 좌석을 전부 고정식으로 만들어 옆집이 언제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서로간의 유대감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요.

이런 방식을 통해 각각의 포장마차는 하나하나의 독립된 사업체이면서도, 전체적인 운영에서 강한 팀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편함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낳는다.’ 이 한결같은 컨셉이 기타노 포장마차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상 기타노 포장마차는 2001년 문을 연 이래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첫 해에 오비히로시의 전체 인구에 가까운 15만 명 이상이 찾아와 2
억 엔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그 후 상승세를 타고 매상이 늘어 4년째에는 고객 수가 18만명을 넘어섰고 매출액이 34천만 엔에 달하게 되었지요. 그 사이 ‘내일의 일본을 만드는 협회’의 고향 가꾸기 상, 총리 대신상, 일본도시 계획가협회 대상 등 지역 활성화와 관련된 여러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례를 보면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불편함’이란 것이 완전히 장점으로 탈바꿈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의사소통’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불편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있다면 한번 그런 요소를 이용해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해 보세요. 그건 어쩌면 서로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간의 부담 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사람 사는 곳의 느낌, 따뜻함, 동지애 등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기 계발 작가 김보승 드림
*참고 자료: ‘씽크 이노베이션’, 노나카 이쿠지로, 가쓰미 아키라 지음, 남상진 옮김, 북스넛
첨부 파일 참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승범의 사명***
"나는 자기계발을 통해
지혜롭고 현명한 코치로서
파트너들과 함께
매일 더 나은 삶을 성취하고
행복 실현하는 천년가문을 세운다."
리하는 , Success Navigator!


Posted by 렛츠고
,

[MS-Word 2007] 단락기호, 띄어쓰기/맞춤법 오류 표시 밑줄 숨기는 방법


MS워드 2007을 사용하시다 보면, 편집화면에 디폴트로 나타나는 [단락나눔 표시기호]나 [맞춤법 오류 단어 표시 밑줄(빨간색 물결)] 또는 [띄어쓰기 오류 표시 밑줄(초록색)] 이 나타나서,

화면 이미지를 캡쳐할 때 매우 지저분해 보이는 경우가 생겨서 종종 짜증스럽지 않으세요.... 아래와 같은 경우를 말하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여러번 찾다가 실패해서 오늘은 작심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찾아 보았습니다.

오피스 2007이 이전 버전들의 메뉴 체계를 확 바꾸면서 발생하는 숨박꼭질인데요... 찾아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참고하시고 도움이 되시길...

2007 버전에서는 숨박꼭질을 하셔야 합니다...
F1 키를 눌러서 온라인 도움말이 나오거든 [단락 기호]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거기에 나오는 설명대로 따라해 보시면 됩니다.
워드2007의 맨윗쪽 좌측에 있는 오피스단추(동그란모양의 버튼)을 클릭하면 메뉴 팝업창이 뜨는데,
그 박스창의 우측 맨 아래쪽 행을 보시면 [Word 옵션(I)] [Word 끝내기(X)] 두 가지 거의 숨어 있는 버튼이 보입니다.


이 중에서 [Word 옵션(I)] 버튼이 바로 워드2003버전 이전의 [도구]-[옵션]에 해당하는 버튼입니다.

1) 이 버튼을 눌러서 나오는 새 팝업 창의 메뉴 중에서 [표시]-[화면에 항상 표시할 서식 기호] 항목 중에서
   [단락기호] 앞의 네모 체크 표시를 해제하시면 단락기호가 없어집니다.


2) 이와 마찬가지로, [오피스 단추]-[Word 옵션]-[언어교정]-[Word에서 맞춤법 검사 및 문법검사] 창에서
   -[입력할 때 문법오류 표시] 앞의 박스 체크 표시를 해제하면 띄어쓰기 오류 표시 물결밑줄(초록색)이 없어집니다.


3) 위와 같은 원리로, [입력할때 자동으로 맞춤법 검사] 항목 앞 박스의 체크 표시를 해제하면
    맞춤법/문법상 단어 오류시 나타나는 빨간색 물결밑줄 표시도 없어집니다.



그림을 보니, 이해가 되시나요??
도움이 되시길....


Posted by 렛츠고
,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
지은이 이나모리 가즈오 | 양준호 옮김
출판사 서돌
별점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오래동안 일본식 경영모델을 상당히 충실하게 벤치마킹했던 국내 기업들에게 경영에 관한 구루(스승)을 꼽으라고 하면 매우 많은 분들이 마쓰시다 그룹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꼽는다.

이른바 마쓰시타 정경숙이라는 후진 양성기관을 통해 일본의 경제계 및 정관계까지를 두루 아우르는 일종의 엘리트 네트워크를 만들었던 분으로, 심한 경우 경영의 신으로까지 칭송을 받는 인물이다. 

혼다자동차를 창업한 혼다 소이치로 또한 자동차 브랜드가 귀에 익어서 그런지 매우 익숙하고 부담이 없다. 이들에 비하자면 내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많은 이들에게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이름은 그리 익숙하지 않고 심하면 생소하게까지 들릴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가...)

그런데 그런 그가 위의 두 사람과 더불어 일본 3대 경영의 신으로까지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라는 책을 통해서 겨우 알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분이 경영했던 회사는 앞의 두 회사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것들이 아니어서일지 모르겠다. 그가 27살 나이에 28명의 작은 인원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전자회사로 키운 것이 바로 교세라 라는 말을 듣고서야 아! 하는 감탄사가 비로소 나왔다...

창업 원년 흑자기록에서부터 매년 기록적인 수익율과 매출액을 올리며 세계 100대 기업의 반열에 올렸다고 하니, 그의 경영 노하우를 듣고 배우려는 젊은 벤처 기업인들이 쇄도했던 모양이고,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들 젊은 기업가들을 키우기 위해 세이와주쿠라는 경영인 모임을 만들었는데, 여기 회원이 4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라는 책은 바로 이 경영인모임에서 회원들이 제기한 여러가지 기업과 관련된 자문요청 및 질문들에 대해 모임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도 접할 수 있도록 이나모리 사장이 직접 친절하게 해설하고 답변한 내용을 글로 엮어 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전체가 208쪽에, 판형도 문고판 같은 느낌인데 비해 책 뒷표지의 가격이 13,000원으로 찍혀 있는 것이 내심 부담스럽다.

가격의 부담과는 달리 내용은 일본책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핵심 요약판을 보듯이 심플하고 간결하게 사례 문답 위주로 되어 있어, 집중해서 읽으면 3-4시간이면 충분히 독파하고 남을 분량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슨 거창한 경영이론을 체계적으로 해설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전문용어가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무척 평이하고 쉽게 술술 읽고 그냥 고객 끄덕이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냥 끝이다. 뭔가 경영의 신이라 불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뭔가 좀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이한 내용과 결론이다.

원래가 원리, 혹은 원칙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알아도 실천하기 힘든 것!
결코 복잡하거나 심오한 것이 아니고, 아주 단순 명쾌하면서도 명료한 것인데, 뭔가 더 좋은 이론이나 방법이 있을 것처럼 기대하고 헛다리를 짚는 것!

이 책에서 이나모리 가즈오는 회사라는 조직을 경영할 때 꼭 필요한 핵심요소들에 대해 실제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질문 사례들, 이를테면 고수익을 올리는 방법, 직원들을 관리하는 방법 등등에 대해 응답하는 방식으로 아주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한다.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서술하는데,

1장_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편은, 투자와 수익의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 대해 당연 수익에 집중하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논지를 편다. 물론 투자 자체를 하지 말란 것이 아니라, 현재 운용하고 있는 아이템에서 높은 수익율을 올리지 못하고 다른 분야를 탐내거나 집중점을 흐리게 되면 이것도 저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장-도전하는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편은, 회사의 규모나 사업다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원칙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무조건 규모에 집착하기보다는 인원당 부가가치 생산성이 높은 알찬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아메바 조직]이라는 원리를 이용해 전체 회사의 각 사업부문을 일정한 사업 단위로 쪼개서 독립적으로 채산제를 적용하여 어느 부문에서 얼마만큼 수익을 내고 혹은 적자를 내는지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사업다각화에 대한 유혹은 기틀이 되는 중심 사업이 일단 확고한 기반에 서야 하며, 당연히 원래 핵심사업 부문의 기술이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의 연관 사업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령 전혀 연관성이 없는 기업이나 사업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조직을 키웠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최대한 연관성있게 엮어야지 따로따로 방치해서는 시너지를 낼 수 없다고 충고한다.

3장_회사는 혼자 굴러가지 않는다 편에서는, 노사가 아닌 가족이 되어라! 는 주제 아래 개인이나 부문별 경쟁과 그에 따른 차등 성과급을 우선하려는 서구식 연봉제나 상여금제의 한계와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대가족주의]에 입각한 가족적 경영원칙에 따라 모든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키우도록 하는 데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직원 가족의 성공 자체를 기업의 목적이자 가치(경영이념)로 삼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우고, 건전하고 발전적인 회식 문화의 필요성, 그리고, 회사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전사원 참가경영] 원칙을 거듭 강조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직원들이 자사의 주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더불어....

끝으로 4장-회사의 주인은 바로 당신이다 편에서는 리더와 간부를 어떻게 발굴하고 키울 것인지, 또 능력이나 실적, 성과는 부족하나 충성심이 있는 직원인 경우 정리하는 것이 맞는지, 혹은 시장상황의 악화나 경영환경의 변화로 인해 감원이나 해고가 불가피할 때 직원들에게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등 예민한 질문들에 대해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을 비교적 명쾌하게 남긴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속한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자영업 경영자라면 주변 사업장에서 흔히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매우 실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매우 단순 명료하지만 의미있는 원칙들을 다시 한번 재확인해준다.

흔히 평범함 속에 오히려 변치 않는 진리가 숨어 있다고들 말하는데, 이 책은 그 말이 경영 현장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회사를 망하게 하는 힘도, 반대로 망해가는 회사를 인수해서 다시 살리는 힘도 결국은 사람에게 달렸다는 사소한 진리이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여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자발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게 할 것인가에 기업의 사활이 달렸다는 점을 저자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라는 말은 곧 이익을 못내면 회사는 망한다는 아주 심플한 진실을 그대로 대신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도 망할 회사, 혹은 망해가는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Posted by 렛츠고
,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지은이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별점

유시민의 헌법에세이,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저자 유시민이 자칭  '지식소매상'으로서 가장 최근에 내놓은 저작 [후불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여  라는 제목을 붙인 이 장은 저자가 20여년 전 자신을 가두었던 독재권력의 폭력죄 실형 선고에 대해 [항소이유서]에서 해명했던 내용들에 대한 20년 이후의 자기성찰이자, 양심고백(?)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현행 법 앞에 불법일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의 양심 앞에 정당했다, 혹은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의 시대사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결론이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84년 84학번, 학내민주화 1세대의 딱지를 붙이고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때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유시민이라는 이름 뒤의 호칭은 전 장관이라거나, 전 머시기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선배'라고 하는 편이 가장 어울리고, 또 부담이 없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80년 광주 학살의 피를 얼추 닦아내고 나서 조금 통치의 여유가 생겼다고 보았는지, 1983년말 경에 대학 캠퍼스로 벤또를 싸들고 출퇴근하던 짭새(사복경찰)들을 교내에서 철수시키면서 이른바 "유화국면"을 조성해주던 시절, 학생들의 눌렸던 민주화의 열망은 다시 열린 학내 집회를 통해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비합법 지하조직처럼 활동했던 언더써클들이 공개써클로 전환하거나, 조직의 일부가 공개써클 활동을 통해 외부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지요.
(70-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 조직의 계보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위클리경향 812호_2009.2.17에 정용인 기자가 쓴 아래 글,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9311&pt=nv  
참고하세요.)

정권이 만들었던 학도호국단을 학생들 스스로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던 당시, 정권과 경찰은 사복경찰을 철수시킨 대신에 캠퍼스 앞 도로를 전투경찰로 틀어막고 가두 진출을 저지하는 한편, 학생운동 조직 및 활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학생을 가장한 학내 정보공작원(이른바 '학원프락치')들을 암암리에 침투시켜 시위 움직임이나 관련 조직을 색출해내 주모자나 주동자를 체포하여 고문하거나 강제로 군대로 끌고가는(이른바 "강집") 나치의 게슈타포식 탄압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은 당연히 학생회나 써클 등의 학생 조직에 신분이 불확실한 자들이 얼쩡거리거나 정보들을 캐고 다니면 일단 '프락치'로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신분이 의심되는 프락치 혐의자(?)들이 학생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이 서너 차례 연속해서 발생하면서, 당시 학생회 및 복학생협의회 같은 조직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던 학생들(선배들)이 폭력 사주범으로 체포되고 연행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 때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유시민 선배가 바로 이같은 혐의의 배후 주동자로 취급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1심에서 참여하지도 않았던 폭행가담 혐의를 근거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1심의 실형이 내려지기까지 말도 안되는 법률 적용에 대해 법관들을 향해, 그리고 정권과 국민들을 향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자 썼던 글이 바로, "80년대 학생운동사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라는 것입니다.
(항소이유서 전문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http://blog.naver.com/hotbloodsoul/140069532860  참고하세요. )

당시 갓 대학문을 밟고서야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게되었던 저에게도 이러한 학내 상황은 시대의 부름 앞에 청년학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주기에 충분했죠... 그런 만큼,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당시 학생운동과 독재정권간 갈등의 현주소를 낱낱히 정의하고 밝혀주는 교본으로 썩 훌륭한 교재 역할을 했고, 실제로 작은 소책자로도 발매가 되었을 만큼 운동권은 물론 일반 지식인 사이에서까지 필독문 중의 하나였죠.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바로 이때부터 씌어지기 시작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왜 다시 읽혀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의 되돌아봄이자, 지난 20여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과연 얼마만큼 민주화되었는지, 그 현 주소를 다시한번 점검해보는 나름의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책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당시 항소이유서에서 거론되었던 사건에 대한 저자의 재평가와 당시 피해자였던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사과라는 개인적인 고해성사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시민은 지나간 과거를 단지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을 들춰 냅니다. 시대적 상황이 선의를 가진 개인들을 얼마든지 악하게도 만들 수 있음을 역사적 실례로 보여주고, 그 악에 봉사하는 도구로 쓰인 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인류 역사의 사례 또한 엄중하게 지적하고 경고합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의 헌법에세이]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사실 매우 소박하게 자전적인 수필 형식으로 씌어진 글들의 모음이어서, 굳이 헌법이나 법률 체계, 혹은 법률 전문용어를 모르는 분들이 읽는다 하여도 전혀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는 매우 "읽기 쉬운" 책입니다.

또한 헌법은 이런 것이다, 혹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을 학자처럼 늘어 놓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이 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그 태생과, 태생으로 인한 한계와 과제를 쉬우면서도 적확하게 집어놓고 있기 때문에 읽어가다보면 그냥 저절로 아... 그렇구나... 맞아.... 그랬었지...그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라고 고개가 곳곳에서 절로 끄덕여지는 책입니다.

전체 380쪽 정도로 이루어진 얇지만은 않은 분량이지만, 마치 재미난 실록 실명 역사소설 단행본 한편을 읽는 기분으로 작심하면 하룻밤, 길어도 이틀 밤 정도만 할애하면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 독서를 권하기에 별 부담도 안 됩니다....

더욱이, 아주 오래 전 고려나 조선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전 정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과, 현재 겨우 1년밖에 채우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의 비교 대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우 리얼한 상황을 옅볼 수 있고, 정권의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결정이나 조율의 비하인드 스토리(뒷얘기)까지 담고 있어서 일말의 흥미나 재미까지 선사해 줍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로 나뉘며, 1부는 [헌법의 당위], 2부는 [권력의 실재] 라는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짐작하겠지만, 당위(Sollen))로서의 헌법과 현실로서의 실재, 혹은 존재(Sein)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밝히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주요한 원리와 원칙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이를테면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이 어떻게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개헌 과정에서 삽입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또 현재 이르러 그 헌법의 가치가 왜 훼손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 선행됩니다.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에 두 번에 걸쳐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서 여의도 현장에서 경험하고 배웠던 입법부의 현장 경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에 힘입어 입각했던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행정부 현장 경험 등을 통해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국가 정책이 어떤 경로와 절차를 통해 입안되고, 조정 혹은 변질되며, 또 집행되게 되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권력의 이면들을 중계하면서 아주 친절하고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가십성으로 느껴지지만, 왜 당초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김근태가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정동영과 거꾸로 자리가 뒤바뀌게 되는지에 대한 뒷얘기, 박근혜 등과의 막후협상을 통해 거의 다 합의를 볼 뻔했던 국민연금 개혁법안이 한나라당의 얼토당토 않은 보고체계에 의해 어떻게 엉뚱하게 좌초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스토리 등을 포함해서, 조중동의 악의적인 기사 취급이 얼마나 한심하고도 허무맹랑한 수준에서 조작되고 왜곡되는지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아울러 절대권력을 가진 청와대 집권자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참모를 얻지 못하거나 자기성찰의 태도를 스스로 갖지 못할 경우 이를 수밖에 없는 파국적 운명, 즉, 현재 이명박 정부의 독주와 독선이 왜 그리 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파행적인 운명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번뜩이는 예언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합니다.

책장을 넘겨가는 내내 동서양과 고금, 철학과 역사에 기초한 인문학에서부터, 경제학과 사회학을 넘어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풍부한 식견과, 그것을 헌법이라는 얼개 속에 교묘하게 섞어 넣어가면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고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빠지다보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1인칭 소설 한 편을 보는 듯한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후불제 민주주의]가 양심적인 인간으로 살고자 원하는 우리 소시민들에게 진실로 원하고 또 요구하는 바는 결코 명시적이거나 선동적이지는 않지만 글 곳곳 행간 사이사이에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헌법 1조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진실로 우리나라가 그리 되기를 원한다면, 긴 역사의 호흡을 가지고, 늘 공부하고, 연대하여, 깨어서 실천하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의 정책 실패를 자인하면서 했다는 한 마디를, 책의 부록 CD로 주어지는 [저자 강연회] 속에서 스스로도 다시 인정하면서 이렇게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대중은 계몽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중은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치고, 스스로 학습하는 만큼만 깨어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한 나라의 국가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대한민국 헌법 1조를 현실에 깨어있게 하고 실재로 구현하는 과제는 어떤 누군가 선각자나 구세주에 의해 선의나 시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중 스스로가 학습하고 깨달아 깨우친 만큼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결론이자 요청은 "선과 선의 연대"를 통한 악의 축출 입니다! 

그 선과 선의 연대 형태가 어찌 될 것인지,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색해야 하는 현재 진행형으로ㅡ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겨두고 책을 마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갚아야 할 외상값을 다 갚지 못한 후불제 민주주의인 까닭에, 대중 스스로가 더 비싼 값을 치르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면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은 뒤, 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라는 책을 영문판 원서로 주문하기로 작심했습니다.
왜냐구요?  읽어보시면 압니다!!

Posted by 렛츠고
,